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133화 (133/170)

제133화

은혁과 현수에게 작은 콘서트를 열어주며 성호는 이번 콘서트에 있어서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레퍼토리.

콘서트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전 성호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멋대로 순간순간 자신의 판단과 감정에 따라 기타를 튕겼다. 하지만 그래서는 한계가 명확했다.

‘재능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

음악을 하는 대부분 이들이 성호의 재능과 실력을 안다면 허탈한 미소를 지을 그런 생각이었겠지만.

‘이 이상을 바라보려면 머리도 써야 해.’

성호는 진지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중간에는 무겁게. 마지막은 화려하게. 아니지, 이런 구상은 너무 단순한데.’

곡을 어떤 순서에 배치하여 들려주느냐. 같은 곡이라고 할지라도 듣는 이들에게는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기타로도 뭔가 한계가 있는 것 같고.’

기왕이면 다른 악기들도.

‘피아노나 보컬이 있었으면 더 좋겠는걸.’

기왕이면 드럼이나 베이스도 있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성호는 전북 대학교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조심스럽게 은후에게 요청했다.

- 함께 연주해 줄 수 없을까요?

“함께요?”

성호의 요청에 은후는 깜짝 놀랐다.

협력이라니.

성호는 정령이었다. 그리고 정령은 기본적으로 쉽게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감정적인 부분을 비롯하여 삶의 태도가.

은후가 바라본 성호는 에고가 무척이나 강한 존재였다.

음악의, 음악에 의한, 음악을 위한.

그 중심에는 본인이 있었으니. 다른 이들의 협조를 구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유가 뭘까.’

그건 아마도.

‘……향상심. 그래, 향상심에 더불어 머무는 환경. 천도복숭아 나무인가.’

고작 향상심이란 감정 하나만으로는 그럴 수 없었을 터.

- 은후 씨?

“아, 네. 협력이요. 구체적으로는요?”

- 피아노를 함께 쳐 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술적인 면은 좀 손색이…… 많지만, 감성적인 부분은 저 못지않으니까요.

“기술적인 면은 어쩔 수 없죠.”

은후가 쓰게 웃었다.

“피아노를 진지하게 친 적은 없으니까요. 어디까지나 취미의 일환으로.”

그것도 먼 과거에.

“게다가 감성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것도 전달하는 것도 모두 아직 성호 씨에 비하면 한참 모자랄걸요? 전부 성호 씨 덕분에 배운 것인데요.”

성호에게 몸을 빌려주면서. 그 과정에서 은후는 음악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어떻게 감정을 전달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만약 성호에게 몸을 빌려주지 않았다면.

‘글쎄.’

마나를 이용한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게 의미가 있을까?’

음에 마나를 실어서. 감정적인 부분을 건든다는 건 굳이 음악이 매개체가 되지 않아도 되니까.

‘잘 모르겠군.’

음악.

마법이란 위대한 학문 못지않은 분야라고 은후는 요새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 방향성이나 목적성이 판이하기는 하지만.

‘마법에 비하여 단순하…… 아니, 이것도 오만인가.’

은후가 쓰게 웃었다.

- 마음 같아서는 밴드를 결성하고 싶은데 그건 무리니까요. 그래서 일단 기타와 피아노로 제대로 된 콘서트를 열어보려고 합니다. 낙원에서라면 은후 씨 몸을 빌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기타를 칠 수 있으니.

마침 기회도 있었다.

- 아까 은혁이와 현수에게는 좀 미안해요. 콘서트가 아니었거든요.

“제 생각에는 콘서트라고 불러도 무방한 것 같았습니다만.”

-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뭐어.”

은후는 어깨를 으쓱였다. 본인이 그렇다는 데 굳이 참견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분야라면 모를까 음악에 관해서라면.

“그렇다면 한 번 배워보시렵니까?”

- 네?

“음악이요.”

- 네.

“현대 기술의 발전은 항상 놀랍더군요.”

- ?

성호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연주하는 것보다 모자란 부분도 있습니다만. 아닌 것도 있죠.”

- 네?

“미리 녹음해 두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래요. 노래방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 아.

사전 녹음이라.

- 어어.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기타만 바라봤는데.

- ……피아노도 제가 칠 수 있겠군요. 드럼도 마찬가지고요.

“굳이 직접 칠 필요도 없죠. 게다가 좀 결이 다를걸요? 저도 자세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녹음이 아닌 미디를 만진다는 건…….”

