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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143화 (143/170)

제143화

측은지심.

불쌍히 여겨서 언짢아하는 마음.

맹자가 말한 사단 중 하나로서,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의 일종. 같은 사람을 비롯하여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심하게는 무생물에게까지도.

‘무생물은 좀 너무 나간 거 같지만.’

은후는 피어오르는 생각의 갈래를 닫으며 웃었다. 연인인 이하연이 가진 마음씨가 적잖이 마음에 와닿았던 탓이다.

“그런데 얼마나 아픈지도 모르는데?”

“알 거 같은데에.”

“어떻게?”

“감으로?”

이하연이 배시시 웃었다.

“정 안 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야.”

“딱히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어떻게?”

“글쎄.”

번거롭게 가자면 연줄을 통해서.

‘하지만 그건 좀.’

부탁한다면 전주 유지인 이창석이나 전주 승마장을 통해서 연을 맺은 이원석 정도. 아마 그들이라면 충분히 은후의 말을 63빌딩 관계자에게 전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고작.

그래, 그들에게 있어서는 고작인, 혹은 쓸데없는 일이거나 부탁일 터였다. 들어주기야 하겠지만.

‘가는 게 있다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은후는 자신의 인맥을 그렇게 활용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하연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싶지도 않았고.

‘내 힘을 이용한다면.’

그것도 간단하겠지만.

‘……일단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

은후의 마나가 움직였다.

그때 이하연이 움찔했다.

“응?”

“왜 그래?”

“아니, 뭔가, 음, 설명하기 어려운데, 뭔가 공기가 바뀐…… 것 같아서?”

“그래?”

“응. 아냐, 착각했나 봐.”

착각이 아니지만 은후는 이하연의 말을 굳이 정정해 주지 않았다.

‘나와 함께하다 보니 체질이 마나에 민감해졌나.’

아니면.

‘일단 급한 것부터.’

은후의 마나가 아픈 수달에게 투영되었다.

‘대충 신장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네.’

수달이 흔히 신장이나 요로 계통에 결석이 생기기 쉬운 종이었다. 특히 자연에서 활동하는 게 아닌 인간의 손에 길러진다면 더더욱. 왜냐하면 자연과 다르게 수영을 하는 정도가 약하기 때문이다.

수영을 많이 해야 요로와 신장 쪽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낮아지는데, 한정되고 좁은 곳에서, 심지어 먹이마저 인간이 공급해 주니 아무래도 자연과 다르게 수영을 열심히 하지 않을 수밖에.

“그으…….”

“응?”

“내가 무리한 부탁한 거라면 미안해.”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야.”

“그래도. 뭔가 내가 곤란하게 한 거 같은데.”

은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신경 쓰게 만든 건 사실이지만.”

“…….”

“괜찮아.”

“응?”

“그 마음이 예뻤거든.”

측은지심의 그 마음이.

해야 할 말은 분명하게, 헷갈리지 않게, 애정 표현에 있어서는 더욱 확실히.

이하연에게 말했던 자신의 말을 은후 또한 지켰다.

“……수달에게 신경 쓴 거?”

“응. 잠깐이지만 나 말고 수달에게 더 신경 쓴 건 조금 질투 났지만.”

“바보.”

“바보면 어때. 연인 사이인데.”

“……연인. 그렇지, 우리 연인 사이지.”

“그러니까 얼마든지 편하게 말해도 돼.”

아무 생각 없이 마냥 편해서는 안 되겠지만.

‘충분히 심사숙고하거나, 또 마음이 절로 동해서 움직여 나오는 말이라면 얼마든지 말하라고 했지.’

데이트하면서 이따금 서로가 서로에게 지켜야 할 선에 관하여 은후와 이하연은 대화를 나누었다. 친하면 친할수록 확실히 해야 할 예의라는 게 분명히 있기에. 그래서 이하연은 은후의 방금 말에 함의된 뜻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 말 허투루 듣지 않고 신경 써 줘서 고마워. 그래도 무리는 안 해도 되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내 감……이긴 하지만. 당장 급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 같으니까.”

“같으니까?”

