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아이의 세계는 좁다.
처음에는 부모가 전부. 이후에는 또래의 아이들과 선생님.
장소로 따지자면 집과 학교.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정말 예외적인 케이스가 아닌 이상 누구나 학창 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즐거운 일도.
괴로운 일도.
삶은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지만 언제나 고통스러운 건 아니니. 허나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괴로움 속에 보내게 되는 케이스가 있었다.
바로 집단 따돌림.
왕따.
“이유는 잘 모르겠어.”
아이가 개구리에게 말했다.
“그냥 갑자기?”
사실 왕따가 되는 이유는 너무 다양했다. 아예 이유가 없이. 아니, 이유가 없는 건 아닐까. 그냥 기분이 나빠서. 마음에 안 들어서. 그날 가해자의 기분에 따라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었다.
“친한 친구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멀어지더라고.”
지우개가 없어서.
“왕따를 막 당하기 시작했던 무렵이었나. 그 친했던 친구가 짝꿍이었거든. 그래서 지우개를 빌려달라고 했었는데.”
지우개를 만졌다는 이유로.
- 야, 얘가 내 지우개 만졌어. 바이러스 옮겠다. 우리 엄마가 요새 무슨 바이러스 유행한다고 조심하라고 그랬는데.
- 그럼 재가 바이러스 퍼트리는 주범이네?
- 그러네, 그러네.
- 으. 드러.
- 바이러스는 더러운 거니까 쟤도 더럽지?
그날 집에 들어와서 씻으려는데 머리에 지우개 가루가 떨어졌다.
“너무 힘들어서 잠깐 책상에서 졸았었는데 그때 지우개 가루를 내 머리에 뿌렸었나 봐.”
그 외에 가방에서 발견된 썩은 우유.
다행히 터지지는 않았다.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알았어. 우유가 썩었다는 걸. 그날 나온 우유 내가 가방에 넣어 놓았는데 누가 바꿔치기했었나 봐. 설사로 며칠 고생했는데. 엄마가 많이 걱정했어.”
그런 일들이 반복되었다.
강도도 점점 심해졌다.
슬리퍼에 압정이 들어 있어서 발에서 피가 난 적도 있었다.
폭력도 겪었다.
“처음에는 그냥 툭툭 건들거나 발을 거는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주먹으로 배나 뒤통수를 맞는 건 일상이 되어 버릴 정도였다. 당연히 친구들은 멀어졌다.
“지금은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때는 친구라고.
친구였는데.
“아하하하하.”
아이는 개구리에게 자신의 괴로움을 털어놓았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이후엔 내가 뭘 잘못했나 고민했고 분노도 했다. 반항도 해 봤다. 한 번에 그쳤지만. 이후 돌아온 폭력에 결국 포기했다. 이어지는 건 자신에 대한 자책.
“내가 진짜 안 좋은 애라서. 그, 예전에 바이러스라고 그랬던 것처럼 내가 나쁜 애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더라고.”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
“내가 죽으면 걔넨 미안한 마음이라도 들까?”
그리고.
죽으면.
괴롭지 않아도 되니까.
그럼에도 그럴 수 없었던 건 무서워서. 아무리 아이여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본능이었으니. 그러다가 요구받게 된 돈.
“돈을 달라고 했는데 처음엔 괜찮았어. 용돈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거든.”
그러나 점점 그 강도가 심해지고.
폭력이 두려워 부모님의 지갑에 손을 대고.
“그냥, 그냥 말이지. 내가 사는 거 자체가.”
아이가 웅얼거렸다.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
보통 사람은 제대로 들을 수 없는 말이었으나 개구리는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존재 자체를 민폐라고 생각했다는 거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언제는 집에 친구들이 놀러 와서 막 어지럽히고 갔거든. 그때 엄마가 좀 화냈다? 그래서 나도 같이 화냈어. 친구들이랑 노느라 그런 건데 엄마는 이해 못 해 준다고.”
사실은.
