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이하연에게 있어서 캠코더를 들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한 일이었다. 물론 아예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처럼 쏟아지는 시선 하나하나에 그리 개의치 않을 정도는 되었다.
“혹시 방송사에서 나온 건가요?”
“방송사는 아니고요, 개인 방송이에요.”
“개인 방송이요?”
“네. 브이튜브 아시나요?”
이따금 호기심에 질문하는 사람에게 적당히 대답해 주며 애써 웃음 짓는 것도.
“진짜 예쁘시다.”
“감사합니다.”
대놓고 듣는 외모에 대한 칭찬도, 예전이라면 좀 더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서투르게 대응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엔 그래도 이런 칭찬은 듣기 힘들었지.’
삶이란 세월의 탑을 쌓아 올리다 보면 외모에 대한 건 스스로 자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외모가 뛰어나도 연예인이 아니라면 이렇게 대놓고 칭찬을 듣는 건 의외로 드물기 마련이었다.
“옆에 분도 정말 잘생기셨어요. 남자 친구분?”
“그으…….”
닭고기를 사고 오는 길에 말을 건 시식 코너의 한 젊은 여성. 날카로운 눈매와는 다르게 서글서글한 말투였다. 하지만 이하연은 여성의 질문에 머뭇거렸고, 은후가 대신해서 짧게 답했다.
“네. 뭐.”
“아하, 왠지 딱 보니까 그런 것 같더라니. 그나저나 시식 코너니까 이거 한번 먹어 보시고 가세요. 이번에 나온 신제품인데 진짜 맛있거든요. 우리 아들이 정말 좋아해서 주위에 적극 권유하고 있어요. 홍보라면 홍보인데.”
이하연이 은후를 잠깐 바라보다가 여성에게 물었다.
“결혼하셨어요?”
“그쵸. 벌써 5년이나 되었네요.”
“5년이요?”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했거든요. 그리고 내년이면 나이가 계란 한 판이에요.”
“네? 절대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빈말이라도 듣기 좋네요.”
“빈말이 아닌데.”
“하여간 이 만두 진짜 맛있으니까요.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거 많이 판다고 저한테 딱히 떨어지는 것도 없어요.”
한동안 이하연과 여성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일찍 결혼했다는 말에 이하연에게 호기심이 일었던 탓이다.
“……사실 가끔 후회도 해요. 경제적으로 형편이 넉넉한 건 아니라서요. 그래도 좋더라고요.”
결혼.
아직 이하연에게 있어서 너무도 먼 이야기. 어렴풋이 은후와 함께 늙어 가는 미래를 상상한 적이 있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막연하기 그지없었다.
그 과정에 있는 결혼, 아이.
‘으, 잘 모르겠다.’
그래도,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저럴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말이 좀 많았죠?”
“아니에요. 아, 그런데 제가 개인 방송을 한다고 했잖아요. 혹시 방금 나눈 대화 방송으로 내보내도 될까요?”
“브이튜브는 저도 알아요. 어, 그래도 얼굴은 좀 그런데.”
“모자이크 처리 잘할게요.”
“그러시다면, 뭐어,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이하연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쇼핑을 마저 마치고 은후와 이하연은 마트를 벗어났다. 그리고 차를 타고 가던 도중 이하연이 툭 내뱉었다.
“그런데 제대로 된 고백은 못 들은 것 같은데.”
“뭐가?”
“……아까 남자 친구라고 그랬잖아.”
“직접 말한 건 아니지만.”
“말꼬리 잡기는.”
이하연이 웃으면서 신호등이 빨간불인 걸 확인하고 은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리고 고백을 안 했어도 틀린 말은 아니지? 남자 사람 친구니까.”
그거야 그런데, 이하연은 왠지 모르게 서운해지려고 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남자 친구라는 정의에도 그다지 어긋나지 않잖아.”
이어지는 은후의 말에 그 마음이 반대가 되었다.
“반쯤은 고백했고, 조만간 확실하게 말하려고 생각하고 있어.”
“어, 응. 그래?”
