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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131화 (131/170)

제131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담아서 선구자라고 부른다.

“으으…… 어려워!”

처음 수호령은 축제라는 키워드에 맞추어 자신의 온갖 상상력을 동원했다.

축제, 아이들을 위한.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손으로 일구어내고 싶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이들의 도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이디어만큼은 자신이 주도하여서.

하지만 수호령은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은 선구자가 아니라고. 그래서 깔끔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은후를 비롯한 다른 낙원의 주민에게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축제, 하면 떠오르는 거? 나는 불꽃놀이.”

“불꽃놀이?”

“하늘에 폭죽을…… 그러니까 폭약은 알지?”

“그 정도는 나도 알거든. 연후 형은 가끔 나를 너무 무시한다니까.”

수호령의 뾰로통한 표정에 서연후가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무시가 아니라.”

“흥.”

“아니, 진짜.”

“……됐어. 알아. 진짜로 무시하는 거였으면 진짜로 진짜로 많이 삐졌을 테니까.”

“조금은 삐졌다는 소리네?”

“아, 씨.”

서연후는 기본적으로 수호령을 아주 어린 동생을 대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수호령은 그런 서연후의 행동이 좋으면서도 이따금 싫었다.

‘나 안 어린데!’

아니, 어리기는 해도.

“칫.”

“하여간, 딱 하나만 꼽자면 나는 불꽃놀이.”

“우음.”

“본 적 있어?”

“……아니, 이름만 들어 봤어. 내가 한창 활동할 때에는 불꽃놀이는 전주에서 많이 안 했을……걸? 적어도 내 기억에는.”

수호령이 한창 활동할 시기, 놀이에 값비싼 폭약을 쓰기엔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게 맞았다. 하지만 아예 단 한 번도 불꽃놀이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운이 좀 없었던 거지, 뭐. 언제였더라? 불꽃놀이를 봤다며 자랑했던 애도 있었는데. 그때 잠을 쿨쿨 자느라 놓쳤던 때도 있으니까. 그래서 궁금해.”

불꽃이 허공을 수놓는 모습은 대체 어떨지.

“여하튼 불꽃놀이란 말이지.”

수호령이 은후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상담했다. 축제의 마지막 날에 불꽃놀이를 열어 줄 수는 없겠느냐고. 그 정도는 은후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크! 불꽃놀이란 말이지! 거,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겠으.”

옆에서 아내인 구미호와 꽁냥거리던 도깨비가 끼어들었다.

“어머, 저도요.”

“이모도?”

“그러엄. 이모랑 삼촌이 불을 다루는 데 재주가 좀 있단다. 그러니까, 은후 도령?”

“네.”

“불꽃놀이에 관련된 일은 저희 부부에게 맡겨 주세요. 안 그래도 축제에 무슨 도움을 줘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잘되었네요.”

은후가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제가 도와 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질 좋은 폭약이나 좀 구해다 주실 수 있으실까요? 없어도 문제는 없지만, 기왕이면 크고 화려하게 하는 편이 좋잖아요?”

“아! 이모! 이모는 축제, 하면 뭐가 떠올라?”

“나는 음식이 떠오른단다.”

“음식?”

“그럼. 축제에 음식이 빠질 수 없지. 그 부분은 이모랑 삼촌이 잘 준비할게.”

“으응.”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고.”

“……먹고 싶은 거.”

“축제에 특별한 음식이 빠질 수 없지?”

잘 모르겠다.

그때 은후가 말했다.

“마침 잘됐네. TV 볼래?”

“TV?”

“실제로 아이들이 타는 롤러코스터의 모습, 보고 싶지 않아?”

“어, 응!”

며칠 전, 물로 된 롤러코스터는 수호령이 직접 보고 부탁한 게 아니었다. 그저 들은 대로만 호랑이 신선에게 부탁했다. 호랑이 신선도 롤러코스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래서 호랑이 신선이 만든 롤러코스터는 다소 특이했다.

‘구조가 말이지.’

기하학적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이 만든 일반적인 놀이 기계와 다르게 안전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러한 형태가 등장했을 터.

