제166화
바다에 있는 문화재나 보물선의 소유권은 어떻게 될까.
이것저것 따져야 할 것이 복잡하다면 복잡하고 단순하다면 단순하지만 소유권을 명확하게 주장할 수 없는 경우라면 국가 귀속이 원칙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발굴되는 문화재는 대부분 그렇다.
심지어 사찰에서 출토되어 소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상당히 있는 유물마저 분쟁을 거치기 마련이었으니. 다만 관련 법규 및 국제 관행에 따라서 약 80%의 지분을 발굴 업체가 소유하기 마련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어.’
하물며 바다는 불확실투성이인 곳.
특히나 보물선 탐사는 더더욱 그랬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성공 사례가 극히 드물었다. 그런 탐사를 국가 세금으로 진행하는 건 적잖은 무리가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대개 민간의 인양 업체가 나섰다. 대박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서. 당연히 높은 확률로 대다수는 돈만 바다에 뿌리고 실패하기 마련이었다.
“오랜만입니다.”
“네. 잘 지내셨지요?”
은후가 이세계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난 노인 귀신 김영섭. 그로부터 이어진 인연으로 만나게 된 박수무당 김영호. 은후는 문화재와 보물선에 관하여 간단히 알아본 후 김영호를 찾았다.
김영호는 은후의 연락을 받고 곧장 전주로 향했다. 다른 약속은 모조리 미뤘다. 취소하기 다소 곤란한 약속도 있었으나 김영호는 한점의 망설임도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은후의 연락이지 않던가. 자신이 모시는 신이 두려워하는 유일한 인간. 게다가 자신이 지금 이렇게까지 유명세를 얻고 돈을 벌 수 있게 된 것도 은후 덕분이었으니.
‘급한 건 아니라고는 했지만.’
김영호가 모시는 성수 장군이 말했다.
- 이번 기회를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게다. 네가 좋아하는 돈방석에 앉을 밑바탕이 될 일이니까.
그 말에 바로 전주로 향한 뒤 은후를 찾았다.
‘여전……하네. 아니지, 더 커졌나?’
김영호는 은후와 만난 뒤 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이내 어째서 자신이 압도되었는지 깨달았다.
‘그때는 내가 못 봤구나.’
은후가 품은 거대한 힘을.
지금은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약간 엿본 것만으로도 김영호가 압도당하기엔 충분했다. 은후는 그런 김영호의 반응에 아차 싶어서 자신의 기운을 완벽하게 갈무리했다.
평소에는 지금 이 정도로까지 완벽하게 마나를 숨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정도의 마나는 다른 보통 사람들이 느낄 수도, 어떤 피해를 야기하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김영호 씨도 예전에는 몰랐는데.’
성장했구나.
‘제법.’
성수 장군이라고 했던가.
‘적잖이 힘을 되찾은 것 같네.’
김영호와 성수 장군이 연결된 희미한 선.
결국 성수 장군도 은후에게 있어서 정령이었다. 다만 보통 정령과 다르게 강대한 힘을 갖추었고, 기본적으로 인간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존재였다.
‘그래서 정령은 정령이나 보통 정령과 다르게 그 구분을……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은후가 툭 말했다.
“이제 좀 괜찮으신가요?”
“……네. 진짜 보통 사람처럼 보이시네요.”
“보통 사람 맞습니다만?”
“농담도요. 그런데 모르고 보면 진짜 모르겠습니다.”
은후가 픽 웃었다.
보통 사람이라는 것.
진심이었다.
마법사라는 직업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하지만 결국 그것도 다른 직업. 예컨대 회사원이라든가 요리사라든가. 그런 직업을 가진 이들과 다를 게 없는데.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르겠지.
하물며 마법사가 자신이 유일한 현대에선.
‘가진 힘의 크기에 따라서 특별함을 정의할 수 있는가. 맞으면서 아니라고 보지만.’
이 부분에 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은후는 자신의 상념을 끊으며 김영호에게 말했다.
