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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112화 (112/170)

제112화

은후가 이하연에게 물었다.

“혹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먹고 싶은 거?”

“어.”

“그러게. 슬슬 밥 먹을 시간이구나.”

아침에 준비하느라 바빠서 식사도 걸렀다. 마지막으로 밥을 먹은 건 어제, 그것도 평소에 비하여 이른 시간이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딱히 배가 안 고파서 그런가, 별생각이 없네.”

“어제 일찍 밥 먹고 아무것도 안 먹었지 않나?”

“그건 어떻게……. 아, 맞다. 내가 문자 했구나.”

“방송도 봤고.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으응. 하여튼 밥이라.”

딱히.

“어패류만 아니면야.”

“그건 알지.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어째서일까, 배가 고프지 않은 이유는.

‘그건 아마도.’

은후와 이렇게 직접 마주하고 있어서.

사실 직접 대면하여 대화를 나누는 건 객관적으로 따져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하연의 주관적인 관점에서는 꽤 길었다. 그 때문인지 현재 이 시간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럼 맘대로 만든다?”

“만들어 주려고?”

“그렇지. 그런데 집에 지금 아무것도 없어서. 쇼핑부터 하자. 괜찮지?”

“당연히 괜찮지.”

이런 시답지 않은 대화.

하지만 너무 좋았다.

지금과 같은 일상이 매일 반복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이하연도 알고 있었다. 일상이 되는 순간 그건 당연한 일이 되어 버리니까, 그러니까 무덤덤해질 확률이 높았다.

익숙해지다가 어느 순간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리는. 이런 대화도 그렇게 될 확률이 높겠지. 그러나 그건 그때 가서. 다만 그러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방송도 그래.’

처음엔 너무 긴장했는데,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요새는 딱히.’

당연한 일이었다.

어떠한 일이든 계속 반복하다 보면 능숙하게 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그걸 알고 있기에 이하연은 최근 초심을 다시 되새기려 애썼다.

‘은후와의 관계도.’

아직 너무 이른 생각이라지만.

‘계속해서 쭉 노력하지 않으면.’

그런 생각을 거듭하던 이하연에게 은후가 물었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어?”

“응?”

“표정이…….”

“티 났어?”

“조금.”

“별거…… 아닌 건 아닌데. 그렇다고 심각한 건 또 아니고. 그냥 너무 좋아서.”

꽤 진지한 이하연의 말에 은후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무슨 고민 있으면 말해.”

“딱히 상담할 거까지는 아닌데.”

“네가 그렇다고 말하면 그런 거겠지. 조금 서운하기는 하지만.”

“어, 응? 아아아아니, 서운해 할 것까지는 아닌 게, 고민이랄 것도 아니었어.”

그야.

‘은후가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 고민하다가 말을 안 해 주면 나도 서운해…… 어?’

이하연이 당황하며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본능적으로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뭔가 입을 열다가 흠칫했다. 은후의 표정과 다르게 눈이 장난스러워서.

“그으, 혹시 지금 나 놀리는 거?”

“조금?”

이하연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나, 진짜 당황했는데.”

“그랬어요?”

“그랬거든요.”

“내리자.”

“벌써 도착했어?”

“도착한 건 좀 됐지. 누구 씨가 심각한 표정 짓고 있을 때.”

“심각한 표정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거야 그런데.”

이하연이 일부러 삐진 척 표정을 이어 가려다가 포기했다.

그냥.

‘좋다.’

이런 장난을 칠 수 있을 정도의 사이가 되어서, 좀 더 은후와 가까워진 게 실감이 되어서.

그런 이하연의 감정을 은후도 알았기에 그냥 웃고 말았다. 만약에 이하연이 진짜로 기분이 상했다면 은후는 이런 식으로 말하지도, 장난스러운 태도를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캠코더는 안 챙겨?”

“아, 맞다.”

영상 찍어야 하는데.

그런데 굳이 찍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은후와의 만남을 콘텐츠로 뽑는다면 영상 조회수는 거의 보장된 바나 다름없었다. 근래 <비와 사랑>의 공개 이후 은후에 관심이 더욱 폭발했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에서.

현재 이하연의 브이튜브 구독자 및 조회 수는 대부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방송을 시청하는 외국인도 상당히 늘어난 상태였다.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 같던데.’

