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그런데 무슨 애교를 보여 줘야 할까.
‘으.’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니지만 오늘 연인이 된 날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하연에게 있어서 나름대로 심각한 문제였다. 원래 연애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남들이 생각하기에 정말 사소한 건데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심각한 일이 가득한 세상. 상대방의 별생각 없는 한마디에 마음이 휘청거리는 일.
사실 은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심각하거나 굳이 꼭 봐야겠다 싶어서 건넨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렇게 말한다면 분명히 이하연의 기분은 상할 터.
그리고.
‘보기 좋네.’
예쁘기도 하고.
그래서 은후는 이하연의 마음을 잘 알면서도 그냥 웃으면서 요리 준비를 계속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리액션 좀 다양하게 해 둘걸.’
방송하면서 후원을 받으면 그 답례로 어떠한 행위를 돌려주는, 그런 문화가 자리를 잡으려던 시기였기에 이하연도 몇 가지 준비해 둔 게 있기는 했다.
실제로 방송에서 보여 주기도 했고. 하지만 이 자리에서 준비했던 애교를 보여 주는 건 좀 그랬다. 단둘이니까. 게다가 은후도 쭉 자신의 방송을 봤으니까.
‘기왕이면 좀 특별하게.’
이하연이 입꼬리를 애써 들어 올리며 하이톤으로 앙탈을 부리려다가 흠칫했다. 보다 못한 은후가 다가와서 이하연의 이마에 검지를 툭 가져다 댄 것이다.
“뭘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고민해.”
“아니이, 그래도.”
그냥 지켜보고 있으려고 했는데, 조금 안쓰러워서.
“다음에 보여 줘도 괜찮으니까.”
“어?”
“지금 만들려는 요리는 라따뚜이야. 프랑스의 전통 채소 요리.”
“프랑스? 아.”
게임 마법과 검술의 무대는 유럽이었다. 개중에서도 메인이 되는 건 프랑스. 다만 시대 배경이 달랐다. 핵전쟁으로 망해 버린 세상에서 폐허가 되어 버렸다는 설정이었기에.
“에펠탑 가 보고 싶다고 했던 건 기억나?”
“……긴가민가?”
“하여간.”
“라따뚜이란 음식은 처음 들어 본 것 같은데.”
“솔직히 한국에 살면서 접하기 힘드니까. 나도 게임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음식이고.”
그러니까 나도.
‘알고 있었다는 말인데.’
하지만 너무 예전의 일이었기 때문일까. 이하연은 과거를 떠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으, 으음, 뭐지.”
“뭐기는. 이리로 와. 일단 채소부터 크게 썰어야 하는데, 부엌에서 칼…… 잡아 본 적 있어?”
“과일은 깎아 봤어.”
“재료 손질을 위해서 칼을 쓴 적은 없다는 소리네.”
어떻게 할까.
물론 조심만 한다면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을 터. 설령 크게 사고가 난다고 할지라도 은후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는 했다. 단순한 검상이라면, 또 그게 상처 입은 직후라면 마나를 이용해서 어떻게든 치료할 수 있으니까.
하물며 예전과 다르게 깨달음을 얻으며 마법의 경계를 어느 정도 넘나들게 된 상태였다. 문제라면 상처를 치료한 후 해야 할 설명이지만.
‘너무 나간 생각인가.’
애초에 그 정도 상처를 입을 일은 없을 텐데.
‘그럴 것 같으면 막으면 되니까.’
이 정도 거리라면 사고의 흐름을 가속하여 신체를 움직이면.
“그렇게 걱정되면 은후 네가 칼질해.”
“그래, 그게 좋겠다.”
언제부터였을까.
이하연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이 정도로 깊숙이 파고들었을 줄이야. 평소에는 잘 몰랐다. 아니, 어느 정도는 알았으나 정확히는 몰랐다. 그런데 마법과 관련하여 사고의 흐름이 이어지다 보니 은후는 냉정하게 자신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다른 재료 손질은 내가 할게. 야채도 마저 더 씻어야 할 거고. 아, 고기 굽는 건 가끔 해 봤어. 닭고기는 내가 구울까?”
그렇게 두 사람은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차근차근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은후의 손을 거쳤지만 분명한 건 거기에 이하연의 지분도 있다는 것.
잠시 후.
“어우, 배고파.”
닭 다리 살을 프라이팬에 구우며 이하연이 투덜거렸다.
