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화
이하연은 몽골 여행에 관하여 방송에서 수차례 언급했다. 거의 두 달 전부터. 그래서 꽤 긴 시간 방송을 하지 않았음에도 민심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옛말처럼 초를 치는 이가 없지는 않았으나 극소수였고, 그런 사람들조차 진심으로 그런 이는 드물었다.
- 아ㅋㅋ 대체 여행은 언제 끝나고 방송은 언제 하냐?
∟그러게…… 슬슬 올 때 되지 않았나?
- 일주일이랬으니 아마?
∟보름 아녔음?
∟?? 언제 그런 말함?
∟나도 몰?루? 내 기억에는 그러함
∟클립 딴 놈 없음?
이하연의 방송은 순수 규모로만 따지면 중위에서 상위 사이의 어딘가. 하지만 고정 시청자로만 따지면 상위권이라고 봐도 무방했고, 그 시청자들은 이하연의 방송에 진심이었다.
자연스레 시청자들은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 시기에 개인 방송을 하는 이들이 개인 카페나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과 다르게, 이하연은 따로 소통 창구를 개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송 외적으로 소통을 하는 건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커뮤니티뿐.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그 커뮤니티 기능을 이용하는 이가 드물다는 것. 그래서인지 이하연이 방송을 하지 않았음에도 플랫폼 메인 화면에 채널이 노출되었다.
최다 커뮤니티 기능 이용 채널로.
- ㅋㅋㅋㅋㅋ 우리 채널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하긴 하지?
∟ㄹㅇ 외국까지 합쳐도 따라올 채널 거의 엇ㅂ지 않냐ㅋㅋ
∟오타 수정 좀요
∟즐
∟아재요…… 언제적 밈임
∟반사
∟개노잼이네
- 대충 돌아오겠다는 시기가 꽤 지난 거 같은디
∟ㄹㅇㄹㅇㄹㅇㅇㄹㅁㅇㄹㅇㄴㅇㅁㄴㅁㅇㄴ
그렇게 시청자들이 지쳐 가던 사이, 이하연이 방송을 켰다.
- 왔다!
- 오!!
갑자기 몰려드는 시청자의 숫자에 이하연이 다소 당황했다.
‘뭐지?’
대개 방송을 켜면 느긋하게 시청자들이 몰려들기 마련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오랜만에 방송을 켜서 그런가?’
이하연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가 참 오랜만에 왔죠? 좀 많이 늦었습니다. 사실 귀국한 건 며칠 전인데요, 편집할 게 너무 많았던 거 있죠? 거기에 좀 고민할 만한 제안이 있어서…….”
* * *
이하연이 방송을 켬과 동시에 시끄러워진 개인 방송 플랫폼 스타 스페이스. 그건 동영상 플랫폼 브이튜브도 마찬가지였다. 이하연이 방송을 켜기 직전 두 개의 영상을 사전 예약해 두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일전부터 꾸준히 찍어 두었던 스타더스트와 관련된 영상. 다른 하나는 은후가 죽은 스타더스트의 사체 앞에서 기타를 치는 영상이었다.
이하연은 고민했다. 차분하게 시간순으로 브이로그 느낌을 풍기며 여행기를 올릴까, 아니면 하이라이트의 부분만 따로 따서 올릴까. 결국 선택은 후자였다.
여행기야 나중에 차분히 올리면 그만. 한동안 영상 업로드가 없던 시기였으니. 이 부분은 은후와도 따로 상담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 무렵 은후는 덕진 공원에서 성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음반을 내고 싶다는 말씀이시죠?”
“네.”
이전까지는 크게 생각이 없던 음반.
하지만 성호는 욕심이 생겼다. 자신의 음악을 사람들이 좀 더 들어 주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비록 그 형태가 은후의 이름을 빌리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굳이 음반이 아니어도 상관은 없어요.”
다만.
“흔적을 남기고 싶달까요. 제가 언제 죽을…… 아니, 이미 죽었으니 죽는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겠네요.”
소멸.
“그러니까 제가 사라지기 전에요. 게다가 은후 씨가 아니면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겠죠.”
몽골에서 사람들이 물었다.
인터넷에 음원은 없느냐고.
