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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140화 (140/170)

제140화

도깨비는 한국 민담에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어떤 도깨비는 날씨와 풍요를, 어떤 도깨비는 재물을 가져다주는 행운 신으로서, 또 어떤 도깨비는 단순히 장난만을 치는, 혹은 재앙의 모습으로도 묘사된다.

다양한 능력만큼이나 성격도 가지각색. 물론 공통점이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정리하자면, 도깨비도 결국 하나의 종인 동시에 개체마다 원하는 바가 달랐다.

“원래 도깨비라는 족속이 인간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만 말이여.”

“네.”

“내가 좀 특이하기는 혀.”

“그런가요?”

“애초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말이여.”

“사람 사이에서요?”

도깨비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거, 이런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해야겠구만. 술이 없으면 안 되는 이야기라서 말여.”

태생의 비밀.

‘아니, 비밀까지는 아니려나.’

그래도 딱히 유쾌한 사연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은후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주제를 슬쩍 돌렸다.

“그러고 보니 계속 도깨비 삼촌……이라고만 불렀죠. 따로 이름은 없으세요?”

“흐흐, 갑자기?”

“뭐어, 그렇죠.”

“도깨비면 족혀. 어차피 한반도에서 남은 유일한 도깨비일 테니께. 청이나 왜 나라는 모르것는디. 여하튼 말이여, 좀이 쑤신달까나.”

도깨비가 멋쩍게 웃었다.

“우리는 본디 사람과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도 어울리며 살아가는 존재여. 어떻게 어울리느냐는 도깨비마다 다르지만 말이제.”

유일하게 남은 도깨비의 방식은 요리였다.

“거, 큼, 배부른 소리라는 건 알어. 도령을 만나기 전까지 죽음을 걱정했으니께. 처음에는 부정했고 분노했제.”

그러다가 타협하고 우울했으며 수용했다.

“임자랑 그냥 한날한시에 죽자고 결심했는디.”

그러다가 은후를 만났다. 그리고 다시 삶을 이어 갈 동력과 터를 얻었다. 하지만 태생이 지닌 본성은 어쩔 수 없었다. 구미호라면 모를까, 애초에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자처했던 도깨비였기에 더더욱.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네요.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요.”

“아니, 그건 아니제. 생명의 은인인디. 어찌 보면 이것도 내 욕심 아니것어.”

“그래도 이쪽으로 모신 것도 저이고, 낙원의 주민이 되기를 권유했을 때 책임진다고 했던 것도 저죠.”

책임의 범주는 저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그저 생명만 연장하는 건 아니지.’

적어도 은후에게 있어서는 그랬다. 낙원의 주민이 된 이상, 적어도 주민들에게 저마다 삶의 목적과 이유를 찾아 주고 싶었다. 물론 삶에 꼭 목적과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주민 중 바라는 이가 있다면, 적어도 낙원을 만든 이로서 어느 정도 도와줄 의무가 있다고 은후는 판단했다. 그래서 도깨비의 요청이 기꺼웠다.

‘내가 생각이 확실히 짧았어.’

은후는 다른 낙원의 주민들도 따로 시간을 내 상담을 한 번씩 진행해야겠다며 속으로 다짐한 뒤 입을 열었다.

“하여간 음식 장사를 좀 하고 싶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제. 이번 축제에서 확실히 느꼈구마.”

사람들과 적당히 어울리고 싶다고.

“아, 물론 급한 건 아니여. 도령만 허락해 준다면 내 개구리와 함께 알아서 하겠구마. 그렇다고 도움을 준다면 거절하지는 않겠지만.”

“도와 드려야죠.”

“흐흐, 그려?”

“그럼요. 그런데 장소는요? 원하신다면 용산역의 가게를 다시 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요.”

이전과 다른 세상이니 이런저런 안전 조치를 해야 하기는 하겠지만.

“아니, 그건 아니여. 용산역의 가게도 좋겠지만 기왕이면 터를 옮기면 좋겄는디.”

게다가 이제는 낙원을 벗어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존재의 유지를 위해서는 낙원에 있는 천도복숭아 나무 및 은후의 도움이 필수가 되었으니까.