브이튜브의 영상이야 외국인의 시청 비중을 확인하고 영어 자막을 달았다지만, 생방송은 아닌데. 어쨌거나 그런 상황이었기에 수익적인 면이나 브이튜브 채널의 성장 등을 고려하면 무조건 캠코더를 드는 게 맞았다.

하지만 이하연은 그게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자신의 일상조차 콘텐츠화를 해야 한다는 게. 그리고 이런 자신의 고민은 아까와 다르게 은후에게 상담하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요새 종종 고민하는 건데.”

“응.”

이하연이 캠코더를 만지작거리며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일과 일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 같아서. 최근에 너랑 만난 거 외에도 일상 콘텐츠 영상 조회수가 부쩍 늘었거든.”

“알지. 나도 봤어.”

“그래서 영상 조회 수나 수익을 생각하면 일상을 담는 게 맞잖아.”

“그치.”

“근데 그게 좀 그렇더라고. 뭐라고 구체적으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아까와 다르게 은후도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사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거잖아? 목소리뿐이라고는 하지만.”

“응.”

“부담스러운 것도 있겠고.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만큼 사생활이 공개되니까 싫은 것도 있겠지. 좋기도 하겠지만. 악플도 적잖이 달리고 있잖아?”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연예인과 다르게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 또 원하는 걸 오롯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취사 선택하여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다는 것 정도일까.

하지만 그럼에도 리스크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금전적인 면을 떠나서 심리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특히. 하지만 이는 방송이란 업을 선택한 이상 필연적인 결과였다.

“일상을 담는 게 부담스럽다면 이제부터라도 공개하지 않아도 돼. 조금이라도 싫다는 감정이 들면 안 하는 게 맞고.”

“그건 또 아닌 것 같거든?”

“그러면 고민하고 또 고민해.”

“고민?”

“어, 마음만 먹으면 영상 안 올리면 그만이잖아? 애초에 메인 콘텐츠는 게임이고. 지금 주객전도가 된 것 같지만, 게임에 관한 것만 영상으로 만들어도 충분히 괜찮을 거야. 너, 능력 있어. 정확히 말하면 방송에 대한 감각이랄까?”

“그, 그래?”

이하연은 이런 칭찬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애초에 주위에 방송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도 있었고. 그래서인지 은후를 제외하면 모두 호기심을 드러내고 궁금증을 풀고자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부담스럽고 싫으면 올리지 마. 애매하면 고민하고. 그러니까 오늘은 일단 영상을 찍어. 브이튜브에 올리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냥 단둘이 추억으로 남기는 것도 좋지 않겠어?”

“……응, 그것도 좋겠네.”

추억이라, 둘만의.

그건 꽤 달콤한 말이었다.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으면 올려도 좋고.”

“둘 다 좋은데.”

“그럼 고민해야지?”

“넌? 괜찮아? 목소리뿐이라고는 했지만 나만 나오는 건 아니잖아.”

“뭐.”

은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안 괜찮으면 진즉 말했지. 영상 올리지 말라고.”

“그런가.”

“그래.”

“응.”

이하연이 캠코더를 켜고 일부러 크게 외쳤다.

“가자!”

“어딜?”

“쇼핑하러! 오늘 밥 만들어 준다고 했잖아?”

“그랬지.”

“메뉴는 생각해 뒀어?”

물론 생각해 뒀다.

* * *

카메라를 들고 쇼핑하는 은후와 이하연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개인 방송이 드물다는 시대적 배경도 그렇지만 두 사람의 외모가 무척 뛰어났기 때문이다.

“일단 채소랑 과일부터 사자.”

“샐러드?”

“글쎄.”

“뭔데, 뭔데.”

“그건 나중의 즐거움으로. 혹시라도 메뉴 맞추면 선물 줄게.”

“선물은 내가 줘야 하는 거 아냐?”

“아까도 말했었잖아. 여기 온 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게 선물이라면 선물이지.”

“어, 그.”

오글거리는 말인데.

그런데 심장 박동이 더욱 거세지는 건 은후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서.

“큼.”

이하연이 헛기침을 하며 은후의 뒤를 따라갔다.

“가지 괜찮아?”

