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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158화 (158/170)

제158화

바다.

지구의 저지대를 채우고 있는 거대한 소금물. 하지만 이런 설명으로 바다를 정의하기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아.”

끝없이 펼쳐진 물결.

짙푸르게 넘실거리며 시야로 재단할 수 없이 뻗어 나가는 광경은 순간적으로 령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령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지평선……이라고 있잖아.”

물과 하늘이 만나 천정과 직각을 이루는 선.

“말로만 듣기만 했었거든. 내가 살아왔던 곳에서는 볼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상상을 참 많이 했었어.”

“그랬어?”

“응. 그런데 그, 확실히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직접 경험하는 것과 상상은 다르다고?”

“맞아. 달라도 너무 다르네.”

의사소통의 수단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나 어떠한 사물 등을 묘사하기 위한 언어. 인류가 쌓아 온 역사만큼이나 다양성도 깊이도 넓고 깊었다.

하지만.

“으.”

령이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너무 갑갑했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은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데. 감정만 일렁일 뿐이었다. 구체적인 언어로 정리할 수 없었다. 그런 령의 상태를 알아차린 은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굳이 무어라 말할 필요 없어.”

“어?”

“그냥 그대로 느끼면 돼.”

“그런가.”

아스라이 퍼지는 감정을 굳이 잡거나 정리할 필요는 없었다.

“응. 그러네.”

바다에 실려 온 바람이 은후와 령을 스쳤다.

“뭔가 좋다.”

“그리고 짜지? 그건 좀 별로일 것 같은데.”

“윽. 어떻게 알았어?”

“방금 미간을 찌푸렸으니까.”

은후가 피식 웃으며 령을 데리고 아래로 내려갔다.

“좀 걸을까.”

“좋아.”

하늘에 떠서 보는 바다 풍경도 좋았으나 직접 땅에 발을 딛고 보는 광경도 나쁘지 않았다.

사그락사그락.

령의 발자국 소리가 바람을 타고 모래사장에 흩날렸다.

그렇게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산책하다 령이 호기심에 눈동자를 반짝이며 바다에 가까이 다가갔다.

“읏!”

령의 발에 차오른 바닷물. 이내 허리를 숙이며 뻗은 령의 손에 바닷물이 닿았다.

“차가워!”

이어지는 웃음소리.

“아하하!”

령의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

령이 난생처음 살아왔던 터를 벗어나서 바라본 건 바다였다. 압도될 수밖에 없는 풍경에 벅차오른 가슴이 령의 기분을 즐겁게 만들었다. 그저 바닷물을 만졌을 뿐인데도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나중에.”

“응.”

“또 놀러 오자.”

“정말?”

“그럼. 그때는 다른 낙원의 주민들도 함께.”

령의 눈빛이 반짝였다.

“다음에는 보트도 타고 싶어! 낚시도! 해산물!”

“그래, 그래. 그보다 그전에 좀 더 둘러볼까?”

“응? 어디를?”

“바깥에서 보는 바다도 좋지만 말이야.”

은후가 씩 웃었다.

“안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또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거든.”

“안에서?”

은후가 손을 휘저었다.

“그래, 안에서.”

이내 마나로 이루어진 투명한 구체가 은후와 령을 감싸 안았다.

‘어디 보자.’

너무 얕은 곳은 바닷속 풍경을 제대로 보여주기 어려우니까.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잠시 후.

군산 부두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풍덩 하는 소리가 자욱하게 어른거렸다. 부둣가에 있는 사람들이 희미하게나마 들을 수 있을 정도. 허나 그런 소리는 부둣가에서 언제나 일상이었기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자연은 언제나 신비롭고 다채로우며 저마다 특성이 달랐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것도 판단을 달리해야 했다. 개중에서도 바다의 안과 바깥은 정말로 천지 차이였다.

하늘과 땅에 비유할 정도로 완전히 풍경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느껴지는 것도 바뀌었으니. 다만 처음에 령이 접한 감정은 당황이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어라라?’

