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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154화 (154/170)

제154화

아직 봄이 졸린 눈으로 하품을 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하연은 절로 몸을 움츠리며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다.

“춥다.”

그리고 이내 쓰게 웃었다.

‘혼잣말이 많이 늘었단 말이야.’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실제로 혼잣말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보통이라면 그런 일이 꽤 드물다. 물론 아예 없지는 않았다.

정말로 놀란다거나. 또는 큰일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기 위함이라거나. 시험공부를 위해 암기하기 위해서라거나. 허나 보통은 그렇지 않았다. 조현병과 같은 정신 질환이나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모를까.

‘아니지, 그냥 불특정 다수에게 일부러 들으라면서 혼잣말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한데.’

다시 돌이켜 보니 혼잣말을 하는 케이스는 의외로 여러 군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걸 이하연은 깨달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자신의 경우엔 방송하기 이전보다 확실히 혼잣말이 늘었다는 것.

‘좋은 습관은 아닌데.’

방송.

처음에는 좋았다.

그냥 마냥 좋으면서도 신기했달까. 게다가 으레 방송하면 겪는 사건이나 사고도 딱히 없었다. 물론 사소한. 예컨대 채팅으로 성희롱을 한다거나 그런 시청자는 있었으나, 은후와 상담 후 심한 사람은 고소까지 하는 등. 철저하게 대처한 이후 대놓고 앞에서 이하연을 험담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웃긴 건 여전히 아직도 가끔 그런 시청자가 나타난다는 거지만.’

그러면 바로 밴.

수위가 일정 수준이 넘으면 바로 고소까지 진행.

‘이미 뻔한 전례가 있는데도 그러는 사람은 멍청하다고밖에 생각이 안 드는데.’

게다가 방송 규모도 순식간에 커졌다. 그래서 소위 하꼬라 말해지는 시절을 겪은 기간이 무척 짧았다. 더불어 브이튜브 또한. 그래서 금전적으로 많은 수익도 얻을 수 있었고.

‘전부 은후 덕분이지.’

만약 자신 혼자였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아마 절대로 아니었겠지.’

나중에.

먼 훗날 지금과 같은 규모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은후는 언제나 내가 없었어도 성공했을 방송인이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으으.’

기차를 타고 전주로 내려가는 길. 기차 안은 빵빵하게 틀어진 히터로 따뜻하기 그지없는데. 어째서인지 모르게 여전히 몸이 떨렸다. 평소에 즐겨 바라보던 차창 바깥의 풍경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얼른 보고 싶다.’

언제나 은후를 만나러 가는 길은 무척이나 길었다.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길.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동시에 짧기도 했다. 감정에 취해 있으면 또 금방 흘러갔으니까. 그런데 오늘따라 유독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얼른.’

기차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럴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이하연이 중얼거렸다.

“빨리.”

기차가 지나가는 길.

이하연의 쓸쓸한 감정들이 뚝뚝 떨어졌다.

* * *

은후는 통화를 마친 후 마나를 가다듬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좋아.’

정령과 이름을 주고받는 일.

사실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현대로 돌아온 이후 은후의 실력이 크게 증진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호령과도 따로 준비 없이 지금이라도 가능할 것이다.

천도 복숭아나무도 그랬다. 예전의 은후라면 천도 복숭아나무를 온전히 자신의 수중 하에 두었을 것이다. 효율만 따진다면 굳이 수호령을 거쳐 힘을 나눌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먼 미래를 내다본다면.’

아주 먼.

자신의 사후.

죽은 다음에도 수호령을 비롯한 낙원의 주민들은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을 터. 그러니 그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은후는 수호령과 천도 복숭아나무를 이어 줬다. 덕진 공원의 땅을 매개로.

그래서 애초에 천도 복숭아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릴 때 수호령과만 접점이 있게 했다. 아마 다른 이세계의 마법사가 그런 은후의 행동을 봤다면 멍청하다고 했을 터였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야.’

그러나.

‘또 틀리기도 하지.’

자신을 멀리 떨어뜨려 놓고 천도 복숭아나무와 수호령을 잇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적지 않았다. 자신을 제외했기에 온전히 객관적으로 두 개체를 바라볼 수 있어서.

‘그래서.’

은후가 눈을 감았다.

‘계약 없이 정령의 성장에 환경 및 심리를 비롯하여 영맥과 영물을 통하여 성장시킬 수 있는 방향성.’

