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화
시가.
궐련의 일종으로 담뱃잎을 돌돌 말아서 만든 담배.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담배와는 결이 좀 달랐다.
‘신기하네.’
은후로서는 오랜만에 드는 감정이었다.
미래보다 흡연에 관대한 시대. 그럼에도 시가는 대한민국에서 즐기기 어려운 취미였다. 애초에 즐기는 사람도 그다지 없었을뿐더러 시장의 크기 또한 작았다.
은후도 시가는 영화 같은 매체에서나 접해 봤을 뿐이었다. 이세계에서도 담배는 있었으나 대부분 현대의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담배와 비슷했고 말이다.
“시가 바인데 담배를 밖에서 피워요?”
“시가 바에는 시가 냄새만 남아야 한다고 해서 말이야. 일반 담배는 매장 내에서 못 펴.”
그런가.
하기야.
‘냄새가 많이 달라.’
은후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생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납득이 빠른 친구네요. 보통은 그게 무슨 차이냐고 묻던데요.”
“영화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유명한 래퍼였는데 궐련은 냄새가 독해서 손도 안 대지만 시가는 괜찮다고요.”
어깨까지 머리를 늘어뜨린 남성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가끔 그런 친구가 있죠.”
“머리는 안 자르냐?”
“볼 때마다 그 소리야?”
“하기야. 저번에 머리카락 자른 건…… 큼.”
김현석이 말을 하다 말고 주먹을 쥐며 손을 뻗었다. 눈앞의 남성이 마찬가지로 손가락을 오므려 쥐며 김현석의 주먹에 툭 가져다 대었다.
“손님 데려와 줬으니 봐준다.”
“큰 비밀도 아니잖냐.”
“처음 본 사람에게 말할 내용도 아니지.”
“이제는 별 신경도 안 쓰면서.”
그러니까 김현석도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은후는 무언가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우현도 씨?”
“내 이름을 알아요?”
“현석이 형에게 가끔 들었거든요. 특이한 친구가 있다고요.”
“오.”
우현도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무슨 소리를 했는지 궁금한데요.”
“별소리 안 했다?”
“그거야 차차 들어 보면 되는 거지. 일단 이쪽으로.”
바 주인의 안내를 받으며 은후는 주위를 다시 한번 살펴봤다.
차분한 분위기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적잖이 시끄러웠는데.
길에는 차가 많이 오갔으며 사람들이 북적였다. 날씨가 아직 쌀쌀하지 않았기에 전주천을 따라서 산책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이런 분위기도 가끔은 나쁘지 않네.’
조용하고 차분함.
손님들도 그런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일반적인 술집과 다르게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지는 환경에 은은하게 퍼져 있는 연기와 냄새.
일반적인 궐련과 다르게 시가의 향은 다채로웠으니, 지금 가게에서 맡을 수 있는 향은 달짝지근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가득했다.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은후의 환경은 시끌벅적했다.
낙원의 주민들, 이하연.
그런 환경이 절대로 싫은 건 아니지만. 가끔은 굳이 마법을 연구할 때가 아니더라도 차분한 분위기를 즐기는 건 꽤나.
‘마음에 와 닿는다고 해야 할까.’
일상이나 다름없던 고요함이 이제는 없으니까.
“매뉴에 없는 것도 괜찮습니까?”
“뭐어, 제가 만들 수 있는 거라면요. 일단 IBA(국제 바텐더 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칵테일은 전부 만들 수 있는데요. 재료도 어지간한 건 다 구비되어 있고요.”
“엔젤 페이스를.”
“잠시.”
“나는 늘 먹던 거로.”
김현석의 말에 우현도가 혀를 가볍게 차며 대꾸했다.
“늘 먹던 건 개뿔.”
“야.”
“똥폼 그만 잡고. 네그로니?”
“어.”
김현석이 뚱한 표정으로 눈을 흘기자 우현도가 픽 웃고는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 가게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하지만 퍽 친해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는 묘하게 적당했다.
“칵테일은 좀 아시나 봐요?”
“조금은요.”
“젊은 나이에 폼으로 그러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술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보니까요.”
