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138화 (138/170)

제138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은 강아지나 고양이 정도. 그 외 사자라든가 호랑이, 코끼리, 사슴 등을 보려면 동물원을 찾지 않는 이상 볼 수 없는 게 일반적이었다.

적어도 대한민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반열에 든 나라라면, 그리고 그런 나라에서 살아가는 아이들도 역시. 그래서 은혁과 현수는 한동안 입을 쩍 벌린 채 있었다.

‘코, 코끼리?’

강아지를 제일 좋아하지만, 은혁이 가장 멋지고 근사하다고 여기는 동물은 코끼리였다. 그래서 아프기 전에는 전주 동물원을 자주 찾았다. 코끼리를 보기 위함이었다. 그런 코끼리가 수호령의 뒤에 떡 하니 있었다.

“멋있다…….”

은혁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순간적으로 진짜 코끼리라고 착각할 정도의 디테일함. 그러나 문득 눈치채고 보니 눈으로 된 코끼리라는 게 너무 신기했다. 더 신기한 것은.

‘진짜 같아.’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코끼리가 마음에 들어?”

“어, 어어. 그런데 너는 누구……?”

“에이, 섭섭한데.”

“뭐가?”

“저번에 이야기 나눴잖아. 은후를 통해서.”

“은후가 누, 아.”

그때 그 형.

정말 신비로운 만남.

병원으로 돌아간 뒤에 자신이 꿈을 꾼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이었던 건.

‘이제 한동안 그렇게 아프지 않을 거야.’

그 말을 들은 뒤로 실제로 체감할 정도로 몸 상태가 호전되었다. 그 자리에서 서서히, 또 그 뒤로도 호전된 몸은 쭉 괜찮았다. 다시 나빠지지 않았다.

그때의 한마디가 은혁에게 너무 사무쳤다. 의사도, 부모님도, 언제부터인가 희망이 가득한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해 하고 있다는 걸 은혁은 알았다.

아파서, 그래서 자신을 은연중에 안타깝게, 슬프게 바라보는 부모님이나, 애써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의사나 간호사들 사이에서 있다 보니, 자연스레 은혁은 눈치가 늘 수밖에 없었다.

골수 이식 전에는 부모님도 의사도 확신을 갖고 은혁에게 말했다. 괜찮아질 거라고. 하지만 실패 이후 똑같은 말을 하면서도 그 믿음은 사라졌다.

그래서.

‘오랜만이었어.’

자신에게 그토록 확신하며 곧 괜찮아질 거라던 말은.

“그럼 네가 여기 수호령이야?”

“그래, 내가 수호령이야.”

“오랜만…… 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엄, 오랜만이지.”

수호령이 방긋 웃었다.

“그 옆에는 친구?”

“어, 어어. 병원에서 상태가 좋아지고 난 뒤에, 응, 그러니까 덕진 공원에서 은후 형의 도움을 받은 뒤에 병실을 옮겼거든. 그 이후에 만난 친구.”

“그래? 안녕?”

수호령이 현수에게 손을 흔들었다. 현수가 얼떨결에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데 오늘 꼭 오라고 네가 말했던 것도 사실이야?”

“그렇지. 축제를 준비했거든.”

“축제?”

“응, 아이들을 위한 축제.”

아이라는 말에 은혁이 입술을 삐죽였다.

“아이…… 아닌데.”

“맞는데?”

“아닌데. 다 컸어.”

“아하, 그래, 다 컸지, 우리 은혁이.”

사실 은혁도 알고 있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 자신은 아이라는 걸.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치기 어림도 아이의 면모.

그래서 수호령은 흐뭇하게 웃으며 은혁을 바라봤다. 은혁은 그 눈초리에 입술을 삐죽였으나 이윽고 다가오는 코끼리에게 눈을 빼앗겼다.

‘어?’

은혁이 한눈에 코끼리에 반했다는 걸 알았기에.

“타 볼래?”

“뭘?”

“코끼리에.”

“어, 어어. 그래도 돼?”

“물론. 축제라고 했잖아? 아, 맞다. 거기 현수라고 했지?”

현수가 은혁의 뒤에서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는 무슨 동물을 좋아해?”

“……동물은 그다지. 도마뱀이 좋은데.”

“도마뱀?”

“어.”

