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어디까지나 영상의 주연은 스타더스트였다. 스타더스트와 교감하고 함께 호흡을 맞춘 은후의 얼굴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영상은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냈다.
개중 백미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달리고 달리다가 끝내 죽어 버린 스타더스트의 사체를 앞에 두고 타오르는 모닥불과 호흡을 맞추던 은후의 기타 연주.
- 기타 연주 미쳤다. 진짜진짜진짜 미쳤다……!!!!!
- 저거로 확실해졌네. <비와 사랑>하고 <계단식 월광>의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란 게
∟? 뻔한 거 아니었음?
∟아니라는 사람도 많았음 그거로 한창 어디 게시판 시끄러웠잖아? 굳이 구체적으로 언급은 안 하겠다만
∟ㅋㅋㅋㅋ아니 별거로 난리네 lol
약 40분. 한 편의 영화라기에는 결코 길지 않은, 짧다면 짧은 영상. 그러나 시청자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영화라고 받아들였다.
- 저 영상의 주인공 누군지 아는 사람 진짜 없어?
∟난 알지롱ㅋ
∟? ㄹㅇ?
∟근데 비밀임.
∟??
∟인터뷰하면서 신신당부 받았음. 따로 계약서까지 썼는데ㅋ 돈도 받았고ㅋㅋ
이하연은 이번 영상을 만들며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했다. 아직 국내에 자신의 채널이 그렇게까지 유명하지 않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려나?’
이하연도 알았다.
이대로 쭉쭉 채널이 성장한다면 결국 은후의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걸. 왜냐하면 힌트가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빗속에서 연주했던 베토벤의, 지금은 사람들이 ‘계단식 월광’이라 부르는 연주.
또 몽골에 돌아오자마자 올렸던 스타더스트와 얽힌 영상. 그러니 은후를 아는 이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터. 그래서 사실 이번 영상을 올리기도 망설였다.
채널의 성장과 금전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영상을 업로드해야겠지만 은후가, 은후의 사생활이 이하연에게 있어서 더 중요했다. 그래서 은후에게 물었다.
“아예 채널의 방향성을 돌릴까?”
“왜?”
“아니, 내 영상도 영상이지만 가만히 보면 은후, 네 영상을 기대하는 구독자들이 많거든. 특히 외국에서 유입된 시청자들.”
“내가 부담돼?”
“아니, 아니, 그건 아니고. 나중에 은후 네가 귀찮아하거나 곤란해질까 봐.”
은후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상관없어.”
“응?”
“딱히 나는 얼굴이 세상에 알려져도 상관은 없으니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닌 거, 은후 네가 더 잘 알잖아.”
“알지.”
그래서.
“정말로 상관없어.”
단호하게 답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운 건 결국 관심 때문이 아닌가. 마트에만 가도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붙고, 또 행동 하나, 말 하나하나에 이런저런 평가가 따라온다.
하지만 은후는 마법사였다. 원한다면 훤한 대낮에 알몸으로 길거리에서 춤을 춰도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터. 또 사람들의 평가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너만.”
“응?”
“하연이 너만 좋다고, 너만 괜찮다고, 나를 믿는다고, 그렇게만 말해 준다면 아무래도 좋아. 다른 사람들의 평가 따위.”
“어?”
마법사로서 경지에 올랐기에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말. 마법사란 마나라는 연료로 세상의 법칙을 멋대로 바꾸고 휘두르는 존재였다. 때때로 협력하고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지만, 기본적으로 마법사의 스탠스는 본인 중심으로 구축된 오만함.
물론 경지에 따라서 여론에 휘둘릴 수도 있겠지만, 은후의 경지는 그런 염려를 하기에는 너무도 드높았다. 하나 그런 은후에게도 조금, 아니, 많이 신경 쓰이는 존재가 있다면 연인인 이하연이었다.
‘그리고 어머니.’
딱 그 정도일까, 사람 중에서는.
“그러니까 하연이 너만 괜찮다면 좋을 대로 해.”
“……응.”
“나중에 나 때문에 네가 귀찮아질 수도 있다는 거는 알지?”
“알지. 이미 조금 귀찮을지도?”
이하연이 배시시 웃었다.
“네 연락처를 묻는 사람들이라거나, 같이 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더 많이 쏠린다거나.”
“그거 곤란하겠네?”
반 이상 농담이라는 걸 알았기에, 은후가 멋쩍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볼을 살짝 긁었다.
“그래도 좋아.”
“응?”
