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성호가 바라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음악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들어주는 것이었다. 방금 수호령이 말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다만 대상의 범위가 어린아이로 좁혀졌을 뿐.
아이들이 최대한 많이 들어주었으면. 더불어 덕진 공원에서도 그 음악이 울려 퍼졌으면 하는 것. 은후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둘 다 하면 되지 않겠는가.
‘브이튜브도 슬슬 활성화될 시점이지?’
브이튜브가 돈이 된다는 사실이 슬슬 알려지고 있었다. 당연히 돈이 몰리는 곳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법. 개중에서는 어린아이를 이용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더불어 육아에 지친 부모들이 브이튜브를 애용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시점이었다. 이로 인하여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발생하려는 시기. 은후가 가볍게 혀를 찼다.
‘쯧.’
육아가 어려운 건 당연한 일.
부모가 그 어려움을 해소하려는 것도 당연한 일.
애정과 별개로 부모도 사람이고 인간이니. 허나 그 과정에서 단순히 편하고 손쉽게 아이의 관심을 돌릴 수 있다는 이유로 브이튜브가 남발되고.
‘결국은 사회적으로도.’
은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사고의 흐름을 멈추었다.
‘그런 것까지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럴 의무나 방도도 없었고 말이다.
‘어쨌건.’
이번을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은후는 생각했다. 예전부터 성호의 음악을 제대로 된 시설에서 녹음하려고 고려는 하고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녹음한 건 여럿 있기는 하지만.’
환경이 무척이나 열악했다.
‘돈은…… 사실 딱히 상관없지.’
성호의 음악은 돈이 될 터. 하지만 그 돈보다 우선시 되는 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었다.
‘저작권을 프리로 하는 건 좀 그런데.’
일단 브이튜브 업로드와 음반을 내는 건 확정. 다만 그 이후의 방향성에 관해서는 고민이 깊었다.
‘공짜로 푸는 게 좋은 점도 있기는 하지만.’
일단 무료니까.
그러니 사람들이 접근하는 데에 부담이 없었다. 허나 또 반면에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발생할 요소도 많았다.
‘그래.’
저작권 프리는 아닌 것 같고.
음악으로부터 발생하는 돈을 이용하자.
예컨대 그 돈을 덕진 공원의 관리자인 전주시에 투자하고, 그 대가로 음악의 재생 권한을 보장받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이면 충분히 통할 방법이었다. 또한 이와 비슷한 느낌으로다가. 성호의 음악도.
‘성호 씨의 음악은 충분히 좋으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거 같기는 한데.’
이 부분은 성호와 따로 의논해 봐야 할 듯싶었다.
* * *
은후가 성호의 음악에 관해서 고민하고 있을 무렵.
“오랜만은 아니죠?”
이하연은 방송을 하고 있었다.
은후와 데이트를 잡을 무렵.
이하연은 중간에 휴가를 한 번 가지려는 생각이었다.
방송도 엄연한 일.
보는 것과 달리 하는 입장에선 이모저모 부담되는 부분이 많았다. 다만 문제는 아직 대중적인 인식이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일까.
- 3일이면 오랜만이지!
- 고럼, 고럼! 사흘이면 길었다!! ㅋㅋㅋㅋㅋㅋ
그저 쉽게만 보이는 방송.
막상 해 보면 다른데.
고작 3일 쉬었다고 시청자들의 민심은 다소 뿔이 나 있었다.
“제가 방송하는 기계는 아니잖아요, 여러분. 좀 이해해 주세요? 저도 현생은 살아야죠.”
이런 부분에 관해서 이하연은 은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시청자들의 반응이 이해는 갔다. 조금 서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은후는 알아주니까.
또 부모님도.
자신이 힘든 점을.
- 방송하는 기계 아니었냐구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런데 고작 사흘 쉬었다고 뭐라 하는 것도 좀 글킨해
- ㅇㅈ
- 거 사람이 쉴 수도 있지
이하연이 잠시 침묵하자 또 여론이 바뀌었다.
왔다 갔다.
이런 점이 피곤하기는 했지만.
‘방송의 묘미기도 하지.’