도마뱀이라.

하지만 도마뱀을 태우기는 좀 그러니까.

“그렇다면 공룡은?”

“어, 공룡?”

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공룡.’

공룡은 도마뱀하고 닮았지.

현수의 생각으로는 도마뱀이 크게 된다면 공룡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공룡 좋아.”

“그렇단 말이지.”

수호령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개굴아!”

은혁과 현수의 얼굴에 물음표가 서렸다.

갑자기 개구리라니.

“오야, 불렀나?”

그때 뿅 하고 나타난 개구리.

“개, 개구리가!”

말을 한다!

은혁과 현수의 눈이 다시 커다래졌다.

“현수는 공룡이 좋대.”

“오.”

개구리가 눈을 감으며 물었다.

“구체적으로?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어, 도마뱀……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도마뱀은 코모도왕도마뱀이야.”

개구리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뭐지.’

잘 모르겠는데.

“그니까 코모도왕도마뱀은 동물이고, 척삭동물문이야. 그리고 또…….”

현수는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그런지 신나게 떠들었다. 좋아한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듯, 관심이 없다면 웬만한 어른들도 모를 지식을 늘어놓았다.

“……다큐멘터리에서 봤는데 지능도 엄청 높아. 자신을 돌봐주면 그것도 알아보거든. 보통 도마뱀에게는 그런 지능이 없다고 그랬어. 또…….”

개구리는 슬며시 은후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은후라고 하여 모르는 분야를 알 수 없는 노릇. 그러나 현재 이곳은 은후가 만든, 시간과 공간이 괴리된 세계.

그래서 은후가 원한다면 이곳에 있는 아이들의 의식을 엿볼 수도 있었다. 아무리 아이라고 하여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게 옳았기에 딱히 사건 사고가 없다면 그러진 않겠지만.

‘이쯤은 괜찮겠지.’

딱 현수가 원하는 도마뱀의 형상만을.

그 외의 것은 들여다보지 않고.

표층 의식에 떠오르는 것만 딱.

‘대충 이런 느낌인가.’

은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엿본, 현수가 그리는 코모도왕도마뱀 형상을 개구리에게 전달했다. 이윽고 개구리는 눈으로 된 사자를 변형시켰다.

“와!”

현수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코모도왕도마뱀……!”

“타 볼래?”

“어! 타 볼래!”

“은혁이는 코끼리지?”

“어, 어어.”

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새삼스레 위화감이 들었다. 내가 아는 덕진 공원이 아닌데. 같이 온 엄마도 보이지 않고. 그래도 은혁이 크게 불안해 하지 않은 건 수호령의 태도와 주위 환경 덕분이었다.

‘축제, 라고 했지. 분명히.’

엄마는.

‘엄마는…….’

어디?

“우리 엄마는?”

“여전히 덕진 공원에 계셔.”

“그럼 우리는?”

“여기는 덕진 공원이지만 덕진 공원이 아닌 곳.”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다면 그냥 꿈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좋은 꿈을 꾼다고 말이야.”

“엄마가 우리 찾을 텐데.”

“괜찮아. 시간이 다르거든.”

수호령은 최대한 은혁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시간을 들였다. 아이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또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걸 주지시키기 위하여.

‘괘, 괜찮겠지.’

어른이라면, 다 큰 성인이라면 또 몰랐겠지만.

아무리 성숙하다고 하여도 은혁과 현수는 아이였다. 그래서 금방 수호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위험하지는 않을 거 같으니까. 또 즐거울 것 같아서.

“와!”

실제로 즐거웠다, 코끼리를 타고 허공을 달리는 건.

진짜로 꿈이 아닐까 싶었다.

‘와, 와!’

그저 감탄사만 나왔다.

눈으로 된, 살아 있는 것과 다름없이 보이는 수많은 동물들. 그리고 코끼리 등에 타고 있는 자신. 옆에는 코 뭐시기 도마뱀에 탄 친구 현수.

“야!”

“어?”

“내 말 듣기 잘했지?!”

“그래! 잘했다! 와아아아아아악!”

현수가 소리 질렀다.

“아아아아악!”

은혁도 소리 질렀다.

그저 신이 나서, 그냥 좋아서.

“어?”