‘안전 바가 없다는 것부터가.’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놀이동산이라든가, 실제 축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영상으로 본다면 수호령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지금까지 수호령이 그런 도움 없이 하나부터 끝까지 아이디어를 내려는 듯하여 기다렸지만.

‘마음이 바뀌었어.’

그래서 은후가 TV를 보라고 제안한 것이다.

“TV, TV.”

TV도, 수호령에게 있어서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이들의 대화 속에서 TV는 언제나 함께하는 일상의 풍경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수호령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한 일상의 풍경을 수호령은 무의식중에 바랐다.

“설치 끝난 거야?”

“설치는 진즉 끝났지.”

“전기는?”

“알아서 잘했으니까 문제없어.”

“와!”

은후가 며칠 전 경주에 다녀오며 TV를 가져온 걸 수호령은 알았다. 모를 수가 없는 게 커다란 TV의 존재감을 모르기도 힘들었다.

다만 바로 틀 수는 없고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며칠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말에 수호령은 숨을 참고 기다렸다. 또 은후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TV에 관해 처음 이후에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축제에 집중하느라 까먹은 거 같기도 하고.’

뭐, 아무렴 어떤가.

“함께 TV나 볼까요?”

“흐. TV라. 좋제. 그런데 뭘? 도령도 알다시피.”

도깨비가 말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아이에게 보여 주기 좀 거시기한 것들도 많으제?”

“축제입니다.”

“으잉? 축제?”

“네, 축제 관련 다큐멘터리라든가, 축제에 관련된 영상을 좀 준비해 놨죠. 이번 축제 준비에 관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선구자가 될 수 없다면, 가장 좋은 방도 중 하나는 모방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표절이란 불법을 저지를 수도 있겠지만.

‘축제에도 표절이 있나?’

은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설령 있어도 크게 상관은 없겠다만.’

어차피 이번 축제를 이용하여 금전적인 이득을 보려는 것도, 세상에 무언가를 홍보하려는 것도 아니었으니. 오히려 실제 참가자가 될 아이들을 제외하면 숨겨야 하는 처지였다.

“TV, 축제.”

“크, 거 도령 센스가 좋아.”

“센스가 좋은 건 아니고,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닐까요. 어찌 보면 당연한…….”

“아! 거참! 이럴 때는 진짜 나보다 고지식하당께? 그냥 칭찬하면, 어! 고개를 끄덕이면 오죽 좋아!”

은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천성이 이런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거, 그러면 내 마누라와 같은 좋은 여자 못 만난당께! 남자가 말이여! 어!”

“좋은 여자는 이미 만나고 있습니다만.”

“으잉?”

“나중에 여러분들에게도 소개할 기회가 오면 좋겠네요.”

“어머머머, 도령의 성격이나 말하는 걸 보아하니 가볍게 만나는 여자는 아닌 것 같은데요.”

“네, 진지하게 만나고 있습니다. 다만 평범한 사람이라서요.”

은후의 말에 수호령도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요? 그런데 도령도 알겠지만, 아뇨, 저희보다 더 잘 알겠죠. 특별함과 평범함이 어울리는 건…….”

“걱정은 감사합니다.”

“……그렇죠. 더 이상은 오지랖이겠지만.”

“크흠, 진지한 대화는 거 나중에 술이나 한잔하면서 하제.”

“그래요.”

걱정이라.

걱정. 은후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예전이었다면 내 일에 무얼 그리 신경 쓰냐며 코웃음을 쳤을 수도 있겠다. 친하지 않은 이가 자신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건 불쾌한 일이니.

하지만 친분이 어느 정도 있다는 전제하에 일정한 선만 넘지 않는다면 이런 말은 충고이자 조언이었으며 걱정이었다. 거기에다 은후는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었다. 자신은 일반적이지 않은, 무척이나 특별한 존재라고.

“으움, 은후야.”

“응?”

“난 은후 응원하니까, 뭘 하든, 누구와 만나든, 은후가 잘하리라 믿으니까.”

“……그래.”

은후가 수호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은 좀 이른 저녁을 먹는 게 어뗘?”

“뭐 해 줄 거야?”

“거, 령이가 저번에 말한 거 있자누.”