성호에게 은후의 이야기는 잘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음악적으로 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

- 짧은 시간에 제가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네요. 그러니까 일단 이번 축제의 콘서트는 기타와 피아노. 두 가지로 해결하겠습니다. 도와주시겠어요?

은후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덕진 공원으로 돌아왔을 때 낙원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열정에 비례하여 난장판인 느낌도 들었다.

“저기! 저기로!”

“오야.”

수호령의 지시 아래 호랑이 신선이 능숙하게 회전목마 기구의 위치를 옮겼다.

“으우우우음.”

“왜?”

“아니이. 롤러코스터나 바이킹 말이야. 너무 크게 만든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위험하지 않을까?”

“전혀?”

개구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낙원에 있는 이상 전혀 그럴 일 없을걸. 애초에 놀이 기구를 이루고 있는 물은 내 통제권에 있으니까. 게다가 설령 떨어져도 령이도 있잖아?”

고작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그래.

낙원에서는 고작 그런 일에 불과했다.

“령이가 힘을 좀 쓴다면 머리카락 한 올 안 다칠 텐데.”

“그거야 그렇지.”

“오히려 그런 점을 이용하는 건 어때? 일부러 하늘로 띄웠다가 땅 아래로…….”

“아냐, 안 돼. 너무 놀라면 어떻게 해?”

“끙.”

“육체적인 부분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고려해야지.”

그런 진지한 대화도 은후의 등장에 잠시 끊어졌다.

“은후다!”

오도도도도도.

수호령이 제일 먼저 달려갔다.

“잘 갔다 왔어?”

“그럼.”

“뭐래?”

“어떻게든 와 보겠다고는 하더라. 친구랑 함께.”

“친구?”

“응.”

“으응. 친구인가.”

수호령이 작게 혼잣말로 뭔가를 중얼거리다가 싱긋 미소 지었다.

“그나저나 배고프지. 안 그래도 은후랑 성호 형 기다리고 있었어.”

“그래? 먼저 먹지.”

“에이. 어떻게 그래.”

“어떻게 그러기는.”

은후가 웃었다.

그냥 그래도 되는데.

사실은 낙원에 있는 이상 굳이 식사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되도록 낙원의 주민들은 최소 하루 두 끼 정도는 챙겨 먹으려고 애썼다. 은후의 권유 탓이다.

- 먹는 즐거움이라도 있어야지. 이런 말도 있잖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라고.

수호령이 은후의 손을 잡고 낙원의 한편에 마련된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도깨비와 구미호가 이미 상을 다 차려 놓은 뒤 기다리고 있었다.

“오우. 도령 오셨남?”

“오셨어요?”

반가운 인사가 돌아왔다.

“거 성호도 어서 앉구려.”

“네, 아저씨.”

성호가 도깨비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도깨비에게 물었다.

“아저씨.”

“으잉?”

“아저씨도 음악 좋아하신다며요.”

“큼. 그렇제? 내가 북 치는 재주가 좀 있제.”

도깨비가 으스대며 말했다.

“일단 먹으면서 말하자구. 참고로 우리 임자가 나보다 음악은 더 잘혀.”

“정말요.”

“고럼. 특히 가야금하고 거문고 솜씨가 말이제. 아, 제일 자신 있는 악기는 해금이여. 나는 가야금 소리가 더 좋던디. 왜냐하면…….”

“여보?”

“아니, 크흠.”

“소리가 아니라 자세 때문이겠죠? 저 꼬실 때도. 흥. 그런 이야기는 단둘만 있을 때 하는 거 아니면 화낼 거예요?”

구미호가 째려보자 도깨비가 화급히 고개를 돌리며 화제를 전환했다.

“하여간. 큼큼. 노래도 정말 잘 혀. 판소리도 기깔나제.”

구미호가 부드럽게 웃으며 성호에게 말했다.

“언제 한번 성호 씨의 기타 소리에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말할 기회가 없어서 조용히 있었는데 나중에 한 번 부탁해요?”

“판소리는 조금 그런데요.”

“대중가요도 조금 부를 줄 알거든요. 다 옛날 것들이지만요. 그래서 요새 틈틈이 연습하고 있어요. 티브이가 식당에 있으니 참 좋지 뭐예요?”

“그러세요?”

성호가 눈빛을 빛냈다.

