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120화 (120/170)

제120화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이 그러할까.

몽환적인 광경과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기타 소리.

다들 순간적으로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도 다들 섣불리 은후에게 다가갈 수 없어서 우두커니 멈춰서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그 와중에 이하연만이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무사……했네?”

이하연이 애써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며 은후에게 물었다. 은후는 성호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후 기타 치던 손을 멈추었다.

“응, 미안.”

“뭐가?”

순간적으로 욱해서 바로 되묻는 자신에게 이하연이 스스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은후의 목소리를 실제로 들어서 그런지 눈에 물방울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까는 뭔가 은후가 맞기는 한데, 생각지도 못한, 그리고 잘 느껴지지 않던 현실감이 이제야 찾아왔던 것. 은후는 몸을 일으켜 이하연에게 다가가 꼭 껴안아 주었다.

“미리 말이라도 하고 달려 나갔어야 했는데.”

“…….”

“차가 말이야. 그래도 쫓아 올 수 있을 줄 알았거든.”

“……그래?”

“응, 그런데 못 쫓아 오더라고. 그렇다고 스타더스트를 멈추기엔 오늘이 마지막이라서.”

“어? 마지막?”

은후가 이하연의 손을 이끌고 모닥불 근처에 앉게 했다.

“죽었어.”

“죽다니?”

“달리다가. 저번에 그건 말했던 것 같은데.”

“그거야, 아니. 그거야 말은 했지만…… 정말로 죽었어?”

달리다가 죽는 것.

아무리 말이라도 그게 쉬운 일일까. 스스로의 본능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던가. 아무리 달리는 것이 좋아도 생존보다 앞설 수 있는 것일까.

‘비유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죽는다면 그처럼……. 비슷한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하연은 갑자기 예전에 대학교 교양 수업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공자 왈,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

‘《논어》의 뭐더라.’

참된 이치를 깨달을 수만 있다면 죽음을 맞이해도 만족할 수 있다는. 스타더스트는 그와 비슷하게 달릴 수만 있다면 그러했던 것일까. 이하연은 머릿속이 잠깐 혼란스러웠다.

“만족하면서 죽었어.”

“……그렇구나.”

“그러니 동정할 필요도 없지. 오히려 화낼걸? 불쌍하다고 여기면.”

“그러네. 스타더스트는 똑똑했으니까.”

그러니 분명히 알아봤으리라, 자신이 그런 눈빛을 보낸다면.

그런 이하연의 추측은 정확했다. 허공에서 유령이 된 스타더스트가 뚱한 표정으로 이하연을, 그 외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푸르르르륵.’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참 좋았다.

달리다가 죽은 생전의 소원을 이룬 것도, 죽은 이후에도 달릴 수 있다는 소망을 이룬 것도.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살아 있는 육체로는 이제 달릴 수 없다는 점이지만, 그래도 달릴 수는 있으니까. 게다가 자신만을 위해 연주를 해 주는 성호도 그렇고.

주위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사람들이 몰려들며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백번 양보해서 은후와 연인이라는 이하연 정도라면 상관이 없었겠지만.

“저, 저어, 방금 말씀이 진짜입니까?”

어느새 은후와 이하연 근처에 다가와 눈치 없이 끼어드는 PD라든가.

“대단, 대단…… Good!”

어설픈 한국어와 영어로 무어라 무어라 말하는 현지인이라든가.

‘푸르르르르.’

달리기라도 해야지.

은후는 스타더스트에게 마음대로 하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스타더스트는 콧김을 한번 뿜고는 허공을 박차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달릴 수 없었던 하늘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스타더스트는 무엇보다 제일 기뻤다.

‘여전하네.’

정말로.

계약 이전이나 이후나, 죽기 전이나 죽음 후에나, 달리는 것에 관한 집념이 저토록 대단해서야.

하기야 그 정도의 집념이 아니었다면 은후도 굳이 계약하진 않았을 터.

그리고.

‘푸르르르?’

애교도 있었다.

같이 달리자고, 하늘을 함께.

‘나중에.’

은후가 피식 웃으며 이하연에게 물었다.

“안 추워?”

