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특별함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보통과 구별되어 다르다.
즉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나 남들보다 더 중요하다는 뉘앙스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일반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의외로 안 좋을 가능성이 있지.’
사람들은 자신이 예측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일이 일어나면 보통 놀라기 마련. 문제는 그 과정에서 불쾌함을 느낄 가능성도 충분했다.
왜냐하면 평소에 접할 일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 반대로 잘만 한다면 보통 때보다 훨씬 기쁘고 좋아할 수도 있었다. 요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었다. 그래서 은후는 이하연을 만나러 가는 길 고민을 거듭했다.
‘어렵네.’
데이트.
흔히 연인 사이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사귀기 전도 아니고 사귄 이후였다. 그래서 보통 데이트 날짜를 잡게 되면 은후는 이하연과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 뭘 먹고 싶은지 등등.
그래서 데이트 코스에 대한 스트레스는 딱히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특별하게 해주고 싶다는 욕심.
그리고 그 욕심이 과해서 그런지 뭐가 뭔지 잘 몰라서. 괜스레 머리가 아팠다.
“쯧.’
은후가 가볍게 혀를 차며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까지는 좀 남았나.’
이하연의 집으로부터 차량을 기준으로 약 십 분 거리에 주차장이 있었다.
은후는 그곳에 차를 주차하고 곰곰이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이하연이 해보고 싶었으나 사정의 여의찮아서 해보지 못한걸.
‘뭐.’
물론.
연인이니까.
그렇기에 매일 특별하면서도 일상인 나날이지만. 또 굳이 특별하지 않아도 이하연은 충분히 좋아하겠지.
그저 여느 날처럼 가볍게 평범한 데이트 코스를 짜도 좋아하리라.
그래도.
‘같이 게임…… 아니. 게임을 같이 하는 건 됐고.’
고양이 카페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아니면 아쿠아리움이 좋으려나?’
은후의 고민이 깊어졌다.
* * *
이하연이 다소 졸린 눈을 한 채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아함.”
방송하면서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는 이들과 다르게 수면 시간이 랜덤이 되었다.
어느 정도 고정이기는 했지만 종종. 아니, 꽤 자주 바뀌었다.
어떨 때는 한 시나 두 시에, 늦어지면 서너 시나 심하면 아침 해가 뜨고 한참 뒤에야 잠들었다. 그때그때 마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오늘의 경우에는 데이트에 설레서.
‘오랜만의 데이트.’
사실 보편적인 시각에서는 그다지 오랜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하연의 주관적인 느낌에 의하면 오래간만이었다. 그래서 잠을 설쳤다.
‘잠에 관해서는 좀 고쳐야 하는데.’
부모님이야 이제 그러려니 하는 편이었지만.
- 밤낮이 바뀌는 건 좋은데. 그래도 수면 시간은 고정하는 게 신체 리듬을 유지하는 게 좋아.
연인인 은후는 이따금 한마디를 하는 편이었다. 잔소리라면 잔소리였으나 이하연은 그게 기꺼웠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느낌이 그득했기에, 그래서 나름대로 연인의 충고를 지키려고 노력은 하고 있었다.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문제지만 말이다.
“으음.”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시간에 오늘 할 데이트에 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 고민 중 하나는 어떤 옷을 입을까였다.
하지만 직접 입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뒤에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일까.
‘좀 마음에 안 드네.’
막상 최종적으로 낙점된 옷이 이하연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나쁘지는 않은데.’
은후가 무어라 할까. 잘 어울린다고 할까?
은후의 미적 기준은 은근히 높았다. 이하연이 느끼기에는 까다로운 것 같기도 했으나 막상 말을 들어보면 납득이 되었다.
이해가 쉬울 정도로 명확하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 그 옷은 나쁘지 않은데 색감이 좀 그렇달까? 그레이와 블랙으로 한 코디는 좋은데. 옷 전체적으로 너무 무채라서. 조금 채광이 섞였으면 더 나았을 거 같아.
- 뭐 네 얼굴이면 거적때기를 걸쳐도 예쁘겠지만. 기왕이면 더 예쁘게 보이는 게 좋을 테니까.