“일단 데이트부터 할까. 수달에 관한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 볼게.”

은후의 판단으로는 자신이 직접 손을 써서 응급조치를 취해도 똑같은 문제가 재발할 확률이 높았다. 이왕 개입하기로 한 거 뿌리부터 뽑는 게 좋지 않겠는가.

“알았어.”

“일단 다른 데도 둘러볼까?”

“응, 좋아.”

“가자.”

두 사람은 수달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 * *

63빌딩의 아쿠아리움은 현시점 국내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시설 및 그 종의 다양성이 잘 갖춰진 곳이었다. 빌딩 내의 한계라는 점 때문에 몇몇 대형 종은 아예 들여놓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아쿠아리움을 체험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어찌 보면 호사였다. 상어라든가 전기 뱀장어, 우파루파 등등, 익숙한 생명체부터 처음 보거나 아예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물고기들까지.

“아, 재밌었다. 생각보다 진짜 유익했어.”

그 외 수달이나 물범 생태 설명회라든가 인어 쇼 등, 각종 공연이나 유익한 프로그램도 한가득이었다. 그래서 더 있으라면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슬슬 나갈까?”

“그럴까.”

은후의 제안에 이하연이 머뭇거렸다.

“아쉬우면 다음에 또 오면 되지.”

“으응.”

굳이 은후가 이하연을 이끌고 아쿠아리움을 벗어나 전망대로 향하는 이유가 있었다. 딱 지금 이 시간이 노을이 질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안 가면 늦는다?”

“으우.”

아까 은후가 전망대에서 노을을 함께 보자고 말했기에 이하연도 이제 가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아쉬움에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이하연의 마음을 알아차린 은후가 픽 웃으며 답했다.

“다음 데이트 코스는 아쿠아리움으로 할까.”

“응?”

“그러면 좀 덜 아쉬우려나?”

“……응.”

이하연이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촬영은 잘되었으려나.”

“적당히 잘되지 않았을까나. 아니면 뭐, 어때.”

“응, 눈으로 잘 담았으니까.”

“다음에는 촬영을 우선으로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

“고민해 볼게.”

이하연은 아쉬움을 떨쳐 내고 은후와 함께 전망대로 향했다.

“어라?”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이 없어?’

아주 약간의 시간만 흐른다면 노을이 질 무렵이었다. 그러니 사람이 붐벼야 할 시간인데.

‘응?’

그때, 은후가 이하연의 손을 잡고 천천히 전망대에서 노을과 시내 전경이 제일 잘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의자가 두 개 마련되어 있었다.

“여기 앉아.”

“어, 응.”

이하연이 앉고 은후가 마주 보고 앉았다. 그리고 은후는 아까부터 메고 있던 기타를 꺼냈다.

‘아, 맞다. 기타 가방이지, 저거.’

이하연은 너무 자연스럽게 은후가 가방을 메고 있어서 어느 순간부터 그 존재를 잊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이윽고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은후의 목소리와 기타의 운율. 성호의 도움을 받아서 만든 축가. 정확히는 은후의 구상과 심상을 성호가 음률로 빚어냈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그러나 이후의 가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흔한 생일 축하 노래와는 달랐다. 그대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줘서, 그리고 나와 만나 줘서 고맙다고.

사실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 일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마법사인 은후로서는 그 사실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이 넓은 세계에서 같은 나라, 비슷한 시간대에 태어나 만남을 가졌다.

‘하물며 처음은 인터넷 게임을 통해서였지.’

이 시기에도 수많은 게임이 범람하고 있었다. 그 게임을 같이 하다가 실제로 만남으로 이어져 끝내는 연인까지 되었으니, 그 확률은 얼마나 기적적인가.

‘하물며 난.’

은후가 눈을 감았다.

이세계에서,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기억.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겠지.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와서 새로 맺은 인연들이 은후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개중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연인, 이하연.

‘잘 모르겠네.’

어머니.

수호령을 비롯한 낙원의 주민들.

그리고.

‘이하연.’

한자로 물 하, 연꽃 련이라고 했다.

물연꽃.

그렇기에 이번 생일 축하곡의 제목은 물연꽃이었다.

