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136화 (136/170)

제136화

전야제.

축제 전날 베푸는 축제.

딱히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행사는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벌이는 식은 다음 날이니까. 어디까지나 가볍게, 맛보기로. 하지만 낙원에서 벌어진 전야제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왜냐하면 수호령을 위한 축제이니. 어디까지나 이 낙원이 존재하게 된 이유도, 은후를 비롯하여 낙원의 모든 주민이 아끼고 좋아하는 정령이었기에.

그래서 수호령 몰래 낙원의 주민이 모였다. 그리고 가지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도깨비는 수호령이 평소에 좋아했던, 또 먹어 보고 싶어 하는 음식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수호령이 <비와 사랑>을 정말로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요. 조금 슬픈 게 안타깝다고 했으니 어레인지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약간은 가볍게, 또 축제이니 화려하면서도 살짝은 아련하게, 슬픔을 덜어서…….”

성호의 경우에는 자연스레 음악을.

“벌레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지도 않아서 고민이네요. 제 능력이 동물을 조종하는 분야였으면 좀 더 쓸모가 있었겠지만요.”

연후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조각한다고 했다. 벌레를 이용해서 동물 눈 조각 등을 더욱 디테일하게.

“나는 비를 좀 타이밍 맞게 내리게 하려고. 눈도 좋아하지만 령이는 비를 더 좋아하니까. 비 못 본 지 오래됐다고 하더라.”

저마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수호령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은후의 경우에도 고민을 많이 했다.

‘뭐가 좋을까.’

기왕이면 더욱 특별하게.

물론 처음이니까, 그저 사람들이 겪어 봤을 축제만 준비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이름을 주고받으면 딱 좋겠는데.’

은후가 아쉬움에 중얼거렸다.

‘아직 시기가 멀었고.’

그렇게 고민을 쌓다가 문득 떠올랐다.

꿈. 수호령이 바라던 이상적인 세계. 아이들의 도원향.

이 세계가 아이들을 위한 행복한 세계이길. 하지만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본디 꿈의 본질은 불가능을 좇는 것이지만, 그래도 가능성이란 게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아이들이 행복한 세계라.

‘글쎄.’

은후의 판단으로는 가능성이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질이 그러하니까.

드물게도 아닌 이도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기적이었고 자신을 먼저 생각했다. 적어도 은후가 겪은 인간 군상은 그러했다. 그래서 은후는 기본적으로 성악설을 믿었다.

지금 어디엔가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이를 사지로 내모는 이는 많았다.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손꼽히게 안정된 국가여서 그렇지. 물론 뉴스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대한민국에서조차 아이를 향한 범죄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니.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다른 나라 또한. 이런 사실을 수호령이라고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좁혔다. 덕진 공원에 한정하여.

힘이 모자라니까, 최소한 안전만큼은.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끝에는 행복이란 단어가 있으니.

은후가 눈을 감았다.

‘령이는 그 꿈을 반쯤은 포기했지.’

반은 아니지만, 그 반이라도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게 어디인가. 비록 막연하다고 할지라도.

그러니까.

* * *

스타더스트를 타고 은후가 달렸다. 그 옆을 페가수스의 등에 탄 수호령이 함께했다. 그 외 낙원의 주민들도 저마다 눈으로 된 동물의 등에 탔다.

예외가 있다면 개구리와 호랑이 신선이었다. 호랑이 신선은 본래 호랑이 모습으로 돌아갔고, 개구리 또한 본래의 형상으로 호랑이 신선 등에 올랐다.

“야호!”

수호령이 소리 질렀다.

“와와아아아아아!”

달린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건 줄 몰랐다. 스타더스트가 그런 수호령에게 그 즐거움을 이제 알았냐며 콧바람을 내뿜었다.

‘푸르르르.’

수호령이 알아듣고는 활짝 웃으며 물었다.

“나중에 태워 줘야 해?”

스타더스트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은후 외에는 내키지 않는데.

그래도.

스타더스트가 허공에 짧게 발을 구르며 마지못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행위에 담긴 것은 긍정의 뜻. 그래서 수호령은 계속해서 환히 웃을 수 있었다. 그때 은후가 물었다.

“지금 타 볼래?”

“응?”

수호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아.”

“어어?”

은후가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수호령을 스타더스트의 등 위로 이동시킨 후 사라졌다.