“뭐?”

“이딸리안 파스따인지 뭔지 말이여.”

“파스타!”

“라자냐하고!”

“라자냐!”

도깨비와 수호령의 대화에 은후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무슨 만담 콤비도 아니고.’

도깨비가 수호령에게 어울려 주고자, 일부러 맞춰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서 더더욱. 그 광경을 바라보며 한 발자국 떨어져 구미호가 조그맣게 웃고 있는 모습도 퍽 잘 어울렸다.

‘가족 같아 보이네.’

가족이라.

부부, 아들.

‘아들이라, 아들.’

아이, 내 아이.

‘……너무 먼 미래의 일인가.’

문득 떠오른 상념.

잘 모르겠다.

“내가 연후 형이랑 성호 형이랑, 어, 개구리랑 호랑이도 불러올게!”

“그려, 그려. 준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니께 급하게 가다가 넘어지면 혼난다?”

“응! 은후야!”

“어?”

“가자!”

“……그래.”

수호령이 은후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지금은.’

고민하지 말자.

정말로 먼 미래의 일이니까.

게다가 하연이가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겠고.

‘그건 진짜로 너무 나갔나?’

은후가 스스로 피식 웃었다.

아이라니.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정식으로 연인이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어쩐다.’

축제라, 이번 축제.

‘하연이도 함께했으면 좋겠는데.’

문제는.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것이지.’

어렵다, 어려워.

‘언젠가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과연 지금일까.

그렇게 다시 이어지던 은후의 상념은 수호령의 목소리에 깨어졌다.

“은후야.”

“응?”

“나,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뭔데?”

“그으, 은혁이 기억나?”

“기억나지.”

백혈병으로 전북대학교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아이. 백혈병 판정 이후 골수 이식을 진행했으나 예후가 좋지 않아 시한부의 생을 이어 가고 있는 아이였다.

은후와 만남 이래 그나마 상태가 호전되어 이전에 비해 종종 덕진 공원을 찾은 아이. 수호령이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었던 첫 번째 아이기도 했다.

“그으,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은혁이는 이번 축제에 꼭 참여했으면 좋겠어서.”

수호령이 발걸음의 속도를 늦추며 중얼거렸다.

“내 생각에는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아서 더 그렇구.”

“수명이 말이지.”

“……응.”

“어느 정도?”

“한 4~5년? 끽해 봐야 10년일 것 같은데.”

4~5년은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꽤나 긴 세월이었다.

그러나 수호령과 같은 정령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니었다. 정령들의 시간 감각이란 보통 그러했다. 일반적으로 정령과 사람 사이에 가장 큰 괴리감이 있는 개념이었다.

“한 아이에게 신경만 쓰면 안 되는 거 알지만 말이지.”

“왜?”

“어? 왜라니?”

“한 아이에게 좀 더 신경 쓰면 안 될 이유는 없어.”

“응?”

“다른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한 아이에게만 집중한다면 모를까.”

“으응?”

수호령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해 줄게. 하여간 은혁이 말이지.”

“응, 저번에 산책 왔을 때 말하려다가 말았거든. 뭔가 깜짝 놀라 주고 싶어서 비밀로. 으, 말이 꼬인다.”

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응, 응.”

수호령과 은후는 이후 축제에 관하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공원을 거닐었다.

“음악은 그냥 성호 형에게 맡기면 되겠지?”

“아마도?”

수호령을 위하여 아이를 위한 음악을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으니. 성호가 음악에 미친 정령이기는 했으나, 수호령을 적잖이 귀여워했다. 생전부터 성호의 곁을 지키던 강아지 루비가 이따금 질투할 정도로.

그런 수호령의 바람을 이루는 데 자신의 음악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니, 성호가 눈에 불을 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물며 처음으로 도전하는 분야라고 했다.

아이.

그래서 그랬을까, 은후와 수호령이 성호를 찾았을 때 성호가 갑작스레 말했다.

“은후 도령! 공연을 좀 해야겠는데요.”

“느닷없이요?”

그나저나.

‘호칭이 도령으로 굳어지는 것 같은데.’

딱히 문제는 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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