“어어.”

어째서 이런 무대가 준비되었는지 이하연은 깨달았다. 더불어 주위에 퍼져 있는 연꽃까지. 그건 은후가 사전에 63빌딩 측에 돈X랄을 해서 준비한 것들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 사람이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한 시간 정도 전망대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 달라는 은후의 부탁에 처음에 안 된다고 했지만, 돈의 힘은 위대했다.

“…….”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

“어, 어어.”

“여기 선물.”

단화 한 켤레.

“상자가 두…… 개네?”

“선물이 두 개니까. 생일 선물을 하나만 주라는 법은 없잖아.”

“그러네.”

“그렇지?”

그리고 반지 한 쌍.

커플링이었다.

“이건…… 반지네.”

“응.”

“예쁘다.”

“참고로 내가 만들었다?”

“은후, 네가?”

“배운 적이 있어서.”

“반지를 만드는 취미가 있다고 들은 적은 없던 거 같은데.”

은후가 픽 웃었다.

“취미는 아니니까. 그냥 어쩌다 보니 우연히 배울 기회가 있었거든.”

“그렇구나.”

이하연은 기쁘면서 속으로 조금은 슬펐다. 아직 자신이 모르는 연인의 모습이 많은 거 같아서. 하지만 이내 그 슬픔은 기대감으로 변모했다.

‘까도 까도 새로운 모습이 보이는 거 같다니까.’

조금은 알겠다 싶으면 모르는 모습이 드러나서, 그게 너무 멋져서. 더불어서 좀 더.

‘좀 더.’

내가 알아 가지 않으면.

그런 결심 또한 들었다.

“끼워 줄래?”

“잠시만.”

왼손 약지.

딱 맞았다.

“내 손가락 사이즈는 언제 알았데?”

“눈썰미?”

“흐흥, 만약 틀렸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그러면 다시 만들면 되지, 뭘.”

사실은.

‘다시 안 만들어도, 뭐.’

사이즈가 조절되는 기능이 붙어 있기는 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자동으로 조절되게 할 수 있었다. 다만 그게 직접적으로 드러나면 이하연이 깜짝 놀랄까 봐, 마나를 움직여 수동으로 조절하게끔 해 놓았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각종 안전에 관한 보호 마법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만약 이하연의 손가락에 껴 있는 반지의 기능이 알려진다면 큰 다툼이 벌어질 정도로 말이다.

“은이야?”

“은도 포함되어 있고.”

“요건 보석이지? 정 가운데에 있는 거.”

“터키석이야. 하연이, 네 탄생석.”

“탄생석. 맞아, 그런 것도 있었지. 생일 안 챙긴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잊고 있었어.”

보석이라.

‘그러네.’

보석을 좋아했던 때도 있었는데.

‘사람을 보석에 비유도 했었고.’

그러다가 의도치 않아서 왕따를 당할 뻔도 했었는데.

그래, 그때도 은후의 조언이 도움이 되었었다.

고등학교에 막 올라갔을 무렵이었던가.

“보석, 하니까 기억나는데.”

“응?”

“보석에 사람을 비유하다가 왕따당할뻔한 적 말야. 반 친구들을 보석에 비유해 가지고.”

“아, 그랬던 적도 있었지.”

“그러니까, 왜 내가 오팔이냐며, 에메랄드가 아니냐고 화냈었는데. 그, 이름이 뭐였더라?”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반 친구.

“그때 은후 네가 확실히 의사 표현을 하라고 해서. 크게 싸우긴 했었는데 덕분에 잘 해결되었으니까. 하여간 예쁘다. 무슨 프러포즈 반지인 줄 알겠어.”

“그건 그때 가서, 새로 준비해야지.”

“이 반지면 될 거 같은데.”

“그럴 수야 있나.”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

아니, 노을이 진 건 조금 된 거 같은데,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캠코더는 켰던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좋았다.

기왕이면 기록으로 남기면 더 좋았겠지만, 그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촬영에 아무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다.

‘왠지 멍하다.’

뭔가, 현실감이 없었다.

노을이 하품하던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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