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119화 (119/170)

제119화

사람들은 저마다 꿈을 갖기 마련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현실로 이루기 어려운 것.

그렇기에 꿈.

희망 혹은 이상, 그건 어느 정도 지능이 갖춰지기 이전에도 가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본능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으니. 사고의 수준이 아주 낮더라도, 예컨대 아주 어린 아이, 혹은 불의의 사고로 뇌를 다쳐 지적 수준이 평균 이하인 사람이라도.

그렇다면 동물은 어떨까? 동물에게도 꿈은 있을까?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이상이라는 게 있을까? 이에 관해선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도 없었고 개개인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푸르릉!

스타더스트를 알고 지켜보는 이들이라면.

“……!”

동물에겐 꿈이 있을 수 없다고 부정하는 이들도, 소리 없이 아우성을 지르며 늙고 지친 몸을 혹사하며, 고통을 참으며 있는 힘껏 달리는 스타더스트의 꿈이 죽을 때까지 달리는 거란 걸 부정할 수 있을까.

‘지금은 조금만 페이스를 낮추고. 오른쪽 허벅지에 너무 힘이 들어갔어.’

은후는 그런 스타더스트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건네며 온전히 호흡을 맞추려 애썼다. 단순히 말만 건네는 것이 아니었다. 약간의 마나를 움직여 스타더스트가 의식적으로 몸을 조절할 수 있게끔 도왔다.

스타더스트 또한 은후의 충고와 도움이 온전히 달리는 데 목적이 있다는 걸 느꼈기에 거부하지 않았다. 스타더스트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어찌할 줄 몰랐다.

달리고, 달려서, 끝까지.

달릴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으리라.

‘미쳤네.’

어느새 스타더스트는 다른 말들을 모두 뒤로하고 홀로 앞서 나가고 있었다. 오롯하게 옆을 따라갈 수 있었던 건 인간이 만든 기계인 자동차뿐이었다.

‘소름…… 끼쳐.’

꿀꺽.

카메라를 통해 스타더스트의 눈동자를 담은 한영수 PD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귀기 어린 눈동자에 압도당한 것이다.

“저, PD님?”

“왜?”

“이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차로 따라가기 힘든 곳이라고 하는데요.”

“뭐?”

몽골이라고 널따란 사막과 끝없이 펼쳐진 초원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어딘가는 강도 흐르고 있으며 산맥도 존재했다.

“저 기수에게…… 이은후라고 했지?”

“네.”

“통신 기기 안 줬어?”

“못 줬죠. 주려고 했는데 필요 없다면서요. 달리는 데 방해만 된다면서.”

“하 씨, 안전을 이유로라도 억지로 쥐여 줬어야지!”

“아니, 그게 제 맘대로 되나요? 그 이원석이란 양반이 이번 촬영에 모든 자금을 대고 있는데.”

그리고 이원석이 은후를 무척이나 조심스레 대하는 건 비밀도 아니었다. 게다가 아는 사람만 알고 있으나, 전주의 큰손이라는 이창석도 은후에게 선생이라는 호칭과 함께 존중했다.

그런 은후에게 뭔가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이번 일정에 참가한 사람 중 아무도 없었다. 유일한 사람이 있다면 이하연 정도일까. 안전을 이유로, 걱정되어서 이하연이 부탁했다면 은후도 결국 통신 기기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하연에게 그런 부탁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PD님! 곧……!”

이름 모를 강.

“아니, 억지로 건너면 안 된대?! 대충 멀리서 봐도 얕아 보이는구만!”

“그게……! 앞에는 얕지만, 안내인 말로는 중간 지점이 너무 깊어서 안 된답니다!”

“그럼, 말도 못 건넬 거 아냐!

“오!”

“오는 무슨! 하여간 생각을 좀 하고 살아.”

하지만.

“어? 어, 어어……?!”

강의 수심을 알아본 은후가.

‘여기서.’

스타더스트에게 얕은 지면까지 달린 후.

‘뛰어!’

점프를.

말이 점프하는 광경을 다큐멘터리와 같은 영상이 아닌 두 눈으로 목격한 대한민국의 현대인이 얼마나 될까. 그건 이번 길의 안내를 맡은 현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이름도 없는 강에 말을 몰고 가는 것도, 난생처음 보는 이국인이 정확히 깊은 수심을 알아차리고 말과 함께 뛰어넘는 것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

“…….”

