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고래는 특유의 소리를 통하여 의사를 교환하고 노래한다.
혹은 자신의 감정을 표하거나.
끼익.
끽.
우우우우우.
덕진 공원의 작은 호수에서 마치 관악기가 연주되는 것만 같았다.
끝없이.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안도와 불안감.
죽음을 직감했으나 아직도 자신이 살았다는. 그러나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아서. 이내 고래는 울음을 멈추고 폐의 공기를 바꾸기 위하여 힘차게 물줄기를 내뿜었다.
소위 말하는 고래 분수였다. 힘차게 솟구치는 물줄기에 이하연은 시선을 빼앗겼다. 덕진 공원의 호수 다리에서 고래를 볼 수 있으리라곤 아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
이내 다시 이어지는 고래의 울음소리. 다만 이전과 다른 건 성호의 기타 연주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 고래의 울음에 영감을 받은 성호가 기타를 켜기 시작했다.
낙원의 주민들과 은후와 같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소리. 하지만 은후의 배려 덕분에 이하연도 성호의 기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예쁘다.’
소리가 참 아름다웠다.
동시에.
‘슬퍼.’
그때 덕진 공원의 수호목이 된 천도 복숭아나무 수호가 고래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살고 싶으냐고.
고래가 답했다.
당연히.
삶의 의지는 모든 생명체의 본능과도 같은 것. 때로는 그 의지를 역행하거나 포기하기도 하지만 덕진 공원 호수의 고래에게는 아니었다. 그 의지를 확인한 천도 복숭아나무 수호가 제안했다.
- 그럼 나와 계약을 하자.
- 계약?
덕진 공원을 수호하는 의무를 부여받는 대신 삶을 이어 나갈 수 있게 해 주겠다며. 고래가 되물었다.
- 이 좁은 곳에서 쭉?
그때 령이 답했다.
- 가끔 산책. 아니, 바닷속이니까 산책이 맞나? 이따금 넓은 곳으로 나갈 수 있게 해 줄게. 대신에 다시 돌아와야 해.
- 먹이는?
- 마음껏. 배 터지게.
- …….
천도 복숭아나무 수호와 이미 교감을 마친 령의 답변은 거리낌 없었다. 다만 최종적으로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 은후였다. 그래서 령이 은후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을까?”
“뭐.”
은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문제 될 건 없나.’
서로의 이해도 일치했고.
고래는 삶을 이어 나가길 원했다. 은후의 도움만으로는 죽음을 다소 유예하는 것 정도였으니. 그걸 뒤집기 위해선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고, 그 수단으로 채택된 건 계약.
‘천도 복숭아나무 수호도 슬슬 자신의 의지를 표할 수 있게 되었나.’
은후가 수호를 바라봤다.
수호가 흔들렸다.
쏴아아아아아아.
은은한 복숭아 향과 함께.
“저어. 누구……세요?”
“아. 누나?”
“누나?”
“누나 아닐까요?”
“그, 글쎄?”
“저는. 움. 은후 친구?”
고개를 갸웃하는 령에게 은후가 피식 웃었다.
“틀린 말도 아닌 데 왜?”
“아니. 동시에 내 은인이기도 하니까.”
“은인이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법은 없어.”
“하여간!”
옆에서 이하연이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당황했다. 은후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공원의 수호령이야.”
“수호령……이라니?”
“정령이라고 하면 알아듣기 쉬우려나.”
“정령?”
“그래, 정령.”
“…….”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거짓말이나 농담은 아닌 것 같고.’
예능 촬영이나.
자신을 놀라게 해 주기 위한 영화 촬영이라든가.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주위에 카메라도 없었으며 호수에 고래를 가져다 둔다는 것부터가 애초에 말이 안 되었다. 그때 다시 고래가 울었다.
우우우우우우우.
승낙의 의미였다.
“좋아.”
령이 고개를 끄덕였고.
환한 빛무리가 피어 올랐다. 천도 복숭아나무 수호로부터. 이윽고 빛은 낱알이 되어 꽃잎처럼 호수에 내려앉았다.
“아.”
이하연이 환상적인 풍경에 감탄했고.
“흐음.”
은후는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결이 다른 계약 과정에 놀랐으며.
“네 이름은 라온이야.”
순우리말로 뜻은 즐거움.
수호 동물로서 덕진 공원을 보호하는 게 제일 중요하겠지만. 그 와중에 즐거움도 있었으면. 아이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동물이 되었으면. 그러길 바라서 라온이었다.