“어? 응,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일단 가지, 그 외 토마토, 양파, 피망을.

은후가 만들려는 음식은 라따뚜이였다. 프랑스 남부에서 발생한 전통 채소 요리의 일종으로서 만드는 방법 자체는 간단했다. 그럼에도 라따뚜이를 만들려는 건 이하연이 과거에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연이도 기억할까.’

은후의 시간으로 아주 오래전.

직접 만나기 전에, 온라인에서 친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 프랑스에 한번 가 보고 싶어.

- 프랑스? 뜬금?

- 이번 게임 배경이 프랑스잖아.

- 그게 무슨 상관? 평소에 게임 스토리 별로 신경 안 쓰잖아.

- 아니, 근데 서브 퀘스트에서 좀 찡했단 말야. 이름도 없는 NPC인데 죽으면서 남긴 유언이…… “엄마 보고 싶다. 엄마가 해 준 라따뚜이 먹고 싶다”였다구.

- 아, 그 NPC, 엄마는 진즉 죽었다는 설정이던가?

- 그럴걸?

- 궁금하면 좀 더 파 보든가. 히든 퀘 있을 거 같은데.

- 히든?

- 퀘스트 보상 보면 딱 감 안 오냐.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더라.

오늘처럼 여우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잘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음식 조리 방법에 관해서 이런저런 공부도 충분히 했고, 연습도 했지만.

‘걱정이라.’

은후가 내심 피식 웃었다.

추억을 떠올려 의미 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려고 공부하고, 그걸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하고. 그런 거부터가 이미 이하연이 꽤 자신의 마음속 깊숙이 들어왔다고 느껴져서.

“뭐야.”

“뭐가?”

“아니, 갑자기 빤히 바라보면서 웃길래.”

“그냥, 좋아서.”

“어?”

“가자.”

“어어, 방금 뭐라고 했어? 다시 한번 말해 봐.”

“들었으면서 못 들은 척하기는.”

“진짜 못…… 들은 건 아니지만.”

만약을 위해 닭 요리도 준비했다. 닭 다리 살 같은 건 간단하게 조리하는 것만으로도 맛있으니까. 예컨대 가볍게 구우면서 소금과 후추를 뿌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최소한의 맛은 보장되었다.

“정 다시 듣고 싶으면.”

“싶으면?”

“애교라도?”

“여기서?”

“좀 그런가?”

이하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은후를 노려봤다.

“나 놀리는 거 맞지?”

“반 정도는. 근데 애교 보고 싶은 건 진짠데.”

“……그건 단둘이 있을 때.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지금 다 찍고 있거든? 아까부터 계속. 다시 돌려보면 되겠네.”

“그러든가.”

“으.”

은후가 닭 다리 살을 사기 위해서 이동하며 말했다.

“그럼 힌트 줄까?”

“무슨 힌트?”

“오늘 메인 요리. 참고로 지금 닭 다리 살 사러 가는 길인데, 그건 아니야.”

“그러면?”

“게임.”

“게임?”

“예전에, 고등학교 1학년 때 했던 RPG 기억나?”

“고등학교 1학년 때라면…….”

이하연이 기억을 더듬었다.

“마법과 검술?”

“어, 그거.”

“와, 진짜 오랜만에 듣는다.”

“아직도 서비스 중이더라.”

“그거 안 망했어?”

“그렇지. 하여간 그게 힌트.”

게임이 힌트라고 했으니까.

‘게임에서 나왔던 무슨 음식이려나.’

뭐지.

“으으으으음.”

뭘까.

하지만 은후와 다르게 평범한 사람이었던 이하연은 단번에 그때의 대화를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우, 씨.’

뭐지, 뭔가 기억이 날듯 말듯.

갑갑했다.

“힌트 조금 더 줄까?”

“어.”

“이따가 애교 보여 주면.”

“……내가 생각해 내고 만다.”

이하연이 굳게 다짐하며 기억을 되살리려 애써 노력했다.

‘애교야 보여 줄 거지만!’

부끄럽지만, 그래도 단둘이서 있는 공간에서라면, 뭐.

그것과 별개로 이하연은 꽤 승부욕이 강한 편이었다. 물론 이게 승부나 어떤 경쟁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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