“그러니 적당히 덕진 공원 근처에 새 가게를 차리려고 혀.”

“새 가게라. 좋네요.”

“흐흐, 그렇제? 추억이 담긴 곳이니 아쉽기는 허지만.”

“아쉬우면 남겨 두면 되지 않겠습니까?”

“글씨, 거기도 좀 특이한 곳이라. 우리가 머물지 않으면 몇 년 못 간다고 했으니께.”

은후가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도깨비에게 물었다.

“낙원으로 오시면서 필요한 자재들은 다 옮기셨죠?”

“글체?”

“그렇다면 그 가게, 제가 연구에 좀 써도 괜찮을까요? 전부터 호기심은 있었습니다만, 실례가 될까 하여 말씀은 못 드리고 있었거든요.”

연구하다 보면 어딘가 망가질 수도 있고, 또 도깨비와 구미호의 추억이 깃든 장소였으니. 그런데 아예 그곳을 버릴 생각이라면야.

“임자한테 내 한번 물어보겠구마. 나야 딱히 상관없는디.”

“알겠습니다. 그 대가…… 아뇨, 딱히 연구 허락을 안 해 주셔도 조만간 제가 가게를 차리는 데 도움을 드리죠. 근시일 내에요.”

“흐흐, 그렇다면 나야 좋제.”

“대가는 받을 겁니다?”

“음.”

진지해지려는 도깨비의 반응에 은후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맛있는 음식요.”

“으잉? 그 대가로 말인가?”

“그럼요. 맛있는 음식이면 족합니다.”

“흐흐. 고럼, 고럼.”

도깨비가 씩 웃으며 호탕하게 웃으며 내심 생각했다.

‘거, 같은 주민이라기보다 주인이지만 말여.’

주인도 주민인가.

‘잘 모르겠구마.’

하지만 저런 주인이라면야 아무래도 좋았다.

* * *

구미호는 이전 살던 용산의 가게를 연구하고 조사해도 되겠냐는 은후의 질문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하세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답변. 그래서 그런지 은후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서렸고, 그걸 눈치챈 구미호가 입가에 손을 올리며 호호 웃었다.

“구미호라는 족속이 그래요. 장소에 관한 애착이 없어요. 적어도 저와 제가 아는 다른 구미호들은 그랬죠.”

어딘가에서 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정이 들기 마련이라지만, 구미호는 아니었다.

“사람이 중요해요. 제게 있어서는 남편이 그렇죠. 남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좋아요. 그래서 도령이 찾아와서 저희 부부가 삶을 이어 갈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기쁘면서도 슬펐달까요.”

한날한시에 맞이하는 죽음이라니.

“낭만적이잖아요? 그런 죽음이라면 기쁘게 받아들였을 거예요. 물론 지금 이 삶도 좋죠. 남편과 좀 더 같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구미호가 도깨비에게 가진 애정의 크기를 엿볼 수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은후는 조심스레 물었다.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시던가요?”

“그이가요?”

“네.”

“오히려 좋다고 하던데요. 아, 맞다. 그래서 그러는데 부탁이 있어요.”

“편히 말씀하시죠.”

“이번에 가게를 차릴 때요, 기왕이면 현대의 이기들을 도입했으면 해요.”

구미호 본인은 딱히 옛 방식을 고집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도깨비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무언가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가스레인지라든가, 또 냉장고도 그렇죠. 한창 저희 부부가 활동하던 때와 다르게 좋은 게 많이 생겼더라고요?”

낙원에서도 전기를 쓸 수 있게 되면서 하나하나씩 들어오는 현대 문물의 산물. 낙원에서 그것들을 보고 가장 신이 나고 좋아한 건 수호령이 아닌 도깨비였다.

“이번에 차릴 가게에도 좀 들여놓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부탁이라면야 얼마든지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요?”

구미호가 샐쭉하게 웃으며 주위를 살핀 후 낮게 말했다.

“낙원에서요.”

“네.”

“프라이버시라고 하던가요?”

“네.”

“지켜지기가 조금 힘든 것 같던데요. 밤일하기가 조오금 그렇단 말이죠.”