“함께 있는 게. 그리고 나도 괜찮아. 은후 너만 날 믿어 주고 괜찮다고, 좋아한다고 해 준다면.”
결국 이하연이 염려하는 건 자신과 연인인 은후가 사람들에게 얼굴이 알려지고 유명세를 치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불편함. 그걸 이하연은 어느 정도 각오하기로 했다.
다만 그래도 최대한 막을 수 있는 데까지는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금전적인 대가와 함께 비밀 유지 계약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알음알음 은후가 누군지 짐작하는 사람이 튀어나왔다. 다행스럽게도 구체적으로 이름까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것도 언제까지일까.’
길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불확실성에 기대는 건 싫지만 어쩔 수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이하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채널 댓글을 확인했다.
‘이 사람…… 에휴.’
은근히 은후를 자신이 알고 있다는 티를 못 내서 안달이라고.
- 누군지 궁굼하지~?
∟맞춤뻡좀 똑발로 해주셉요
∟ㅋ
∟여기서는 관계자 빼면 나만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하여간 비밀이라니까 나도 비밀 지켜야지ㅎㅎ
유치하기는.
‘그나저나 구독자가 엄청나게 또 올랐네.’
아직도 오르고 있었다. 쭉쭉.
‘댓글 수도 그렇고.’
메일도 쏟아졌으려나.
‘쏟아졌겠지.’
확인하지 않을 수도 없고.
예전과 다르게 뭔가 귀찮았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서. 그런 감정을 확인한 이하연이 화들짝 놀랐다. 분명히 기뻐해야 하는 일인데, 금전적인 수익도 엄청날 터인데.
‘실감이 없달까.’
무뎌졌달까.
‘돈은 사실 이제 충분한데.’
브이튜브 채널이 워낙 잘되어서.
‘그래도 좀 더 열심히, 잘 키워야지.’
이하연이 마음을 다잡았다. 브이튜브와 인터넷 방송 전업이란 건 적잖이 불안정한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이하연이 채널을 더 키우고자 마음먹은 건 은후의 부탁도 영향이 있었다.
‘게다가 내 채널을 통해서 은후가 자신이 하는 음악을 공개하고 싶다고도 했으니까.’
그럴 거면 채널을 따로 파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아니, 굳이 그럴 것까지는. 그거는 조금 귀찮아서.”
“수익적인 측면이라든가.”
“알잖아? 돈은 충분히 많은 거.”
“구체적으로는 몰라도 짐작은 하지.”
외제 고급 승용차를 몰고, 본인 명의의 집이 있고, 또 따로 집을 짓기까지 하고 있는 은후였다. 그런 상황을 이하연도 알고 있기에 은후가 돈이 많다는 건 충분히 알았다.
“돈은 아무래도 좋거든. 그냥 음악은 뭐랄까.”
“취미?”
“취미라기보다는 그 이상이지. 부탁받은 것이랄까.”
“응?”
은후가 애매하게 웃었다.
“나중에 설명해 줄게.”
“으응.”
결국 이하연은 은후의 부탁을 수락했다. 자신의 채널을 통하여 음악을 공개하고 싶다는 말. 그건 성호의 바람과 연관이 있었다. 자신의 음악을 많은 사람들이 들어 주었으면 하는. 그 수단으로 이하연의 브이튜브가 선택되었던 것이다.
‘좋아. 방송 전에 귀찮아도 할 일은 해야지.’
어제 술을 조금만 마셔서 다행이다.
이하연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메일함을 열었다. 그리고 살짝 질린 눈으로 메일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 * *
그전까지 이하연의 채널은 국내에서 그리 유명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느낌이랄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해외와 다르게 국내는 그랬다.
그런데 이번 영상 <달리고 달리다 별과 함께 잠들다> 때문에 국내에서도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은후도 그 사실을 알았으나 일전 이하연에게 말했듯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최소 수십만 명이 제 음악을 봤다는 거죠?”
하지만 성호는 아니었다.
“그렇죠?”
“으으.”
성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좋네요. 기왕이면 직접 사람들의 소감도 들어 보고 대화도 나누어 보고 싶기는 한데요. 이럴 땐 제가 정령이라는 게 좀 아쉽네요.”
어디까지나 음악의 중심에서 자신만을 생각했던 성호. 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까지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그 가운데에는 음악이 있었지만.
‘성호 씨도 성장했네.’
발전이랄까, 긍정적인 현상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직접 평가를 들어 볼 수 있을걸요?”
“그렇죠.”
아이들을 위한 콘서트, 평소와 다르게 직접 대면하여.