그건 은후가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

“잠깐만 기다려.”

“으응.”

기왕이면 좀 더 신비롭다고 느끼며 감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오늘 바다를 접하는 게 처음이니까.

바깥에서 바라보는 바다에서 몰려온 감동만큼 안쪽에서도. 그래서 은후는 령과 함께 이리저리 이동했다. 그리고 적당한 곳을 발견하고는 은후가 말했다.

“내가 빛을 내어도 좋겠지만 그러면 다른 물고기들에게 민폐겠지?”

“물고기가 있어?”

“그럼. 바닷속이니까.”

“아하.”

“그러니까 이런 느낌으로.”

은후가 령에게 마나를 다루는 기초적인 방법을 알려 주기 시작했다. 마나를 통해서 감각을 확장하는 것. 다만 어떤 기술이든 기초가 그러하듯 처음에 입문은 쉬우나 능숙하게 다루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령은 입문 직후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어지간한 마법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마나를 통해 감각을 확장했다. 너무도 익숙하게.

‘과연.’

령도 정령이었으니.

‘하기야 사람으로 따지자면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이는 것이니. 방법만 안다면 못 할 수가 없지.’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신체를 움직이는 것과 다르게 스스로 궁구하고 노력하여서 깨쳐야 효율이 올라가기도 하고.’

본능적으로 어느 정도 할 수는 있지만 지금 령처럼 효율적으로 감각을 확장하는 건 정령이라도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 과정을 은후가 단축해 주었다.

이건 은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령에게 마나로 감각을 확장하는 방법을 알려 주다니. 이세계의 마법사라면 무슨 농담을 그리 재미없게 하냐며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와, 와, 와아아아아!”

시야와 감각에 들어오는 다양한 해양 생명체들.

그건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처음에 바다를 바라봤을 때 찾아왔던 감정이 비슷하게 령의 가슴에 너울거렸다.

“예쁘다…….”

령이 은후에게 말했다.

“저기로!”

은후가 말없이 령의 손짓에 따라 이동했다. 마법을 통해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존재감을 감추었기에 다른 물고기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도 없었다.

다만 물고기들을 피해서 이동하는 게 조금 귀찮기는 했다. 그래도 그 정도는 뭐 감수해야지 어쩌겠는가. 딱히 바다의 주인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건 해양 생물들이었으니까.

“오…… 오?”

뭔가 감탄사를 내뱉으려던 령이 흠칫했다.

“은후도 저기 보여?”

“그래, 보이네.”

작은 고래였다.

문제는 그물에 걸려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쯧.’

은후가 가볍게 혀를 찼다. 일부러 고래를 잡으려고 그물을 쳐 둔 건 아닌 것 같은데. 고래에게 있어서 재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운이 나쁘진 않았다.

“도와줘도 될까?”

“그럼.”

하필 오늘 령과 은후가 이곳을 찾았으니까.

“한번 령이가 힘을 써 볼래? 감각을 확장했던 것과는 좀 다르게. 그러니까…….”

은후는 령에게 마나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이런 느낌으로. 알겠지?”

“응응.”

“지금 령이라면 그물을 찢을 수는 없어도 벗겨 줄 수는 있을 거야.”

“알았어.”

령이 끙끙거리며 마나를 움직였다.

‘기왕 도와줄 거라면 직접 하는 편이 더 뿌듯하겠지. 거기에다 마나를 다루는 요령도 훨씬 빠르게 늘어날 거고.’

연습보다는 실전.

딱히 위협적인 상황도 없…….

‘응?’

은후의 상념이 멈췄다.

자세히 살펴보니 위협적인 상황이었다. 고래에게 있어서는. 여기저기 상처가 많았다. 흘린 피도 적지 않아 보였고. 저런 몸 상태라면 이대로 그물을 벗겨줘도 얼마 못 가 죽을 것만 같았다.

‘어쩐다.’

마법으로 치료해 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하물며 흑마법이 근간인 은후였다. 치유 마법을 따로 깊게 파고든 적도 없었고. 하다못해 인간의 신체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고래의 장기나 그 신체 구조를 잘 알고 있다면 모를까.’

