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한식.
문자 그대로 한국의 요리.
그렇기에 음식 자체는 장소와 다르게 특별하진 않았다. 다만 보통과 다르게 구별되는 부분은 정갈함에 있었다. 플레이팅부터 맛까지. 깔끔함의 극치.
게다가 재료 또한 당일 아침에 공수하여 극히 신선한 것들을 사용했다. 주방장의 솜씨 또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이였으니. 그러니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었다.
게다가 추구하는 방향이 깨끗함이었다. 그래서 첫 식사임에도 불구하고 이하연은 부담 없이 맘껏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연인인 은후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
‘좋다.’
사실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는 정말로 다양했다.
음식의 기본인 재료의 상태부터, 누가 요리하느냐는 당연한 것 외에도 말이다. 개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환경이었다. 특히 누가 함께하고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하연에게 있어서 첫 식사는 더할 나위 없었다.
“아,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이하연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전체적으로 다 맛있었지?”
“그러게.”
“특히 후식으로 나온 수정과, 진짜 맛있더라.”
“동감.”
별거 아닌 이야기.
식사 후 방금 먹은 요리에 관한 잡담.
정말로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상의 한 자락.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언제나 나누었던 이야기 소재인데, 그런데 그때와 다르게 이하연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흥에 겨웠다.
“그나저나 다음 코스는 어디야?”
“글쎄.”
은후가 빙그레 웃었다.
두 사람은 여느 연인이 그러하듯 데이트할 때 계획을 세워서 만났다. 번갈아 가면서. 물론 그러지 않을 때도 있었다. 데이트한다고 하여 굳이 뭔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그렇기에 은후가 오늘 데이트 코스를 준비해 온다고 했을 때 이하연은 기대했다.
‘직접적으로 말한 건 처음이지 않나.’
코스를 짜 온다고.
그 전에는 암묵적으로, 알아서 잘, 딱딱.
“예전에 말이야.”
“응?”
“기억하려나 모르겠는데.”
“뭘?”
“63빌딩.”
“63빌딩?”
이하연에게 있어서 다소 뜬금없는 말.
“테론.”
“테론?”
일전에 같이 함께하던 게임의 이름에 이하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테러로 63빌딩이 무너지잖아.”
“그랬던가?”
이하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과거를 더듬었다.
“그랬었어. 하기야, 하연이 너는 예전부터 게임 배경이나 스토리엔 크게 관심이 없었지.”
“너도 그렇잖아.”
“뭐, 하여간 그때 63빌딩 한번 같이 가자고 했었던 건…… 기억이 안 나나 보네.”
“으흠.”
이하연이 멋쩍게 일부러 헛기침했다.
“거, 뭐, 기억 안 날 수도 있지.”
“그래, 그래.”
은후가 부드럽게 웃었다.
“여하튼, 갑자기 그때 기억이 나서 말이야.”
“그래서 63빌딩이야?”
“응.”
“기대된다.”
이하연의 눈이 반짝였다.
‘생각해 보면 이름은 당연히 아는 느낌인데.’
막상 직접 가 본 적은 없었다.
‘내 친구들도 그러지 않으려나?’
아닌가.
‘으으.’
잘 모르겠다.
‘내일 방송할 때 시청자들한테도 한번 물어봐야겠다.’
적어도 이하연의 느낌으로는 그랬다. 워낙에 그 이름이 유명하여 당연히 알고 있는 빌딩이지만 들어 보기만 한.
“63빌딩 내에서도 전망대하고 아쿠아리움이 유명하다고 하더라고. 뷔페도 괜찮고, 영화관도 있을걸?”
“그래?”
“응. 면세점도 있고, GOP…… 그러니까 군대도 꼭대기에 상주하고 있고.”
“와, 군대. 아, 맞다! 테론! 63빌딩 NPC가 군인이었지?”
이하연의 대답에 은후가 피식 웃었다.
“그랬지.”
“거기에 면세점 하니까 생각났어. 파밍할 아이템, 되게 이것저것 많았었지. 대체로 생필품 위주로 말이야. 저층에서는 식료품도 잔뜩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추억으로 남은 게임의 배경, 그 배경이 되는 곳을 실제로 방문한다는 생각에 이하연은 갑자기 신이 났다. 사실 그 전까지는 호기심이 있기는 했지만 그저 그랬는데.
