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어머니와 차를 타고 덕진 공원으로 가는 길.
은후가 말했다.
“어머니.”
“응?”
“요새 불편한 건 없으세요?”
“딱히?”
새삼스럽다면 새삼스러운 질문이었다. 하물며 은후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뭔가 묻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세계에서 돌아온 이래, 알아서 잘해 왔으니까.
하지만 은후는 알았다. 아무리 감정을 파악하고 심리를 읽어도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영역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또한 현재 상황이 그러했다.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글쎄다.”
어려웠던 형편, 하지만 이제는 넉넉하다 못해 넘치는.
한마디로 돈 문제였다. 물론 그건 은후의 돈이었다. 그래서 은후의 어머니는 그거로 족했다. 아예 길거리에 내쫓길 정도의 상황이 아니라면, 아니, 설령 그런 상황이어도 아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을 사람이었다. 은후는 그런 어머니의 성향을 잘 알았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도 운전하셨잖아요.”
“장롱 면허 된 지 오래야.”
“차 한 대 사 드릴까요?”
“얘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아껴야지. 그래도 그런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네.”
정말로 느낌이 새로웠다.
다 컸다는 느낌이었다. 집을 샀다고 말을 들었을 때는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막상 두 눈으로 봐도 뭔가 잘 와 닿지 않았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까.
‘조금은 아쉽네.’
뿌듯함과 동시에.
어머니의 표정을 살피던 은후는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 대 마련해 드려야겠어.’
확실히 차가 있으면 편하니까. 물론 금전적인 걸 고려하면 차는 없는 편이 나았다. 무조건적으로. 차는 다른 자산과 다르게 사는 순간부터 가치 하락이 시작되는 물건이니.
그러나 편의성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당장 마법이란 이적을 다루는 은후만 해도 그렇게 느끼는데, 보통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분명히 어머니가 예전에.’
은후가 기억을 더듬었다.
큰 차가 취향이라고 하셨지.
‘그 외에 딱히 기억에 남는 말이 없네.’
조만간 숍에 들러서 은근슬쩍 정보를 알아내지 않으면. 선물의 핑계는 적당하게.
‘생신……선물로 챙겨 드리기엔 날짜가 너무 머니까.’
뭐가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리가 짧았기에 금방이었다.
“여기도 오랜만에 오네.”
“언제 오셨었는데요?”
“10년은 훌쩍 넘었지. 네 아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왔었으니까. 마지막으로 했던 가족 나들이 기억나니?”
“……나죠.”
그때.
“은후다!”
수호령이 쪼르르 달려 나왔다.
언제나 그러했듯, 어깨에는 페럿 뀽뀽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뒤에서는 왠지 모르게 지친 표정을 지은 개구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고 있었다.
“응? 누구?”
은후가 살짝 웃으며 평소와 다르게 마나로 의지를 전달했다.
‘내 어머니.’
“엄마?”
‘응.’
“……응. 그러면 나한테도…….”
수호령이 입술을 달싹이다 결국 말을 멈췄다. 그러다가 싱긋 웃으며 은후의 어머니를 살폈다.
“은후야?”
“네?”
“그, 아니다. 네 아빠 생각하는 건 아닌 모양인데.”
“그걸 알아보셨어요?”
“그럼. 내 아들인데 왜 그걸 모르겠니. 반가운 사람이라도 만난 것 같은 눈치던데.”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은후의 어머니가 판단하기에는.
“그러게요.”
언젠가, 당장은 아니지만.
‘수호령을, 낙원의 주민을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어떤 말을 준비해야 할까. 은후는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착각했나 보구나.”
“아니요. 제대로 보셨어요.”
“그래?”
“네.”
상식적으로 이상한 말. 하지만 은후의 어머니는 굳이 더 묻지 않았다.
“은후 도령의 어머니라. 낙원의 주민들을 불러모을까?”
개구리의 물음에 은후가 고개를 미세하게 저으며 답했다.
‘굳이.’
“그나저나 어머니인가. 그렇구려. 은후 도령에게도 가족이 있겠지.”
‘당연한 소리를.’
