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앨범 발매를 위한 과정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곡을 녹음하고, 앨범 아트를 만들고, 프로필 사진을 찍은 뒤 ISRC(국제 표준 녹음 코드)를 발급받는다.
이후 유통사와 계약한 다음 저작권 협회 신탁을 진행한다.
물론 그 이후에도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곡을 제대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팔기 위해서는 각종 홍보 및 유통사의 프로모션 등. 진행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사진 참 잘 나왔다.”
프로필 사진의 경우 일전 은후와 이하연이 처음 데이트하던 와중 우연히 만나게 된 김성백에게 맡겼다.
꽤 잘 나가는 의사이자 취미가 사진인 김성백. 그는 은후의 부탁을 받은 즉시 전주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정식적인 앨범 발매라는 말에 거절했으나 은후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 저도 음악은 취미라서요. 그리고 저는 꽤 마음에 들었거든요. 김성백 씨의 사진에서 묻어나오는 감성이랄까. 기왕이면 첫 프로필로 내걸 건데 마음에 드는 사진사에게 부탁해야죠.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참 많았다.
김성백을 통해 연을 맺게 된 잘 나가는 포토그래퍼도 있었다. 그리고 진행했던 이하연과의 브랜드 의류 촬영.
- 저번에 브랜드 의류 촬영 때도 느낀 건데요. 잘 찍는다는 건 사진에 문외한인 저도 알겠더라고요. 그런데 글쎄요. 너무 인위적이랄까요. 요새 트렌드가 그래서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까지 말하는 은후의 부탁을 김성백은 거절할 수 없었고 최선을 다했다.
‘앨범은 내일부터 주문을 받는다고 했던가?’
그렇게 앨범 아트는 김성백에게. 그 외의 것들은 전부 이번에 알게 된 녹음 스튜디오 실장의 도움을 받았다.
치료에 전념하라고 말했으나 은후의 도움으로 초기 발견한 덕분에 입원이 아닌 통원 치료 중이었다.
그래서 은후의 일은 자신의 손으로 책임지고 싶다면서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섰다.
“유통 쪽은 제가 최대한 힘을 써 보겠습니다. 혹시 방송에 출연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제가 도움을 좀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방송 제안도 받았으나 은후는 거절했다.
“굳이요.”
프로필 사진도 음원 발매 및 정식적으로 유통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다기에 찍은 것일 뿐.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프로필 사진까지 찍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얼굴을 더 알리는 건 좀.’
브이튜브를 통해서 은후의 예명인 사과와 음악이 제법 알려지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작은 파이에 불과했다.
그래서 은후의 음원 발매는 꽤 조용히 진행되었다.
* * *
국내 대중들은 잘 모르지만, 음악을 하는 연예인들 사이에선 꽤 알려져 있었다. 은후의 존재를.
왜냐하면 일반인이, 그것도 SNS와 인터넷을 통해 이 정도 성공을 거둔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무성한 소문과 추측들과 다르게 은후는 연예계 진출에 아예 뜻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국내 연예인들에게 은후의 존재는 신비로운 이미지가 가득했다.
“야. 너 오늘 방송 봤냐?”
“뭔 방송? 이번에 우리 나갔던 거?”
현시점 국내에서 제법 잘 나가는 남자 아이돌 그룹 블레인에게도 은후는 그런 존재였다.
우연히 접하게 된 브이튜브의 피아노 연주.
이후 궁금해서 이런저런 정보를 찾다가 이하연의 방송도 종종 시청하게 된 블레인 그룹의 서브 보컬 하연석.
“그거 말고 가끔 보던 인터넷 방송.”
“아. 하여간 극성이다, 극성. 애인도 있는 여자라며 그 방송 왜 봄? 팬들에게 알려지면 알지? 너도 우리 멤버도 그 여자에게도 민폐인 거.”
서브 보컬임과 동시에 그룹에서 작곡도 하는 이로써 은후의 피아노 연주는 신세계였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피아노 소리는 처음 듣는 순간 하연석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덕분에 끙끙 앓고 있던 작곡의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기도 했고. 그래서 하연석은 은후의 팬 중 한 명이었다.
해외에 생긴 은후의 팬 카페에 가입하고 이따금 은후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하연의 방송을 시청할 정도로. 그 과정에서 은후뿐만 아니라 이하연의 팬까지 되었다.
“알지. 그래서 몰래 보잖아. 여하간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앨범 나왔다.”
“뭔 앨범?”
“사과.”
“응? 앨범? 소속사 찾았대?”