만약에 마탑에 논문을 제출한다면 이와 같은 제목으로 제출할 것 같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몇 년은 저 논문 하나로 대륙의 정령에 관한 판도가 뒤바뀌지 않을까 싶었다.

‘그 끝에는 결국.’

게다가 이름을 주고받는 일은 성호와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띠고 있었다. 성호가 은후에게 종속되어 일방통행이나 다름없었다면 수호령과는 쌍방으로 관계성을 지니게 될 터였으니까.

‘나중에 성호 씨도.’

원한다면 스스로 주체할 수 있게 도와줄까 싶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성호와 의논을 해 봐야겠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은후는 전주역으로 차를 몰았다.

이하연의 기착 도착 예정 시간을 문자로 확인하며 은후는 차량의 시계를 흘끔 바라봤다. 분명히 아까 통화한 내용을 반추해 보면 밥도 안 먹었다고 그랬는데.

‘어떻게 할까.’

밥이라도.

하지만 이 시간에 갈 만한 곳은 24시간 운영하는 국밥집이나 분식을 파는 곳뿐인데.

‘일단 따뜻한 거라도 준비한 다음 물어봐야지.’

평범하게 편의점에서 사는 것보다는 따로 준비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은후는 리어카를 뒤졌다. 분명히 얼마 전에 도깨비로부터 받은 커피가 있을 터였다.

- 거 요새 커피를 공부 중인디. 아인슈패너라고 했든가? 그게 참 좋아 보이더라고.

통상 비엔나 커피.

정식 이름은 카페 아인슈패너.

- 도령 보면 자주 여기저기 돌아다니잖으? 거 자동차를 타고 말여.

- 날아다니기도 하는데요?

- 흐. 거야 그렇것지. 그런데 평소에는 안 그러잖으?

- 귀찮거나 바쁠 때면 종종 애용합니다.

- 거 하여간. 그럴 때 이 커피가 참 좋다고 하드라니 창고에 쟁여 두라고.

옛날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마부들이 마차를 몰며 커피를 마실 때 곤란함을 겪었다고. 직업의 특성 때문에 커피를 흘리거나 입안을 데거나.

- 그걸 막으려고 개발되었다는 커피라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그이가 은후 도령을 챙겨 줘야겠다면서.

커피를 받고 나가는 길에 구미호에게 들은 도깨비의 마음 씀씀이에 은후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 생크림 덕분에 적당히 속도 채울 수 있고. 또 이동하면서 마시는 데에 커피를 흘리거나 입 안에 화상을 입을 확률도 낮출 수 있을 테니까요.

- 그런데 갑자기 커피는 왜 관심이 생겼답니까?

- 술만 파는 건 좀 아쉽다고 하더라고요. 낮술도 좋은데.

- 낮술도 물론 낭만이지만요. 저번에 도령이 없을 때 왔던 손님이 있는데 곧 죽어도 일을 하러 가야 한다면서 술은 안 마시지 뭐예요. 그 뒤에 그이가 고민하다가 커피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전통차도 좋겠지만.

- 좀 질린다면서요.

- 전통차도 메뉴판에 추가되면 좋겠는데.

- 딱히 메뉴판에 없어도 도령이 말만 하면 당장 만들어 줄걸요?

- 그거야 뭐어.

- 우리 그이 도령에게 신경 많이 써 주는 거 잊지 말아요?

- 그럼요.

그런 일이 있었다.

‘좋네.’

시간을 확인한 은후는 주차된 차에 기대어 커피를 입 안에 머금으며 미소 지었다.

‘좀 지친 목소리였으니까.’

하연이에게 줄 커피에는 약간의 양념을 더.

물리적이 아닌 마법적으로.

‘피로를 가시게 하게끔.’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더욱 희미해져 가는 것이 슬슬 이하연이 도착할 시간이 된 것 같았다. 은후는 굳이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곧.’

감각으로만 시간을 확인해서 생긴 시간 오차는 약 3분. 그래서 은후는 선로까지 마중을 나갔고.

덜컹.

덜컹.

기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이하연이 타고 있는 기차의 문이 열렸다.

“어?”

선로에서 마주한 은후의 모습에 이하연이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이내 미소 지으며 은후에게 총총 다가왔다.

“왔어?”

“추우니까 차 안에서 기다리지.”

그냥 얼굴만 봤는데도 안심되는 느낌.