그리고 은혁은 깨달았다. 자신과 현수 외에도 다른 아이들도 있다는 걸. 저마다 눈으로 된 동물들을 타고서 허공을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래, 난다기보다는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달리리기만 하는 건 재미 없는 일. 그래서 수호령은 눈을 이용해 만든 귀신의 집, 또 인형극이나 서커스 등을 준비해 두었다. 그 덕분에 은혁과 현수를 비롯한 아이들은 질릴 틈이 없었다.

* * *

따뜻한 날씨 때문에 적잖이 아이들이 덕진 공원을 찾았다. 문제는 수호령의 몸은 하나라는 것, 또 한 아이만을 편애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은후는 아이들의 시간을 각자 달리 흐르게 만들었다. 그 시간 사이사이에 수호령이 끼어들어 모든 아이와 적절히 어우러질 수 있는 시간을 빚었다.

‘좀 힘드네.’

바깥과 시간을 괴리하고, 다시 또 그 안에서 각각의 개체마다 시간을 다르게 만들어서.

그 와중에 수호령을 비롯한 낙원 주민들의 시간 또한 조율해야 했으니.

‘피곤하기는 해.’

만약 천도복숭아 나무가 아니었다면.

‘피곤한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을 수도.’

은후가 쓰게 웃었다.

여전히 시간을 만지는 건 어려웠다.

‘그나저나 나도 많이 발전했네.’

시간을 나눈 뒤 다시 한번 시간을 쪼개는 걸 그저 어렵다고 표현하다니. 예전이라면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렇게 은후가 축제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환경을 조율하고 있을 때.

“은후야!”

수호령이 은후를 찾았다.

“많이 바빠?”

“조금?”

“많이 힘들어……?”

“조금?”

은후가 피식 웃었다.

“정말로 조금이니까. 거짓말 아니야.”

“응, 알지.”

수호령이 애매하게 웃었다.

“은후도 같이 놀자고 하려고 했는데. 은혁이가 보고 싶다고 하더라.”

“날?”

“응.”

“그럼 그럴까.”

아예 시간을 못 내는 것도, 이 자리에서 못 벗어나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나저나 은혁이 식사는? 나는 좀 배고픈데.”

“아, 맞다. 물어보고 올게!”

한창 놀던 아이들이 배고플 때가 되었다.

“가자!”

수호령이 은후와 함께 은혁, 현수를 찾았다.

“안녕?”

“어, 안녕하세요?”

“오랜만.”

“네에.”

은혁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현수도 덩달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누구?”

“그, 저번에 말했던 형.”

“진짜 그 형?”

“어.”

“사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내가 거짓말 치겠냐.”

“아니, 아니, 그거 말고. 저 형 때문에 네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거.”

은혁이 현수를 째려봤다.

“진짜거든! 형, 맞죠?!”

“뭐.”

은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어.”

“왜?”

“아니요, 그게 현수에게 너무 자랑해서요. 엄마나 아빠한테 말해 봐야 안 믿을 거 같아 가지고……. 의사 쌤도 안 믿을 거고.”

“그런데?”

“현수도 형을 만나면 괜찮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거든요.”

은혁이 우물쭈물했다.

“멋대로 말해서 죄송해요.”

“그래.”

아이여도, 그래, 아무리 아이여도 예의를 밥 말아 먹어도 된다는 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은혁은 괜찮은 아이였다. 아이답게 실수도 하지만 확실히 사과할 줄 아는 아이였으니까.

그 정도만 해도 무척 훌륭했다. 그것도 못 하는 어른들도 널린 세상이 아니던가. 하기야 그런 성향을 알아봤기에 은후가 그런 호의를 베풀었던 것.

그저 수호령과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호의를 내준 건 아니었으니. 은후는 은혁이 내심 자신의 친구 현수에게도 그런 친절을 베풀어 줄 걸 기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여전히 아이는 아이인가.’

그래도 그저 기대만을 품고 말로 내뱉지 않은 건, 호의는 권리가 아니란 걸 무의식중에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뭐.’

현수라고 했던가.

못 해 줄 것도 없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라면야.

저 아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밥부터 먹을까?”

은후가 다소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억!”

도깨비를 바라본 은혁과 현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 도깨비!”

“구, 구미호!”

도깨비와 구미호는 오늘 축제를 즐기러 온 아이들을 위해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식당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