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대중음악계에서 뮤직비디오가 등장한 지 수십 년. 딱히 음악에 관심이 없어도 사람들에게 익숙한 존재가 뮤직비디오였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뮤직비디오 한 편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란 무척이나 어려웠다. 딱히 거창하게 세계까지가 아니라 한 나라에서 이목을 끄는 것조차 난도가 높았다. 그런 의미에서 은후의 뮤직비디오는 대다수 전문가의 예상을 빗나가게끔 했다.
- 고작 뮤직비디오 한편일 뿐.
- 공중파가 아닌 인터넷에서만 활동하는 가수가 얻을 수 있는 인기의 한계는 명확할 것이 명약관화.
무섭게 성장하는 인터넷 시장. 아니, 이미 충분한 시장을 형성하고도 남은 인터넷에서의 음악 세계. 허나 아직도 주류는 티브이를 중심으로 한 시대였다.
어떠한 음악이 뜨기 위해서는 공중파 진출이 아직까지는 필수로 여겨지고 있었다. 더불어 관련 이해 관계자들이 최선을 다해 그런 분위기와 지금까지 형성된 시장을 유지하고자 애쓰고 있었다.
예컨대 인터넷만을 통하여 어느 정도 어떤 음악이나 가수가 떴다면 공중파로 끌어들인다던가. 하지만 은후는 예외였다. 게다가 강압적인 수단을 쓰고 싶어도 연예계에서 제법 큰 영향력을 가진 이원석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은후의 뮤직비디오는 잭팟을 터트렸다.
안 그래도 은후에게 관심이 있던 연예계였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까지도. 하물며 이번 뮤직비디오에서 얼굴이 공개되었다. 결국 그저 소문으로 떠돌던 정말로 잘 생겼다는 말이 진실로 확인됐다.
‘처음에는 그냥 몸값을 더 높이려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진짜로 관심이 없던 것이라고.
국내의 인기 그룹 블레인의 리더인 이지석이 중얼거렸다.
‘거참. 이쯤 되니까 나도 궁금해지네.’
어떤 사람일까.
무슨 음악관을 가지고 있을까.
‘그나저나 사랑, 그리고 동물과의 교감인가.’
뮤직비디오의 내용의 커다란 축은 둘.
하나는 두 남녀의 만남과 고백.
다른 하나는 말과의 교류.
여기에서 가장 크게 주목받고 있는 건 모두 실화라는 것. 지금까지 실화를 바탕으로 여러 영화나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졌다는 걸 감안하면 크게 놀랄 것도 없기는 하지만.
‘잘생겼지. 예쁘고.’
둘 다.
게다가 동물과의 교감이라는 감동적인 코드도 있었다.
‘믿기 어려운 내용도 있기는 한데. 이건 창작이겠지?’
스타더스트의 죽음과 함께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모닥불. 그리고 기타 소리. 일전에도 이미 올라왔던 영상을 잘라서 뮤직비디오에 삽입했다. 그때도 모두가 입을 모아서 말했다. 연출이라고. 연출이 아니면 말이 안 된다고.
‘하지만 글쎄.’
왠지 모르게 연출이 아니라 사실일 것 같다고. 이지석은 그런 생각을 하며 댓글을 살폈다.
‘댓글이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네.’
조회 수도.
‘머리가 아프네.’
조회 수가 올라가는 만큼.
이 와중에 어떻게든 채널의 주인. 혹은 곡의 원작자와 직접 접촉해 보라며 부탁을 가장한 명령을 내린 소속사를 떠올리며 이지석은 쓰게 웃었다.
‘우리 덕에 음악과 영상이 뜰 계기를 만들어 줬다고?’
어느 정도 영향은 있었겠지. 블레인의 서브 보컬 하연석. 순수하게 곡 주인의 팬으로서 SNS에 올린 글.
‘쓰레기들이.’
블레인의 소속사는 그런 하연석을 통해서 어떻게든 은후와 접점을 만들어 보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진짜로 연예계에 관심이 없는 것 같던데. 아니, 있어도 우리 소속사랑 연결해 주면 욕이나 먹겠지.’
이지석은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하며 은후와 관련된 댓글을 쭉 살폈다.
- 음악이 미쳤다.
- ㄹㅇ
- 기다린 보람이 있네ㅋㅋ
- 영상 구조가 아마추어 티가 좀 많이 묻어나는데…… 그래서 더 현실성이 돋보이는 듯?
