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130화 (130/170)

제130화

자연의 흐름을 이용하여 공간의 위상을 격리한 곳. 그렇기에 비밀 공간으로 들어서자 아예 다른 세계에 온 것과도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별천지구나.’

종여가 나지막이 감탄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문득 종여의 뇌리에 옛 고사 한 자락이 스쳤다.

장자 내편 중 제물론의 한 자락에서 말하길.

옛날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훨훨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것이 스스로 기뻐 제 뜻에 맞았더라. 그리하여 장주는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정신이 들었더니 장자가 되어 있어 놀랐다.

알지 못하겠다.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된 것인가. 장자와 나비 사이에 반드시 구분이 있다. 이것이 만물의 변화.

우리가 교과 과정에서 한 번쯤은 꼭 듣게 되는 그 유명한 호접지몽의 고사이다.

종여가 이처럼 느낀 건, 마치 자신이 순간적으로 거북이가 되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비가 아닌 거북이.

거북이.

종여는 거북이가 되었다가 눈을 뜬 것 같았다.

그때.

“스님.”

“어.”

“스님.”

“…….”

“종여 스님.”

“……네, 시주.”

은후가 말을 걸자 그제야 종여의 정신이 온전히 돌아왔다.

“괜찮으십니까.”

“지금은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습니다.”

종여는 거북이가 될 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정신이 거북이가 되어버릴 뻔했다. 그건 진법의 영향으로부터 비롯된 것.

만약 은후가 아니었다면 종여는 사람의 몸에 거북이의 정신을 유지하다가 죽었을 것이다.

‘쯧.’

은후가 가볍게 혀를 찼다.

‘아쉽군.’

비밀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은후는 느꼈다. 자신과 종여가 불법으로 이곳에 들어왔다는걸.

왜냐하면 은밀하게 자신의 정신을 뒤트는 흐름을 느꼈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 깨달음을 얻기 전이었다면 아마 자신도 종여처럼 서서히 변해갔겠지. 아예 눈치채지 못하고.

은후는 이상함을 알아차리자마자 바로 정신 방벽을 좀 더 구축하고 마나를 두르고. 그리고 종여를 치료했다.

그 과정에서 진법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은후의 생전 이토록 은밀하게 정신을 오염시키는 수단은 처음이어서 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종여 스님도 불가의 제자라는 점과 더불어 자질 자체만은 무척 뛰어나니 저 정도로 그친 것이지.’

평범한 이라면 자신이 손을 쓰기도 전에 정신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은후가 중얼거리며 가볍게 혀를 찼다.

‘쯧. 반나절인가.’

그 이후에는 보통 사람도 이 비밀 공간에 들어설 수 있게 될 터.

“이거 면목이 없군요.”

“특별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대항할 수단이 없었을 터이니 그리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특별한 능력이라뇨?”

“가시죠.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들을 숨겨놓았는지 봐야겠습니다.”

은후가 종여의 질문을 흘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종여는 입을 꾹 닫고 그 조심스레 뒤따랐다.

“허.”

약 이십 평방 남짓.

그 공간에 불상을 비롯하여 보물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이, 이게 대체…… 설마.”

“뭔가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종여는 잠시 망설이다가 역대 불국사 주지에게 내려오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은후에게 해 주었다.

‘과연.’

은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래를 내다보고 대비했다, 라.’

그것도 얼추 정확하게 들어맞은 것 같았고.

‘하기야 그 정도 능력자가 아니었다면 이런 결계를 만들 수도 없었겠지.’

그나저나.

‘아무리 그래도 축이 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텐데.’

은후가 눈에 힘을 주며 주위를 둘러봤다.

‘저거군.’

가장 중앙에 놓여있는 책 한 권.

‘마법서인가.’

마법서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마법사가 자신의 지식을 적은 단순한 책.

다른 하나는 마법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신비가 깃들어 그 자체만으로도 강대한 힘을 품거나 자아를 갖추게 되는 책.

은후의 눈에 비친 마법서는 후자였다. 적어도 현대에서 저런 마법서를 볼 수 있을 거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종여의 이야기에 따르면 무척이나 오래되지 않았던가.