숨 가쁘게 진행되던 촬영도, 바쁘게 보조를 맞추며 스타더스트를 따라가던 자동차도 멈췄다.

“PD님, 어떻게 해요?”

“쌍욕 나오려고 하니까 잠깐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담배나 한 대 피우자.”

“……네. 근데 담배 끊으셨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한 달은 넘게 끊으셨던 거 같은데.”

“담배라도 안 피우면 내가 못 견디겠다. 하, 이래서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고 하나?”

느릿하게 하얀 담배 연기가 강을 향해 흘러넘쳤다. 이윽고 그 뒤를 다른 일행들이 도착했다.

* * *

다른 이들을 모두 젖히고도 쭉 스타더스트는 달렸다.

말이 얼마나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을까.

이에 관해선 어떤 마(馬)종이냐를 비롯하여 당일 그 말의 컨디션 및 지형 등등 여러 변수가 있다. 고래로부터 전해지는 명마를 상징하는 천리마의 경우엔 불가능하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실제 기록으로 남은, 중국 고대인들이 그렇게 칭송했던 아할테케의 달리기 역시 약 4,000킬로미터를 84일 만에 달려갔다는 기록이 전부.

그러니 명마 중의 명마라는 아할테케마저도 진짜 의미에서 천리마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건 스타더스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불가능을 은후의 도움으로 가능케 했다.

‘좀 더 도와줄까?’

어느 순간부터 지쳐 가는, 이대로라면 이제 곧 달릴 수 없음을 느낀 스타더스트의 감정을 알아차린 은후가 건넨 제안.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달리고 싶은데. 하지만 또 그건 아쉬웠다. 스타더스트도 알았으니까. 온전히 자신의 육체를 가지고 달릴 수 있는 건 이게 마지막이라는 걸.

푸르륵.

기수도 결국 한 몸인데, 혼자 달리는 게 아닌데.

위에 누군가를 태우고 함께 달리는 게 스타더스트는 좋았다. 그 기준이 무척 까다로웠으며 지금까지 몇 명 태우지도 않았다. 개중에서도 은후는 제일이었다.

‘……좋아. 도와줘.’

함께하는 기수에게 도움을 받는 거라면.

은후가 웃었다.

‘옛날 생각나네.’

예전에 이세계에서 반푼이 마법사였을 때,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마법을 손에 넣었음에도 처음엔 어설펐더라. 그래서 은후는 한동안 애매한 신분이었다. 마법사는 마법사인데 실력이 애매한, 하물며 신분의 문제도 있었다.

용병.

그래도 마법사라고 적잖이 대우를 받았으나 진짜 귀족이나 마탑 출신의 이들에 비해 명백히 무시받았다. 또한 힘든 일을 맡았다. 마법사가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귀족이나 마탑 출신의 마법사에게 맡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물론 보수는 후했지만.’

그 와중에 말을 타고 호흡을 맞추며 전장을 달리기도 했다. 어떤 귀족가의 서신을 전달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마탑의 한 마법사와 인연을 맺고 말에 부여할 수 있는 마법을 배울 수 있었다.

말을 위해 만들어진 보조 마법.

‘사실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이 마법은 마이너 중의 마이너지. 기사들이 타는 말이 아니면 쓸 일도 없지만. 애초에 마법사와 기사가 어디 사이가 좋던가?

하지만 자네에겐 도움이 될 거야. 이거로 내 목숨 빚은 갚는 거네. 아무리 마이너라고는 하지만 우리 마탑의 마법은 맞으니까. 공식적으로 허락도 받아 왔으니 대외적으로 문제 될 것도 없을 걸세. 마법을 익히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도 문제 안 삼을 거고. 흠, 말 나온 김에 한마디 더 건네자면, 인간과 인간이 아닌 동물의 구조는 비슷하면서도 달라. 마나를 투사하는 과정에서 섬세함에 신경 쓰고 경계를 조절하게. 그리고…….’

은후는 찰나의 순간 이세계에서 겪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마나를 움직이며 마법을 발동했다. 스타더스트는 순간적으로 은후의 기색을 알아차렸다.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아서 투레질이라도 하려던 찰나였다. 하지만 그사이에 쏟아지는 힘. 스타더스트에게 있어서 그건 힘이었다. 더 달릴 수 있는 힘.

“푸르르르르르르르!”

서서히 줄어들고 있던 속도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이대로 끝까지.

죽을 때까지.

‘정말로?’

정말로.

