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137화 (137/170)

제137화

김경진의 출근길 인터뷰.

날씨를 기본으로 오전 중에 가벼운 이슈나 가십거리를 다루는 LBS의 장수 아침 프로그램이었다.

“안녕하세요, 김경진입니다. 안 그래도 일교차가 크고 매서운 추위가 가득한데요, 간밤에 안녕하셨는지요. 오늘은 조한청 기후 예측 과장님을 모셨습니다. 기상청에 나가 있는 유서연 기자 나와 주시죠.”

“안녕하세요, 유서연입니다. 오늘 김경진의 출근길 인터뷰, 기상청에서 함께합니다.”

기상청까지 기자가 찾아간 이유는 전주에 느닷없이 찾아온 이상 기후 현상 때문이었다.

“갑자기 전주에 훈풍이 불고 있다죠?”

“그렇습니다. 12월과 1월에는 작년과 비슷하리라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기온의 변동성이 크리라 보고 있었습니다만.”

“당연히 더 추워진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그런데 전주에서 정말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해서.”

“설명이 불가능하다고요?”

“네, 적어도 저희 인류가 쌓아 온 과학이란 테두리 안에서는 그렇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의 학자들에게 자문을 빠르게 구했는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벽에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 * *

오전의 날씨와 관련된 모든 뉴스는 물론, 언론과 대중의 시선이 전주로 모여들었다. 이는 최근에 딱히 연예계를 비롯한 정치권에 큰 이슈가 없었던 탓도 컸으나 정말로 과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날씨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몇몇 세계의 기상학자들까지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 모든 게 은후의 마법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은후는 거기까지 신경 쓰지 않았다.

‘적당히 조치는 했으니까.’

고작 하루.

그러나 갑작스러운 날씨 역전은 자연의 생태계에 적잖은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은후는 그에 관한 대비까지 철저히 했다. 당연히 마법으로.

‘인간이야 크게 상관이 없을 거고.’

현대 과학의 발달로 날씨에 큰 구애를 받지 않게 되었으니,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짐으로써 겪는 건 약간의 불편함일까.

‘여름옷은 진즉 집어넣었을 테니.’

하지만 뭐.

‘거기까지는.’

딱히 은후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생명을 앗아 가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불편함을 야기한 정도는. 다만 은후는 예기치 못한 전화를 한 통 받게 되었다.

“어, 하연아.”

연인인 이하연으로부터였다.

- 별일 없지?

“없지. 무슨 일 있어?”

- 아니, 아침에 자려고 하는데 뉴스 보는데.

“응.”

- 전주가 지금 엄청 따뜻하다며? 그래서 네 생각 나 가지고.

은후가 피식 웃었다.

“분명히 어젯밤에도 통화하지 않았어?”

- 그건 그치만. 또 생각날 수도 있지.

“그건 그래.”

- 그치?

이하연이 배시시 웃었다.

- 으움, 놀러 갈까?

“어딜?”

- 전주. 여기 용산도 엄청 춥거든. 근데 전주가 따뜻하다니까.

“새벽 방송했는데 안 피곤하겠어?”

- 피곤이야 하겠지만, 이상 기후라니까.

은후가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내일.”

- 응?

“내일까지는 아마도 따뜻할 거야.”

- 어떻게 알아?

“글쎄.”

은후가 모호한 웃음을 흘렸다. 이하연은 뭔가 어렴풋하게 느꼈다. 이번 전주에서 벌어진 이상한 날씨는 은후와 관련이 있다는걸.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이성적으로 생각은 했지만.

‘으으으으으음.’

그래.

‘말이 안 되지.’

그리고.

- 뭐, 한숨 자고 내려갈게. 괜찮지? 다시 추워지면 어때. 추우면 추운 대로 은후가 따뜻하게 해 주겠지.

“내가 무슨 재주로?”

- 그건 은후가 알아서 잘.

“하여간.”

은후가 픽 웃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모르겠다.’

하연이에게 언젠가 자신과 관련된 비밀을 밝힐 생각은 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 문제는 은후에게도 너무 어려웠다.

“방송 스케줄은?”

- 펑크……는 안 되겠지.

“안 되지. 정말로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 급한데.

“뭐가?”

- 내가 정말로 은후를 보고 싶으니까. 급하긴 엄청 급한걸.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 바보.

“차라리 내가 올라갈게.”