그 와중에 은근히 섞인 칭찬 들은 이하연을 기쁘게 했다.
일전 대학교에 다녔을 무렵이나. 또 사회생활을 잠시 하면서 자신에게 호감을 표해오던 남자들과는 달랐다.
어떤 옷을 입어도 마냥 예쁘고 잘 어울린다며 칭찬하지 않았다. 아니, 칭찬이야 했지만. 그 와중에 할 말은 다 했다. 또 자신의 기준이 은근히 명확했다.
‘어우.’
그게 이하연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 말들 속에 자신을 신경 쓰고 있다는 티가 은연중에. 그리고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어서. 게다가 자신이 무의식중에 흘린 말을 은후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력이 너무 좋다니까.’
좋아도 너무 좋아서.
‘그때도…… 아, 이럴 때가 아닌데.’
잠시 은후에 관하여 떠올리던 이하연이 흠칫하며 시계를 바라봤다. 넉넉했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여기서 더 지체하면 지각 확정이었다.
‘으으.’
일단 청바지에 흰 티.
‘코트에 머플러.’
아니.
‘마음에 안 드는데.’
패딩을 입을까.
‘편하기는 해도 오랜만의 데이트니까. 코트가 낫겠어. 저번에 샀던 검정 코트. 모자는 패스. 머플러는 할 거니까…….’
이하연의 머리와 몸이 바쁘게 움직였다.
* * *
딱 시간에 맞춰 이하연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곧.’
1분도 되지 않은 시간.
이제 은후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며칠 전부터 기다렸던 데이트 약속. 기다리고 기다렸던 시간.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이 못내 견디기 어려웠다.
며칠을 기다렸는데. 1분도 걸리지 않을 시간이 무척 더딘 것 같았다. 이하연은 새삼스레 자신도 중증이라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면 새해네.’
12월의 마지막 날.
엘리베이터가 문을 열었고 이하연의 눈에 비친 건 새하얗게 흩날리는 눈발이었다. 오늘 눈이 올 확률은 30%에 불과하다고 뉴스에서 분명히 말했는데 운이 좋았다.
‘좋다.’
진눈깨비와 함께 서 있는 검은 차 한 대. 그리고 차에 기대어 우산을 쓰고 몸을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연인.
‘아.’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했던 은후의 표정이 스르르 풀리며 머금어지는 미소가 이하연의 감정을 일깨웠다.
‘멋있다.’
원래도 멋있었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유독.
“왔어?”
“어, 어어.”
자연스럽게 같이 쓰게 된 우산. 이하연은 잽싸게 은후에게 붙으며 팔짱을 꼈다. 처음과 다르게 조금은 익숙해진. 하지만 아직은 용기를 내야 하는 행동.
“옷이 좀 얇은 거 같은데. 안 춥겠어?”
“차 있잖아. 그리고 좀 추우면 어때. 더 달라…… 달라붙으면 되지 않을까?”
은후가 피식 웃었다.
“그거야 그렇지. 일단 차에 탈…….”
“아니, 조금만.”
“응?”
“이렇게 조금만 더.”
같이 우산을 쓰면서 눈을 바라보는 게 왠지 모르게 좋아서.
“그래, 그럼.”
“응.”
잠시 두 사람은 차 앞에서 그렇게 서 있었다.
서로 아무 말 없이.
하지만 그 고요함은 편안했다.
딱히 굳이 말을 나누지 않아도.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하연이 은후의 팔짱을 푼 뒤에 운전석의 차 문을 열었다. 하지만 차 문이 열리지 않아서 이하연이 다소 당황했다. 은후가 빤히 바라보자 이하연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항상 은후 네가 문을 열어줬으니까. 이번엔 내가 열어주려고 그랬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은후가 조그맣게 웃음을 터트리며 차 키의 버튼을 눌렀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풀렸다.
이하연은 볼을 약간 빨갛게 물들이며 다시 한번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은후의 몸을 살짝 밀며 우산을 건네받았다.
은후는 순순히 운전석에 앉으며 우산을 건넸고, 이하연은 쪼르르 반대편으로 이동하여 보조석에 탔다. 그리고 우산을 접으며 보조석에 탄 뒤에 은후의 안전벨트를 매어 주려고 했다.
