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선물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받는 이의 마음이었다.
아무리 비싸고 좋아도 받는 이의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면 주지 않느니만 못한 법. 물론 가격이 높으면 그럴 확률이 줄기는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은후가 도깨비로부터 받은 그림은 모두 기본 이상이었다.
조선 시대의 이름을 날리는 화가들의 작품이었으니. 개중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김홍도와 신윤복이었다. 다만 은후가 받은 신윤복의 작품은 죄다 춘화도였다.
‘춘화도를 선물하기는 좀.’
물론 예술품으로 본다면야 못 할 것도 없지만. 그래서 선택한 게 김홍도의 영모화였다.
김홍도는 신윤복과 함께 풍속화로 유명하지만 그 외의 분야도 무척이나 뛰어났다. 일상생활과 관련된 그림 외에도 불교와 관련된 탱화, 풍경을 주제로 삼은 산수화, 동물을 대상으로 한 영모화 등등. 전반적으로 모든 장르에서 빼어난 화풍을 자랑했다.
‘춘화도 잘 그렸지.’
은후가 선물로 선택한 건 고양이와 말이었다.
이창석에게는 고양이 그림을.
제목은 해당묘화도.
해당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장미과에 속하는 활엽관목의 옆에 고양이가 하품하고 있는 광경을 담았다.
이원석에게는 말 그림을.
제목은 송하흑마도.
소나무 아래에서 검은색 말이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을 그렸다.
“우연히 얻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연히라고요.”
“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만, 넘겨받을 당시 소유권자로부터 정당하게 어떠한 불법이나 강압적인 방법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보관 상태가 무척이나 좋았으며, 무엇보다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는 두 점의 그림.
사실 고양이와 말 그림으로 유명한 조선 시대 화가는 따로 있었다. 고양이로 따지자면 화재 변상벽을, 말에 있어서는 공재 윤두서를 꼽았다. 하지만 이름값만 따진다면 두 사람은 김홍도를 따라올 수 없었다.
당대에도.
현대에도.
그러니 이 두 점의 그림은 가치는 두말해 봐야 입이 아팠다.
‘위작이나 가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림에 관해 나름대로 지식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이원석이 중얼거렸다.
‘게다가 은후 선생이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단 말이야.’
은후는 긴가민가하면서도 차마 의심의 말을 내뱉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따로 감정을 받아보시면 확실해지겠지요.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신다면 감정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은후의 말에 이창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굳이요. 저는 선생을 믿습니다.”
“……저도 물론 믿습니다만. 그래도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는 김홍도의 그림이라니 쉽사리 믿기 힘들군요. 선생께서 사기를 당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은후는 이원석의 말에 무어라 답을 하려고 할 때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왔다.
야옹-
나지막한 울음소리.
이윽고 고양이가 은후의 바짓단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은후는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자신에게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도 고양이었으나 이창석의 뒤에 있는 꼬질이의 모습이 반갑기도 했다.
수호령 고양이 꼬질이가 이전과 다르게 은후에게 반갑다며 눈인사를 건네 온 것이다. 최근 들어 감정을 잃었던 이창석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움직이기 시작했다. 꾸준히 은후가 만드는 술을 섭취한 덕분이었다. 그걸 꼬질이도 알았기에 은후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난다면 꼬질이를 볼 수도 있게 되려나.’
이창석이.
‘계약을 주선해야 할까. 아니면 주의점을 전달해야 할까.’
조만간 다시 한번 이창석을 개인적으로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은후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잠깐 날이 풀렸다가 다시 한번 추워지려나.’
그 후에야 봄이 완전히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 * *
다음날 새벽.
은후는 언제나 그러하듯 덕진 공원으로 향했다. 연인인 이하연이 집에 없다면 대개 은후는 아침을 거르거나 혹은 덕진 공원에서 낙원의 주민들과 함께했다.
‘오랜만에 날아서 갈까.’
대개 자동차를 끌고 갔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하늘을 날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쩔까.’
마음만 먹는다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
떡볶이를 순대와 함께 먹을까 말까 하는 정도의 그런 고민. 쓸데없다면 참 쓸데없는 고민을 십분 넘게 하다가 은후가 픽 웃었다.
‘정말 별거 아닌데.’
그런 고민을 사람들은 살아가며 수없이 거듭하기 마련이었다.
이유는 글쎄.
