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화
아이에게 세상은 따뜻했다.
재벌에 비한다면 많이 모자라겠으나 금전적으로 그리 부족하지 않은 집안, 엄하지만 은연중에 따뜻함을 표하는 아버지, 언제나 자신의 편일 것만 같은, 항상 미소를 지어 주는 어머니.
물론 화를 내면 호랑이보다 무서웠다. 종종 아버지가 화를 내는 건 엄청나게 무섭지는 않지만, 거의 화를 내지 않던 어머니가 화를 내면 아이는 쭈그리가 되었다.
‘죄송해요.’
‘뭐가?’
‘그, 그게.’
‘죄송하다고 말을 할 때에는 생각을 하고 말하렴. 그냥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단다.’
‘그으…….’
‘은혁아.’
‘네.’
‘뭐가 죄송해? 구체적으로.’
‘친구하고 싸운 거요.’
‘아니지, 그게 아니야. 싸움? 당연히 할 수 있어. 싸운 걸 엄마가 문제 삼는 게 아니야.’
‘그냥…… 시비를 건 거요.’
‘그래. 왜 그랬어?’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는 과거의 한 자락을 떠올렸다. 고작 초등학생이었다. 분명히 어렸다. 그럼에도 아이에게도 인생이 있었으며 과거가 있었다.
왠지 모르게 아이는 그때가 그리웠다. 무서웠고, 얼마 전까지 애써 잊고 있었던 기억인데,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엄청나게 혼났던 기억인데.
‘왜?’
왜일까.
“은혁아?”
“아, 엄마.”
“오늘은 어때?”
“……괜찮아요. 말씀드렸잖아요, 요새 컨디션 나쁘지 않다는 거.”
“그러니?”
그건.
‘혼이 나지 않아서.’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그 이후에 은혁은 혼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예전이라면 꾸지람을 받았을 만한 일을 저질러도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 또한 전혀 혼을 내지 않았다.
‘칫.’
그게,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
“어?”
“뭐 그리 울상이야?”
“갑자기 시비래?”
“표정이 거지 같잖아.”
은혁의 표정이 구겨졌다, 병원에서 사귄 친구의 시비에.
하지만 표면적인 말과 다르게 그 안에 담긴 것은 걱정. 그래서 은혁은 크게 화를 내지 못했다.
“그냥. 산책이라도 좀 하고 싶은데.”
“근데?”
“다들 말리잖아. 몸 상태가 괜찮아졌으니까, 무리하면 안 된다고.”
“그게 문제였어?”
“아, 씨. 너도 알잖아? 우리 엄마랑 아빠가 얼마나 과보호하는지. 덕진 공원이라도 다시 한번 가고 싶은데.”
“그놈의 덕진 공원 타령은. 재밌는 게임이라도 숨겨 놈?”
“씁. 게임은 아니고.”
“그럼?”
“……친구?”
친구가 맞을까.
덕진 공원에 갈 때마다 말을 걸어 주는 것 같은, 실제로 대화를 나눈 건 잘생긴 형의 입을 빌렸던 것이지만.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병원에 입원한 이래 눈치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가족은 물론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 등 애써 자신에게 긍정적인 말만 해 주는 이들. 희망을 가지라며.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동정이나 안쓰러움 등을 은혁은 알아볼 수 있었다.
‘……수호령이라고 했지.’
정령이라고, 아이를 수호하는 정령.
어디 가서 말도 못 했다.
정령이라니.
‘정신 병동에 입원하려나?’
애가 머리까지 이상해졌다면서.
병원에서 살다 보니 그 정도 눈치는 생겼다. 눈앞의 친구라면 믿어 줄까.
“야.”
“어?”
“넌…… 정령이 있다고 믿냐?”
“뭐래? 근데 정령이 뭐냐?”
“귀신 같은 거?”
“있지 않을까? 제사도 지내는데. 그거 귀신이 와서 밥 먹고 가는 거라며.”
은혁이 혀를 찼다.
“바보냐. 그런 말 했다가 혼날걸.”