“……추워.”

은후가 이하연을 더 세게 안으며 물었다.

“좀 낫지?”

“그러네.”

“다음부터는.”

“응.”

“조심할 테니까.”

“바보.”

“혹시라도 이런 일 생길 거 같으면 미리 말할게.”

“아예 생기질 않게 해야지.”

이하연이 칭얼거리며 은후에게 더욱 달라붙었다.

두 사람 사이에 찾아온 침묵.

하지만 무겁거나 어색하지 않은 편안함이 깃든 고요함.

“저어.”

그 고요함을 깬 건 아까부터 계속 은후의 눈치를 살피던 PD였다. 하지만 은후는 PD에게 잠깐 시선을 던졌을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기타 쳐 줄까?”

“기타?”

“아직 밤은 기니까. 게다가 아마 여기에 그렇게 오래 있을 순 없을 거야.”

“그러려나.”

밤을 지새우기엔 몽골의 추위는 매섭다. 물론 그런 추위를 대비하여 방한 대책을 충분히 해 오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야외 활동을 위한 것, 야영을 위한 준비는 없었다.

해가 떨어지고 적잖은 시간이 지났으니 결국 다시 길을 돌아가야 할 터. 물론 은후 본인이나, 혹은 능력을 드러낸다면 딱히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그러면 괜히 귀찮아지겠지.’

은후는 그런 귀찮음을 감수할 용의가 없었다.

‘하연이만 있었다면 몰라도.’

은후가 이하연과 떨어져 다시 기타를 잡았다. 그리고 성호에게 다시 한번 양해를 구했다.

‘이번에는 제가 연주해 봐도 될까요?’

스타더스트를 위하여, 성호를 중심으로 쭉 연주했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연인을 위하여.

성호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조하죠. 그 정도는 괜찮죠?’

언젠가, 먼 훗날이라면 모를까, 아직 은후의 순수한 기타 실력은 그저 그랬으니.

‘네, 부탁드립니다.’

성호와 만나고 유럽에서 만난 인연 덕분에 은후는 음악에 마법을 접목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마법을 현실에 구체화시키는 방법은 다양하지.’

은후는 이어지는 사고의 흐름을 일단 멈추며 기타를 조심스럽게 튕기기 시작했다.

사랑과 위로를.

다시 한번 기타 소리가 너른 몽골의 평야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은후에 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은후가 적잖이 유명해졌다고는 하지만, 얼굴이 공개된 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그 유명세는 국내보다 해외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정에 따라온 PD를 비롯하여 관심이 있는 이들은 알았다. 은후가 현재 인터넷을 중심으로 클래식 마니아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는 걸.

“이 영상 진짜로 그냥 넘기는 거예요?”

“그게 조건인데 어쩌겠냐.”

간밤에 벌어진 이야기는 대박이었다.

여타 예능과 다르게 리얼 버라이어티였다.

갑자기 스타더스트와 달려간 은후, 그런 은후를 걱정하며 오매불망 초조해 하던 이하연.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한다면 얼마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까.

제대로 된 무대만 갖춘다면, 아니,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결국 유명해질 수밖에 없는 영상. 왜냐하면 스토리가 있었으며 두 사람의 외모가 뛰어났으니.

“내가 영화감독은 아니다만 단편 영화로라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덕진 공원 기타 영상도 장난 아니더라?”

PD가 아쉽게 중얼거렸다.

이번 일정에서 영상을 찍고 다루는 데 은후와 이하연은 포함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두 사람을 담는 건 서비스 개념이었다. 이하연이 개인 영상 사업을 하고 있다고 이해한 이원석이 PD에게 부탁한 것이다.

어차피 카메라를 들 거, PD는 대수롭지 않게 수락했다. 따로 수고비에 보수까지 제대로 지급한다고 했으니 얼씨구나 하면서. 계약서까지 쓴 게 이상하기는 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던 거지.’

이 영상을 고스란히 이하연이란 개인에게 넘겨야 한다는 게 PD는 너무 속이 쓰라렸다.

“나엔에서는 생각 없대요?”

“뭐가?”

