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대한민국에서 몽골까지 비행기로 걸리는 시간은 대개 3시간 40분가량. 늦어도 4시간이 걸리지 않기 마련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는 건 어찌 보면 돈 낭비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있는 사람에게는 아니었지만.
“그으, 쫌 부담스럽네.”
비행기에서 내리며 이하연이 은후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뭐가?”
“아니, 퍼스트 클래스 타 본 건 처음이라서. 좋기는 좋았는데 가격 생각하니까. 전주 승마장의 후원자분이 내준 거라며?”
은후가 이하연의 말에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돼. 우리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투자한 거야.”
“그런가?”
“그럼.”
“아무리 생각해도 나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이하연이 생각하기에 자신은 꽤 예쁘고 요새 인터넷 개인 방송으로 잘나간다지만, 그래 봐야 그렇게까지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정말로 유명한 연예인이라면 모를까.
‘비즈니스 정도라면 납득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은후, 너 때문 아니야?”
“그러면 뭐 어때. 연인은 일심동체, 못 들어 봤어?”
“부부 일심동체가 아니고?”
“하여간.”
은후의 너스레에 이하연이 살포시 웃었다.
그래, 뭐, 이미 받은 걸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선생.”
그때, 전주 유지 이창석과 전주 승마장의 직원들, 그리고 이번 일의 주최자이자 후원자인 이원석이 사람들을 이끌고 은후와 이하연의 앞에 나타났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러게 말이요. 좀 자주 놀러 오지 그랬소?”
“딱히 놀러 가도 절 반기진 않을 것 같아서요.”
“하여간, 이럴 때는 빈말이라도 해야지. 그나저나 농이 늘었소?”
환상의 술 관련 사업을 하면서 이따금 한 번씩 만나고, 통화를 자주 한 덕분에 은후와 이창석은 꽤 편한 관계가 되었다. 나이를 떠나서 서로를 존중하며 가식을 떨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내 선생을 놀래 주려 했는데 그리 놀라지도 않는구려.”
“이원석 회장님과 무슨 관계가 있겠죠. 뻔한 일이지 않습니까.”
전주에서 둘 다 자본으로 유명한 이라고 하니.
“허허, 그렇지, 뻔한 일이지. 그나저나 비행은 좀 편하게 왔는지 모르겠소. 연인과 함께한다는 소리에 퍼스트 클래스에는 둘만 있게끔 배려했는데 말이오. 일부러 이 친구와 나도 비즈니스 클래스에 탔다오.”
은후가 피식 웃었다.
퍼스트 클래스 좌석에 자신과 하연, 그 외 이번 일과 관련이 없는 몇몇 사업가만 보여서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 누구?”
옆에서 이하연이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다가 타이밍을 봐서 은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은후의 대답은 심플했다.
“동업자.”
“사업?”
“응.”
“아.”
이하연도 은후가 술과 관련된 사업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창석이라고 합니다.”
“이하연이라고 해요.”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구려.”
“가, 감사합니다?”
이창석의 칭찬에 이하연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다른 이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국내에서 함께 따라온 기수들이라고 했다.
“그나저나 선생과는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이어도 대화를 조금 나누어 보면 대개 그 감정을 파악할 수 있는 법이었다.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지, 호의적으로 바라보는지, 적대적으로 느끼는지 등.
그런 의미에서 이창석은 이하연에게 적잖이 호의적이었다. 은후의 스타일을 알았기에 여타 20대와 다르게 가벼운 사귐은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더더욱.
“그런데 이 한겨울에 몽골에서 말을 타요? 스타더스트야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는 하는데요.”
그래서 이하연은 슬쩍 자신이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글쎄요, 저도 자세한 건 듣지 못해서. 저 친구라면 알지도 모르겠는데.”
“나, 불렀나?”
옆에서 은후와 앞으로의 공식 일정에 관해 대화하던 이원석이 툭, 이창석에게 말했다.
“그럼 자네 말고 여기에 누가 있어?”
“끙,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왜 몰라?”