“혼나기는 개뿔. 하여간 갑자기 귀신 타령은 왜? 귀신이라도 보고 오줌이라도 쌌냐.”
“……됐다.”
“되기는 무슨.”
덕진 공원, 다시 가 보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근데 그 형 이름이 은후랬나.’
자신과 비슷한 이름이라서, 그래서 은혁은 기억하고 있었다.
‘번호라도 받아 둘걸.’
요새 핸드폰은 다 들고 다닌다던데.
‘나만 해도.’
조르고 졸라서 부모님께 받아 낸 핸드폰. 딱히 연락할 친구는 없지만, 그래도 그냥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안녕?”
“어?”
그때 은혁과 그 친구에게.
“잘 지냈니?”
은후가 나타났다.
“……누구세요?”
은혁의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을 하며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은혁의 등 뒤로 숨었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제 친구가 자신의 뒤에 숨었다는 사실에 은혁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 은후 형? 맞죠?”
“그래.”
“누구야?”
“덕진 공원에서 만났던 형인데.”
“아, 그.”
은혁이 은후에게 물었다.
“저 찾아오신 거예요?”
“맞아.”
은후가 빙그레 웃었다.
* * *
성호가 말한 공연.
그건 아이를 위한 공연이었다.
직접 한 번 아이들의 앞에서 기타를 튕기고 싶다고.
‘지금까지 제 음악은 항상 성인을 대상으로 했죠.’
물론 음악에 어디 나이의 구별이 있을까만은.
‘그래도 아이에게 들려줄 수 없는 음악이 있잖아요. 가사가 너무 선정적이라든가, 너무 우울하다든가, 그런 걸 아이에게 들려주기엔 좀 그렇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수호령의 부탁은 성호에게 있어서 다시 한번 음악에 관하여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 성인, 남자, 여자. 사람은 똑같지만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나뉘더라고요. 모두가 평등하고 동등하다고 말하지만, 글쎄요, 차이가 없지는 않죠.’
가장 기본적인 성별이나 나이 외에도 출신이라든가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 그 외에 장애의 유무 등등.
‘처한 환경이 다 달라요. 그 은혁이라는 아이요, 아픈 아이잖아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는.’
그런 아이와.
‘보통 가정의 평범한…… 이것도 기준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여간 건강한 어린아이와 은혁이라는 아이가 과연 같은 음악을 듣고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까요? 아니겠죠.’
어찌 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하지만 너무 당연해서 생각지 못한 부분들. 그래서 성호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번에 자신이 만드는 음악을 들어 주었으면 하는 이들에 관하여.
‘나이가 어리고 아픈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위해 곡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자신이 없었다.
‘처음이었거든요.’
지금까지 성호가 만든 음악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중심이었다. 남의 평가나 감상은 뒷전이었다. 거기에는 은후라고 하여 예외는 아니었다. 그냥 내가 만족한다면.
‘설령 세상이 뭐라고 해도 말이죠.’
다만 그 기준이 너무 높았을 뿐.
‘그래서 공연을 하고 싶어요. 평가가 궁금하거든요.’
은후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을 해야겠다는 이유가 너무 성호다워서. 그리고 성호와 의논 끝에 병원을 찾았다. 은혁이 입원하고 있다는 전북대학교 병원을.
“면회요?”
“네.”
“성함이…… 어머, 혹시 은혁이 친형이신가요? 형제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친형은 아니고요.”
“그럼 사촌 형?”
은후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따라오세요.”
은혁은 상태가 부쩍 호전되며 일반 병동에 지금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까다로운 절차가 없었다.
“어디인지만 알려 주셔도 되는데요.”
“아하, 그게.”
데스크에 앉아 있다가 은후를 위해 직접 안내를 자처한 간호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좀 쉬고 싶어서요. 게다가 은혁이랑 모르는 사이도 아니거든요.”
“그러시군요.”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은혁이와 알고 있다는 말은 진실인 것 같지만.
‘호감?’
은후가 피식 웃었다.
‘거참.’
아마 잘생긴 얼굴 때문이리라.
