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134화 (134/170)

제134화

스타더스트와 첫 만남에 수호령은 울상을 지었다. 무섭게 노려보는 스타더스트의 눈길이 무서웠던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 정반대의 표정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수호령은 스타더스트의 등에 타고 있었다.

“야호! 달려!”

함께 달리는 수호령.

처음에 스타더스트는 은후 외에 그 누구도 자신의 등을 허락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낙원의 주민들에게는 친근감이 느껴졌다.

개중에 가장 가까이 여겨지는 건 수호령. 왜냐하면 낙원의 중심에 있는 건 결국 수호령이었기에. 그래서 처음에 뚱하던 것과 다르게, 아니, 뚱한 와중에서도 수호령에게 은근슬쩍 친근감을 표했다.

수호령도 그걸 눈치채고 은후의 뒤에서 우물쭈물하다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렇게 잠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진 뒤, 수호령이 신중하게 부탁했다.

“나 좀 태워 줄 수 있어?”

스타더스트가 콧김을 확 뀐 뒤에 허락했다.

“와! 와!”

허공을 달렸다.

‘보기 좋네.’

은후가 흐뭇한 미소로 스타더스트와 수호령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축제에서 아이들을 태우라고 할 수는 없겠어.’

그렇다면.

‘만들면 되지.’

도깨비가 말했던 로봇 이야기, 거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눈으로 만든 로봇. 그렇다면 말이라든가 그 외의 동물들 혹은 상상 속의 존재도 눈으로 형상을 빚으면 될 일이다.

단순하게 전시되거나 하늘을 날고 땅을 달리고, 고작 그 정도밖에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거, 저 말에도 음식을 챙겨 줘야 하는감?”

“글쎄요.”

도깨비의 질문에 은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한번 물어보시고 원한다면 적당히 챙겨 주세요. 그냥 저희가 먹는 음식을 똑같이 줘도 문제는 없을 겁니다.”

“음.”

낙원의 주민으로서 도깨비가 맡은 역할은 주방장.

“그런데 저 말도 낙원의 주민이 맞는 거제?”

“네.”

그래서 이런 질문을 은후에게 한 것이다.

‘주방장이라.’

조금씩 조금씩, 낙원의 주민들이 제 역할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직 명확한 역할이 정해진 건 도깨비뿐이지만.

‘연후 씨에게는 환경 관리를, 성호 씨에게는 배경 음악을 까는 역할을?’

그런데 배경 음악을 까는 역할이라니.

‘그게 맞나?’

은후가 피식 웃었다.

‘뭐어.’

천천히 생각해 보자.

‘아직은 괜찮아.’

같이 거주하는 이들이라면 각기 맡은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은후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래저래 트러블이 생길 가능성이 존재하니까.

물론 아직까지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낙원의 주인으로서 힘으로 누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건 여러모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저어.”

“네, 말씀하세요.”

“곤충들을 애들이 보고 좋아할까요?”

“흐음.”

서연후의 질문에 은후가 고민했다.

“그러게요. 아이들이라고 취향이 없는 건 또 아니니까요. 좋아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예 관심이 없을 수도, 싫어할 수도 있겠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이번 축제에 큰 도움을 주는 건 어려울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제 능력에 관해 고민해 봤는데요.”

서연후의 능력은 벌레를 다루는 것.

“어디 한번 봐 볼까요?”

“네?”

“그동안 많이 연습하신 것 같은데요.”

“아, 네.”

“따로 키우시는 것도 꽤 많이 늘어났죠?”

“아하하.”

서연후가 멋쩍게 웃었다.

“일단 식사나 마저 하고 보시죠. 썩 비위에 좋은 광경은 아닐 거라서요. 저나 령이 외에는 입맛이 떨어지는 장면이라고 그러던데요. 마음이 아프지만 사실이라서.”

은후가 픽 웃었다.

고작 벌레들로.

‘전쟁터에서는.’

갑자기 솟아오른 옛 과거의 한 자락.

‘굳이 떠올리지 말자.’

또 굳이 이들에게 말하지 않아도 될 과거였기에, 은후는 순순히 서연후의 말에 긍정하며 침묵했다. 어설픈 위로를 하는 건 더욱 상처가 될 테니까.