죽어도 좋다고.

은후는 스타더스트의 의지를 존중했다.

이후 달렸다.

달리고, 달려서, 멈추지 않고 쭉.

* * *

해가 떨어졌음에도 은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힘차게 달린 스타더스트 때문에 흔적은 남았고, 추적에 조예가 있는 현지인 덕분에 은후를 뒤따라갈 수는 있었지만.

“진짜 여기서 더 간대?”

“네…… 도저히 헷갈릴 수 없는 흔적이라는데요.”

“하, ×발. 내가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네. 그게 맞아?”

“…….”

도저히 말 한 마리로 갈 수 없는 거리였다. 사실 은후의 흔적을 뒤쫓던 현지인도 아리송했다. 분명히 눈에는 보이는데,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아서.

“저어, PD님.”

“뭐?!”

“이하연 씨가.”

“……하, 진짜. 돌아 버리겠네.”

모두가 걱정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난리도 아니었다. 그냥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잘나가는 자본가와 나름대로 권력이 있는 이들이 어떻게든 빨리 찾아내라며 보채고 있는 상황.

그 와중에 제일 걱정하는 이가 있다면 이하연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감탄했다. 은후가 말을 잘 탄다는 걸 진즉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촬영을 위한 사람들도 함께하고 있는데 무슨 일이야 생길까 싶어서.

하지만 은후를 놓쳤다는 말에, 시간이 적잖이 흘렀음에도 은후를 찾지 못했다는 소식에.

‘무사하겠지.’

진짜.

‘아니겠지.’

초조했다.

저도 모르게 손톱을 질근질근 물어뜯는 이하연을 보다 못한 누군가가 다가가서 뭐라고 위로라도 하려 했으나 주위에서 말렸다.

“어차피 듣지도 못할걸?”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둬. 저럴 때는 무슨 소리도 귀에 안 들어와.”

여전히 색안경은 있으나 이혼도 비교적 흔해진 시대. 부부도 아닌 단순한 연인 사이에 하는 걱정치고는 과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20대의 불타오르는 사랑을 아는 이들 중에서는 공감하는 이도 있었다.

“근데 막 사귀기 시작했다며? 진짜 죽고 못 살 시기인데 저럴 만도 하지.”

“그래도 좀 과하지…… 응?”

결국 일행의 대부분은 쉬기로 했다. 이대로 전부 함께 은후의 수색에 동참해도 그다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진 않으니까. 다행히 근처에 아는 이들이 머물고 있는 게르가 있다며 현지인이 안내했다.

은후의 수색을 쭉 이어 나간 건 한영수 PD와 한 명의 카메라맨 그리고 이하연과 현지인. 마지막으로 정말로 혹시 몰라 함께한 이창석의 개인 경호원이었다.

“거,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

이동하던 중 경호원이 조심스럽게 이하연에게 말을 걸었다.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제가 이창석 회장님과 함께한 세월이 꽤 되거든요.”

“그런데요?”

“회장님이 크게 걱정하지 않으신단 말이죠. 동업까지 하는 사이인데. 아마 무사하리라고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회장님의 성격상 어떤 근거가 있음이 확실합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 근거가 무엇일까.

왜 나는 모를까.

그 할아버지는 알고 있는데.

‘이 와중에 질투라니.’

이하연이 자기혐오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안 추우세요?”

“잘 모르겠어요.”

아까 영하 몇 도라며, 그렇게 움직이다간 얼어 죽는다고 해서 옷을 두껍게 입고 핫팩도 챙기고 했던 것 같기는 한데.

‘은후…… 은후야.’

대체.

두꺼운 장갑을 꼈음에도 아릿한 손끝. 하지만 그보다 걱정되는 건 은후. 그렇게 여전히 안절부절못하던 이하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저기! 이은후 씨 찾았답니다!”

이하연이 차에서 내린 후 무작정 달렸다.

“어디에요?!”

어디지?

어디야?

‘어?’

기타 소리였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이 소리는 분명히.

커다란 바위 앞에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모닥불, 축 늘어져 있는 말 한 마리.

그리고 그 옆에서 흥얼거리며 조용히 기타를 치는 은후.

‘아.’

이하연이 우두커니 멈춰 섰다.

‘무사……했구나.’

여기까지 따라와서 은후를 찍던 카메라맨이 본능적으로 이하연에게 카메라를 돌렸다.

몽골의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던, 청명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은하수가 함께하는 어느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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