‘어라라?’

이윽고 들려오는 건 은후의 피아노 소리.

‘피아노……! 은후다!’

거리가 꽤 떨어졌음에도 퍽 선명하게 들리는 게 수호령은 못내 신기했다. 하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금까지 본 은후의 능력은 수호령에게 있어서 만능 상자였다.

‘좋다아.’

그때 허공에 쏟아지는 비.

수호령은 비가 좋았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무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데 굳이 분명한 근거가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감정이라는 게 그러했다. 딱히 인과가 필요 없는.

‘개구리가 뭔가 한 것 같은데.’

낙원이었기에.

그래서 수호령의 감지 능력은 무척 뛰어났고, 개구리가 뭔가 술수를 부린 걸 알아차렸다.

‘나를 위해서인가.’

그 안에 담긴 감정도.

이 모든 게 나를 위해서.

‘아하하하하.’

좋다아.

좋아, 너무.

그리고.

‘어?’

식당에서 풍기는 냄새.

맛있는 음식.

‘삼촌인가?’

언제 사라졌지.

‘어?’

뭐지?

수호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들?’

맛있게 음식을 먹는.

신나게 친구들과 뛰어노는.

부모님과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

행복한 모습의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수호령의 눈에 비치기 시작했다.

* * *

스스로 원하는 심상을 자각하게 만드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이든 사람이 아닌 존재든. 그건 어떠한 존재든 갖추는 무의식 너머의 방어 기제 때문이었다.

하물며 진심으로 본인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기는 무척 어려운 법. 같은 문장이라고, 단어라고 해도 서로 인식하고 있는 바가 미묘하게 상이한 경우도 허다했기에.

수호령이 원하는 아이들이 행복한 세계.

하지만 행복은 무엇일까?

아이의 구체적인 범위는, 또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그걸 아는 건 수호령 스스로뿐. 하나 수호령도 구체적으로 확실히 정한 건 또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은후는 수호령의 무의식을 끌어냈다.

무의식 너머의 방어 기제를 넘어서기 위하여 여러 수단을 동원했다. 음식 냄새, 음악 등등. 물론 그것들이 순수하게 수호령의 무의식을 건드리기 위한 건 아니었지만.

‘그것도 크지.’

마법사라면 하나의 행위에도 여러 가지 의미를 두는 법.

“행복해 보이네.”

“그렇지?”

그 언제보다도.

항상 입가에 머물던 미소도 비슷했지만 뭐랄까.

‘더욱 행복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은후가 쓰게 웃자, 개구리가 중얼거렸다.

“이런 웃음을 자주 짓게 하려면 힘들겠지.”

“언제 비슷하게라도 지은 적 있었나?”

“도령도 모르는 게 있었구만?”

“…….”

은후의 눈이 가늘어지자 개구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가끔 도령을 보면서 령이가 짓는 미소가 저래.”

“나를?”

“그럼.”

“…….”

“그리고 낙원에, 아니, 덕진 공원에 놀러 온 아이를 보면서 아주 가끔. 거의 없어서 도령도 못 봤던 거 같은데. 그나저나 전야제는 이거로 끝인가?”

“아마도.”

수호령이 깨어나는 건 아마도 내일이나 되어야 할 터.

“뭔가 아쉽네.”

“아쉬울 게 무어 있나. 이런 전야제야 언제든지 마음먹으면 해 줄 수 있는걸.”

“그래도. 기왕이면 무의식을 건드리는 건 나중이 좋지 않았을까? 령이도 축제는 처음일 텐데.”

“아니, 이름을 주고받을 날이 머지않았어.”

잘은 모르겠지만.

‘이름을 주고받는다는 게 특별하단 건 알겠지만.’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그럼에도.

“도령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개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꿈이라. 나도 꿈이 있을까.”

“있겠지.”

“잘 모르겠는데.”

“없을 수도 있고.”

“거참, 저번에 말했던 건 뭔데.”

개구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은 아니어서.”

“포기?”

“포기는 아닌 거 같은데, 잘 모르겠어. 사실 꿈이란 게 그렇잖아. 불가능해도 바라만 보고 있어도.”

그저 그것만으로도.