“……귀여운 애들인데, 제 눈에만 그런가 봐요. 아니, 령이도 귀엽다고는 해 주니까요. 아니었으면 아니라고 말하든가, 침묵했을 테니.”

“령이가 의사 표현이 확실하기는 하죠.”

그나저나 벌레라.

‘생각을 좀 해 봐야겠네.’

단순한 전시, 축제에 어울릴까.

그렇다고 벌레로 무언가를 하기엔 그래도 결국 벌레이니. 미적 감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벌레를 귀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

‘귀엽게?’

귀엽게라.

‘아예 의인화를 시켜?’

은후의 고민이 깊어졌다.

* * *

은후가 낙원의 축제 준비로 한창 바쁘던 무렵, 이하연도 꽤 바쁜 시간을 보냈다. 몽골에서 찍었던 이런저런 영상을 편집하면서 따로 공부한 것은 물론 과외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아직 편집이라는 일이 대중적이지 않은 시대였다. 하지만 이원석의 인맥을 통해 과외 선생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또 돈이 궁하지도 않았기에 넉넉한 페이를 지불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언니.”

“응?”

“엄청 바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바쁘지이이.”

이하연의 편집 과외 선생 최연수가 앓는 소리를 하면서 늘어졌다.

“그런데 저랑 이렇게 술 마실 시간은 되고요?”

“그런 시간은 어떻게든 만들어야지 않겠니, 물주인데.”

“에이, 물주라뇨.”

“물주 맞지. 솔직히 그 정도 페이면 나 말고도 과외하겠다는 사람 널렸을걸?”

이하연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요.”

“응?”

“솔직하게 말해서 다른 분들도 추천은 많이 받았는데요.”

“그래?”

“네, 그런데 다들 남자분들이어서요.”

“아. 혹시 남자한테 기피증이라도?”

“그건 아니고요. 남자 친구한테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거든요.”

최연수가 피식 웃었다.

“별걱정도. 아니다, 네 얼굴이라면 그럴 만도 하네. 괜히 집적거리면 골치 아프지.”

“남자 친구가 있다고 해도 다가오는 사람이 없지는 않더라고요.”

“하여간, 예쁜 것도 고생이라니까.”

“아하하하하.”

이하연이 어색하게 웃었다.

“남자 친구도 진짜 잘생겼더만.”

“그쵸? 은후가 잘생기기는 했죠.”

“콩깍지 씌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제삼자가 봐도 잘생기기는 했으니까. 길거리 캐스팅도 몇 번 당했다며?”

“네, 뭐어.”

“부럽다아. 나도 예쁘고 싶다.”

“언니도 충분히 예뻐요.”

“빈말은.”

“빈말 아닌걸요.”

최연수가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상담은 뭔데?”

“아, 그게요. 편집이요.”

“편집이 왜? 이번 몽골 여행에 관련된 영상은 기깔나게 뽑았잖아? 그것도 원하던 대로.”

“그거야 그렇지만요.”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의 얼굴을 드러내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고 보는데.”

은후와 하연.

두 사람은 잘생기고 예뻤다. 그리고 대중들은 언제나 잘생기고 예쁜 사람에게 열광하는 법이었다. 어떤 나라의 모 범죄자는 잘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명세를 얻고 모델까지 되었다.

“뭐, 신비로운 분위기나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이번 편집 방향이 훨씬 낫기는 했다고 보지만,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의 영역이니까. 만약 내가 너였다면 얼굴을 슬쩍슬쩍 깠을 거야.”

“부담스러워서요.”

“방송까지 하는 애가. 아, 얼굴은 안 깠다고 그랬지?”

“네, 목소리만요. 그리고 옆 모습이나 뒷모습은 드러냈는데요.”

“그건 아니지.”

이하연이 어색하게 웃었다.

“여하튼 그게 왜?”

“앞으로도 이럴 수 있을까 싶어서요. 은후는, 그러니까 남자 친구는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고 하지만요. 편하게 생각하라고는 하는데요.”

“잘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얼굴 알려지면 불편한 일이 생각보다 많은데.”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은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유명세를 얻은 후에 따라오는 이득과 불편함을. 그래서 이하연에게 이런저런 충고도 조언도 건넸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뭘 그렇게 고민해?”