누군가는 배가 불러서. 여유가 넘쳐흐르다 못해 심심해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이런 사소한 고민은 전쟁 통에서도 하기 마련이니까.
- 이따가 쉬는 시간에 잠이나 자야 하나. 아니면 가볍게 카드라도 한 판?
덕진 공원 주위에 자욱하게 깔린 안개.
매우 짙은.
물안개였다.
그 광경을 바라봐서였을까. 은후의 기억 속에서 과거의 한 자락이 솟구쳤다. 이세계에서 겪었던 전쟁 통에서 동료와 주고받았던 대화였다.
‘누구였더라.’
흐릿했다.
동시에 당시의 대화 내용만큼은 퍽 선명했다. 마치 주위에 느른히 퍼져 있는 물안개처럼. 은후는 마나를 끌어 올려 기억을 뒤지려다가 생각했다.
굳이.
그래.
안개가 낀 날이면 이렇게 이따금 당시 겪었던 전쟁의 기억이 스르륵 하고 나타났다. 정식으로 마법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이야기.
굳이 마나를 끌어 올리지 않아도 당시의 기억은 퍽 선명했다. 특히 처음으로 마법사로서 전쟁에 참여했을 때는 더더욱. 딱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때인데.
“쯧.”
은후가 가볍게 혀를 차며 괜스레 애꿎은 물안개 탓을 해 봤다.
과거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추억으로 변하고, 그 추억은 낭만이란 이름으로 포장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은후는 그때 기억을 낭만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나쁜 기억만 있던 건 아니지만.’
딱히 좋은 기억이 많은 것도 아니었기에.
특히 마법으로 처음으로 대량 살인을 했던 기억이 너무나 생경해서. 은후에게 있어서 이세계에서 살아가며 살인은 익숙해지려 해도 익숙해지기 어려운 일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자라며 가치관을 형성한 은후로선 그랬다.
사실 보통 현대인이라면 살인에 관하여 거부감을 갖기 마련이었고, 은후도 그랬으니까. 물론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야만 했다. 살인은 기본으로 금지되었으나 여러 이유. 예컨대 복수라거나.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거나. 다양한 이유로 허용되는 곳이었으니.
그래서 은후도 익숙해지려 애썼다. 최대한 살인을 피하고자 했으나 얕보이면 안 되었기에 때로는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마법사로서 전쟁에서 살인한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지.’
그날도 이토록 짙은 안개가 낀 날이었다.
그때의 길은 흐렸다.
나아가야 할 세상의 머나먼 길도, 애써 닦아 온 마음의 거울도. 방울방울 물방울이 맺혀서. 열심히 닦아야만 했던 시기에 써야만 했던 첫 대량 살상 마법.
‘…….’
자신의 손짓을 끝으로 스러지는 사람들.
물론 그 손짓 이전에 참 많은 걸 준비했지만. 그 준비 과정에 들인 노력이 아무리 많았어도 과연 그 생명을 앗아 갈 만했던 것일까. 그러나 살아남기 위하여.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죽기 싫었으니까.’
윗선에서 요구와 기대를 받고 있었으니까.
‘적당히 뭉갰어야 했는데.’
그때도 아직 순진함이 남아 있었지.
“은후야?”
은후의 상념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끊겼다.
“령아.”
“응. 뭐 하고 있었어?”
“그냥 생각을 좀.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어쩐 일이라니. 한참 동안 안 내려와서 직접 와 봤지. 같이 밥 먹으려구.”
령의 따뜻한 목소리에 은후가 픽 웃었다. 서글프게만 느껴지던 안개가 데워지는 것만 같았다. 못마땅하게 보이던 물안개가 나쁘지 않게 보이는 건 령의 목소리 때문이려나 싶었다.
“그나저나 좋다.”
“뭐가?”
“이름을 받아서! 그리고…… 라온이랑 계약할 수 있어서.”
고래 라온.
“라온 때문에 더 편하게 날 수 있게 됐어!”
“라온 때문이라니?”
령이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라온아!”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령의 목소리에 따라 대기가 짙게 울렸다. 보통 사람은 들을 수 없는 고래의 울음소리였다. 이윽고 호수에서 고래 라온이 솟구쳤다.
하늘로.
이내 라온은 느긋하지만 빠르게 은후와 령의 근처로 다가왔다.
“하늘을 날 수 있대!”
“……그래?”