“족한 게 꿈인데.”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그렇지. 용은 굳이, 딱히. 되면 좋겠는데, 아니면 말고. 이런 걸 꿈이라고 부르진 않잖아. 예전에는 그토록 바라고 원했는데 말이야.”

“그렇단 말이지.”

은후가 담담히 물었다.

“한번 건드려 줘? 령이처럼.”

“……나중에?”

은후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중에.”

“음.”

개구리가 빤히 수호령을 바라봤다. 옆에서 조용히 있던 호랑이 신선이 툭 말했다.

“언제 포기했대?”

“뭘?”

“용.”

“최근에.”

“나는 모르고 도령은 아네?

“아, 그게.”

개구리가 머리를 긁적였다.

“……언젠가 말하려고 말하려고 하다가 못 말하겠더라. 많이 도와줬잖아.”

“바보, 멍청이, 말미잘.”

“미안.”

“해삼에 멍게, 올챙이만도 못한 놈.”

개구리가 일부러 웃었다.

“같이 찾아 줄게.”

“응?”

“꿈 말이야. 없으면 같이 찾으면 되잖아. 예전에 네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도령이 굳이 안 도와줘도 내가, 무의식에 없는 꿈이라도 내가 찾아 줄 테니까.”

“아하하하하, 그러네. 그래, 그러면 되지. 내가 했던 소리를 그대로 돌려받을 줄은 몰랐어. 그립네.”

은후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개구리와 호랑이 신선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두 사람, 아니, 두 정령.

‘신선도 정령인가?’

은후가 잠깐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령 맞는 거 같긴 한데.’

두 정령 사이에 얽힌 이야기가 적잖은 거 같았다. 은후가 어느새 다가온 도깨비와 구미호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두 분에게는 없습니까?”

“뭐시?”

“꿈이요.”

“낭만이네요.”

구미호가 부드럽게 웃으며 도깨비를 바라본 뒤 답했다.

“저는 이루어졌고, 실시간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그러시군요.”

“네에.”

“흐, 거참, 임자도.”

도깨비가 잠깐 고민하다가 답했다.

“나는 딱히 꿈이 없으.”

“그래요?”

“그럼. 굳이 꿈이 있어야 하는감?”

“그건 아니죠.”

“그런 거시여. 도깨비라는 종족의 특성이 그렇제. 그래서 가끔가다가 부럽기는 혀. 꿈을 갖는다는 게. 그런데 또 어찌 보면 귀찮은 거란 말이제, 꿈이란 것은. 없어서 좋을 때도 있는 거구먼. 사는 게 그렇지. 무슨 일이든 장단점이 있으이. 예외도 있겠지만서도. 예외는 예외가 아닌감?”

귀찮다라.

‘하기야 사람 중에서도 꿈을 꾸지 않은 이는 널렸지.’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그나저나.’

은후가 말했다.

“잡담은 이쯤 하고. 슬슬 준비해야겠네요.”

“무얼? 이미 축제 준비는 끝나지 않았는감.”

“그거야 그렇죠. 그런데 기왕이면 축제에 사람이 많이 오면 좋잖아요?”

“그렇제?”

도깨비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담겼다.

“날씨가요, 참 춥죠?”

“그런디?”

“안 추우면 그래도 나들이를 좀 오겠죠.”

“으잉?”

은후가 씩 웃었다.

은후가 수호령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선물이 있었다.

축제가 아니던가.

“날씨를 좀 바꾸려고요. 전주라는 지역에 한정해서요.”

“날씨를?”

“네.”

“허.”

“뭐 어려운 게 있으려고요. 저번에 눈도 내리게 했는데. 방법은 비슷해요.”

“아니, 아니. 그건 아니제. 그건 어찌 보면 자연에 순응하는 방식……이잖어?”

어차피 추운 날씨였었으니까.

“게다가 개구리 저 녀석의 도움도 있었을 거고. 그런데 따뜻하게 만든다는 건 자연을 거스르는 거 아녀?”

“마법사라는 존재가 그렇습니다.”

“으잉?”

“저는 마법사입니다. 아, 여러분께는 정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네요.”

마법사란 자연의 법칙을 멋대로 이용하는 이들이었다.

때때로.

대부분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교묘하게 비트는 방식을 애용하지만.

‘필요하다면 거슬러야지.’

은후가 마나를 일으켰다.

이윽고 전주 전역의 날씨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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