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은후는 마나를 일으키며 말했다.
“잠시 진정하시죠.”
아무런 상처 없이 쌕쌕거리며 자고 있는 아들의 모습. 그리고 은후의 마나 덕분에 흥분이 다소 가라앉은 아이의 아버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그냥 지나가던 사람인데요. 아이가 갑자기 죽고 싶다고 중얼거리더라고요.”
“네?”
“처음에 잘못 들었나 싶었습니다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잠깐 지켜보고 있었는데 픽 쓰러지는 겁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정말 난데없는 말.
“왠지 혼자 온 것 같지 않아서 아이를 업고 잠깐 둘러보고 있는데 당황하고 계신 두 분을 보고서 대충 느꼈죠.”
아이의 부모님이 아닐까.
“그래서 말을 걸어 봤는데 정답이었네요.”
“그, 음.”
아이의 아버지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저희 아들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황상 아들을 도와준 사람이었다. 게다가 오해로 윽박지르기까지 했으니 일단 사과를 하는 게 맞았다. 다만 이해가 전혀 되지 않은 건 죽고 싶다고 말했다는 아들.
“정말로 저희 아들이 죽고 싶다고 했나요?”
“네. 이후에 혼잣말하는 걸 들어 보니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 같던데요.”
“네? 왕따요?”
“네.”
아니.
왕따라니.
처음 듣는 말에 아이의 아버지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아들을 연신 계속 살피고 있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여기에 온 것도 아이가 졸라서라고 들었는데요.”
“네, 그건 그런데요.”
“그것도 죽기 전에 아빠랑 엄마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다는 것 같더라고요.”
“…….”
“예전에 덕진 공원에 왔던 추억이 너무 좋았던 모양이던데 말이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아들은 언제나 명랑하고 밝았는데.
“최근에 아이가 어머님 지갑에 손을 댄 적도 있다고 하던데요. 그것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협박을 받아서였다는 것 같아요.”
이따금 사고를 치거나 말썽을 부리고 속을 썩이기도 했으나 그건 아직 어리니까. 자라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겪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협박이라니.
“그때 심한 말을 해서 어머님께 미안하다고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 죽을 결심을 하고 인터넷으로 자살 방법도 알아봤다고 하던데 아셨나요?”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은후의 말을 이상하게 여겨야 옳았다. 아이가 잠깐 시야에서 사라진 건 부모에게 있어서 5분도 되지 않은 시간.
그 시간 안에 이와 같은 이야기를 아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은후가 모조리 들었다는 것부터가 상식적으로 보면 이상했으니까.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부모는 그저 놀라고 어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은후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라질 때까지.
* * *
대개 부모는 아이를 정말로 잘 알고 있다고 여기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모습을 제대로 알고 있기는 무척 어려웠다. 왜냐하면 아이가 집에서 하는 행동 외에는 보기 어려우니까.
그 외 학교에서 정작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리고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또 학원에 다닌다면 학교와도 미묘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학교나 학원이 아닌 그 외 다른 곳에서 친구들과 어우러지는 건 그것대로 또 다른 문제였고. 그 말인즉슨 가정에서와 그 외의 곳에서 아이가 보이는 모습은 다르다는 것이다.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울리는 사람이 다른데. 특히 그게 저학년이라면 모를까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부모와 선생보다 또래의 아이들이 중요하다 보니 더더욱.
친구가 무얼 하는가. 어떤 옷을 입는가. 그 밖에 친구의 말투나 행동을 따라 하기도 하고. 그게 좋아 보여서. 어울리기 위해서. 그런 아이의 모습을 부모가 전부 알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왕따라니 진짜일까?”
“글쎄.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어. 사실 그럴 이유도 없고. 그걸 핑계로 돈이라도 어떻게 뜯어내려고 했다면 모를까.”