태연하게 말하는 것과 다르게 귀가 약간 붉어진 것이 구미호도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이는 다 큰 애들만 있고. 또 령이도 알 건 다 아는데 뭐 어떻냐고 말은 하는데요, 그래도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낙원으로 온 뒤에 한 번도 못했다구요.”

“……조처하겠습니다.”

부부 사이에 밤일은 중요했다.

매우.

무척.

* * *

낙원에 새로운 일거리가 생겨났다.

도깨비와 구미호 부부의 가게 차리기 프로젝트.

구체적으로 어떤 손님을 받을지부터 방문자들에게 비밀을 어떻게 지키게 할 것인지 등등, 정해야 하는 규칙도 기준도 많았으나 이런 부분은 어디까지나 추후의 일이었다.

“가게를 차릴 수 있는 범위는 대충 이쯤. 천도복숭아 나무의 영향력 아래에 있어야 하니까.”

“그려? 생각보다 좁구먼.”

게다가 그런 측면은 은후가 담당할 예정이었기에 낙원의 주민들은 다른 영역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예컨대 가게를 차릴 위치라든가, 디자인이라든가 말이다.

“삼촌!”

“오야.”

“등불! 가게 가는 길에 등불 있었으면 좋겠어! 연등도!”

“길?”

“응응.”

생각지도 못한 수호령의 말에 도깨비가 고개를 갸웃했다.

“공원에 오는 아이들 말 들어 보면 말이야. 오는 길에서부터 좋아하더라고.”

“그려?”

“응, 그러니까 가게에 방문하는 사람들도, 그, 뭐랄까, 가게에 가는 길부터 좋아했으면 좋겠거든.”

옆에 있던 구미호가 웃으면서 수호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령이, 생각이 깊구나.”

그렇게 낙원의 주민들이 도깨비와 구미호 부부의 새로운 가게에 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은후는 용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은 두 가지.

하나는 연인인 이하연을 만나기 위함이었고, 또 하나는 기존 용산에 있는 도깨비와 구미호 부부 가게의 연구 및 조사였다. 하지만 일단 후자는 은후의 머릿속에 없었다. 내일이 이하연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12월 5일.

양력으로는 훌쩍 지났지만 이하연은 생일을 음력으로 챙긴다고 했다. 양력으로 따지자면 12월의 마지막이자 한 해의 끝인 31일이었다.

‘좋아하려나.’

연인이 되고 나서 맞이하는 첫 생일.

‘어렵네.’

예전에 날짜를 들었을 때 선물로 고민했던 건 신발이었다. 이런저런 안전 마법 기능을 잔뜩 부여한, 실용적인 기능은 물론 디자인적으로도 뒤떨어지지 않게 신경을 썼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준비는 했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거로 괜찮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커플링도 준비했지만 또 너무 빠르지 않나 싶기도 했다.

‘과한 생각인가.’

운전하면서 은후가 쓰게 웃었다.

‘아니면 둘 다 줄까.’

반지라면 항상 착용할 테니까.

‘아니지. 샤워할 때는 또 빼겠지? 그렇다면 마법…… 아니지, 마법이 문제가 아니야.’

모름지기 선물이라 함은 좋고 나쁨을 떠나, 받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법.

‘좋아할 거라 생각은 하는데.’

괜한 걱정이란 걸 이성적으로는 은후도 알았다. 이하연이라면 신발을 줘도, 반지를 줘도 기뻐하겠지. 아예 그냥 모르고 넘겼어도 딱히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하연 또한 은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일을 챙기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은후는 이하연의 생일을 챙기고 싶었다.

‘사실 생일이란 게 그렇지.’

1년에 한 번.

그 한 번은 생각 외로 꽤 자주 돌아왔다. 게다가 현대로 들어온 이래 가족들이 떨어져 사는 일은 흔해졌고 서로가 바쁜 나날을 보내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가 늘어났다. 탄생한 날이 아니던가. 분명히 특별한 날인데,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하기야 그건 사람의 가치관마다 다르려나.’

은후가 쓰게 웃었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그런 날. 현대에서는 특별하지 않다고 여기는 이가 더욱 많은 날, 생일.

이하연은 후자겠지.

은후는 이하연에게 생일을 특별한 날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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