‘일단 기타에 보컬을 구미호 이모님이. 그리고 도깨비 아저씨가 드럼…… 아니, 드럼은 못 하실 테니. 타악기 중에 뭘 다루실 줄 아시려나. 키보디스트는 은후 씨가 될까? 일반적인 피아노랑 키보드는 또 다를 텐데.’

성호의 머리가 복잡하게 굴러갔다.

“자!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는 모양인디 먹고 하자고! 내 파스따하고 라자냐하고. 또 뭐시다냐. 하여간 티브이라는 거 보고 이탈리안 요리를 만들었으니께 말이지. 피자도 만들었스!”

아이들을 위한 요리의 연습 삼아서. 그래서 평소보다 좀 더 달게 했다고 했다.

“어서 평가들 좀 해 봐. 보완점 같은 거 말이여.”

몇 명이나 올지 모르는 축제였다. 여름이라면 모를까 하필 지금 시기는 한 겨울. 그래서 무척 추웠고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오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아. 맞다. 은후 도령!”

“네.”

“거 저번에 만든 눈사람 있잖으.”

“네.”

“크게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조종하게 하는 건 어뗘?”

“조종이요?”

“고럼. 로봇은 로망이제!”

로봇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도깨비였는데.

“이번에 애니메이션인가 뭔가를 보는디 말이여. 크, 그렇게 멋져부리당게?”

그것도 참 괜찮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조종해 보고 싶은 건 아니고요?”

“거, 큼큼. 아니, 나도 어! 애들이 타기 전에 시범 운전이란 걸 해봐야 할 거 아녀?”

은후가 픽 웃었다. 옆에 있던 구미호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나 입가에는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아! 나도 나도! 나도 타 보고 싶어!”

“그래?”

“응! 나는 말 로봇! 말 맞던가? 날개가 달렸는데. 그러니까 페가수스라고 그랬어!”

뭐어.

‘아예 안 오면 어때.’

아이들을 위한 축제라고는 했으나 준비 과정에서 이토록 낙원의 주민들이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정적이나 다름없던 낙원이 이렇게 활기차게 되었으니.

그때.

푸르르르르르-!

스타더스트가 귀환했다.

몽골에서 헤어진 뒤.

달리고, 달리고, 달리다가. 바람을 따라서. 딱히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달리고 달리다 어느 순간 문득 은후가 떠올랐다. 혼자서 달리는 게 슬슬 재미가 없었다.

함께 달리고 싶다. 그래서 은후를 향해 뛰었다. 은후와 이름을 주고받았기에 방향성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낙원으로 정확하게 도착했고.

푸르르르르르-!

스타더스트가 외쳤다.

내가 왔다-!

우렁찬 소리에 다들 깜짝 놀랐다.

“뭐, 뭐시여?!”

“뭐가 왔어?!”

은후가 낙원의 주민들에게 침착하게 답했다.

“스타더스트가 왔나 보네요. 저번에 한 번 말씀드렸죠?”

“아, 그 달리다가 죽고 싶다던 말?”

“네.”

“말! 날개도 있어?! 허공에 떠 있는 거 같은데!”

은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식당 바깥으로 벗어났고, 그 뒤를 낙원의 주민들이 우르르 뒤따랐다. 먹는 것보다는 스타더스트라는 말에 더 호기심을 느껴서.

푸르르르-!

스타더스트가 허공에서 발을 굴리며 오연하게 낙원의 주민을 마중했다. 하지만 은후가 손짓하자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그래. 잘 달리다 왔어?”

스타더스트가 고개를 끄덕였고.

“뭐?”

같이 함께 달리고 싶어서 돌아왔다는 말에 은후가 웃었다.

‘혼자 달리는 게 재미가 없다고.’

참으로.

‘한결같네.’

언제나 달리고 싶다고.

“달리려면 먹어야지?”

푸르르르륵?

스타더스트가 눈동자에 의아함을 담았다. 이제 뭔가를 먹을 필요는 없지 않으냐며. 그때 들려온 수호령의 목소리.

“나! 나도! 나도 함께 달려보고 싶어!”

스타더스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수호령을 강하게 노려봤다. 눈동자로 ‘너는 대체 뭔데.’라고 물으며.

“나, 나는 수호령! 아이들을 위한! 우으…… 은후야!”

희미한 달빛이 구름과 어우러지던 어느 겨울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