시청자 수가 몇천 단위였다. 그 모든 사람이 이하연의 휴가에 관해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이해하지 못해서 과격하게 말하는 사람 또한 서운해서 그러는 거니까.
“사흘 온전히 쉰 것도 아니라니까요? 데이트도 했고. 또 편집도 하고. 나름대로 바빴어요.”
- 오ㅋㅋㅋㅋ 데이트!
- 이번에도 데이트 영상 업로드해 주나?
이하연에게 연인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방송 초창기부터 알려졌다. 또 은후가 직접 방송에서 이하연과 게임으로 합을 맞춘 적도 있었고. 거기에 소위 말하는 분탕이나 심한 욕을 하는 이들은 이하연이 단호하게 대처했기에 은후에 관한 여론은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저 생일이었거든요. 아시나요?”
- ?생일? 방장 생일 한참 전에 지나가지 않았나……?
- ㅁㅈ
- 시청자들도 뒤늦게 알아서 어영부영 넘어갔던 거 같은데
- 뭐지?
“저희 집안은 음력으로 생일을 따지거든요. 그래서 이틀 전에 제 생일이었단 말씀.”
이하연은 그렇게 생일날 겪었던 이야기를 풀었다.
- 근데 썰 푸는 거 허락은 받음?
“그럼요. 사과한테는 이미 허락을 받았어요. 그날 영상도 편집해서 올릴 예정이에요.”
- 오.
“신곡도 있습니다.”
신곡이라는 말에 채팅창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하연의 시청자 중에서는 브이튜브의 영상을 통해 유입된 이들도 한가득했기 때문이다. 개중에서 대부분은 은후의 음악에 반한 상태였다.
- 신곡 ㅁㅊ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영상! 방장은 얼른 영상을 업로드해라!
“아, 그리고 음반도 낼 듯요?”
- 음반!!
“이번에 사과가 제대로 맘먹고 녹음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아, 이것도 방송에서 미리 말해도 된다고 허락받았습니다. 선공개는 아마 브이튜브를 통해서 할 것 같고요. 하여간 생일 선물로 반지랑 노래를 받았는데요.”
본격적인 게임 방송 전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시간.
이하연의 몽롱한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동경을 샀다.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속이 간질간질해지는. 마치 영화 속의 한 컷이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 같아서.
- ㅋㅋㅋㅋㅋㅋ 이건 남자라도 뿅 가겠다
- 솔직히 나는 사과가 개 행운아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이번 썰 들어 보니 그것도 아니었네
- 근데 왜 방장 애인 이름이 사과임?
- 유입임?
- ㅇㅇ
- 그분 닉이 사과깎기개장인이라서
- ?
- 실제로 사과 엄청 잘 깎드라, 언제 한번 사진 방장이 공개한 적 있었는데
이후 이하연의 방송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날 밤.
국내와 해외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하연이 방송에서 언급한 내용 때문에.
- 사과 앨범 낸대!!!
- real?
지금까지 은후의 음악은 전부 브이튜브를 통해서 공개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음반의 가치와 위상이 여전히 살아 있는 시기였다.
인터넷의 발달로 영향력이 다소 줄었다지만 아직까지는 은후의 음반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은후의 음악에 푹 빠져있는 골수팬들은 더욱이.
* * *
음반을 제작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가장 기뻐한 건 역시나 성호였다. 자신의 음악이 음반으로 나온다는 건 의미가 컸으니까. 다만 그래서 더욱 고민이었다.
“제 곡을 모두 하나의 음반으로 낼 수는 없겠죠?”
“그거야 당연하죠?”
지금까지 성호가 만든 곡은 적지 않았다. 브이튜브에 올라간 곡들 외에도 미공개 곡들이 무척 많았다.
“콘셉트도 정해야죠.”
“콘셉트요.”
“네. 음반…… 그러니까 앨범으로 내야죠? 그러니 앨범을 어떤 콘셉트로 낼지 정해야죠. 뭐 굳이 안 정하셔도 상관은 없겠지만요. 앨범 콘셉트를 꼭 정해야만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콘셉트라, 콘셉트.”
“이번 한 번만 내고 끝낼 것도 아니니 편하게 생각하세요.”