- 그건 동감
- 이거 주인장이 직접 편집한다는 거 같은데…… 초기 영상이랑 비교해 보면 진짜 장난 아니게 늘긴 함
- ㅋㅋ그래 봐야 아마추어
- 아마추어가 만들었다고 폄하하기엔 영상 퀄리티가
-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 어딘가임. 프로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만한 시도가 여럿 보임. 그런데 또 아마추어라기엔 퀄이 너무 높단 말이지.
- 윗댓에 공감. 그래서 더 우리가 감동하고 있는 거 아닐까. 저 때만 시도하고 만들 수 있는 그런 게 있어.
- 그나저나 스타더스트…… 서울이 아니라 전주의 무슨 승마장이라고?
.
.
.
* * *
그렇게 세상이 시끄러워진 사이.
은후와 이하연은 길거리를 나섰다.
“오랜만이다.”
“뭐가?”
“그냥. 이렇게 길 걷는 거?”
“그런가?”
“응. 근래 대부분은 차를 타고 이동했으니까.”
산책이라면.
‘덕진 공원에서 하지 않았던가?’
그거랑은 이거랑은 또 다른가.
‘똑같은 거 같은데.’
감성이 다른 건가.
은후는 그런 의문점을 가졌지만 그 부분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이 좋다면서 즐겁게 웃고 있는 연인의 감성을 깨뜨릴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응?”
“그냥. 으, 부끄러운데.”
“새삼스럽게.”
이하연이 샐쭉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몇 번 말했었잖아. 내 데이트 로망.”
“그랬지?”
“지금도 그래. 일부러 신경 써서 이 코스 고른 거지?”
“……딱히?”
“에이.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데. 대학가에서 연인이랑 팔짱 끼고 그냥 별다른 생각 없이 걷고 싶었다고 말했었잖아.”
“말했지. 기억하고 있어.”
“지금이 그렇잖아?”
그거야.
‘그렇네.’
걷다 보니 도착한 곳은 전북대학교의 구정문 쪽. 아직은 방학 중인 기간이었다. 그러나 적잖이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솔직히 오늘은 별생각 없었어. 딱히 의식하고 고른 코스는 아니었거든.”
“그렇다면 그게 더 좋다. 별생각이 없었어도 무의식중에 내 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거니까.”
“그건 너무 끼워 맞추기가 아닐까.”
“끼워 맞추면 어때?”
그거야.
‘그렇네.’
은후가 픽 웃었다.
“좀 더 신경 써야겠네. 하연이 네가 말했던 로망 다 내가 이뤄 주고 싶으니까.”
“에이. 지금까지 하던 대로만 해도 충분…….”
이하연이 말을 이으려다 말고 흠칫했다.
“저어.”
갑자기 말을 걸어온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뒤에서.
이하연은 은연중에 힐끔거리는 주위의 시선은 이미 의식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누가 말을 걸으리라곤 예기치 못했다.
“은후 선배님?”
은후의 동아리 후배인 임서혁이었다.
“서혁이?”
“아, 맞네. 선배님이시네요.”
아.
‘은후 후배구나.’
이하연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다.
둘만의 세상이 방해받은 것 같아서.
‘읏.’
그런 생각과 동시에 흠칫했다.
‘내가 너무 목매는 걸까?’
너무 과하면 안 되는데.
‘자제해야지. 아무리 연인이어도. 이런 것조차 기분 나빠하면 안 돼.’
연인의 인간관계는 존중해야 하는 법. 하물며 이 근처는 은후가 다니던 대학교 근처 길거리이니 이런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지나가다가 선배님인 것 같아서 인사하려고요. 옆에 분은 누구세요?”
“내 여자 친구.”
“아하. 안녕하세요! 후배인 임서혁입니다.”
“네에. 안녕하세요.”
나빠지려던 이하연의 기분이 풀렸다.
은후의 자연스러운 소개에.
‘여자 친구라고.’
그래.
‘나 은후 여자 친구지.’
누군가에게 은후가 자신을 소개하는 건 또 처음인 것 같아서.
‘우.’
이러면 안 되는데.
‘기분이 너무 날뛰어.’
은후가 어깨를 으쓱이며 임서혁에게 말했다.
“어디 가는 길이야? 방학 중일 텐데.”
“친구 만나러 피시방이요. 그나저나 형은 요새 게임 안 하세요?”
“나?”
“네.”
“안 한 지 좀 됐지?”
“완전히 접으신 것 같던데.”
“완전히까지는 아니고. 여자 친구랑 가끔 이런저런 게임 해. 레전드 히어로즈도 얼마 전에 했었고.”
“와.”
임서혁이 눈빛을 반짝였다.