“밥을 좀 오래 굶기는 했나 보다.”
“쇼핑도 그렇고, 요리도 마찬가지고, 그냥 평범한 일처럼 보이지만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일이잖아. 그래서 더 그렇게 느껴질 거야. 아마 자각은 못 하고 있지만 적잖이 지쳤을걸?”
“그런가?”
“그렇지.”
“그래도.”
딱히 잘 모르겠는데.
왜냐하면 은후와 함께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감정이, 뇌에서 흐르는 도파민이 이하연에게 힘을 공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냄새에 위가 반응하는 건 사람의 본능인지라 배고픔을 자각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요리를 모두 완성했다. 그리고 식탁에 접시를 올린 후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았다. 이하연은 음식을 잠깐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굳은 결심 후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큼큼.”
애교, 다음에 해도 된다고 했지만.
오늘과 같은 날에 추억 한 조각을 더 남기고 싶어서. 은후가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줬고, 내가 말했던 로망을 실현해 줬으니까. 애교 정도는 오늘.
“은후야아, 맛, 맛있게 먹어! 하연이도 열심히 옆에서 도왔어!”
일부러 귀여운 목소리로, 3인칭화하여서.
“하연이도 배고파! 얼른 먹자!”
은후가 피식 웃었다.
“노력했네?”
“……어, 응.”
이하연이 달아오른 볼에 손으로 부채질하며 휙 고개를 돌렸다.
“다음에는 더 기대해도 되지?”
“어어, 응, 아마도?”
이윽고 이어지는 식사.
하지만 이하연은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은후와 단둘이 연인으로서 첫 식사를 하고 있어서.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하지만 일부러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식사를 이어 나가는 은후의 배려에 어느 순간부터 음식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지극히 단순한 요리인데.
‘맛있다.’
정말로.
‘이런 생각 하면 좀 그렇지만, 우리 엄마보다 은후가 더 요리를…… 어? 엄마?’
프랑스.
엄마.
마법과 검술.
‘로엔?’
한 NPC의 이름이 떠올랐다.
“맞아, 로엔. 그런 이름이었어.”
“기억해 냈구나.”
핵전쟁이 터지고 모두가 불행을 겪은 시대였다. 그래서 저마다 사연이 없는 캐릭터는 없었다. 개중에서도 유독 이하연의 기억에 남은 NPC, 로엔.
“‘엄마……가 해 준 라따뚜이 먹고 싶다.’ 분명히 그런 대사였어, 마지막에 죽을 때.”
“3차 시나리오 업데이트 때였지.”
“그거까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 맞아. 그것도 생각났다. 나는 로엔 히든 퀘까지 했지만, 너는 안 했잖아.”
“그랬나?”
“그랬어. 거기서 시나리오가 갈리잖아. 마법사는 로엔 히든 퀘를 할 수 없었으니까. 검술사만 할 수 있었어.”
그랬나.
은후가 기억을 더듬었다.
‘아.’
정확히는 마법사라는 직업도 로엔의 히든 퀘스트를 할 수 있었지만 보상은 받을 수 없는 형식이었다. 그래서 은후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몇몇 유저들은 보상도 없음에도 진행이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제작진의 노림수라며 뭔가 더 숨겨진 게 있을 거로 판단하고 다양하게 시도를 했다.
‘결국 별거 없었던 거로 밝혀졌지.’
진실은 제작진의 단순한 실수.
세월이 한창 흐른 후, 당시 제작진의 인터뷰에서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게임이 망한 지 한참 지났기에 별다른 관심을 받지도 못했지만. 애초에 인터뷰도 다른 새로운 게임의 곁가지 형식이었다.
‘심층 인터뷰라서.’
이런 사소한 것까지 기억할 수 있는 게 어떨 때는 축복이지만, 때로는 저주처럼 느껴졌다. 만약 의식적으로 외면할 수 없었다면 감정이 지금보다 더 메마르지 않았으려나.
‘결국 마법사도 사람이니까.’
깨달음의 한 조각이 찾아왔다.
마법사도 사람, 그 단순한 사실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인데, 은후의 가슴을 울렸다. 애초에 깨달음이라는 게 별거인가. 별거는 맞으나 깨달음이란 건 사람마다 전부 다른 것을.