‘아니지.’

오히려 마법서라는 것들은 대개 세월의 흐름 속에서 힘을 키워나가기 마련이니.

‘저건 내가 챙겨야겠어.’

딱히 뭔가를 바라고 이곳을 찾은 건 아니었다.

단순한 호기심.

마법사로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정교한 흐름을 엮어 만든 진법. 뛰어난 마법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어지간한 마법진 이상으로 판단되었으니.

‘보통 사람의 손에 들어간다면.’

죽기 딱 좋겠어.

은후가 중얼거리며 마법서를 집었다.

원래라면 이런 진정한 주인이 아니라면 무작정 손을 대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긴 세월 이런 진법의 중심축을 담당했기에 마법서의 힘은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파지지지직.

약한 전류만 은후의 손에 흘렀을 뿐. 그게 마법서의 저항의 끝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감전되어 죽었겠지만 은후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한자는 좀 색다르네.’

은후가 피식 웃었다.

은후가 익히 봐 왔던 마법서와 다르게 한자로 적혀있는 책. 어느 정도 자아도 있는 것 같았다.

은후는 잠시 마법서를 살펴본 후 연신 주위를 둘러보던 종여에게 말했다.

“스님.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호기심은 해결했고 얻을 건 얻었으니 말입니다.”

“아니, 시주?”

종여가 은후의 말에 당황했다.

“여기, 여기에 있는 것들의 가치는 알고 하는 소리입니까?”

“스님에게 듣기로 본디 불국사의 것들이 대부분인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가야죠.”

종여가 탄식했다.

“허.”

보물이었다.

가치로 따지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보물. 그런 보물을 두고 아무런 욕심을 품지 않는다니.

“선재로다, 선재야.”

은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욕심이 있습니다. 딱히 그런 눈으로 바라보실 것까지는 없는데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 손에 들린 책은 안 보이십니까?”

“보입니다. 하지만 시주께서 그 책을 집은 이유가 있겠지요. 제 눈에도 보였습니다. 시주의 손에서 파지직거리는 무언가를요. 필시 평범한 이들에겐 위험하겠지요.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종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습니다.”

“네?”

“저와 같이 깨달음을 추구하는 승려들도 이 보물들을 보면 눈이 돌아갈 겁니다. 진정으로 욕심을 내려놓은 이가 아니라면요. 부끄럽게도 주지라는 저도 그렇습니다. 순간적으로 눈이 돌아갔지요.”

이 보물들이라면.

“이 물건들의 가치를 본능적으로 따지고 있었더랍니다. 스승께서 이르시길 재물은 오물처럼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제 눈에는 도저히 이 물건들이 오물로 보이지 않는군요.”

종여가 큰 한숨을 내쉬었다.

“제 덕이, 깨달음이 부족한 탓이지요. 하지만 시주께서는 이 보물들을 충분히 오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군요. 아닙니까?”

“마음만 먹는다면 가능이야 하겠습니다만.”

“선재로다, 선재야.”

“그.”

무슨 오해를 한 지는 모르겠지만.

‘음.’

은후가 말했다.

“제게 무가치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제가 욕심을 낼 이유가 없지요.”

지금 손에 들린 책 한 권.

이 책 한 권의 가치가 여기에 있는 다른 모든 보물을 합쳐도 따라 올해 수 없는데.

“허허. 겸양은 되었습니다. 아니요, 겸양이 아니라 진심이군요. 그래요.”

“그,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말씀하시지요. 혹 이 보물들의 일정한 소유권을 주장하신다고 해도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시주가 아니었다면 발견할 수도 없었을 보물인데요.”

“그건 아닙니다. 절 만날 걸 모르는 척해 주세요.”

“네?”

“오늘 이곳을 발견한 건 스님이 되는 겁니다.”

“아니, 그럴 수는…….”

하지만 은후의 눈빛은 너무도 강렬했다.

“부탁드립니다.”

“허어.”

종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품에서 염주 하나를 꺼냈다.

“정 그러시다면 이거라도 가지고 가시지요.”

“이건?”