“네?”

“일단 미뤄. 너, 계속 방송할 거잖아?”

“네.”

“편집도 계속하고 브이튜브에 영상도 계속 올리고.”

“그렇죠.”

“그럼 일단 미루면서 고민해. 얼굴을 드러낼지 말지. 지금은 안 내켜 하는 거 같으니까 최대한 안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요새는 신비주의가 사장되었다고는 하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먹힐 수도 있다고 보거든? 일단 스토리가 있잖아. 네가 의도한 건 아니었다고는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서사가 날것으로 살아 있어.”

현직 PD의 평가였다.

새끼 PD라고는 하지만 보는 눈과 편집 실력만큼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내가 보기엔 하연이 너는 걱정이 너무 과해.”

“아하하, 그게, 저만 관련이 있으면 모를까, 남자 친구하고도 연관이 있잖아요. 괜히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으이구, 지극정성이다, 지극정성이야. 그나저나 슬슬 반응 올 때 되지 않았나?”

“뭐요?”

“아까 업로드했다며.”

“아, 네.”

이하연이 몽골에 막 돌아와서 올린 압축된 두 개의 영상. 스타더스트와 관련된 짧은 스토리 영상은 물론, 은후가 스타더스트의 사체 앞에서 기타를 치는 영상은 정말 대박이 났다.

특히 해외에서. 애초에 이하연의 브이튜브 채널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기가 더 높기는 했으나, 이번에는 반응 수준이 달랐다. 조회 수가 끝도 없이 솟구치기 시작한 것.

그래서 그런지 시청자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좀 더 상세하게, 영상 사이사이에 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그 이야기를 이하연은 이번에 영상 과외를 받으며 최대한 열심히 편집했다. 은후의 도움을 받아 따로 인터뷰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리하여 탄생한 일종의 영화 한 편.

이번에 이하연이 만든 건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린 영화였다.

* * *

은후와 스타더스트의 첫 만남, 즉 첫 대학교 교양 수업에서의 사고가 날 뻔한 일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진짜 크게 사고 날 뻔했죠.’

‘무슨 영화 보는 줄 알았다니까요?’

스타더스트의 질주, 아수라장이 된 승마장.

‘무슨 슈퍼맨인 줄.’

그 외 직원들의 인터뷰까지.

‘말과 교감하는 실력이 장난 아니었죠.’

‘해외는 모르겠고 국내에 한정해서 스타더스트가 등을 허락한 유일한 사람이죠. 게다가 다른 말들과 교감도 장난이 아니에요. 한번은 기타를 치는데 말들이 울음바다였다니까요?’

스타더스트와 은후의 첫 만남과 같은 남아 있지 않은 자료는 인터뷰로 대체했고.

‘스타더스트와 처음 만났을 때 조금 질투가 났어요.’

이하연이 은후와 승마장을 찾으며 직접 자료로 남겼던 부분들도 어떻게든 살려서 최대한 서사의 흐름을 이끌어 냈다. 내레이션은 이하연이 직접.

‘죽고 싶을 때까지 달린다.’

스타더스트는 그걸 원했다.

어찌 보면 다큐멘터리와 같은 느낌을, 때로는 그냥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담은 브이로그와도 같은 향취를. 그래서 그런지 이하연의 편집 영상은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국내에서 맘대로 달리지 못하고 죽어 가던 명마 스타더스트와 은후의 만남. 그리고 그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어서 몽골까지 이동한 뒤 죽음을 맞이한 스타더스트.

스타더스트가 원한 대로 달리고 달리다가, 끝까지 달리다가.

중간에 일행을 아예 뒤로하고 달려 나가 버린 은후와 스타더스트가 사라지는 장면.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스타더스트와 모닥불을 앞에 두고 기타 연주를 하는 은후.

- 이거 진짜임?

- 진짜겠냐. 아무리 봐도 영화지ㅋㅋ 저 모닥불을 어케 피움?

- 왜 못 피움?

- 아니, 씨.

- 아무리 봐도 실제 영상인데…… 근데 실제라고 하기엔 너무 드라마틱하다?

- 원래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음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하연이 올린 다큐멘터리 영화 영상이 인터넷을 화끈하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무수한 댓글들과 함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