“아니, 그건 아니고. 좀 알아보니까 개인으로 진행한 것 같더라고. 정보가 왜 그리 없는지 모르겠어. 앨범을 발매할 정도였으면 뭔가 소문이라도 나올법한데.”
“야. 혹시나 해서 다시 묻는데. 너 알지?”
“알지. 어디까지나 팬으로서 궁금해서 알아본 정도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겪은 일이 있는데 극성맞은 팬이 될 생각은 없어.”
같은 블레인의 멤버이자 리더인 이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데 그런 새끼들은 팬 아니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래. 하여간 사과 앨범이 나왔다고?”
“어, 이미 주문함. 얼른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이야기 때문에 부름?”
“그럼 뭐?”
“하여간 씨. 나는 또 앨범 홍보라도 SNS에 해 달라는 줄 알고 식겁했네.”
“응? SNS? 아, 이거 문제 안…… 되겠지?”
이지석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사고 쳤냐?”
“그으. 사고까지는 아닐걸?”
하연석이 어색하게 웃으며 옆에 있던 노트북을 통해 자신의 개인 SNS에 올린 글을 보여줬다.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가의 앨범이 나왔다는 소식에 바로 주문했습니다. 이번에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에 도움을 받았던 음악가의 첫 앨범이라고 하던데 기대가 무척 큽니다.
이지석이 그 내용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뭐.”
구매 유도를 위한 링크도 없었고. 딱히 구체적으로 어떤 앨범인지 나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정 뭐하면 스토리 하나 만들어내도 그만이니까.’
하지만 하연석의 몇몇 찐 팬들은 알았다.
하연석이 언급하는 앨범의 주인이 누군지.
- 우리 석이 SNS에 올라온 앨범 있자나. 저번에 팬밋에서 슬럼프 극복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던 피아노곡 주인 앨범 아님?
팬 미팅에서 무의식중에 흘렸던 슬럼프 극복에 관한 이야기.
- 그런가?
┖ㅇㅇ 거의 확실할 듯? 우리 카페에서 묻히긴 했지만, 우리 석이한테 도움 줬으니까 그 피아노곡 영상 조회수라도 올려주자고 누가 그랬잖아.
┖곡 좋더라 ㅋㅋ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다른 곡들도 진짜임.
┖클래식 곡임?
┖가사가 없으니까 클래식 아님? 기타곡이 대부분이던데.
┖아니ㅋㅋㅋㅋ 가사가 없다고 클ㅋ래ㅋ식ㅋ 기타곡만 있다고 클래식임?
┖아님 말고 ㅎ.
┖진지하게 걱정해서 그러는데 우리 석이 팬이라고 하면서 그런 이야기 하면 우리 석이 쪽팔려 그러니까 내가 설명을.
┖ㄱㅊ 따로 검색해봄.
- 그래서 그 앨범 냈다는 사람 가수야? 우리 석이가 좋아한다니 한 번 사볼까.
┖내가 좀 알아봤는데 걍 일반인으로 암, 정보도 거의 없더라.
┖앨범을 냈는데?
┖나도 이번에 알게 됐는데 일반인이라도 앨범 못 내는 거 아니더라.
┖ㅇㅎ…….
┖방송하는 애인 목소리가 이쁨 ㅎㅎ
┖뭔 소리임?
┖음 이게 설명하기 좀 복잡한데.
그렇게 인기 아이돌 그룹 블레인의 서브 보컬인 하연석의 SNS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팬 카페에 흘러가게 되었고. 팬 카페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하연석이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에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재발굴 됨과 동시에 은후의 앨범에 몇몇 이들이 관심을 두게 되었다.
더불어 인터넷에 퍼져있는 은후의 팬들은 당연히 이번 앨범에 관심을 두었다.
덕분에 유통사에 등록된 음원의 조회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폭발적으로. 소소한 프로모션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국내 대중들의 시선이 은후의 음원과 앨범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또 국내와 다르게 해외에서는 진즉부터 반응이 오고 있었다.
* * *
세상이 은후의 앨범으로 시끄러워지려던 무렵. 은후는 수호령과 함께 낙원에서 봄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 준비에 한창이었다.
저번에 열었던 축제를 살짝 비틀어서. 기본적인 놀이 시설은 유지하되 테마를 바꾸었다.
붐에 걸맞은 꽃.
그리고 요정.
요정도 은후에게 있어서 정령의 한 범위 내였다.
흔히 우리에게도 알려진 페어리라든가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는 팅커벨 등. 그런 존재는 은후가 이세계에 있었을 때 환상이 아닌 실존하는 이들이었다.