“일찍 도착해서. 게다가 선로까지 마중 나온 적은 없던 거 같더라고.”

“에이. 굳이 뭐 하러 여기까지 내려와.”

“올 수도 있지? 1분이라도 일찍 보고 싶은데.”

“……바보.”

“그리고 저번에 무슨 영화였지. 같이 영화 보면서 그랬잖아. 저런 것도 좋아 보인다고.”

추운 겨울날.

눈발이 날리는 연인이 기차의 선로에서 재회하는 장면을 보고.

“어, 제목이 뭐였더라. 잘 생각이 안 나는데.”

“그래도 그 장면은 기억나지?”

“응.”

“그러면.”

은후가 이하연에게 가까이 다가가 꼭 껴안았다.

“그.”

“우리 대화하는 사이 사람들 다 갔어.”

“바보.”

“바보면 어때.”

애정 행각을 벌이는 건 좋지만 시기와 장소. 특히 장소를 구분해야 한다는 이하연의 가치관을 은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자신들의 모습이 보일 기미가 보이자 바로 떨어졌다.

“누가 올 것 같으니까 여기까지.”

이윽고 나타난 행인의 모습에 이하연이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감?”

“우리 은후 감도 좋네.”

“그럼.”

그런데.

‘뭔가 아쉽다.’

그런 이하연의 태도에 은후가 피식 웃었다.

“나머지는 차 안에서. 아니면 집에서?”

“…….”

나머지라.

이하연이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은후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워 넣었다.

“얼른 가자. 추워.”

“배는 안 고프고?”

“좀?”

“커피라도 마실래?”

“음.”

커피라.

공복이기는 하지만.

“나쁘지 않을지도?”

아이스는 좀 그래도 뜨거운 커피라면.

“그런데 역 내에 있는 카페 벌써 문 열었어?”

“아까. 그런데 그 커피 말고. 준비해 놓은 커피 있어.”

이하연은 은후가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왔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신의 연인이라며.

“센스 좋다.”

은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윽고 도착한 주차장에서 은후는 아공간에 준비해 놓았던 커피를 꺼내어 이하연에게 내밀었다.

“여기.”

“땡큐.”

“아까 하연이 너 오기 전에 차에 기대서 커피 마시는 데 좋더라.”

“먼저 마셨어?”

“같이 또 마시면 되지.”

“물배 찰 거 같은데.”

“그런 배는 충분해. 하물며 우리 하연이랑 같이 마시는 커피인데. 두 잔이 아니라 석 잔이나 네 잔째라도 마셔야지.”

“하여간 말은.”

서로 팔짱을 끼고.

커피잔을 서로 든 채.

‘아.’

그 영화에서.

같이 한번 해 보고 싶다는 말.

‘기억해 줬구나.’

따뜻한 커피잔이 왠지 모르게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뜨거워지는 건 자신의 얼굴인데.

‘응?’

그러다가 이하연은 이상함을 느꼈다.

‘텀블러가 아니라?’

게다가 아직 따뜻함이 가시지 않은 머그컵에 담긴 커피.

“왜?”

“아니. 좋은데, 이 머그컵.”

“어디서 났냐고?”

“응. 혹시 아까 카페에서 미리 커피 주문해서 준비…….”

했다고 하기엔.

‘이상한데.’

처음에 만났을 때 은후는 빈손이었다. 그렇다고 차 안에 놓아두었다고 치기엔 분명히 문을 열지 않았다. 이하연은 자신이 은후에게 너무 빠져서 깜빡했나 싶었다.

“내가 언젠가 말해 준다고 한 거 있지.”

“있지? 좀 많았던 거 같은데.”

“개중 하나.”

“…….”

“일단 조금만 더 마셔 봐.”

피로가 가시는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이 적잖이 안정되는 것도 같았다. 단순히 착각이라기엔 실감하는 바가 너무 컸다.

“하나씩 천천히 알려 준다고 그랬었잖아.”

“응.”

“일단 하나.”

“일단…… 하나라고.”

“참고로 이런 거 보여 준 건 하연이 네가 처음이다? 어머니에게도 비밀로 하고 있는 일이니까.”

“마술이야?”

“글쎄.”

은후가 묘하게 웃었다.

그 웃음 때문일까. 아니면 커피 때문일까. 이하연은 조금 전까지 느꼈던 피로가 싹 가심과 동시에 마음속이 몽글몽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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