‘좋아해서 다행이네.’
은후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63빌딩의 서편 주차장.
“오오.”
이하연이 눈빛을 반짝이며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아, 그런데 여기 촬영되려나?”
“상관없다고 하더라.”
한식당의 경우에는 촬영 불가라고 하여 캠코더를 꺼낼 수 없었다.
“오, 센스. 언제 물어봤어?”
“진즉에.”
은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데이트할 때마다 캠코더랑 카메라 꺼내잖아.”
“사진이랑 영상이 다 추억이잖아.”
“그건 동의.”
“그래도 좀 조심하려고 해. 저번에 은후 네가 말했잖아?”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처음부터 목적 자체가 촬영하여 어떤 결과를 내려고 하는 거라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촬영 자체가 부가적인 덤이라면 어떨까. 예컨대 아이의 운동회를 참가했다고 가정하자. 그때 아이를 눈으로 담지 않고 기록을 위한 촬영에만 신경 쓴다면. 과연 그게 맞을까.
‘제일 좋은 건 직접 보고 그 순간을 즐기며 함께하는 거야.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우리 눈보다 좋을까?’
게다가 막상 그 추억의 기록을 들추는 일은 정말로 드물다고, 그 흔치 않은 때를 위하여 촬영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그러니까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하는 게 좋아.’
언젠가 데이트하면서 캠코더와 카메라만 신경 쓰던 이하연에게 건넨 조언. 그때 은후의 말이 이하연에게 너무 인상 깊게 뇌리에 박혔다.
“나중에는 콘셉트 잡고 영상에 집중해서 데이트 한번 하자. 어때?”
“촬영을 우선으로?”
“응. 평소 데이트는 촬영이 후순위니까 좀 아쉬울 때가 있더라고. 아, 물론 그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야. 아무래도 우선순위가 아니니까.”
“나쁘지 않지. 그런데 그건 왜? 난 촬영보다 하연이 네가 나한테 집중하면 좋겠는데.”
은후의 말에 이하연의 말문이 순간적으로 막혔다.
“어, 그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은후의 얼굴이.
‘그, 어.’
너무 잘생겨서.
‘어어어어어어.’
심장이.
쿵, 쿵.
“그으으으으.”
“그으으으으?”
은후의 얼굴이 이하연에게 다가갔다.
‘어어, 여기 주차장, 남들이, 아니지, 선팅 진하니까 상관없나?’
바깥에서의 과한 애정 표현은 좀 별로라고, 내가 누군가와 사귄다면 그러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는데.
‘차 안에서는 상관없지?’
이거, 키스 타이밍인가.
이하연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응?’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아무것도 없어서 이하연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때 은후의 손가락이 툭 하고 이하연의 이마를 건드렸다.
“뭘 기대했어?”
“……바보.”
그때 은후의 얼굴이 훅 이하연에게 다가갔다.
‘아.’
뺨에 살짝 다가왔다가 떨어진 은후의 입술.
‘이것도 좋네.’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톡 쏘는 상쾌함.
시트러스, 겨울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나쁘지 않을지도?’
아니, 오히려 좋은 것 같은데.
“…….”
“…….”
이후 이어진 한참의 적막, 설렘이 가득한.
이하연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나, 데이트했던 거 브이로그 형식으로 좀 올렸잖아.”
“응.”
“그거 반응이 좋더라고.”
“나도 봤어.”
“그래서……는 사실 핑계고.”
이하연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냥 뭐어, 좋더라고, 남들에게 자랑하는 게. 개인적으로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좋지만, 은근히 뭐랄까, 묘하게 어깨가 올라간달까. 댓글 보면 은후 네 칭찬이 진짜 많으니까.”
“그랬어?”
“응. 그래서 아예 각 잡고 데이트 영상 찍으면 어떨까 싶었거든.”
“자랑용으로?”
“뭐어, 안 돼?”
“안 될 리가.”
은후가 픽 웃었다.