“가죠.”
“네?”
“여기서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 그렇죠.”
김영호가 멋쩍게 웃으며 은후를 뒤따랐다. 애써 자신의 놀라움을 감추면서. 이윽고 도착한 곳은 은후가 일전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방문하게 되었던 시가 바였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시가 바의 주인이자 재벌 3세 서자 우현도가 있었다. 아무래도 취미로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대개 우현도는 없었고 다른 직원과 아르바이트생만이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혹시 처음 오시나요?”
“두 번째입니다.”
“하하. 그러시군요. 제가 여기 사장인데 자리를 자주 비워서요. 그런데 한국말이 되게 능숙하시네요?”
“한국에 오래 살았거든요.”
우현도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은후가 우현도와 만나기 전부터 다른 신분인, 예전에 만들어 두었던 영국인 리암으로 변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조용히 이야기 좀 나누고 싶은데요. 룸 빈 곳 있나요?”
“그럼요. 따라오시죠.”
김영호는 시가 바라는 곳이 처음이었기에 신기한 표정으로 흘끔흘끔 여기저기를 살폈다.
“시가 바는 처음이신가 봐요?”
“아, 네. 시가는 좀 즐겼었는데요.”
“그런데 어디서 뵌 분 같은데…… 저희 본 적 있나요?”
“하하. 글쎄요. 제가 요새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기는 하는데요.”
우현도가 은후와 김영호를 방에 안내하고 나가려던 찰나.
‘아!’
생각났다.
‘무당!’
근래 명성을 떨치고 있는 진짜배기 무당.
‘저번 달이었지.’
갑자기 어머니가 점을 보겠다며 가덕산이란 난생처음 보는 곳으로 향했다. 그때 우현도가 함께했다. 다른 사람 몰래 가야 한다면서 우현도 보고 운전기사 좀 하라고 했다.
‘점 한 번에 삼천이었던가. 더럽게 비쌌지.’
하지만 어머니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기에 우현도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참 우연이네.’
호기심이 진하게 들었다.
하지만 일단 이곳은 가게였고, 우현도는 사장이었다. 따로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건 아니었기에 호기심을 꾹 내리누르며 말했다.
“방음이 철저한 곳이니 편하게 이야기 나누셔도 될 겁니다. 메뉴판은 테이블에 있으니 고르시고 벨 눌러 주세요.”
우현도가 나가자 김영호가 은후에게 물었다.
“일부러 이곳에 오신 거죠?”
“눈치채셨나요?”
“네. 장군님께서 알려 주시네요.”
“인연의 끈이 닿았거든요.”
“인연이라뇨?”
은후가 빙그레 웃었다.
은후가 굳이 이곳에 온 이유.
그건 령의 바람을 듣고, 낙원의 주민들로부터 이번에 발견한 보물의 처리에 관하여 일임을 받았을 때. 도깨비로부터 선물 받은 나침반이 작동했다.
비단 천 나침반.
보물이나 인연을 찾아 주는.
그 끝에는 이 가게가, 우현도가 있었다.
이번 일에 있어서 서로 좋은 인연이 될 거라는 나침반의 가리킴.
“주문하기 전에 단도직입적으로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네.”
“이번에 보물을 발견했거든요.”
“네……?”
보물이라니.
김영호의 입장에서는 퍽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고려 시대의 청자와 백자 더미가 군산 바다 아래에 있더랍니다. 어쩌다 보니 군산 바다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찾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라고.
어이가 없었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무시했을 것이다. 허풍이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은후의 말이었기에 김영호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 떨어진 곳에 보물선도 있더군요.”
“네? 보물선이요?”
“네. 보물선이요.”
“보물선이요.”
은후는 어깨를 으쓱이며 태평양전쟁 말기에 가라앉은 보물선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은…… 아니, 리암 선생님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전 그냥 웃고 말았을 겁니다.”
“믿으시나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리암 선생님이니까요. 장군님께서도 짧은 언질이 있었고요. 그런데 왜 저를?”