은후의 말에 성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부담이었고, 또 기대되었다. 최대한 잘하고 싶었고. 그런 성호의 마음을 알았기에 은후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이건 아무리 자신이 조언을 해 줘도 와닿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에.
‘편하게 하라고 해도 못 하겠지.’
그래서 은후는 말을 바꾸었다.
“딱히 언제 내겠다고 날짜를 확정 지은 건 아니니까 너무 급하게만 결정하지 마세요.”
인터넷에서 난리가 난 걸 은후도 알고는 있었다. 이하연의 영상 시청을 위해 브이튜브에 자주 접속하니까. 그리고 은후에 관한 이야기는 브이튜브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오갔다.
‘기왕이면 대중들의 기대감이 사그라들기 전에 음반을 내는 편이 좋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급할 필요는 없는 법. 음반을 급하게 내어 퀄리티가 떨어진다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래서 은후는 성호에게 굳이 이런 뒷배경을 언급하지 않았다.
“기타를 좀 치고 싶은데요.”
“치시면 되죠?”
“은후 씨를 통해서요.”
“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으시구나?”
“네.”
근래 장사를 시작한 도깨비 주점.
손님은 그다지 많이 없지만.
오는 손님 한 명 한 명이 지친 사람이었고, 주점에서 적잖은 위로를 받으며 갈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지켜본 성호는 나름대로 감동했다.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도깨비 주점의 모습에.
“낭만 있더라고요. 저번에 그 유영하 씨라고 했던가요. 저와 다르게 참 치열하게 살아왔구나 싶었어요. 또 다른 손님들도 말을 들어보면요.”
“성호 씨도 치열했죠. 치열함으로 따지면 성호 씨만 한 사람도 없었을 텐데요.”
“에이. 저도 아는데요. 그 기준은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이라는 걸요. 그래서 그러는데 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음악이면 좋겠다 싶어요. 이번 음반의 콘셉트요.”
“생각보다 빨리 정하셨네요?”
“뭐어. 최근 들어 생각하고 있는 주제거든요.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거 아닐까요. 어떤 곡을 수록할지는 좀 더 고민해 봐야겠는데요. 아이들을 위로하는 곡도 담고 싶고.”
그래서 오늘은 좀 길거리 연주를 하고 싶다고.
도깨비 주점의 길목에서.
“손님들은 전부 뭔가에 지쳐서 오는 사람일 거 아녜요? 주점에 들어가기 전에 제 음악으로 먼저 위로를 받고 갔으면 좋겠는데요.”
“아시겠지만 손님이 아예 없을 수도 있어요.”
은후의 말에 성호가 웃으며 답했다.
“그럼 은후 씨에게.”
“…….”
“은후 씨도요. 지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괜찮다고 하지만. 아니, 실제로도 괜찮겠지만 조금쯤은 지쳤을 거라고 보는데요.”
“저요?”
“네, 저도 그렇고요. 저도 은후 씨도 모두 지치는 건 똑같잖아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은후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나를 위해서라.’
그 마음이 기꺼워서.
‘조금 있으면 땅거미가 찾아오려나.’
은후가 바라본 하늘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잠시 후면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겠지. 그리고 찰나의 순간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기 전 어스름한 상태가 눈에 들어올 터. 그때 치는 기타라. 참 좋을 것 같았다.
“가죠.”
성호와 호흡을 맞추어 자신의 몸으로 연주하는 건 은후도 꽤 즐거웠다. 비록 자신의 의지는 뒤로하고 손으로만 만드는 음률이지만. 성호의 음악이라면 아무래도 좋았기에.
물론 은후의 삶과 목적이 음악에 있다면 자괴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은후의 삶에 있어서 음악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요소였다. 그래서 성호의 음악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일단 가볍게 즉흥곡으로 하나 쳐 볼까요. 제목은 서서히 지쳐가는 우리들의 삶에게. 이 정도로요.”
“성호 씨가 제목부터 짓고 연주하는 건 또 오랜만이네요?”
대부분 반대였는데.
“뭐어. 이런 날도 있는 법이죠.”
덕진 공원의 뒤편.
낙원의 주민과 지친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길에서 성호의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밤이 찾아오기 직전 태양이 퍼트린 물안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