“부럽다.”
“뭐가?”
“아니요. 제 여자 친구는 게임을 아예 안 해서요.”
“여자 친구 생겼어?”
“말씀 안 드렸던가요.”
“안 했지.”
“여하튼요. 여자 친구랑 게임 하고 싶어서 열심히 꼬시고 있는데 통 넘어오질 않네요. 게다가 엄청 예쁘시잖아요. 제 여자 친구만큼이나 예쁘신데요.”
“은근슬쩍 자랑한다?”
“에이. 근데 진짜 빈말이 아니라 예쁘세요.”
“우리 하연이가 좀 예쁘긴 해.”
이하연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을 열었다.
“칭찬 고마워요.”
“아하하. 아녜요. 이게, 어. 진짜 칭찬이었거든요? 제 여자 친구가 진짜 예쁘거든요. 외모만 따지면 솔직히 저랑 왜 사귀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그 친구들이 못 됐네요. 뭔가 그, 서혁 씨?”
“네.”
“서혁 씨만의 매력이 있어서 사귀는 거겠죠. 외모도 매력의 한 부분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니까요.”
“감사합니다. 아, 차. 저 약속 시간이 곧이어서요.”
그렇게 짧은 대화 후 임서혁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라졌다. 이하연이 사라지는 임서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피시방.”
“피시방은 왜?”
“우리 같이 피시방 간 적 없지 않아?”
“그렇네.”
“갈까?”
“피시방?”
“응.”
연인과 피시방 데이트.
그것도 이하연의 데이트 로망 목록 중 하나였다. 그걸 기억해 낸 은후가 씩 웃으며 답했다.
“피시방 데이트도 좋은데. 내가 오늘은 더 좋은 거 보여 주고 싶어서.”
“더 좋은 거?”
“아마도? 일단 그거부터 보러 가자.”
“그게 뭐야?”
“글쎄? 이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직접 보지 않은 이상 믿기 힘들 텐데.”
“그으.”
이하연이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낯은 목소리로 물었다.
“말하는 개구리처럼?”
“비슷해.”
도심에 지어진 공원 호수에 고래라.
세간의 상식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그래도 믿어 주려나?’
한 번 그런 일을 겪었으니.
“무슨 말을 해도 믿을게. 은후 네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말야.”
“그래도 미리 말하면 재미없을 테니까.”
은후는 자연스레 이하연을 데리고 덕진 공원으로 향했다. 사람이 참 많았다. 여전히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사람이 부쩍 많은 느낌이었다. 정확히는 늘어났달까. 그건 천도 복숭아나무인 수호 덕분이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천도 복숭아나무 수호는 이번에 령과 연결되면서 크게 성장했다.
그렇게 성장함으로써 낙원의 중심부인 벽진 폭포 외에 까지도 자연스레 자신의 향을 퍼트리게 되었다. 물론 보통 사람은 맡을 수 없는 향이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도 무의식중에 느끼게 되었다.
편안함을.
“왠지 모르게 요새 덕진 공원에만 오면 뭔가 편안해진단 말이야. 그래서 더 자주 찾는 것 같지 않아?”
“내 말이. 진짜 휴식을 취하는 느낌이랄까?”
“쉬는 거면 쉬는 거지 진짜 휴식이 뭐야.”
“편안해지는 거? 대충 찰떡처럼 알아듣지.”
방금 은후와 이하연을 스치며 대화를 나누는 어떤 부부의 대화처럼. 최근에 덕진 공원에 방문한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단순히 실제 기분뿐만이 아닐 텐데.’
은후가 살펴본 바.
실제로 사람들의 피로를 해소해 주는 힘까지 갖춘 것 같았다.
‘편안함이라.’
안전 다음 편안함.
‘그게 령이 바란 무의식적인 소망인가.’
아이들의 안전 다음으로.
아이들이 편안하기를.
더 나아가 아이들과 함께한. 또 덕진 공원에 오는 이들이.
“은후야?”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그러게. 나중에.”
“나중에?”
“응.”
“나중에란 말이지.”
“머지않아서.”
이하연이 씩 웃으며 답했다.
“알았어. 그래서 보여 주고 싶다는 건?”
“조금만 더 걸을까?”
은후와 이하연이 덕진 공원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에 오른 순간.
‘어?’
사람들이 사라졌다.
시야에서.
이하연은 그걸 깨닫고 당황했지만 자신의 옆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은후 덕분에 곧장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호수에 드리운 거대한 고래의 모습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게 뭐야?’
우우우우우우우.
고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거대한 분수가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