“아니면 먼저 고백해도 되고. 지금이라면 기쁘게 받아 줄 수 있을 것 같거든.”
“그 전에는 아니었다는 소리야?”
“고민을 꽤 많이 했겠지.”
그건 이하연도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은후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한때는 그냥 친구로 남을까도 고민했다.
왜냐하면 친구라는 관계마저 깨고 싶지 않으니까. 자신의 고백을 은후가 왠지 모르게 거절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렇지만 끓어오르는 자신의 마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지금은, 지금은. 괜찮다는 소리네.”
“어.”
아, 다행이다.
어느 순간부터 괜찮을 거라고, 그럴 거라고 여겼다.
그런 말이 있지 않던가. 고백은 도전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교환한 후에 말로써 확인하는 거라고. 그러나 이하연은 항상 불안했다. 반쯤 고백을 받은 후에도 마음 한구석에서, 행복한 만큼 불안함도 컸었다.
“좋아해.”
“나도.”
“그치. 그럼 오늘부터 내 남자 친구 할래?”
“……분위기 없기는.”
“그래도, 계속 기다리기는 너무 힘들 것 같단 말이야. 사실 그런,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멋진 장소에서 로맨틱한 고백을 꿈꾸기도 했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런 거보다는, 당장 지금의 마음이.
사실 지금 이렇게 갑자기 고백하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까 남자 친구가 맞느냐는 질문에 머뭇거린 것과 다르게 단호하게 대답한 은후의 말투가 이하연의 감정을 질주하게 만들었다.
“지금 확인받고 싶어.”
은후가 이하연의 표정을 살피며 차를 근처에 대었다. 그리고 이하연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이하연은 은후의 얼굴이 다가오는 과정이, 그리고 짧은 순간 서로의 입술을 부딪친 순간이.
‘어.’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흔히 말해지는, 죽음 직전에 겪는다는 찰나와 같은 영원이 이러할까?
“확인됐어?”
“…….”
이하연이 멍하니 답했다.
“마, 말은?”
“응?”
“사람은 말을 안 하면 모른다고 했잖아.”
“바보네. 때로는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는 것도 있는 법인데.”
“저번에 말한 거랑 완전히 다른 말이잖아.”
“원래 사람은 모순적이니까, 말도 그렇지.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오늘부터 1일이야.”
1일.
‘오늘이 며칠이었지?’
둥실둥실, 머리가 마치 구름에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라, 그래서 생각이 제대로 이어지질 않았다. 은후가 다시 차를 몰고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간신히 정신을 차린 이하연이 은후를 바라보며 조금 뚱한 표정을 지었다.
‘으, 왠지 나만 들뜬 것 같은데.’
은후는 그러지 않은 것 같아서 그게 조금은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것도 매력적이니까.
‘상상이 잘 안 되네.’
나처럼 은후가 안절부절못하는 그런 모습이. 그런 이하연의 마음을 알아차린 은후가 이하연의 안전벨트를 풀어 주며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나도 좋아하니까.”
“……응.”
“그렇지 않았다면 거절했을 거야.”
“응.”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 하지 말고.”
“불안해 하지는 않았다, 뭐. 고백받기 전에는 그랬었지만. 그런데 선팅 진해서 좋다.”
사실 상관 없었…… 아니.
‘상관 있나?’
선팅이 안 되었으면 주위의 시선 때문이라도 이렇게 행동하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
“아까 배고프다고 했었지. 얼른 들어가자. 밥 만들어 줄게.”
“몰라. 지금은 안 고파.”
마음이 행복에 절여져서.
“그래도 조금 있으면 배고플걸?”
“으으, 그러려나.”
“밥도 많이 안 먹으면서. 세 끼도 안 챙기잖아. 아침은 자주 거르고.”
“입맛이 없어서.”
“그러니까 살이 안 찌지.”
“아니.”
“조금 쪄야 해. 저체중이잖아? 구체적으로 3킬로그램쯤은. 더 빠지면 절대 안 되고,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너무 마르면 보기도 안 좋아.”