은후와 만난 이후 부모가 향한 곳은 병원이었다. 갑자기 픽 쓰러졌다고 했으니까. 겉으로 보기엔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으나 혹 모를 일이지 않던가. 다행히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고 정말로 잠을 자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왕따…… 후우.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다.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은 보통 높은 확률로 맞아떨어진다는 걸.
잠시 후.
“컴퓨터 기록 찾아봤는데.”
“응.”
“우리 아들 진짜 죽을 생각했던 거 같더라고. 유서도 있더라. 참 우리 세대랑 달라? 유서도 컴퓨터로 남기고 말이야.”
“…….”
아버지가 자조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 외에도 컴퓨터에 이것저것 적어 놓았더라. 어떻게 괴롭힘을 받았고. 무슨 생각을 했고. 선생님한테도 말했었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었던 거 같아.”
내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이후 부모에게 찾아온 건 자괴감.
“우리 엄마랑 아빠는 바쁘니까 내가 잘해야 한다고……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고 적혀 있는데. 하.”
바쁘다는 이유로 신경을 잘 쓰지 못했다.
“사실 오늘도 고민했잖아.”
“뭘?”
“나들이 가는 거.”
“그랬지.”
“안 갔으면 어쩔 뻔했어.”
“그러게.”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지금 아이의 부모가 느끼는 건 안도감이었다.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여전히 아들이 살아왔다는 데에서 찾아오는 안심.
“일단 학교에 선생님부터 찾아…… 아니지.”
과연 선생님을 찾아도 해결할 수 있을까.
“경찰한테 갈까?”
“글쎄.”
아이의 아버지가 쓰게 웃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과연 근본적으로 괴롭힘을 끊어 낼 수 있을까. 설령 직접적인 따돌림이 사라져도 이후에 친구를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꼭 육체적으로 괴롭히는 것이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단순하게 외면하고 대화를 나누지 않고 고립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괴로움을 느끼기 마련이었으니.
‘우리 회사에서도.’
아이의 아버지는 생각을 멈추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일단은. 좀 쉬게 하자.”
“응?”
“학원도 일단 그만두게 하고. 우리도 최대한 영훈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자고. 대화도 나누고.”
“학교도?”
“그걸 듣고도 학교에 보내자고?”
“아니, 그. 아니야. 당신 말이 맞아. 이 와중에 학교가 중요한 건 아니지. 내가 생각 잘못했네.”
“진짜 우리 잘 생각해야 해. 우리 아들 일이잖아.”
아이의 어머니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오른손 엄지로 꾹꾹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은후는 아이의 부모와 헤어진 후 몰래 따라붙었다.
‘이름이 영훈이구나.’
왕따.
은후가 직접 나서서 부모 몰래 해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썩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여겼다. 부모가 정상적이지 않거나. 혹은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모를까.
제일 좋은 건 부모가 나서서 아이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후에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렇게만 된다면 아이는 이후에 부모를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정서적으로도 더 안정되겠지.’
다행히 영훈이의 부모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은후의 기준에서는. 이런 상황을 인식했음에도 학교는 가야 하지 않느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부모도 있는 마당인데.
심지어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거나. 더욱 나아간다면 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도 많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어떻게 부모가 그럴 수 있겠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쓰레기들이 생각보다 많단 말이야.’
은후가 쓰게 웃었다.
세상에는 우리의 상식과 가치관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개굴아. 한동안 부탁해.”
개구리가 은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딱히 도령이 걱정할 일은 없지 않을까 싶은데. 직접적인 위협은 내 잘 막을 테니까. 게다가 부모도 아이를 쉬게 한다고 했으니까.
“정보 수집도.”
- 뭐어.
“이후에 내가 따로 파악은 하겠지만.”
과연 영훈이를 괴롭힌 이는 어떤 아이인가. 은후는 그게 궁금했다. 다만 지금 직접 시간을 내긴 다소 곤란했다. 왜냐하면 며칠 후에 있을 수호령과 이름을 교환하는 준비로 한창이었기에.