“제가 대외적으로 나서고 싶지 않아서요.”
귀찮았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힐 게 뻔하잖아요?”
“그거야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제가 정면으로 나서면 누가 믿겠어요?”
“선생님의 능력을 조금이라도 겪어 본다면 다들 믿을 텐데요?”
“한 분이 계시기는 합니다만. 믿는 것과 별개로 바다의 보물을 꺼내려면 수고가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죠.”
“수고가 들어도 걸린 돈이 장난 아닌데요?”
“그분은 돈에 딱히 미련이 없으신 분인지라. 지금 가지고 계신 돈으로도 벅차하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전주 유지인 이창석은 제외했다. 그의 친구이자 스타더스트로 연을 맺은 이원석은 애매했고 말이다.
“그래서 제게?”
“네, 모두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테니 서로 윈윈 아니겠습니까. 정확한 좌표를 적어 드리겠습니다. 알아서 처리해 주시면 됩니다. 굿을 통해서 찾아냈다는 식으로 명성을 떨치셔도 좋고. 조용히 처리하셔도 좋고요. 고려청자나 백자 같은 경우에는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하겠지만 일본 강점기의 보물선은.”
은후가 잠깐 말을 멈춘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군산에서 전해지는 소문에 따르면 5천억 상당의 금괴라고 합니다만. 직접 발굴하기 전까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상당하겠죠?”
김영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대가로 제가 뭘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이익의 반절 이상. 아이들을 위해서 써 주세요.”
“아이요?”
“네, 아이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김영호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구체적으로는 전주에 사는 아이들이 대상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네요. 특히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아이라든가? 구체적인 조건이나 대상의 범위에 관해선 추후 서류로 정리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참으로 뜬금없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얻을 이익도 이익이지만 명성도 적잖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그거야 당연한 말씀이십니다만. 제가 이해가 잘 안 가네요.”
“딱히 이해하실 필요가?”
“……없죠.”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는 법. 긴장한 표정을 하는 김영호에게 은후가 픽 웃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보물을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와 관련이 있습니다만. 거기까지 알 필요는 없으시고요.”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 설명을 끝낸 후 은후와 김영호는 주문했다. 동시에 우현도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무슨 일이신가요?”
우현도의 질문에 은후는 어떻게 설득할까 고민하다가 웃고 말았다.
“김영호 씨.”
“네, 선생님.”
“뒷일은 맡기겠습니다. 여기 이분과 함께하면 좋겠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참고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우현도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어.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요?”
대뜸 대화를 하자고 불러 놓고서 묘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뒤 한 사람은 사라지려고 하다니. 이런 무례도 없었다. 은후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정중하게 답했다.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없는 편이 대화를 나누기 좋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 재밌는 걸 보여드리죠. 아,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우현도 씨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그게 무슨…….”
은후가 빙그레 웃은 후 모습을 감추었다.
“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 은후.
‘뭐, 뭐야?’
우현도가 적잖이 당황했다. 그런 우현도에게 김영호가 대수롭지 않게 말을 걸었다.
“일단 술이나 한잔하시렵니까. 마침 시킨 게 두 잔이네요.”
“저, 저, 방금 사람이? 아니, 문이 열려 있기는 했는데, 어.”
횡설수설하는 우현도를 바라보며 김영호가 술을 입가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맛이 좋네요.”
“…….”
“신기한 분이십니다.”
“신기한 분이요.”
“네.”
“……그나저나 무당 맞으시죠?”
“맞습니다. 우현도 씨. 우 회장님의 서자분이시고요.”
“아셨습니까?”
“사모님이랑 같이 오셨을 때 들었습니다. 처음에 참 미웠는데 지금은 참 아끼는 아들이 되었다고요. 남편이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을 좋아하는 첫째 부인은 드물죠. 어떤 인물일까 궁금해서 얼굴을 보려고 사당을 벗어났는데. 그때 눈이 마주쳤었죠?”
우현도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