그건 이하연도 동의하는 바였다. 아무리 마른 게 보편적인 미가 된 세상이라지만, 방금 은후의 말대로였다. 일전 공무원 생활에서 한창 따돌림을 당했을 때 스트레스로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 병원까지 갔었던 경험 때문에, 이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밥 먹자. 나도 도와줄게.”
“굳이? 손님이니까 편하게 쉬고 있으면 되는데.”
“그래도, 남자 친구니까. 응, 그리고 그런 로망이 있었어. 남자 친구랑 같은 부엌에서 요리를 만드는, 그런 거?”
“로망을 괜히 로망이라고 부르는 법이 아닌데. 그거 은근히 어렵다? 번거롭고.”
부엌에서 같이 요리한다는 건 업장이 아닌 이상 꽤 어려운 법이었다. 동선을 비롯하여 서로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함께 자주 쓰는 공간이 아니라면 조미료나 도구의 위치도 헷갈리기 쉬웠다.
“그래도 같이 해 볼까.”
“……응.”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후 이하연이 잽싸게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운전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
“한번 해 주고 싶었어.”
“착하네, 우리 하연이.”
우리 하연이.
이하연은 절로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삼킨 후 은후에게 물었다.
“여기야?”
“어.”
“예쁘다. 마당도 있네?”
“작기는 하지만.”
조금 오래된 전형적인 2층 주택.
빨간 벽돌과 담장이 이하연의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예전에 살았던 우리 집 같네.’
윗집에 세를 내주었었는데.
“윗집은 비었어?”
“비었지.”
“어떻게 쓰려고?”
“글쎄, 딱히 생각 안 해 봤는데.”
“흐음.”
1층과 2층이 분리된 구조니까.
“내가 살까?”
“갑자기?”
“아니, 뭐어. 전주로 오려고 계속 생각은 하고 있었으니까. 아, 그리고 월세는 제대로 낼 거야.”
“진도가 너무 빠른데.”
“확실히 분리된 구조여서 조금 부담이 덜 하잖아.”
만약에 내부에서 이어진 구조였다면 이하연도 이렇게 쉽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나중에.”
“왜?”
“천천히, 뭐든 급하다고 빠른 게 좋은 건 아니니까.”
“그거야 그치만.”
“거절하는 건 아니니까 표정 풀고. 이제 1일이잖아. 연인으로서 할 건 정말 많아.”
“그런가?”
“그럼. 그러니까 일단 가끔 놀러 오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은데.”
뭐든 급하면 좋을 게 없는 법.
“……응.”
이하연도 너무 들떠서 자신이 급했다는 걸 자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래서 기억은 났으려나?”
“응? 뭐가?”
“애교.”
“아.”
마법과 검술.
오늘 만들어 줄 음식에 관한 힌트.
‘생각 안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억에서 사라져서.
“만들다 보면 기억날지도?”
이하연의 말에 은후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글쎄? 그러려나.”
“으, 절대 기억 못 해낼 거라는 느낌인데.”
“그건 아니고, 일단 들어와.”
“으응.”
이하연은 안으로 들어서며 살짝 놀랐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내부는 모더니즘적 감성이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단점이라면 막 이사했다는 티가 날 정도로 채워진 가구들이 없다는 것일까.
“조금 삭막한 것 같아.”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차차 채워 나가야지. 같이 할까?”
“응?”
“같이 꾸미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이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좋겠다.’
마치 신혼집…….
‘……은 아니지만.’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
이 순간이 계속 이어졌으면, 또 반대로 얼른 시간이 흘러 은후 옆에서 눈을 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충돌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짐을 내려놓은 후 손을 씻고 주방에 함께 섰다. 은후가 방금 사 온 채소를 씻으며 물었다.
“애교는 보여 줄 거야?”
“응?”
“힌트.”
“아.”
솔직히 여전히 감도 안 잡혀서.
‘그런데 애교도.’
잘 감이 안 잡히는데.
‘으.’
조금 기대에 찬 은후의 눈동자에 이하연이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