은후가 어깨를 으쓱이자, 우현도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막 만든 엔젤 페이스를 건네며 물었다.
“대학생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런데 벌써 일을요?”
“대학생이라고 일을 못한다는 법은 없죠. 여기 개업 선물입니다.”
“그거야…… 아, 감사합니다.”
은후가 건네는 선물과 명함을 받으며 우현도가 자연스레 명함을 살폈다.
‘무슨 회사지.’
처음 들어 보는 회사명이었다.
‘그런데 이사?’
대학생이?
‘그런데 저 쇼핑백의 로고, 분명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우현도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리고 쇼핑백에 담겨 있는 술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화, 환상의 술!’
돈을 떠나서 온갖 인맥을 동원한 끝에야 자신도 간신히 한 병을 손에 넣지 않았던가. 가게에 전시할까 말까 정말로 고민했다. 고민 끝에 결국 전시하지 않고 숨겨 뒀다가 오랜 단골이나 친한 친구에게 자랑하며 꺼내려고 했는데.
“혹시 환상의 술과 관련이 있는 회사인가요?”
“그렇죠.”
우현도의 놀람에 옆에 있던 김현석이 말했다.
“환상의 술이 뭔데? 무슨 만화에서 나오는 술도 아니고.”
“환상의 술은…… 아니다. 말로 해 봐야 못 믿을 테니까.”
“뭔데?”
“이따가 한 잔 따라 줄 테니 직접 경험해 봐. 환상의 술은 직접 마셔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술이니까. 그, 하.”
욕심에 주기적으로 달에 한두 병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그런 말을 꺼내려다가 우현도는 입을 다물었다. 어지간한 술이라면 모를까.
‘아오.’
아쉬웠다.
이사라는 직함, 분명히 그 정도 권한은 충분히 가지고 있을 터.
‘이은후라는 이름은 못 들어 봤는데. 저 정도 얼굴이면 소문이 나지 않았을 리가 없어.’
우현도는 소위 말하는 재벌 3세였다. 다만 서자였다. 그러한 이유로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건 우현도에게 있어서 딱히 문제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서자라고는 했지만 딱히 버림을 받지도 않았고, 아버지는 자신을 잘 챙겨 주었으니까. 위에 있는 형과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우현도가 처신을 잘하면서도 기업에 욕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으.’
이 시가 바도 사실 돈을 벌려고 하기보다는 취미의 일환이었다. 우현도는 술과 시가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인맥도 꽤 넓었다. 그런 우현도가 갖은 인맥을 동원하여 간신히 구한 한 병.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이 자리에서 부탁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욕심을 참는 법, 그건 우현도의 특기 중 하나였다.
“옛다.”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일어난 감정의 변화. 그 변화 속에서 흐트러짐 없이 기계적으로 만든 술. 은후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내심 고개를 주억거렸다.
‘감정 통제를 잘하네.’
제법.
은후가 그런 판단을 할 정도로 우현도는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렸다.
“솜씨는 안 죽었네.”
“아무리 취미로 가게를 열었다지만 대충 할 생각은 없어. 그건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은후는 그 말에 동의했다.
엔젤 페이스.
세 종류의 술이 들어가는데, 대개 스터 방식으로 만든다. 칵테일에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단순히 휘젓는 거로 보이기에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다고 여기기 십상이지만.
‘쉽지 않지.’
엄청나게 어려운 것도 아니지만, 요점은 요령.
일단 그 요령만 봤을 때 우현도는 일류였다. 더불어 베이스가 되는 술도 모두 고급이었고. 취미가 아니라 실제로 이익을 보고자 했다면 이 정도의 고급 술은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좋네.’
진과 칼바도스, 애프리콧 브랜디.
맛과 향이 어우러지며 자아내는 맛은 깊었다.
‘저도 한 잔 마셔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지금까지 옆에서 조용히 있던 성호가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언제였더라.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007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가 칵테일을 시키는 걸 봤어요.’
그래서 언젠가.
‘칵테일을 마셔 볼 기회가 닿는다면 마티니를 시키겠다고 다짐했죠. 그, 유명한 대사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생전 그럴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마티니 한 잔.”
정령도 술에 취할까.