호수가 반짝였다.
천도 복숭아나무 수호로부터 떨어지는 빛무리가 스며들면서.
우우우우우우우.
고래가 울었다.
살았다는 기쁨의 감정을 담아. 비록 의무를 부여받았다지만 목숨을 건지지 않았던가. 게다가 계약 과정에서 령과 수호의 감정을 엿볼 수 있었던 고래였다. 그 감정들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렇기에 그에 맞추어 성호의 기타 음색도 바뀌었다.
* * *
이하연이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어?’
어느 순간 다시 돌아온 덕진 공원의 풍경.
“갑자기 좀 따뜻해진 것 같지 않아?”
“나만 그런 거 아니었구나.”
익히 알고 있던 평범한 공원의 모습.
“은후야?”
“여기 있어.”
“응.”
“참고로 꿈 아니다?”
“으응?”
“전부 진짜. 아까 봤던 령도, 개구리도, 고래도 지금 여기에 그대로 있어.”
“아무리 둘러봐도 안 보이는데.”
“그거야 숨겼으니까. 보통 사람들도 보면 문제가 되겠지?”
“……되겠지.”
은후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나 마법사거든.”
“그. 농담이나 어떤 비유가 아닌 거지?”
“응.”
“……마법사. 멋지다.”
이하연이 몽롱하게 중얼거렸다.
“예전부터 언젠가 말해 주겠다는 비밀이란 게?”
“그 비밀 중 하나. 아직 더 말해 줄 게 남아 있어.”
“아직도 남아 있어? 그게 더 신기하다.”
“그런데 믿어?”
“못 믿을 건 또 뭐야.”
그런 일을 겪었는데.
“그런가. 다행이다.”
“혹시 긴장했었어?”
“……그럼. 여자 친구한테 정신 나갔다는 눈초리는 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단 말이지.”
이하연이 중얼거렸다.
“나 많이 신경 쓰고 있구나?”
“당연히.”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바보야?”
“그럴 수도?”
사실 이하연으로서는 묻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하지만 그건 차차 알아가면 되는 법. 당장은 그저 자신을 신뢰해 주고 비밀을 밝혀 준 은후에게 너무 고마워서.
“고마워.”
“뭐가?”
“그냥. 전부. 내게 비밀을 알려 준 것도 그렇고.”
“알려 준다고 했잖아.”
“바보.”
아직 겨울이 잠들지 않은 어느 추운 날이었다.
* * *
은후와 이하연이 데이트를 이어 가고 있을 무렵.
호수 아래에 있던 라온이 수면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고로로롱.
본디 고래는 수면에서 잠을 청한다. 그러나 아직 덕진 공원의 호수로는 고래 라온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걸 령도, 천도 복숭아나무 수호도 알았기에 차츰차츰 호수의 규모를 넓히려고 생각 중이었다.
“그래도 편안하게 잘 자네.”
령이 중얼거렸다.
“잠을 그럼 편히 자야제. 뭐가 달러?”
“응. 고래는 원래 잠수하면서 자야 하거든. 라온의 기억에 따르면 그런데 우리 공원 호수가 좀 작잖아.”
“큼. 거 저 고래에 비하면 그렇제.”
“그래서 좀 늘리려구. 계약해서 딱히 상관은 없어진 것 같은데 그래도 라온에게 좀 더 익숙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
도깨비가 머리를 긁적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거 령이가 참 착혀. 배려도 깊고.’
하기야.
‘그 점 때문에 결심이 빨랐지.’
낙원에 정착하려는 건.
“거 배는 안 고프고?”
“고파!”
“뭐 먹을텨?”
“어, 움.”
령이 고민하다가 답했다.
“치킨! 오늘은 치킨 먹을래!”
“거 치킨 좋…… 좋제.”
도깨비가 꿍쳐 둔 식자재를 떠올리며 아차 싶었다.
‘닭은 없는디.’
그렇다면.
“거 개구리!”
“왜요?”
“령이 치킨 먹고 싶다고 하잖여.”
“직접 만들면 되는 거 아녀?”
“닭이 없으. 근처에 치킨 가게 있을 턴디 몇 마리 사 오면 좋을 것 같은디.”
개구리가 잠깐 고민하다가 답했다.
“귀찮은데. 힘을 너무 많이 써서.”
“령이나 수호가 아니라 네가?”