지금도 여기저기서 은근히 시선이 꽂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일. 그래서 은후는 신경을 껐다. 그런 은후의 모습을 힐끔힐끔 훔쳐보며 간호사가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힐링이지, 이게.’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언감생심 번호를 물어보거나, 여자 친구가 있느냐고 질문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욕심이 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오르지 못할 나무로 여긴 탓이다.
“어라?”
하지만 병동은 텅 비어 있었다.
“애가 어디 갔지?”
간호사가 중얼거렸다.
“그, 혹시 일단 따라와 보시겠어요? 은혁이가 자주 가는 곳이 있긴 한데요.”
“그러죠.”
은후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 간호사의 과잉 친절을 끌어냈다. 그래서 찾은 곳은 옥상에 만들어진 휴게실이었다. 추운 겨울이었기에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은혁이가 여기 자주 찾거든요. 추우니까 가지 말라고 말을 해도 안 들어서는.”
“그래요?”
“네. 아, 저기 있네요. 현수도 같이 있네. 저 둘이 단짝이거든요.”
간호사의 말에 은후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내 감사합니다.”
“아, 저.”
은후는 뭔가 아쉬운 듯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은혁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안녕?”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안 추워?”
“딱히요? 여기 나올 때는 따뜻하게 입으니까요. 이 패딩, 진짜 따뜻해요. 그치?”
“어, 어어. 그치.”
“아까까지 잘만 말하더만, 왜 그리 말이 없어?”
“바보냐.”
현수가 우물쭈물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은후……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럼.”
은후가 빙그레 웃었다.
“와, 진짜 잘생겼다. 연예인 같아요.”
“연예인은 아닌걸?”
“연예인 해도 될 것 같은데. 막, 막, 내가 거기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권유? 할 것 같아요.”
“길거리 캐스팅은 몇 번 받아 봤지.”
“맞아요! 그거! 길거리 캐스팅!”
은후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은혁이 조심스럽게 은후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찾지 않은 사람인데,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서.
“들려줄 것도 있고, 부탁도 받아서.”
“들려줄 거요? 부탁?”
“령이한테 말이야. 기억해?”
“그럼요. 기억하죠.”
현수가 은혁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였기에. 은혁은 조그맣게 “이따가.”라고 한마디 한 뒤 은후를 바라봤다.
“일주일 뒤 즈음에 덕진 공원에 한번 와 봐. 재밌는 일이 있을 거야.”
“재밌는 일이요?”
“응. 옆에 현수라고 그랬지?”
“……네.”
“현수도 같이 오면 재밌을 거야.”
그리고 은후는 기타를 꺼내 들었다.
“웬 기타예요?”
“저번에 들려 달라고 했었잖아.”
“아, 그랬죠. 령이가 엄청나게 자랑하던데. 성호 형 연주가 엄청 좋다면서요. 그런데 은후 형도 기타 잘 쳐요?”
은후는 애매하게 웃었다.
“일단 들어 봐.”
성호가 은후의 몸을 빌려 기타를 튕기기 시작했다.
디링, 디링.
잔잔한 기타 소리.
목적은 아이들을 기쁘게 하는 것.
기뻐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기타 소리를 듣고 아이가 기뻐할 수 있을까. 그 부분에 관해 성호는 고민을 거듭했다.
‘나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바랐었고.’
또.
‘친구들과 함께 재밌게 뛰어놀고 싶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고.
‘또 뭐였더라.’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성인이 되어도 비슷하네.’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 좋은 친구들, 맛있는 음식. 성인이라고 하여 바라지 않은 건 아닌데. 그런 고민 끝에 탄생한 곡이었다, 지금 성호가 연주하는 곡은.
하지만 그런 고민 끝에 탄생했던 곡이 어디 한두 곡일까. 다만 성호의 곡이 다른 점은 근본적으로 소리가 마음을 직접 건드린다는 것, 공감을 끌어낸다는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성호의 기타 소리는 보통 음악이 아닌 마나가 가미되었으니. 그리하여 은혁은, 현수는 기타 소리를 들으며 성호가 작곡하며 상상했던 감정들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아이를 위한 작은 콘서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