“……친구 아닌데. 그렇게 말하기 싫었는데.”
그런 나날이 이어졌다.
더불어 죽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고 죽어야겠다는 결심과 확신이 생겼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부모님.
“항상 바쁘셨어. 일하시느라. 근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나한테 신경은 많이 못 써 주시지만 날 좋아하는 건 알아.”
그래서 부모님을 졸랐다.
이번 주말에 덕진 공원에 나들이하러 가자고.
“마지막으로 부모님이랑 좋은 시간 보내고 싶었거든. 아아. 후련하다. 이제 죽을 수 있겠다.”
아이는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고.
말하는 개구리가.
주위에서 작은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요정이.
학교에서 배운 바 지금은 제대로 볼 수 없는 꽃이 흐드러지게 핀 이곳은 현실은 아니라고 여겼다. 꿈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자신이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쏟아 냈다. 차마 부모님에게 말할 수 없었던 말.
“도움을 요청하진 않았니? 선생님이라든가.”
“선생님? 에이. 해 봤는데 소용없더라.”
적어도 겉으로 가해자들은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들에게 왕따의 존재를 감추고자 노력했다.
“그냥 친하게 더 친하게 지내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던데? 아, 이것도 나중에 다 경험이라고 하더라고. 난 그런 경험 하고 싶지 않은데.”
차라리.
“학교 그만두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말야. 그땐 좀 밉더라. 왕따…… 당하고 있다고 내가 말 못 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아. 이제는 괜찮아질 수 있으니까.”
꿈에서 깨면 죽어야지.
아이가 중얼거렸다.
“아빠랑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고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려고.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손목을 긋거나 목을 매다는 건 좀 그럴 것 같더라. 중간에 내가 포기하거나 119 때문에 못 죽을 수도 있대.”
나이 열둘.
초등학교에 다니는 5학년의 아이는 나름대로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방법을 열심히 조사했다.
* * *
개구리는 일단 자신의 힘을 이용해 아이를 잠에 들게 했다. 이후 아이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은후와 수호령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일단 재웠어. 도령이랑 령이가 오기 전에 재우는 게 나을 거 같더라고.”
“잘했네.”
은후가 개구리를 칭찬하며 쓰게 웃었다.
‘왕따라.’
얼마나 괴로웠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을까.
‘생각만 한 것도 아니지.’
나름대로 인터넷을 통한 조사까지.
아이가 잠이 든 상태여서 확신은 못 하겠지만 개구리의 말로 추측하자면 결심은 확고할 듯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덕진 공원을 찾았다라.’
돌이켜 보면 자신의 인생 중 가장 좋았던 게 부모님과 함께 덕진 공원에 나들이를 왔던 거라고 했다.
- 동물원에 갔다 오는 길에 들렀는데 엄청 피곤했었어. 근데 그때 아빠가 업어 줬어. 내가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다고 말하니까 덕진 공원으로 왔었는데.
노을이 지던 호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밝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부모님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서. 그사이에 내가 있다는 게 내가 너무 행복해서.
- 응, 그래서 죽기 전에 덕진 공원에 오고 싶었어. 근데 꿈을 꾸긴 싫었는데. 근데 잠자면 그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 얼른 꿈에서 깨야 할 텐데.
수호령이 눈물을 글썽이며 화냈다.
“진짜 나빴다. 혼내 주고 싶어.”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수호령은 물론 은후도 아이의 안타까운 사연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일단 우선이 되어야 하는 건 정신.’
사람마다 성향과 가치관은 모두가 다른 법. 나이를 불문하고 그러했다. 이번에 피해자인 아이의 경우엔 직접 대화를 나누어 봐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겠지만.
‘끝내는 자포자기.’
아마 심각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해)를 앓고 있을 터였고.
“쯧.”
은후가 가볍게 혀를 찼다.
‘인간이란.’