- 멍게. 그런 뜻 아닌 거 알면서.

이번에는 은후도 잘 모르겠어서 그냥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그리고 잠깐 다운되었던 감정이 다시 되살아난 이하연이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그럼 이번 주, 나 쉬는 날에 봐. 그때 괜찮아?

“괜찮지. 어지간하면 스케줄 비워 놓겠다고 했잖아.”

- 응. 그럼 나 잘게.

“잘 자고.”

- 잘 자고?

“……내 꿈 꾸고.”

어째서 이하연의 감정이 좋아졌는가. 은후는 알 듯하면서도 잘 모르겠다고 여겼다. 언제나 여심은 어려웠다. 은후의 통화가 끝나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개구리가 물었다.

“괜찮아?”

“뭐가?”

“컨디션이랄까.”

“나쁘지 않지.”

은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날씨를 바꾸는 기적을 부린 이래 낙원 주민들의 시선이 조금, 아니, 적잖이 따가웠다. 이전에도 날씨를 바꿨던 적이 있는데.

“정말로?”

“정말로. 걱정 안 해도 돼. 진짜로. 개구리 네 눈에는 대단한 일일지 몰라도 내게 있어서는 딱히. 준비할 시간만 있다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까.”

“거, 별 준비 없이도 그럴 수 있다는 뉘앙스인데.”

“그럴 수 있지?”

“정말로?”

“정말로. 대신에 그때는 네 걱정이 유효하겠지만.”

개구리의 눈이 커졌다 다시 작아졌다.

“도령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알았지만. 어지간한 용 저리 가라야?”

“용이라.”

은후가 중얼거렸다.

“내가 아는 용, 그러니까 드래곤은 더 대단한 존재인데. 날씨를 바꾸는 것쯤이야.”

“그건 아닐걸? 날씨를 바꾸는 이적이라면 어떤 용이라도 적잖은 부담이…….”

“……그나저나 개구리 너, 용에 관해 은근히 자세히 안단 말이지. 용을 목표로 했던 적이 있어서 그랬나. 말이 나와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예전에는 묻기 어려웠으나 지금은 상관없을 거 같아서.

이제는 용이 되는 건 개구리의 꿈이 아니었으니까.

“편하게 물어봐.”

그렇게 은후와 개구리가 용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려던 찰나.

“용에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죠? 개구리도 은후 도령도. 령이가 일어났어요.”

호랑이 신선이 스르륵 다가왔다.

“령이가?”

“네, 방금요.”

전국적으로 한파가 가득한 어느 날, 유일하게 예외가 된 전주에서 수호령이 꿈을 꾸다가 눈을 떴다.

그리고 축제가 시작되었다.

* * *

전북대학교 병원에서 은혁의 어머니는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들이라니.’

오늘 친구 현수와 함께 덕진 공원으로 꼭 놀러 가고 싶다는 아들의 투정. 추위 때문에라도 건강을 생각해서 막고 싶었으나 하필 전주에 이상 기후가 찾아왔다.

따스함.

딱히 뉴스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오늘 병원으로 오는 길에 체감할 수 있었다. 오늘 날씨는 여느 따뜻한 봄날과 다름없다고. 그래서 오전에 꽤 고생이었다. 한동안 입을 일이 없다고 여겼던 옷가지들을 찾느라.

“오늘 진짜 덥죠?”

“덥다기보다는 따뜻하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샘, 옷이 너무 두꺼워서 더운 것 같아요.”

“그런가?”

“네, 진짜 오늘 휴가 내고 싶어 죽겠다니까요. 남친하고 나들이 가면 딱 좋을 거 같은데. 낭만 있잖아요.”

“낭만?”

“전국적으로 추운데 유일하게 따뜻한 전주, 그 따뜻함에 나들이라니. 낭만이죠.”

“허이구, 젊네, 젊어.”

은혁의 어머니는 이런 비슷한, 혹은 결이 같은 대화를 오가며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아들의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은 상황. 그래서 은혁의 어머니는 아들의 제안을 수락했다.

‘한동안 병원에만 쭉 있었으니 갑갑할 만도 하지.’

그래, 그건 그렇고.

“현수야.”

“네, 아줌마.”

“어머님 핸드폰 번호는 알고 있니?”

“어, 네.”