그 콘서트를 위하여 은후를 비롯한 도깨비와 구미호 부부까지 함께 연습하고 있었다. 그리고 막연하던 축제 또한 명확해졌다.
“은후야!”
수호령이 오도도도 달려왔다.
“어때?”
겨울, 눈, 동물.
이번 축제의 콘셉트를 수호령이 확실히 정했다. 축제와 관련된 영상을 본 뒤에 말이다. 그리하여 낙원은 새하얗게 물들었다. 놀이기구의 숫자는 극단적으로 줄였다.
롤러코스터와 회전목마, 딱 두 개.
그리고 눈으로 빚어진 동물들의 조각을 많이 배치했다. 강아지, 고양이, 거북이, 호랑이, 사자, 코끼리 등등. 거기에 이제는 과거 속으로 사라진 공룡과 사람들의 상상에서나 볼 수 있는 페가수스와 같은 신화 속의 동물까지.
그래서 도깨비가 참 안타까워했다. 눈으로 된 거대 로봇은 취소했기 때문이다. 다만 훗날 다시 한번 축제를 열 때의 콘셉트는 로봇으로 하기로 수호령과 약속했다.
“멋지네. 예쁘고.”
“그치? 그치?”
수호령이 뿌듯하게 웃었다.
“삼촌이 눈으로 만든 음식도 맛있더라. 신기한 게, 진짜 맛이 나더라구.”
“그래?”
도깨비 또한 그 콘셉트에 동참했다.
눈으로 음식을, 묘한 능력을 써서 실제 음식과 비슷한 맛까지 구현했다.
“후우, 오랜만에 힘을 써서 그런가, 좀 지치는데. 도령이 보기엔 어떻소?”
어느새 슬쩍 다가온 호랑이 신선의 물음에 은후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힘을 쓴 건 개구리가 아니고요?”
“엇, 흠.”
호랑이 신선이 헛기침했다. 호랑이 신선 뒤에 있던 개구리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
“그치? 아니, 내가 물을 잘 다루는 건 맞지만 그걸 눈으로 만들어서! 어!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보다?”
개구리의 생색은 은후의 한마디에 침몰했다. 개구리가 힘을 쓰는 데 은후의 도움이 사실상 반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개구리도 알았기에 슬슬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니, 그래도 여기 무서운 호랑이보다는 말이지.”
“무서우우운? 축제 당일에는 거의 탱자탱자 놀 생각 만만인 녀석이?”
티격태격.
그 광경에 수호령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얼른 내일이 되면 좋겠다.’
내일부터였다, 본격적인 축제의 시작은.
‘축제…… 좋다.’
언제나처럼, 영원히, 변화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그저 쭉 이어질 것만 같던 덕진 공원. 자신의 삶 또한 그러하리라고, 언젠가 사람들에게 잊히고 힘이 떨어지면 죽을 거로 생각했던 수호령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참 많은 게 달라졌다. 당장 눈에 보이는 낙원의 풍경도. 굳이 축제를 위한 준비가 아니더라도 그랬다. 자신이 머무는 집이라든가, 식당이라든가.
‘또 친구도 잔뜩 생겼고.’
개구리라든가.
‘삼촌도 있고.’
이게 다 전부 은후와의 만남 이후 벌어진 일. 은후와 수호령이 만난 건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하지만 그 기간은 수호령에게 있어서 평생의 시간보다 밀도 있는 시간이었다.
“은후야.”
“응?”
“고마워.”
“뭘.”
“정말로.”
“새삼스럽게.”
은후가 어깨를 으쓱인 뒤 개구리에게 슬쩍 눈짓했다. 개구리가 수호령의 눈을 피해 슬쩍 눈을 끄덕였다.
“봐 봐.”
“뭘?”
은후가 손짓했다.
마나가 움직였고, 개구리가 호응했다. 이윽고 가만히 서 있던 눈 조각 동물들이 뛰놀기 시작했다.
“어?”
멈춰 있던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롤러코스터가 움직이고, 어디선가 눈으로 빚어진 페가수스가 휙 하고 수호령에게 날아왔다.
“이 축제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는 령이 네가 제일 먼저 즐겨 주었으면 좋겠어.”
“어어?”
“타 볼래?”
“……어, 응?”
은후가 수호령을 페가수스 등에 태웠다.
“언젠가 함께 달려 보자며?”
은후가 스타더스트를 불렀다. 그리고 스타더스트 등에 훌쩍 올라탄 뒤에 말했다. 수호령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응!”
본격적인 축제 전날, 수호령만을 위한 전야제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