인간군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말로 다양했다. 문제가 있다면 좋은 방향도 있지만 반대로 나쁜 경향도 많다는 것. 아니,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적어도 은후가 겪은 인간들은 그러했다. 그래서일 것이다. 측은지심을 발휘하며 아직도 세상이 살아갈 만하다고 느낄 만한 선행을 베푸는 이들이 칭송받는 건.
‘아이들도 마찬가지.’
오히려 아이들의 세계가 때로는 어른들보다 잔인했다.
‘일단 심리는 내가 치료해 주면 되는 것이고.’
적어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 은후는 현대 의학보다 훨씬 좋은 치료를 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왜냐하면 감정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마법사이기에.
‘문제는 학교인데.’
학교라는 울타리.
대체로 긍정적이나 이처럼 부정적인 사건에서는 걸림돌로 작동하는 곳. 왜냐하면 여전히 우리 사회는 학교를 자퇴하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이니까.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는 게 낫지.’
이 정도로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라면.
그러나 사회는 그걸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왕따 문제가 불거져 사건이 외부로 알려졌을 시 학교에서 자신들의 불이익을 걱정해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예는 널리고 널렸다.
또 선생이 한 학생의 왕따를 주도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일도 일어나기도 했다.
왕따 사건이 발생한다면.
상식과 일반적인 사회의 통념이라면.
‘학교 측에서는 진정한 사과.’
이후 실질적으로 피해 학생을 도울 수 있는 수단 강구. 예컨대 전학. 하다못해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검정고시를 고려라도 하는 게 맞지 않는가.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가해 학생과 화해하고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피해 학생에게 하는 예도 빈번했다.
‘하여튼.’
은후가 씩씩거리고 있는 수호령에게 물었다.
“도와줘야겠지?”
“당연하지! 설마 그냥 내버려둘 건 아니지?”
은후가 픽 웃었다.
“아니지. 몰랐다면 모를까 알았잖아. 그러니 도와줘야지.”
그럴 능력과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일단 선행되어야 할 건 아이의 심리 치료. 부모와의 대화, 인가.’
수호령이 말했다.
“그나저나 이 아이를 도와준 다음 가해자들 말이야. 나 꼭 혼내 주고 싶어. 이런 건 똑같이 당해 봐야 안다니까. 직접 느껴 봐야 해. 그런 나쁜 아이들은.”
그래야만.
“걔네도 알아야 나중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지. 또 진정한 사과도 할 수 있을 거고.”
“만약에.”
“응?”
“이 아이가 죽었다면 어떨까.”
“어?”
“그 이후에 령이 네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말이야. 그 가해 아이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결국 그 가해 아이들을 혼내 준다는 것의 또 다른 목적은 가해자인 아이들을 위한 것. 은후의 판단으로는 적어도 수호령이 말하는 건 그럴 터였다. 물론 그 이전에 피해자인 아이를 위한 것이 더 크기는 하지만.
“…….”
수호령이 침묵했다.
인간의 선악은 정령에게 있어서 어떻게 보면 중요한 문제였다. 허나 또 그렇지 않기도 했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선악의 가치관에 가까운 수호령. 하지만 수호령 또한 그 본질은 정령이었다. 그래서 은후는 물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그 가해 아이들을 갱생할 수 있다면 말이야. 그렇게 하는 편이 좋을까? 죽은 아이의 부모가 복수한다고 나서면 어떨까?”
수호령이 무어라 말을 하려던 걸 은후가 막았다.
“축제 끝나고 천천히 한번 생각해 봐. 이 아이에 관한 문제는 나에게 맡기고.”
은후가 수호령에게 고민거리를 하나 내어 주며 아이를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 * *
아주 잠깐 사이.
아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부모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라?’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아들.
그리고.
“이 아이 부모님 되시죠?”
“네?”
갑자기 나타난 은후.
아이의 아버지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당신 누구야?!”
은후의 품에 안겨 있는 아들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아들을 위해 은후에게 달려들었다. 은후는 그런 아버지를 슬쩍 피하며 아이를 조심스레 옆에 있던 벤치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