“나는 기억이 잘 안 나서. 별 신경도 쓰지 않고. 태생이 정말로 한미한 동물이었고 애초에 알에서 태어났으니까.”
하지만 수호령은.
“나도 괜찮아. 부모와 함께 오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
괜한 걱정이었나.
개구리가 수호령에게 물었다.
“정말로?”
“응.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내게 부모는 있어서는 안 되니까.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는 하나의 세상이고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마련인데, 나는 그래서는 안 돼. 그래도 가끔은, 조금 쓸쓸하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은 가족이 있으니까. 은후도, 개구리도, 도깨비 삼촌도, 또 구미호 이모랑 연후 형이랑 성호 형도 있구. 그러니까 이젠 외롭지 않아. 아, 그래도 이건 좀 아쉽다, 제대로 인사 못 하는 거? 은후 엄마잖아.”
“그건 나도 좀 아쉬운데.”
은후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언젠가 기회를 만들어 볼게.’
“정말?”
‘그럼. 이런 거로 거짓말은 안 해. 애초에 그런 적도 없었지.’
“은후 도령이라면 처음부터 약속 자체를 하지 않거나, 아예 말을 하지 않거나, 본질을 흐트러트리겠지.”
‘개구리 말이 정답.’
“아하. 그러고 보니 그러네?”
수호령의 기억 속에 은후는 언제나 자신의 말을 지켰다.
“네 아빠가 참 좋아했는데.”
“덕진 공원을요?”
“응. 연꽃을 참 좋아했어. 왠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 이유는 제가 알아요.”
“네가?”
“네, 아버지는 부끄러워서 말을 못 하셨던 거로 아는데요. 어머니와 닮았다고 좋아하셨어요.”
“나를?”
생각지도 못한 이유에 은후의 어머니가 깜짝 놀랐다.
“네, 언젠가 말씀드리려고 했는데요.”
“……그러니?”
누군가의 죽음이 쭉 고통으로 남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추억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이제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관해 어머니도 덤덤해졌다고 판단했기에 은후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며 좀 더 말을 꺼냈다.
“어머니 앞에서는 안 그러셨지만 은근히 자랑하셨어요. 특히 술에 취하시면 자식인 저한테도 그러셨죠. 엄마한테 잘하라고. 네 엄마만 한 사람 없다고. 내 인생의 가장 행운은 네 엄마를 만난 일이라면서요.”
“난 못 들어 봤는데.”
“애정 표현에 인색하신 분이셨잖아요.”
“그거야 그렇지. 무뚝뚝했어. 술에 취했을 때라면 모를까.”
“취하셨어도 부끄러워서 어머니 앞에서는 말을 못 하셨을 거예요.”
“그런 말은 직접 듣고 싶었는데.”
은후의 어머니 눈동자가 과거를 질주하며 아련함에 물들었다.
“어머니와 자식이라. 좋은 주제인데.”
“성호 형은 또 음악 생각이야?”
“나야 늘 그렇지.”
“그래도 그때처럼 내 말을 아예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건 아니네. 많이 서운했는데.”
“그때는 미안했다니까. 그래서 이번에 령이를 위해 곡 하나 만드는 중이야.”
“농담! 사실 안 서운했어. 성호의 존재 의미에 관해 은후가 말해 줬었거든.”
“은후 씨가?”
“응. 그치?”
‘그렇죠. 령이도 알 건 알아야 하니까요. 아, 물론 내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저, 꽤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거야 알죠.”
어느새 나타난 성호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수호령. 그 모습을 흐느적거리며 지켜보는 개구리.
“네 아빠는 말이다.”
은후는 낙원의 주민들과 마나로 의지를 주고받으며.
“네, 말씀하세요.”
“정말 무뚝뚝했어. 그래도 책임감이 참 넘쳤지.”
육성으로는 어머니와 대화했다.
“……어? 옆에는 누구야?”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흘러서 어머니의 친구가 도착했다.
“누구긴 누구야, 내 아들이지.”
“아들?”
“이은후라고 합니다.”
“어!”
갈색 머리에 큰 안경을 쓴 중년 여인의 눈동자가 커졌다.
“네가 은후라고?”
“네, 순영 이모 맞으시죠?”