그때 은후가 답했다. 브이튜브를 통해서 들을 수 있다고. 하지만 브이튜브에 올라와 있는 곡은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다. 그때 성호는 꽤 아쉬움을 느꼈다.
“방법은 생각해 보겠습니다.”
“딱히 음반이란 형태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브이튜브에다가 몽땅 제 곡을 올리는 것도 좋을 것 같으니까요.”
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호의 상담이 끝난 후 주위에서 페럿 뀽뀽이와 놀고 있던 수호령이 다가와 물었다.
“이야기는 끝났어?”
“얼추?”
“나, 나. 나도 상담하고 싶은 거 있는데.”
“뭔데?”
은후의 물음에 수호령이 우물쭈물하며 머뭇거렸다. 은후는 부드럽게 웃으며 수호령을 재촉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렸다. 수호령은 멀찍이 떨어진 개구리를 슬쩍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애들 말이야.”
“애들이 왜?”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애들 때문이잖아.”
“그렇지.”
“그런데 기왕이면 좀 더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예전에는.
“힘이 없었으니까. 안전에만 초점을 맞췄거든.”
수호령의 탄생부터가 그러하기도 했고.
“그런데 안전한 것만으로 충분할까? 요새 그런 생각이 들어. 배부른 소리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서 좀 덕진 공원에서 아이들이 더 즐거웠으면 싶더라고.”
은후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야.”
“자연스럽다니?”
성장했으니까.
이런 요청을 하는 걸 보면 확실했다.
정령의 욕구는 성장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 욕구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근본적인 부분은 바뀌지 않지만 말이다.
한 아버지가 자신이 죽은 아이를 묻으며 바랐던 바람. 그 바람은 안전이 기본이었을 것이고.
‘이후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랐겠지.’
행복하게.
그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궁극적인 바람은 행복이니.
아이들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저마다 해답은 다를 터였다. 하지만 개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즐거움이고, 수호령은 그 즐거움을 덕진 공원에서 체험하기를 무의식적으로 바라지 않았을까.
“그래서 뭐 생각해 둔 거 있어?”
“으응, 축제……?”
수호령이 어색하게 웃었다.
“거창하게 뭘 할 수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있는데, 삼촌이랑 이모가 그러더라고. 작게나마 축제를 여는 건 어떠냐고. 그런데 예전하고 다르게 어른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대. 그래서 은후하고 상담하라고 하던데.”
은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바라봤다.
‘조금 어렵네.’
다른 부분이라면 모를까, 귀신과 같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면 아이들의 목소리가 존중받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다수의 목소리가 모인다면 어른들도 진지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없지는 또 않았다.
‘요는 결국 안전인데.’
은후가 쓱 주위를 둘러봤다.
“많은 아이들과 축제를 열면 좋겠지만. 그게 힘들다는 건 나도 아니까. 몇 명이라도 좋아. 삼촌이랑 이모는 작은 포장마차를 열고, 성호는 기타 연주를 하고. 여기라면 성호 형도 은후의 몸을 안 빌리고도 기타를 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연후 형은…….”
수호령은 제 나름대로 생각했던 축제를 읊었다.
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응? 정말?”
“그럼.”
“진짜로 괜찮아?”
“괜찮아. 대신에 이름을 지어 주는 게 조금 늦어질 수 있는데.”
“어?”
수호령이 반색하다가 흠칫했다.
“어, 얼마나?”
“예상대로라면 봄이 찾아올 무렵에, 늦어도 여름 전. 하지만 축제를 연다면 완연한 여름이나, 더 늦어진다면 가을?”
수호령이 낑낑거리며 고민했다.
“으, 으음. 내년 겨울 전에는 확실한 거야?”
“아마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사실 안 늦어질 수도 있어. 확률은 낮지만.”
축제를 여는 과정에서 수호령이 스스로 성장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된다면 이전에 예측했던 시기와 어긋나지 않을 터. 게다가 그 과정에서 얻는 것도 적지 않을 터.
‘무엇을 얻을진 몰라도.’
하지만 이 부분을 은후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수호령이 마음 가는 대로 했으면 좋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치만, 가능성이 크다는 거잖아. 그리고 은후가 그렇게 말하면 어긋난 적이 없으니까.”
“뭐.”
은후가 피식 웃었다.
“하여간!”
“하여간?”
“할래! 축제!”