“일단 홍보 영상 제작이 목적이라고는 하는데. 그거야 날이 따뜻해지면 하면 된단 말이지. 그런데 이 한겨울에? 뭔가 복잡한 일이 있는 거 같더라고. 마사회 쪽에서…… 하여간 그냥 신경 끄면 돼.”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 친구가 이렇게 말하는 거라면 정말로 신경 쓰지 않는 게 좋다오.”
어린 두 남녀와 나이를 적잖이 먹은 두 남자의 조합은 제법 이상했으나, 서로의 대화는 의외로 잘 이어졌다. 다만 그 모습을 뒤에서 기수들은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되게 잘생기기는 했는데, 쟤가 그렇게 말을 잘 탄다고?”
“보면 알겠지. 근데 스타더스트 성깔이 장난 아니었을 텐데 컨트롤이 되나? 암만 생각해도 거짓말 같단 말이야.”
“직원들이 바보도 아니고, 수십 명이 봤는데 그게 거짓말이겠냐.”
그리고 으레 이어지는 이야기. 뒷말이라기엔 미묘한 은후와 이하연을 헐뜯지는 않았다. 다만 약간의 시기와 질투만 있었을 뿐.
* * *
단체 여행의 장점은 굳이 개인이 뭘 조사하고 따로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장점만큼 어느 정도 자유가 제한되기 마련이지만, 세상일이란 게 그렇지 않던가.
“와아.”
드넓은 초원.
“으, 추워.”
싸늘한 공기.
이윽고 도착한 도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대한민국의 태엽을 감아 과거로 돌리다 보면 접할 수 있는 풍경 같은 느낌. 이하연은 아주 어렸을 적 겪었던 과거의 감성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 쉬고 그, 어디였더라. 하여간 이동한다고 했지? 스타더스트가 달릴 수 있는 곳으로.”
원래 계획대로라면 스타더스트에게 며칠간의 휴식을 더 주고 최대한 몸을 회복하게끔 하게 한 뒤 달리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스타더스트는 거부했다.
‘빨리.’
이번 달리기를 위하여 계속해서 참았던 게 못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몸의 상태도 한동안 쭉 쉬어서 그리 나쁘지 않았고 말이다.
그런 스타더스트의 의지를 은후가 대신 이원석에게 전달하자, 계획은 당겨졌다. 당장 내일로. 당장 은후와 이하연이 머무는 울란바토르의 시내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니까.
예컨대 관광지로 유명한 동북쪽의 테를지 국립 공원이라든가, 아니면 아래쪽의 사막도 있었다. 스타더스트가 달리기 시작할 지점은 울란바토르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초원이었다. 그 외는 정하지 않았다.
어디로 갈지, 얼마나 달릴지, 그건 어디까지나 스타더스트의 의사에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그 옆을 달리며 스타더스트 최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계획이었다.
‘내일부터 카메라가 따라붙을 텐데 딱히 의식하지 말고 자유로이 행동하시면 됩니다. 모델로서 쓸 만한 사진은 알아서 챙기겠습니다.’
‘영상도 남기려고 하는데 대외비로 쓸 생각입니다. 스타더스트의 마지막 모습이니 그래도 기록으로 남겨야죠.’
이원석의 말을 떠올리며 은후는 피식 웃었다. 촬영을 위해 따라온 스태프들을 소개해 주면서 건넨 말. 이후 관계자로부터 받은 명함. 혹 연예계에 관심이 없냐며.
은후가 말했다.
“없는데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나온 대답. 그건 이하연도 마찬가지였다. 연예인이 된다면 은후와의 관계에 있어서 문제가 생길 게 뻔했으니까.
“일단 좀 쉬자. 내일 일정 생각하면 컨디션 관리해야지.”
“이왕 몽골에 왔으니 관광이라도 하는 게?”
“에이, 놀러 온 거 아니잖아.”
사실은 관광하고 싶기는 했다.
이국의 도시, 처음 보는 풍경으로부터 비롯된 설렘.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연인. 게다가 내일부터는 단둘이 있을 기회도 드물 테니까. 하지만 이하연은 그런 자신의 욕심을 꾹 억눌렀다.
‘우선순위를 착각하지 않으면 안 돼.’
여행이야 나중에 얼마든지 하면 되는 일이니까.