취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기나긴 설명이 필요한 여러 조건이 필요했다. 평범한 마법사라면 준비하는 데도 꽤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은후에게는 아니었다.
‘마시기 전에 한 곡 치고 싶은데요.’
성호의 부탁에 은후가 기타를 꺼내 들었다.
부드러운 연주가 시작되었다. 가게 분위기에 어울리는 그러한 곡. 갑작스럽게 시작된 연주였으나 사람들은 금세 은은한 기타 소리에 흠뻑 빠져들었다.
어슴푸레하며 흐릿하게, 가게의 분위기에 맞춰.
즉흥곡이었다.
‘처음 들어 보는 곡인데.’
너무 좋았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땡기네.’
우현도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잠깐 고민하다가 마티니를 마저 만들어 은후의 앞에 내려놓았다. 얼음이 너무 녹으면 맛이 변하겠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나쁘지 않으니까.
만약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면 다시 한잔 만들어 주면 그만이었다. 그런 수고로움이 무어가 대수랴. 이런 곡을 들을 수 있는데. 우현도는 그렇게 멍하니 곡을 감상하다가 생각했다.
‘뭘 피울까.’
기왕이면 곡에 어울리는.
‘그래, 그게 좋겠다.’
몬테크리스토 80A.
우현도는 세 개피를 꺼내어 향미와 상태를 확인한 후 말없이 한 개피를 김현석에게 건넸다. 그리고 시가 전용 성냥을 꺼내어 불을 붙이고 하나는 자신의 입에, 하나는 시가 받침대에 내려놓았다.
혹여라도 은후가 바란다면 권하기 위하여, 아니라면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려고. 만약 은후가 피우지 않는다면 조금은 아까울지도 모르겠지만.
탁, 타닥.
시가가 타들어 가며 퍼지는 아주 조그마한 소리. 그 소리에 자연스럽게 기타가 발을 맞추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현도의 상념이 끊겼다.
<비와 사랑> 덕분에 성호가 얻은 일종의 깨달음이 실제 소리로 구현되었다. 우현도를 비롯한 모두가 이상하게도 시가 소리가 마치 귓가에 다가오는 것 같다고 착각했다.
‘어?’
어느 순간 멈춘 기타 소리.
그럼에도.
‘마치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왜냐하면 시가는 여전히 타들어 가고 있었으니까. 성호의 연주가 가져온 일종의 착각. 하지만 그건 기분 좋은 착각이었다.
“한 대 피워 보시겠어요? 방금 곡에 어울리는 시가로 골라 봤는데요.”
은후가 시가를 집어들었다.
“이거, 되게 비싼 시가 아니냐?”
“멋없게. 여기서 그게 할 소리냐?”
“아니.”
“돈은 신경 쓰지 말고, 오늘은 공짜야. 아, 이런 말도 멋없는데. 참고로 말하자면 네 친구분이 가져온 술을 생각하면 이것도 모자라. 솔직히 선물로 받기에도 좀 부담스러워.”
우현도가 재벌 3세라는 걸 알고 있는 김현석이 화들짝 놀랐다.
“부담스러워? 네가?”
“뭐, 그런 의미에서 은후 씨, 한동안 공짭니다. 편하게 언제든지 놀러 오세요.”
“저요?”
“네, 가끔 오셔서 편하게 즐기시고 내키시면 기타나 한 곡 쳐 주셨으면 하는데요. 혹시 실례가 될까요?”
뭐.
“아니요. 가끔 오겠습니다.”
성호도 그러했지만 은후도 가게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우현도의 감정은 솔직했으니까. 뭔가 의도가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술 때문이겠지.’
하지만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으니까.
그거면 되었다.
“그런데 방금 곡 이름은 뭐야?”
“글쎄요.”
은후가 시가를 피우며 자연스레 성호에게 시선을 던졌다. 성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즉흥곡이라서요.”
“즉흥곡?”
“네.”
“아, 아깝다. 그럼 다시는 못 치잖아. 한 번 더 듣고 싶었는데.”
하지만 왠지 그것도 괜찮은 것 같아서.
아쉽지만 아쉽지 않다는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며 김현석이 시가를 입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