“솔직히 외모면 외모도 명한이보다 낫고…… 기타 실력도 장난 아니고. 같이 따라온 매니저, 거 이름이 뭐였죠?”

“캐스팅? 이미 차였다더라.”

PD가 피식 웃었다.

“게다가 뭐 어떻게 수작 부리기도 힘들어 보이니 깔끔하게 잊는다고 하던데. 영상이야 개인 소장을 하든, 공개하든, 우리 손을 떠났으니까 우리도 잊자고.”

“수작이라뇨?”

“나엔 몰라?”

“아, 알죠. 그런데 진짜로 그래요?”

연예계에서도 손이 더럽기로 유명한 엔터테인먼트였다.

“그럼 진짜지 가짜겠냐. 근데 이원석 회장님이 가만히 안 있을 모양이더라.”

“회장님이요?”

“어.”

“그러면 두 사람에겐 별문제 안 생기겠네요.”

“그러겠지.”

“차라리 회장님께 부탁해 보는 건 어때요?”

PD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영상? 아서라. 이미 슬쩍 떠봤다가 차였으니까.”

* * *

은후와 이하연이 단체로 참여해야 할 일정은 끝이 났다. 다른 일행들은 마사회와 나엔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데뷔를 위한 남은 촬영을 위해서 추가 일정을 소화해야 했지만.

“괜찮겠습니까?”

“네.”

은후는 이하연과 단둘이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현지 안내인하고 보디 가드는 동행하는 게 좋을 겁니다. 조금 불편하기야 하겠지만 혹시 모를 일 아닌가요? 국내도 아니고.”

“좀 과하지 않나요?”

그런 은후에게 이창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과하기는 무슨. 울란바토르 같은 수도만 돌아다닌다면 모를까, 국내와는 달라요.”

“그거야 그렇겠습니다만.”

“선생 능력이 뛰어난 건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안전은 또 다른 문제죠.”

“…….”

어렴풋이 짐작은 하나, 은후의 진정한 능력을 모르는 이창석의 걱정에 은후는 멋쩍게 웃었다. 어떠한 사심 없이 순수한 걱정에서 비롯된 배려라는 걸 은후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옆에서 이하연까지 조심스럽게 은후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

결국 은후가 승락했다.

“좋은 여행……. 아, 참, 떠나기 전에 말해 줄 것이 있습니다.”

스타더스트의 사체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원석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도저히 스타더스트의 사체를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국내와 달라서 그대로 내버려 둬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겠습니다만.”

심적으로 찝찝했다.

은후도 은후지만, 이번 일정에 이원석이 큰돈을 댄 이유는 스타더스트를 위함이었으니.

진실은 이러했다.

어젯밤 스타더스트의 사체를 가지고 이동할 수 없어서 일단 그대로 두고, 해가 밝은 뒤 다시 찾기로 했다. 하지만 스타더스트가 죽은 곳을 떠나며 은후는 사체를 땅 아래에 묻었다.

마법을 사용하여 은밀하게. 그렇게 한 이유는 스타더스트가 그걸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기에 은후가 하늘을 바라보며 답했다.

“못 찾으면 어떻습니까. 오히려 그게 좋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스타더스트라면 그걸 원했을 테니까요.”

“허, 그래요, 스타더스트라면 그랬을 겁니다.”

허공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스타더스트가 푸르릉거리며 동의했다.

“죽어서도 달리기를 바랐을 스타더스트라면.”

지친 육신과 체력 때문에 끝까지 지켜보지 못한 아쉬움에 이원석이 탄식했다. 영상으로나마 볼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쓸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영상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글쎄요? 저는 아무래도 좋아서요.”

은후가 이하연을 바라봤다.

“저보다는 하연이 의견이 중요하죠.”

“나?”

“그렇지?”

“으음.”

이하연은 갑자기 자신에게 쏠리는 이목에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제 브이튜브 채널에 공개하려고 했는데요. 좀 고민 중이에요. 은후나 저나 얼굴이 드러나는 게 아직 달갑지 않아서요. 만약 공개한다면 꽤 편집이 많이 들어갈 것 같아요. 아니면 공개 안 할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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