같은 말이라도 받아들이는 바가 다르고 느끼는 게 다르지 않은가. 그렇기에 깨달음이란 건 느끼는 것이지, 언어나 문자로는 근본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래.’
음식을 먹는 것도 사람이기에.
찰나의 순간, 영원과도 같은 사고의 흐름 속에서 은후는 마법사로서 한층 더 성장했다.
‘바라지 않았는데 얻는구나.’
그렇게 바랐던 것인데.
이제는 굳이 바라지 않건만.
그 와중에도 이하연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애초에 은후의 깨달음은 정말로 순간이었기에.
“히든 퀘를 다 깨면 로엔이 귀신이 되거든.”
“귀신이?”
“어, 시나리오상 로엔이 귀신으로 등장해서 도와주잖아. 기억 안 나?”
“안 나지. 난 접었잖아.”
“맞다. 왜 접었지?”
“딱히 이유는 없었지? 단순하게 질려서.”
그나저나 귀신인가.
귀신이라면 정령.
‘그런데 사이버 공간에서도 귀신이…… 될 수 있나?’
은후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로엔의 이야기는 게임의 설정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사이버 공간에서 정령이 탄생할 수 있을까에 관한 건 은후에게 있어서 꽤 흥미로운 주제였다.
‘될 것 같기도 하고.’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예전이라면 단호하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코웃음을 쳤을 텐데, 하지만 지금의 은후로서는 아리송했다.
‘사이버 공간에도 사람의 감정이 담길 수 있으니까.’
그걸 알게 된 건 이하연의 브이튜브에 달린 리플에서였다. 기타를 쳤던, 피아노를 쳤던 영상에 달린 댓글에서 정말로 미약하지만 감정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나저나, 나 맞췄어!”
“그래서?”
“약속.”
“약속을 했던가?”
은후가 빙그레 웃으며 이하연을 골리려다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까보다 훨씬 자연스럽네.’
애교라면 이게 애교인가.
“좋아해.”
“어?”
“분명히 말했다?”
“……나도 좋아해. 그러니까 다시 한번만.”
“다음에. 밥이나 마저 얼른 먹어. 젓가락 논다.”
이하연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나저나 말할 거 있었는데, 깜빡할 뻔했네.”
“뭔데?”
“몽골.”
“몽골?”
“이번에 스타더스트하고 함께 나가기로 했거든.”
스타더스트가 누구지?
어떤 년…….
‘아니지. 어떤 년이 아니라 말이구나.’
이하연이 순간적으로 솟구치려던 감정에 화들짝 놀랐다.
“같이 갈래?”
“나도?”
“그런 로망이 생겼다며. 끝없는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로망.”
“아, 맞아.”
“이번에 어때?”
“으음.”
당연히.
“좋아.”
“날짜는?”
“딱히? 방송이야 휴방 공지 올리면 되고, 브이튜브 영상은 미리 업로드 걸어 두면 되니까. 몇 달씩 있다가 오진 않을 거 아니야?”
“넉넉잡아 일주일 정도 어때? 간 김에 관광도 하고 오자.”
“일주일 괜찮네. 그런데 둘이?”
“둘이. 관광이라면.”
“응? 그런데 관광만 단둘이야?”
단둘이 여행.
일전에도 여행을 했었지만.
‘외국으로.’
그런데 말을 국내에서 몽골로 옮긴다는 건 얼핏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 같은데. 그런 이하연의 궁금증은 이어지는 은후의 설명에 해소되었다.
“전주 승마장에서 말이지, 구체적으로는 승마장의 후원자 중 한 명이 지원하는 일이고. 모델 제안도 들어왔어. 너랑 나한테.”
“모델이라면 홍보 때문에?”
“어. 난 별 상관은 없는데. 어떻게 생각해?”
“글쎄. 나도 별생각은 없는데.”
“하지 말까?”
“……아니, 하자. 할래. 하고 싶어.”
“그래, 그럼.”
좀 더 내 거라고, 여기저기 티를 내고 다녀야지.
외모도, 성격도, 태도도 너무 뛰어나서, 내심 이하연은 불안했다. 물론 은후를 믿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이런 심리는 믿음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래, 그럼.”
“그나저나 있잖아.”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고.
두 사람에게 그런 하루가 쭉 이어졌다.
여우비가 얼굴을 드러냈다가 모습을 감추고 서늘한 바람이 불던 어느 날, 은후와 이하연은 그렇게 정식으로 연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