“어머, 어머. 날 기억해?”
“그럼요. 강석이는 잘 지내죠?”
“그럼! 석이는 너 잘 기억도 안 난다던데.”
누군가 했더니, 예전에 근처에 살던 어머니의 동창이자 이웃이었다. 같은 또래의 소꿉친구가 있었기에 은후는 꽤나 자주 김순영의 집에 놀러 갔었다. 반대의 경우도 잦았다.
“미국으로 이민 간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요?”
“그랬지. 그런데 진짜 잘 컸구나.”
“난 아예 안 보이지?”
“얘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찾은 친구가 넌데.”
어머니가 웃었다.
은후가 평소에 볼 수 없는 미소였다. 친구와 만났다는 반가움. 아버지를 떠올리며 흐릿해졌던 어머니의 눈동자는 어느새 또렷하게 변해 있었다.
“은후 엄마 친구!”
“흐음, 내가 기억해 둬야 할 사람?”
“은후 엄마만 확실히 새겨 두면 되지 않을까.”
“그치?”
수호령과 개구리가 서로 대화를 주고받다가 은후를 바라봤다. 은후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니에게 물었다.
“여기에 계속 계실 거예요?”
“글쎄다.”
“바빠서 아침 거르고 왔는데, 뭐라도 먹으러 가야겠어. 근처에 괜찮은 카페 있다더라.”
“그럼 거기까지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은후 네가?”
“네. 혹시 차 끌고 오셨나요?”
“그렇지.”
“그럼 주차장까지만요.”
이윽고 도착한 주차장.
은후가 하늘을 바라보다가 차에서 우산을 꺼내어 어머니에게 건넸다.
“웬 우산?”
“비가 올 것 같아서요.”
“일기 예보에는 그런 말 없었는데.”
“그래도요.”
은후의 어머니는 잠깐 고민하다가 순순히 우산을 받았다. 작은 우산이기에 부담도 없었고, 아들이 챙겨 주는 게 은근히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저 차, 네 아들 거?”
“응. 이번에 선물 받았다고 들었는데.”
“선물? 차를?”
“아, 그게.”
은후의 어머니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흐렸다.
“뭔데, 뭔데. 누구한테?”
그리고 의도치 않게 아들 자랑을 하게 되었다. 그런 아들 자랑에 순영은 질투 없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런 성격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자랑과 행복에 질투하기보다 응원하고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어서, 그래서 자연스레 친해진 친구. 단점이라면 눈치가 좀 없다는 거였지만, 그 정도는 장점에 가려지기에 충분했다.
“어휴, 우리 아들이 네 아들 반만 닮았으면 좋겠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석이도 미국에서 잘나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게, 네 앞에서 이런 말 하기도 부끄러운데.”
“하기 어려운 말이면 괜찮고.”
“그런 건 아니야.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뭐. 그러니까…….”
* * *
어머니를 배웅하고 낙원의 주민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낸 은후는 차를 몰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다소 이른 시각에 도착했고, 조금 기다리자 이하연이 역 로비에 나타났다.
“왔어?”
“으응.”
“무슨 일 있어?”
“그, 그게.”
이하연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선물을 깜빡해서.”
“선물?”
“집들이니까 간단하게라도, 하다못해 휴지라도 사 왔어야 했는데. 그, 너무 정신이 없어서?”
“뭘 그런 걸 가지고.”
“아니, 그래도.”
은후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는 무슨. 그냥 와 준 거만으로도 고맙지. 보고 싶었거든.”
“……나도 보고 싶었는데.”
“그랬어?”
“바보.”
그렇지 않았으면 굳이 여기에 왔을까. 남녀를 떠나 사람이라면 관심이 없는 이에게 사적인 시간을 쏟지 않는 법이었다. 거리가 멀다면 더더욱, 확실하게.
“고마워.”
“뭐가?”
“솔직하게 말해 줘서. 기뻤거든.”
“그, 알면서 그렇게 말하는 거지?”
“예전에 말하지 않았어?”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지.”
“그러니까.”
이심전심.
겨울이 웅크린 기지개를 켜며 여우비를 뿌리기 시작한 어느 날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