현수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야지. 아들의 부탁은 혼자가 아니라 친구인 현수와 함께였으니까. 그리고 병원에서 제법 자주 만나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기에 허락을 받아 내긴 쉬웠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 어머.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안 그래도 저도 오늘 일만 아니었으면 현수 데리고 어디라도 나가고 싶었으니까요. 그나저나 우리 번호를 아직도 교환 안 했었네요?

“그러게요.”

- 어! 잠깐만! 그럼 어머님 현수 좀 잘 부탁드려요. 전화는 회사 일 때문에 바로 끊어야 할 거 같네요.

“네, 들어가세요.”

옆에서 어머니의 통화를 잠자코 지켜보던 은혁이 현수에게 말을 걸었다.

“잘됐다.”

“진짜로. 안 된다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왜?”

“아니, 너 우리 엄마 몰라?”

“우리 엄마도 아닌데 알겠냐. 근데 진짜 착해 보이시던데.”

“착하긴 하시지. 우리 엄마 착해. 근데 엄할 때는 또 진짜 엄하다니까. 만약에 나 혼자나 너랑 단둘이 간다고 했으면.”

현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엄청나게 혼났을걸.”

“그래?”

“그래, 바보야.”

“좀 혼나면 어떠냐.”

“아, 씨. 너 우리 엄마한테 안 혼나 봐서 그런 소리 할 수 있는 거야.”

그렇게 은혁과 현수가 대화를 나누던 사이, 은혁의 어머니가 병원 외출증을 끊으러 갔다. 은혁은 주위를 잠시 둘러본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만약 어른들이 못 나가게 막았으면 둘이 같이 나가기로 했잖아.”

“밥팅아, 난 반대했다?”

“와, 이거, 거짓말쟁이네? 어제 분명히 알았다며. 여차하면 둘이 몰래 나가자고.”

“아, 씨. 그건 네가 자꾸 보채서…….”

병명은 다르지만 서로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동질감, 또 같은 나이와 관심사가 비슷하다는 공통점 등. 그 덕분에 은혁과 현수는 무척 친했고 이처럼 허물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딱 하나 안 맞는 게 있다면.’

장수풍뎅이라든가.

‘그리고 도마뱀?’

절지동물이나 파충류 등을 현수가 무척 좋아한다는 것. 은혁의 경우에는 딱히 좋아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고. 따지자면 그저 그랬다.

‘반려동물로 무슨…… 뭐더라, 하여간.’

무슨 도마뱀을 키우고 싶다고 했는데.

‘강아지가 짱이지.’

은혁이 고개를 내심 끄덕였다.

‘나중에 몸 나으면 강아지 꼭 키워야지.’

그렇게 홀로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 가던 은혁의 옆구리를 현수가 쿡 찔렀다.

“악!”

“뭘 그리 생각하고 있어.”

“현수, 너어.”

“저번에 복수다, 메롱!”

“야! 이현수!”

한동안 술래잡기를 하던 두 사람은 은혁의 어머니에게 혼쭐이 났고,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덕진 공원으로 이동했다. 덕진 공원에 도착한 뒤 현수가 은혁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아직도 화남?”

“……쫌. 그래도 나도 저번에 그랬으니까. 이번엔 쌤쌤이야.”

“휴.”

“바보냐. 네가 더 불안해하면 어카냐.”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나저나 여기에 오면 친구 소개해 준다며.”

“아.”

은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몰라.”

“뭘?”

“다시 오면 만날 수는 있을 거 같은데, 항상 만날 수 있었던 건 아니라서.”

“그게 뭔 소리…… 어?”

갑자기 현수가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두리번했다. 분명히 아까까지 눈앞에 은혁의 어머니가, 그리고 덕진 공원 호수가 있었고,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려고 했는데.

‘뭐, 뭐지?’

다리는, 그래, 덕진 공원 다리는 맞았다.

하지만.

‘눈?’

왜 새하얗지.

눈으로 보이는데, 분명히.

은혁이 말했다.

“야.”

“어, 어어.”

“다리가 눈으로 바뀐 거 같은데. 눈으로 뒤덮인 건 아닌 거 같아. 그치? 아까까지 다리에 눈은 없었잖아.”

“……어.”

“주위에 사람들도 많았잖아.”

“그치. 날씨 따뜻해서 많이 온 듯?”

“근데 다 어디 감?”

“내가 아냐?”

현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야호! 은혁아, 안녕?!”

그때 수호령이 허공에 나타났다.

눈으로 된 동물 군단을 이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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