물론 현대에는 아니었지만.
더불어 사람들의 상식과 어긋나거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요정도 적잖았다. 왜냐하면 요정의 발생은 일단 자연적이었기에.
‘그 근본은 인간들의 믿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게 정설이기는 하지만.’
글쎄.
‘논쟁의 여지는 남아있었으니.’
딱히 지금 은후에게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번 축제의 테마가 꽃과 요정이라는 것. 그리고 그 요정들을 구현하는 건 은후의 몫이라는 점이었다.
당연히 그 요정은 아이들이 바라는 일반적인 모습이어야겠지.
꽃과 요정과 어우러져 아이들이 행복한 한때를 보냈으면 하는 것이 이번 축제에서 수호령의 바람이었다.
은후도 그런 수호령의 목적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실체가 없는 편이 쉽기는 한데. 직접 만질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그러려면 눈을 기반으로? 물도 좋을 것 같고.’
진짜 요정을 만들어내는 건 지금 은후로서도 어려운 일이었으나 아이들에게 환상, 혹은 저번처럼 눈과 물 등의 물질을 통해서 모습만 구현하고 움직이게끔 하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단순히 움직이기만 하면 또 좀 그러니까.’
말도 할 수 있게 해야 하나.
‘단순한 단답 정도라면 알고리즘을…… 그나저나 머지않았네.’
이번 축제가 끝나고.
‘이름을 교환하면 되겠어.’
이후 시작된 봄 축제.
“와아!”
이번에도 수호령의 초대를 받은 김은혁과 이현수도 덕진 공원에서 진행되는 봄과 요정의 축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야! 맞잖아! 꿈 아니었잖아!”
어느 겨울날에 환상적인 경험을 했던 은혁과 현수. 둘은 서로의 기억을 통해 그날의 경험을 믿으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어린아이여도 알았다. 그날의 경험은 무척이나 특별하고 누구에게 말하면 꿈을 꿨냐고 물을 거란 걸.
게다가 은후는 그날 방문한 아이들에게 일정한 조처를 했다. 그날의 일을 점점 어렴풋하고 흐리게끔 느껴지도록.
왜냐하면 낙원의 존재에 관한 비밀이나 안전도 그렇지만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이 괜한 곤란을 겪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나 어른에게 그날의 경험을 말한다면 대개는 아이가 꿈을 꿨다고 할 것이다.
혹은 아이의 망상이라고 취급하거나.
다만 과하게 염려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신 병원에라도 부모가 보낸다면 어떨까.
그럴 위험을 고려하여 은후는 그런 조처를 취했다. 그리고 그건 은혁과 현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둘은 서로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었다.
“형!”
“은혁이 안녕?”
거기까지는 차마 손을 대기가 그래서 은후는 둘과 약속했다.
비밀이라고.
둘 외에 다른 이들에게 그날의 일을 말하지 말아 달라며. 마법을 통하여 둘은 동의했다.
허나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처한 조처에 둘은 서로 같은 꿈은 꾼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나는 안 보여?”
다시 오게 된 환상적인 축제에서 수호령이.
“현수도 오랜만이네.”
은후가.
“거 두 꼬맹이! 잘 지냈으?”
도깨비가.
“꼬마 도련님들. 또 보네요?”
구미호가.
“요.”
말을 하던 개구리를.
다시 만나면서 두 아이는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어?”
게다가 정말로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요정이 주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직 볼 수 없는 봄날의 꽃들과 함께. 그리고 은혁과 현수 외에도 덕진 공원에 방문한 아이들 대부분은 수호령의 초대를 받았다.
그 아이 중 한 명이 축제 도중 개구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개굴아.”
“어.”
“넌 이름 없어?”
“나?”
“응.”
개구리가 한 아이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 웃음으로부터 느껴지는 곤란함에 아이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개구리도 요정이야? 여기 내 어깨에 앉아 있는 건 요정님이라고 그랬지?”
“나? 나는 요정이라기보다는 정령.”
“요정과 정령의 차이가 뭔데?”
“어어. 그러니까.”
개구리가 어색하게 웃었다.
“바보?”
“하하. 그래, 바보일지도.”
“에이. 나도 바보 소리 많이 듣는데. 개구리도 바보구나? 그런데 바보라고는 안 할게.”
개구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지?’
바보라는 단어에서 묻어져 나오는 슬픔에 개구리가 아이와 좀 더 대화를 나누었고.
‘은후 도령! 령아!’
수호령과 은후를 찾았다.
아이는 개구리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