“응! 수호가 그러는데 라온은 하늘을 날고 싶었다고 그러더라구.”
“하늘이라.”
“그래서 수호가 힘을 써 줬다고 들었어.”
그리하여 갖추게 된 능력.
하늘을 나는.
“땅에서는 수호가. 하늘에서는 라온이. 아, 호수에서도 라온이 사람들을 지키고 보살필 거래.”
자세한 건 좀 더 살펴봐야겠지만.
‘계약하면서 특이 능력을 얻게 된 것 같은데.’
보통 동물이 패밀리어가 되면서 이따금 얻게 되는 능력이랄까. 이세계에서도 이따금 일어나는 일이었고, 그에 관련된 여러 이론이나 방법이 연구되었었다. 그래서 은후도 크게 신기하게 여기진 않았다.
‘하늘을 나는 고래라.’
은후가 라온을 바라봤다.
‘참나.’
하늘에 유유히 떠 있던 라온은 은후와 눈을 마주친 직후 몸을 비틀면서 반가움을 표했다. 딴에는 나름대로 애교를 부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애교 때문에 주위 마나가 잘게 떨리며 안개가 흩어졌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어. 아무리 이름을 받으면서 반쯤 정령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정말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이 정도의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다니. 아마 천도 복숭아나무 수호의 영향이 큰 것 같았다.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겠…….’
령이 은후의 팔을 잡아당겼다.
“밥.”
“그래, 밥 먹자.”
그때 고래 라온이 울었다.
부우우우우우우우.
같이 먹자고.
자신도 이제 식구 아니냐면서.
“그럴까?!”
령이 반색했다.
“자기 등에서 먹으라는데?”
“등에서?”
“응!”
“…….”
더 친해지고 싶어서인가.
그런데 고래의 먹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령이 은후의 손을 잡았다.
“밥 먹으러 가자!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령이 쪼르르 낙원의 중심부인 벽진 폭포로 향했다. 고래 라온은 한 바퀴 허공에서 빙그르르 돌며 덕진 공원 상공을 유유히 헤엄쳤다.
령이 도깨비에게 말했다.
“삼촌!”
“오야.”
“은후도 왔으니까 같이 밥 먹자! 라온이랑도!”
“오. 내 개구리에게 라온이 먹이도 챙기라고 말해 둘련게.”
“아니, 아니. 같이 먹재! 자기 등 위에서!”
“응? 그게 뭔 소리여?”
도깨비는 당황했지만 이내 령의 말을 알아들었다.
“거 크. 좋구만. 좋았으. 잠만 기둘려. 여보!”
령이 외쳤다.
“라온아!”
허공에 있던 고래 라온이 호수로 내려왔다. 이윽고 고래 라온 등 위로 낙원의 식구들이 모여들었다. 고래 라온의 덩치를 고려하면 낙원의 식구들이 모두 모이기엔 좁은 장소.
그래서 거기에 천도 복숭아나무 수호가 힘을 썼다. 고래 라온의 덩치가 갑자기 커졌다. 낙원의 주민들이 넉넉하게 자리 잡고 앉을 수 있도록.
그렇게 호수 위에서.
고래 등에서.
낙원 주민들의 아침 식사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가볍게 뭇국을 끓여 봤구만.”
“뭇국 좋네요.”
“김치는 제가 담았어요.”
“이모 솜씨면 믿을 만하죠.”
“호호. 빈말 아니죠?”
“빈말이라뇨.”
“다음에 김장할 때는 연후 씨도 도와줘야 해요?”
“어유, 그럼요. 말만 하세요.”
“뭇국 맛있어!”
“거 령이 많이 먹구. 다른 사람들도 어여 먹구려. 도령은 왜 안 먹고 있어?”
왁자지껄한 식사 자리였다.
고래 라온 또한 열심히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개구리가 공수해 온 것들이었다. 플랑크톤과 새우, 물고기 등등. 그렇게 시작된 호수 위 고래 라온의 등에서의 아침 식사.
부우우우우우우우.
그런 식사 자리가 너무 좋았을까.
라온이 식사를 마친 뒤 가볍게 울었다.
들썩이는 라온의 몸.
낙원의 주민들도 덩달아서.
음식 접시 등을 은후가 마나로 흔들리지 않게끔 하며 중얼거렸다.
‘좋네.’
어느새 과거 전쟁에서 겪었던 기억은 은후의 머릿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