“그래.”
이름을 받는다는 의미를 수호령도 충분히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결국 아이들이 우선인가.’
그나저나.
“개구리한테 고맙다고 해.”
“응? 개구리한테?”
“그렇지. 축제를 열 수 있는 방법이 말이지, 개구리가 예전에 줬던 천도복숭아 씨앗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거 같으니까.”
“아하.”
수호령이 빙그레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혹시 내가 뭐 도와줄 거 있을까?”
“축제 준비나 열심히 해.”
“알았어!”
“단순히 포장마차랑 기타 연주만 하면 좀 그럴 테니까, 귀신의 집이라든가 다른 콘텐츠도 한번 생각해 보고.”
“응응.”
그러자면 손이 좀 부족하긴 하겠지만.
지금 낙원 주민의 숫자는 많지 않으니까, 정말로 소규모 축제라고 하더라도.
‘축제를 열기엔 적은 숫자인데.’
그거까진 어떻게 해 줄 방법이.
‘……단순한 노동이라면 골렘이라도.’
아니지.
‘거기까지 낭비할 자원은 없어.’
은후가 생각한 방법은 시간의 흐름을 어긋나게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덕진 공원에 낙원에 출입하는 순간.
‘찰나, 현실로 따지면 몇 초, 길어야 몇 분.’
그 몇 분은 아이들에게 몇 시간이 되고.
‘축제를 즐기기엔 충분하겠지.’
그리고 그 몇 분 사이에 겪은 일을 부모에게 말해도 과연 믿을까.
‘만약에 믿어서 추후 뭔가 문제가 생겨도 내가 처리할 수 있을 터.’
몽골에서의 만남이 은후에게 그런 확신을 갖게 했다. 몽골에서 만났던 검은 바다가 말하길, 현대에 자신과 같은 능력자는 거의 없다고 했으니까.
물론 그 말만으로 확신한 건 아니었다. 영국에 다녀오면서 하늘을 날 때, 그때 은후는 현대에 어떤 능력자가 있을까 싶어 열심히 마나를 퍼트리고 조사했으나, 큰 징후가 없었다.
‘능력자라면 어떤 반응이 분명히 있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은후는 혹시 몰라서 자신의 판단에 근거가 충분한지 반추했다. 그사이에 개구리가 은후에게 다가왔다.
“은후 도령.”
“무슨 일이야?”
“축제 말이오, 미안해서 말이야.”
“미안하긴, 뭘?”
“령이를 말렸어야 했는데. 리스크가 크지 않을까?”
약간 횡설수설하는 개구리의 이마를 은후가 검지로 딱밤을 때렸다.
“거, 쓸데없는 걱정을. 만약 리스크가 컸다면 내가 말렸어.”
“…….”
“시간의 흐름을 뒤틀 거야.”
“응? 시간의 흐름을 뒤틀다니?”
은후가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결국 아이들의 말은 어른들에게 망상이라고 치부되겠지. 아니면 꿈을 꿨다고 여기든가. 아, 그게 좋겠네. 꿈을 꾼 거로 만들면 되겠어.”
부모에겐 아이가 낮잠을 자는 모습을 연출하면.
“아니지. 겨울에 공원에서의 낮잠은 말이 안 되나. 이 부분은 좀 더 고민해 봐야겠는데. 하여간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은후 도령이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고?”
“천도복숭아 나무 때문에 가능한 일이야.”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실 천도복숭아 나무가 없어도 충분한 준비를 거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모자란 마나는 좀 더 수급해야겠지만.’
하지만 은후는 굳이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일손이 좀 달리는 게 문제라면 문제이려나.”
“일손?”
“축제라고 했는데 고작 포장마차 하나 열고, 성호 보고 기타 연주 좀 하게 만들고, 연후가 개인 공연하고, 그거로 끝내려고? 시간을 뒤틀 정도의 사전 작업이 들어가는 일이야. 그 급의 거창한 축제까지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실속은 있어야지.”
“……일손이라.”
개구리가 잠깐 고민하다가 은후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내 친구들을 좀 부르면 어떠려나? 겸사겸사 낙원의 주민으로 받아들여 줄 수 있는지 도령이 테스트도 해 주면 좋을 거 같은데.”
“흐음.”
친구들이라.
“누구?”
개구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