생각보다 너무 귀여운 이유라서.
정확히는 그 솔직함이.
‘보통은 자랑하고 싶다고 속으로 생각은 해도 말하기 껄끄러워하는 법인데.’
이하연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은후에게 말했다.
“너무 나 애처럼 보는 거 아니야?”
“내가 언제?”
“방금 눈빛으로 그랬거든.”
“어이구, 우리 하연이, 독심술사로 언제 전직했대?”
“흥.”
일부러 삐진 척,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린 이하연의 입가엔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 * *
은후와 이하연은 가는 곳마다 대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물며 오늘 두 사람은 잔뜩 꾸민 상태. 또 지금 시대에는 흔치 않은 카메라까지 들고 있었으니.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주위의 시선을 흘려보내며 63빌딩 내부를 구경했다. 그 처음은 아쿠아리움이었다.
“와아.”
사실 아쿠아리움에 관하여 이하연도 은후도 별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구경하고 있자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문명의 발전이란.’
은후는 더욱더.
‘생각보다 생물들의 상태가 너무 양호하네.’
건강은 물론 컨디션 관리까지.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이라는 것 자체가 자연에서 살아야 할 생물을 인간의 욕심을 위하여 억지로 가둬 둔 것이지 않은가. 넓은 자연에 비하면 정말 조그마한 영역.
그러나 생물들은 대부분 생각 외로 무척이나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부분 그렇다는 것. 아닌 개체도 있었다.
“귀엽다.”
각종 물고기가 전시된 장소를 지나 수달이 있는 곳에서 이하연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
“응? 안 귀여워?”
“귀엽네.”
“뭐야, 반응이 좀 시큰둥한 거 같은데.”
“하연이 네가 더 귀여워서?”
“그…….”
이하연이 당황했다.
아직도 이런 직설적인 애정 표현에는 익숙지 않아서.
“바깥에서는 좀.”
“뭐 어때, 크게 말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오.”
“여하튼 귀엽긴 한데.”
“뭐야, 뭔가 불만 있어?”
“아니, 이번에 귀엽다고 한 건 수달.”
이하연의 볼이 빨개졌다.
“아니, 우리 하연이는 언제나 귀엽고.”
“…….”
“여하튼 저 수달 말이야.”
“그…… 수달이 왜?”
은후가 손가락으로 수달 중 한 마리를 콕 집어 가리켰다.
“좀 아픈 거 같은데.”
“그래?”
이하연은 은후의 말에 수달을 더 유심히 바라봤다.
‘잘 모르겠다.’
겉으로는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데다가 인간과 다르게 딱히 겉으로 티가 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아봤어?”
“뭐어, 감?”
은후가 애매하게 웃었다.
사실은 다른 수달들과 다르게 품고 있는 마나의 기질이 확연하게 달라서이지만, 그걸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해 줘야 할까?”
“누구한테?”
“사육사한테지 누구겠어.”
“내 말 믿어?”
“응, 그럼 안 믿어?”
“아니, 믿지 말라는 건 아닌데.”
은후가 다소 당황했다. 아무리 연인 사이라고는 하지만 이유로 댄 건 그저 감이라는 한마디뿐인데.
“그치? 은후 네 말이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으려고.”
“그러다가 사기당한다?”
“그렇게 믿는 사람은 너 말고 없어서 괜찮을걸?”
“……내가 사기 치면 어떻게 하려고?”
이하연이 웃으며 답했다.
“뭐어, 그러면 사기당하는 거지.”
만약 그런 일이 정말로 발생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 거 같거든.”
“사기를 쳐야 할 만한 이유가 어디 있어.”
“있을 수도 있지?”
“하여간 바보네.”
“베에.”
이하연이 일부러 혀를 살짝 내민 뒤 다시 주제를 되돌렸다.
“그나저나 사육사한테 말해 주는 게 좋을 거 같아.”
“굳이? 감이라는 이유로는 믿어 줄 거 같지 않은데. 나한테 해양 생물 관련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쌍하잖아. 몰랐으면 모를까, 방법이 없을까?”
“글쎄.”
은후가 말끝을 흐리고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