* * *
다음 날 해가 중천에 걸렸을 때, 겨울 중 그나마 따뜻한 시각.
은후 일행은 울란바토르에서 꽤 떨어진 한 초원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몽골 유목민들의 전통 주거지인 게르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규모가 꽤 컸다.
미리 사전에 모든 교섭을 끝내 놓았기에 일은 술술 진행되었다. 은후가 스타더스트에 올라타고, 그 뒤를 이번에 함께한 기수들이 현지에서 지급받은 말과 함께 자리 잡았다.
“거, 그림이네.”
얼마 전까지 LBS의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사표를 던지고 나온 한영수 PD가 중얼거렸다. 그 옆에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던 나엔 엔터테인먼트의 실장이 맞장구쳤다.
“그러니까요. 잘생긴 거로는 우리 명한이도 빠지지 않는데.”
“저 친구에게 까였다며?”
“거, 큼, 언제 들으셨대.”
“이미 소문 쫙 퍼졌어. 명한이도 툴툴거리더만.”
“그런 거로 질투하고 할 친구는 아니에요.”
한영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에 은후의 일정에 다른 마사회의 기수들이 함께하게 된 표면적 이유는 어디까지나 홍보 영상 제작을 위한 것. 그리고 그 일정에 나엔 엔터테인먼트가 슬쩍 꼽사리를 꼈다. 이번에 데뷔하려는 신인을 위해서.
“근데 진짜 잘 어울리네요.”
은후를 바라보면서, 그리고 그 옆에 어느새 다가온 이하연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에 두 사람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홍보 영상에는 쓸 수 없지만 말이야. 조건은 어디까지나 사진만이었거든.”
“큼, 아쉽겠어요?”
“어쩌겠어. 비공식적인 소장용으로라도…… 아, 나, 간다.”
“예, 열심히 하십쇼.”
한영수 PD가 차량이 후다닥 올라탔다. 이윽고 은후가 스타더스트를 몰고 달리기 시작했다.
* * *
말이란 아주 오랜 세월 인간의 손에 길들여져 왔다. 인간이 탈 수 있는 동물 중 가장 빠르고 오랫동안 잘 달리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말의 가장 큰 존재 의의는 사람과 함께 달리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전투, 운송 등은 부차적인 것. 산업 혁명 이후 기차를 비롯하여 자동차 등이 개발되어도 그 존재 의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과거와 다르게 온전히 달리기만을, 파생되는 목적이 취미나 오락으로 전락하였지만.
결국 달리는 것.
물론 비교적 지능이 뛰어난 말이었기에 개중에는 드물게도 달리는 걸 귀찮아하는 말도 있었다.
‘레트라 백작가에서 기르던 말이었지.’
하지만 스타더스트는 아니었다.
오롯하게 달리는 것만을.
‘집중!’
푸르르르르륵.
달리는 와중에 은후의 다른 생각을 눈치챈 스타더스트가 의사를 전달했다. 은후는 피식 웃으며 스타더스트의 목덜미를 한 차례 쓰다듬었다.
그래, 오늘은 스타더스트를 위한 날.
따가운 햇빛과 서늘한 공기를 가로지르며, 땅을 박차며 자연스레 발굽을 통하여 기수까지 전달되는 진동을 느끼며.
달리고.
달리고.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박찬다.
처음에 신난다며 환호성을 지르던 스타더스트는 어느새 침묵했다. 오롯이 달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마침내 온 정신이 의식도 못 한 채 본능적으로 달리는 것만을 행위했다.
어느새 함께 출발했던 다른 말들과 점점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함께 보조를 맞추는 건 인간의 손으로 빚어낸 기계였다.
자동차, 그리고 은후의 등에 매달려 있는 귀신 성호.
‘멋지네.’
사람과 말이 호흡을 맞추며 온전히 달리는 것만 집중하는 건.
‘아니, 아릅답다는 표현이 정확할까.’
애써 따라온 보람이 있었다.
지금 이 광경을 두 눈으로 담을 수 있어서.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려나.’
그리고 곡을 만들 수 있어서.
스타더스트가 죽음 후에도 달릴 수 있으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한 성호의 눈동자에 안타까움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