“읏.”
그때 은후가 이하연의 몸을 꾹 끌어 앉았다.
“……남들이 보면 어떻게 해.”
“선팅 짙어서 밖에서는 안 보여.”
“그런가?”
“그럼.”
“조금 불편한데.”
“조금 참아.”
“바보.”
“바보여도 좋은데.”
그런 유치한 이야기를 잠시 나눈 뒤 은후가 팔의 힘을 풀었다. 하지만 이번엔 반대로 이하연이 은후에게 몸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좋다.”
“나도.”
그냥 만난 것만으로도.
“배는 안 고파?”
“조금?”
사실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배가 고팠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은후를 만나서 이하연은 먹지 않아도 뭔가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그래도 먹긴 뭐 먹어야지.”
“그건 그래.”
“한식당 예약해 놓았어.”
“한식?”
은후는 개인적으로 한식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하연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양식이나 일식도 즐기기는 했지만.
“왜 별로야?”
“으응, 아니. 좋아.”
사실 한식이든 양식이든. 심지어 그다지 선호하지 않은 중식이든. 뭐든 좋았다. 은후와 함께라면.
“슬슬 가자.”
“응.”
은후의 말에 못내 아쉬운 듯한 눈초리로 이하연이 몸을 떨어뜨리며 보조석에 체중을 실었다.
* * *
한국에서 가장 고급스럽다는 평을 받는 한식당 자목련. 중국에서 들어온 귀화식물이자 관상용으로 주로 쓰이는 꽃의 이름을 딴 고급 식당.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원래는 고위 권력자들이 드나들었던 요정이었다. 시간이 흘러 평범한 음식점으로 바뀐 것뿐.
하지만 그냥 음식점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철저한 예약제로만 운영되었으며, 이곳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인맥이었기에.
‘다른 사람의 소개장이 없으면 아무리 재력이나 명성이 있어도 들어갈 수 없다고 했지.’
그런 특이점 때문에 아는 이들 사이에는 유명했다. 물론 맛은 두말할 것도 없었고.
은후도 전주 유지인 이창석의 소개장이 없었다면 예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서, 오세요.”
은후와 이하연의 방문에 한복을 입은 종업원이 흠칫하며 고개를 숙였다.
평범한 남녀 둘.
잘 생기고 예쁘기는 했으나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도 아닌 두 사람이 이곳에 오는 건 참으로 특이한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궁금증을 드러내지 않은 채 종업원은 은후와 이하연을 안내했다. 당연히 개인실이었다. 이하연은 주위를 살펴본 뒤 은후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디야? 뭔가 평범하지 않은 거 같은데.”
“저번에 이야기했던 드라마 시크릿 사회 있잖아.”
“응.”
“거기서 재벌가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은 올 수 없는 식당에서 작당 모의하는 장면에 관해서 이야기했었잖아?”
“아.”
그래.
그리고 그때 그런 말을 나누었다.
- 실제로도 저런 식당이 있을까?
- 있을걸?
- 그래? 언제 한번 가보고 싶다.
- 그럼 나중에 같이 갈까.
- 기회 되면?
- 기회야 만들면 되는 거고.
-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거야?
- 노력하면 아마도?
- 그게 뭐야.
이하연이 물었다.
“그러면 여기가?”
“응. 그리고 여기 방에 오면서 눈치챘겠지만, 개인실밖에 없고. 방음도 잘 되어있다고 하더라. 철저하게 예약제고.”
“어떻게 예약한 거야?”
“연줄로. 내 사업에 투자한 사람을 통해서.”
이하연이 감탄했다.
동시에 감동했다.
솔직히 아예 자신은 까먹고 있었는데.
‘나도, 나도 노력하지 않으면.’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의 첫 식사.
이하연에게 있어서 참 특별했고 맛도 좋았다.
사실 장소나 맛보다 더욱 특별했던 건 은후가 자신을 위해 이런 장소를 예약할 만큼이나 신경 쓰고 있다는 것. 그게 이하연이 느끼는 가장 큰 특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