개구리가 미간을 찡그렸다.
“고래가 사는 물은 바닷물이잖우.”
그랬다.
고래가 살아가는 환경을 맞춰 주기 위해서 개구리는 덕진 공원의 호수 물을 바닷물로 바꾸었다. 딱 고래의 근처만 경계를 나누어. 그렇지 않으면 호수에 있는 연꽃이나 물고기들이 죽을 테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실시간으로 힘을 쓰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고래가 천도 복숭아나무 수호와 계약을 했기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만 말이다.
“나갔다 오기 귀찮아. 배달시킬게.”
“배달?”
개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후한테 핸드폰이랑 현금 좀 받아 놨거든.”
“거 그럼 그려.”
령이 개구리에게 다가와 물었다.
“은후한테 핸드폰 받았어?”
“그렇지? 자기가 자리를 비웠을 때 혹시 필요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령이 개구리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잠깐 바라보다가 아쉬운 감정을 수습했다.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가져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서. 그런 령을 바라보면서 개구리가 속으로 생각했다.
‘거 도령한테 슬쩍 말해 둘까.’
굳이 필요가 없어도 뭔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었으니.
‘예전 령이라면 무심했을 텐데.’
욕심이라.
‘뭐. 도령이 알아서 하겠지. 령이 욕심에 잡아먹힐 성격도 아니고. 이 부분은 내가 무어라 할 부분이 아니야.’
개구리가 령의 이마를 툭 건드린 다음 핸드폰을 걸고 전화했다.
“여보세요. 치킨집이죠?”
- 네.
개구리가 핸드폰으로 치킨집에 주문하는 광경을 누가 봤다면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턱이 툭 빠졌을 것이다.
“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주문이 끝난 후.
툭.
툭.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깥과 다르게 낙원에 내리는 비는 분홍빛을 머금고 있었다. 아직도 고래 라온과의 계약의 여파가 낙원에 남은 탓이었다. 치킨을 주문받고 배달을 나간 라이더는 오토바이를 몰면서 중얼거렸다.
‘덕진 공원 후문 주차장이랬지.’
참 많이도 시켰다.
프라이드 다섯 마리. 양념 세 마리. 간장 두 마리. 단체로 나들이라도 나온 것일까.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 추운 날씨에. 하물며 추적추적 비도 내리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덕진 공원 내에 어디 실내 시설이 있던가? 모르겠다. 나야 배달만 잘하면 그만이지.’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상황. 굳이 깊이 고민하기 귀찮았다. 딱히 생산적인 고민도 아니었고,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차는 왜 이렇게 밀려. 비가 와서 그런가.’
속으로 투덜거리던 라이더는 신호를 흘끔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얼른 퇴근하고 싶다.’
아르바이트 자체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으나 오토바이 경력은 좀 되었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 그것도 아니면 덕진 공원 후문 주차장 근처의 길이 비포장도로였기 때문일까.
“악!”
미끄러졌다.
동시에 뒤에 실려 있던 치킨이 튀어나오며 근처로 흩어졌다.
‘어?’
불행 중 다행으로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을 치거나 다른 차와 충돌하지 않았다. 하지만 라이더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다.
‘망했다.’
치킨은.
비도 오는데.
‘어, 어떻게 하지.’
치킨을 마중 나온 령과 도깨비가 그 광경을 뒤늦게 목격했다. 령이 쪼르르 달려가서 물었다.
“치킨 배달하러 온 아저씨죠?”
“아저씨?”
“네.”
“어, 네. 맞는데요. 그, 죄송해요. 치킨이…… 미끄러져서요.”
“사고 난 것 같은데 안 다치신 것만 해도 다행이죠. 그쵸, 삼촌?”
“거 큼. 고럼. 젊은 친구인 것 같은디 그 나이 때에는 몸이 재산이여.”
라이더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일단 치킨은 드시구요. 제가 치킨값은 계좌이체 해 드릴게요. 비도 와서 치킨 상태가 조금 그렇네요.”
“에이. 괜찮아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안 다치신 것만 해도 다행이라니까요. 치킨값은 그대로 드릴게요.”
“거 우리 꼬맹이 말이 맞은게.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면 쓰나.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젊은이가 어깨 좀 펴고!”
작은 꼬마였다.
나이도 얼마 되지 않은.
그런 아이의 위로와 이어지는 덩치 큰 아저씨의 말에.
“윽.”
라이더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