일전 백혈병을 앓고 있던 현수를 도와줄 수 있었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인간의 신체 구조를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시체를 늘 만지작거리고, 심지어 살아 있는 인간마저 흑마법으로.

‘다 옛날 이야기지.’

은후가 이어지는 상념을 끊으며 고래를 다시 한번 자세히 살폈다.

“됐다!”

그사이 낑낑거리며 마나를 움직이던 령이 기쁘게 외쳤다.

“다 벗겼어!”

하지만 그물이 벗겨졌음에도 고래는 몸을 꿈틀거릴 뿐이었다. 그에 령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은후에게 물었다.

“많이 아픈 거야?”

“그래.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죽을 거야.”

“죽어?”

“아마도.”

“……아쉽다.”

죽음이란 자연스러운 것.

슬프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그래서 령은 한숨을 내쉬며 더는 말하지 않고 쓸쓸함만을 눈동자에 담았다. 그때 고래가 울었다.

뻗어 나온 주파수는 보통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초음파였다. 하지만 은후와 령은 달랐다. 특히 음파에 담긴 고맙다는 감정 같은 경우엔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글쎄. 도와주고 싶어?”

“응. 도와줄 수 있다면. 힘들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럼 도와줄까.”

지금까지 령이 신경 쓰는 존재는 좁았다.

은후를 비롯한 낙원의 주민들. 그리고 덕진 공원에 방문하는 아이와 그 가족들. 그 외에는 아무래도 좋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름을 주고받으면서 변화가 생긴 모양이었다.

‘범위가 넓어졌달까.’

아직 그 범위를 구체적으로 진단할 수는 없고 차차 지켜봐야 확실해지겠지만. 다만 최소한 확실한 건 눈앞의 고래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니.

‘크기는 대충 6m인가.’

너무 크다면 모를까 6m 정도라면 덕진 공원의 호수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잠깐 치료하는 동안이라는 조건이 달려야겠지만 말이다.

물론 바닷물과 호숫물이 다르고 환경이 아예 바뀌는 것이니 추가적인 조처는 필요하겠지만. 그거야 어떻게든 할 수 있을 터. 직접 하지 않아도 개구리의 도움을 받아도 될 터였고.

‘그나저나 고래를 치료하는 일이라.’

사람이 아니라 고래.

‘일단 노력은 해 볼까.’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생명을 치료하는 일에 재미를 따진다는 건 다소 상식에서 어긋나는 일이긴 했으나 은후의 성정이 원래 그랬다. 근래에 들어 많이 유해지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은후는 흑마법사였으니까. 아마 령이 아니었다면 굳이 고래에게 신경을 썼을까.

‘……잘 모르겠군.’

은후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

‘아니라는 생각이 바로 든 게 아닌 것만 봐도 나도 많이 바뀌긴 했어.’

은후가 마나를 움직였다. 이윽고 고래가 당황했다. 갑자기 급격하게 흔들리는 물결에 내뱉은 울음소리.

뿌우우우우-

하지만 힘이 없어서 그런지 소리만 낼 뿐. 축 늘어진 고래에게 은후가 마나를 통해 의지를 전달했다.

- 착하지.

도와주려는 것이라고.

이내 령과 은후가 허공으로 떠올라 덕진 공원으로 향했다. 작은 고래 한 마리와 함께.

* * *

덕진 공원에서 령을 위한 축제를 한창 준비하고 있던 낙원의 주민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래?!”

개구리가 소리쳤다.

“허허.”

도깨비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옆에서 구미호가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당황스럽게 웃었다. 성호와 연후도 눈을 크게 만들었다.

고래라니.

고래.

그것도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공원에.

은후와 함께하게 되면서 이런저런 놀랄 일이 가득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정말로 생뚱맞지 않던가. 개구리가 오도도도 달려가서 은후에게 물었다.

“저 고래는 뭐야?”

은후는 그저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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