“불국사의 주지에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던 염주입니다. 이 염주를 가지고 언제고 불국사를 찾아오시지요. 은혜는 갚아야 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래야만 제가 시주의 부탁을 들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후가 물었다.

“주지 대대로 전해지던 염주를 이리 쉽게 주셔도 되는 겁니까?”

“되고 말고요. 전혀 문제없으니 받으시지요.”

종여의 강권에 은후가 염주를 받았고.

이내 종여의 시야에서 은후가 훅하고 사라졌다.

종여는 아까와 달리 놀라지 않고 중얼거렸다.

“아미타불.”

느닷없는 만남.

다시 돌아온 불국사의 보물.

‘그보다 값진 건, 그 시주와 인연일 지도 모르겠어.’

언젠가.

자신이 죽기 전.

종여는 확신했다.

한 번 정도는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아미타불.”

아무리 불국사의 것들이라지만.

‘그 시주가 아니었다면 찾을 수 없었을 것이야.’

은후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뭔가 신비로운 힘을 부린다는 것도. 그 힘이 아니었다면 찾을 수 없었을 공간이라는 것도 종여는 알았다.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한담.’

종여가 미간을 찌푸렸다.

‘비밀로 하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세상에 널리 알리기도 그랬다.

‘최소한 국가에 신고는 해야 하는 것은 맞겠지만.’

골치가 아팠다.

그 과정에서 일어날 소동이.

제일 큰 문제는 소유권 다툼이었다.

객관적으로 증빙할 자료가 없다면 소유권을 두고 국가와 다퉈야 할 것인데.

“허허. 행복한 고민이구먼. 행복한 고민이야. 그나저나 나도 아직 많이 모자라는군.”

정말로.

보물을 오물로 볼 수 있는 눈이라.

죽기 전에 갖출 수 있을까.

‘깨달음에 집착하면 안 되는 것을.’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집착인데.

* * *

며칠 후.

불국사를 이끄는 지도층 사이에 난리가 났다.

주지 종여 스님이 발견한 보물들로 말이다. 개 중에서는 그저 전설이나 소문으로만 여겨졌던 석굴암 상의 백호까지 있었다.

그렇게 불국사에서 종여가 발견한 보물을 어떻게 할지에 관해 논의될 무렵. 은후는 덕진 공원에서 책 한 권을 한 손으로 던졌다가 받으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마음대로 안 되네.’

진법이라.

진법.

마법과는 아예 체계가 달랐다. 비슷한 점도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일정 부분에 한했고, 호랑이 신선의 말을 들어보면 추구하는 목적이나 작동 원리가 상이했다.

‘진법을 좀 배워야 하나.’

하지만 배울 데가 없었다.

호랑이 신선의 경우에도 진법을 체계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토함산의 진법은 자신의 스승이 만들어준 것이라나. 게다가 자신의 능력은 이론이 아닌 본능적인 부분에 의존하고 있다고 하니.

“에휴.”

그래도.

‘보기는 좋네.’

호랑이 신선은 결국 낙원의 주민이 되기로 했다. 수호령과 만나고 잠깐 이야기한 직후 단박에 내린 결정이었다.

지금도 수호령과 놀아주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이를 좋아한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한 번 더!”

“오냐.”

생각 외로 호랑이 신선의 능력이 좋아서 규모가 커졌다.

정확히는 개구리와 호랑이 신선의 능력이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고나 해야 할까.

‘롤러코스터라니.’

물로 만든 롤러코스터가 낙원의 한구석에 설치되었다.

“얏호!”

놀이동산.

축제했을 때 수호령이 원했던 것 중 하나.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시간만 더 주어진다면 은후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소규모의 놀이동산 시설을 갖출 수 있었겠지만.

‘시간이 문제지.’

축제의 규모가 생각 외로 커져 버렸다.

‘그 외에 귀신의 집이라든지.’

환상을 잠깐 현실로 구현하는 능력. 그 매개체를 개구리가 물로 대체했고.

‘확실히 대단하네.’

물로 구성된 롤러코스터를 바라보며 은후가 호랑이 신선의 능력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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