- 거 아예 글러 먹은 얘라면 내가 좀 골려 줘도 상관없겠지?
“예컨대?”
- 갑자기 하늘에서 물벼락이 떨어진다든가?
“그 정도 수준이라면.”
- 그냥 물이면 재미없으니까 똥물은?
“그건 개굴이 네가 알아서 판단하고.”
* * *
이하연이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보고 싶다.”
하늘에 떠 있는 몇 없는 별을 바라보며 이유 없이 쓸쓸함을 느끼는 건 왜일까.
‘그냥 외로워서.’
왠지 모르게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은후가 생각나는 건 이하연의 감정 때문이었다. 자연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는 건 인간의 특권 중 하나였다.
‘또 뮤비를 만들다 보니까.’
조금 전 막 뮤직비디오를 완성했다.
사실 이렇게까지 늦게 완성될 예정은 아니었다. 음원과 앨범 발매에 맞추어서. 하지만 중간에 조금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다시 작업하자니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았지만.
- 조금 늦으면 어때.
- 그래도 좀 그렇지 않을까?
- 전혀. 애초에 뮤비도 하연이 너 아니었으면. 아니다, 전문가에게 의뢰를 맡겼을 수도 있으려나. 그러면 좀 문제가 될 수도 있었겠지. 사람들에게 정확한 날짜를 고지한 것도 아니잖아?
- ……응.
- 그러니까 편하게 생각해.
- 뭔가 좀 그런데.
- 그렇기는 무슨.
사실 조금은 쉽게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시간이 들어갈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이미 머릿속에 이것저것 구상한 게 많았으니까.
편집 실력도 예전보다 부쩍 늘었고. 하지만 평소 자신이 방송했던 걸 보기 좋게 다듬는 것과는 결이 많이 달랐다. 게다가 이미 찍었던 영상 소스만을 가지고 편집을 해야 했기에 한계도 있었다.
‘게다가 생각 이상으로 관심을 많이 받고 있어.’
은후의 앨범과 인터넷 음원 출시.
처음 반응은 미묘했다. 기대했던 것만큼 반향이 크지 않았달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폭발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모여들고 있었다. 뮤직비디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날짜를 확정하지 않았을 뿐. 뮤직비디오에 관한 말은 넌지시 흘려 두었다. 그래서 그런지 방송에서도 사람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대체 언제 나오느냐고. 그런 관심 속에서 작업을 이어 나가다 보니 부담감도 상당했다. 덕분에 완성 이후 뿌듯함도 배가 되었지만 불안감도 커졌다.
과연.
‘좋게 봐 주려나.’
사람들이.
그리고.
‘은후는 어떻게 바라보려나.’
이하연에게 있어서 대중들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은후의 평가였다.
‘일단 은후에게 연락을…… 아.’
목소리를 들으면.
‘더 보고 싶을 텐데.’
그렇다고 영상만 띡 보내 평가를 듣기도 좀 그랬다. 기왕이면 같이 보고 싶었다. 같은 자리에서 함께. 그래서 이하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문자를 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몰래 찾아가서.’
놀라게 해 주고 싶지만.
‘은후도 나름대로 스케줄이 있을 테니까.’
어떻게 보면 민폐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문자를 보낸 뒤 답장을 통해서 은후가 깨어 있는 걸 확인한 다음 바로 전화를 걸었다.
- 어, 하연아. 안 자고 있었어?
- 응. 지금 잠깐 볼 수 있을까?
- 지금?
- 정확히는 조금 이따가. 아침 첫 기차 타고 내려가고 싶어.
- 무슨 일 있어?
- 으응. 아니. 딱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보고 싶어서.
- 그게 무슨 일이지 뭘. 목소리가 피곤해 보이는데. 내가 갈까?
- 아냐, 이번에는 내가 가고 싶어.
- 그래. 알았어. 마중 나갈게.
- 그럼 이따 봐.
이하연이 노트북을 챙겨 들고 기차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