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화
느닷없는 은후의 방문에 초인종 너머로 의아함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부부가 은퇴 후 자리를 잡은 곳이었다. 그래서 택배와 이따금 놀러 오는 자식들. 그리고 근처에 어울리는 친구 몇몇을 제외하면 찾는 이가 없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잡상인이나 사이비 종교는 아니고요, 집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잠시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곱다는 말이 어울리는 노부인이 문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은후는 노부인에게 고급스럽게 포장된 술병을 하나 건넸다.
“빈손으로 오기에는 좀 그래서요.”
이런 상황에서 선물로 쓸 환상의 술. 은후가 만들고 전주의 유지 이창석이 공급하고 있는, 초고급화 전략 때문에 현재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눈을 크게 떴을 것이다. 하지만 노부인은 술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이였다. 그리고 초면에 가격을 떠나 이런 선물을 받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이였다.
“괜찮습니다.”
“아니요. 조금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할 것 같은데, 한 번만 봐주십사 드리는 뇌물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중하면서도 예의 바른 말과 태도에 어우러지는 은후의 외모는 첫 만남에서도 호감을 사기 충분했다. 노부인은 그래서 조그맣게 미소를 지은 후 잠깐 고민하다가 술을 받았다.
“그러시다면야. 잠깐 들어오시겠어요?”
“감사합니다.”
길에서 꽤나 가까운 곳에 지어진 주택.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근처에 마련된 주택가와 다르게 길과 가까운 곳. 그래서 희미하게 차가 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시끄럽죠?”
“고즈넉하다는 말이 어울리겠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요한 자리도 많을 터인데 굳이 여기에 집을 지으신 이유가 있겠지요.”
겉치레가 아니었다.
은후의 말에 담긴 진심을 알아차린 노부인이 아까보다 좀 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여겨 주시니 다행이네요. 굳이 여기에 집을 지은 이유가 그래서였죠. 이렇게 들리는 소리가 좋았거든요. 솔직히 저는 싫어했었지만요.”
노부인의 눈이 순간적으로 과거를 달렸다.
잠깐의 침묵.
‘사연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차가 많이 다니는 곳의 근처였다. 한가한 시간에도 일정 이상의 차량이, 출퇴근 시간에는 수도 없는 차가. 마땅한 회사가 거의 없고 거의 주거지로서의 역할을 하는 동네였기에 그러했다.
“잠깐 여기서 기다리세요. 부르지 않았어도 손님으로 맞이했으니 차라도 한잔 내와야죠.”
조그마한 마당, 잘 가꿔진 꽃과 나무가 바깥과 다르게 안락함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정원을 가꾸는 데 지식이 없어도 느낄 수 있었다. 제대로 공부를 한 이가 성의를 다하여 정원을 조성했다는 걸.
‘나중에 이곳은 미술관이 되었는데.’
꽤 훗날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일단 찾아왔다. 집을 팔아 달라고 요청할 여지가 있을 것 같아서. 돈이라면 충분했으니. 근처의 시세에 훨씬 웃돈을 줄 생각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수십억을 불러도 집을 팔 것 같지는 않았다. 그건 마법사로서 느끼는 일종의 직감. 그리고 그 감은 매우 높은 확률로 맞아떨어지기 마련이었다.
“향이 좋네요.”
“그렇죠?”
홍차와 간단한 다과.
“남편이 홍차를 즐겼거든요. 저는 커피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함께하지 않느냐고, 그렇게 묻기엔 차마 노부인의 눈동자에 서린 아련함이 은후의 목소리를 붙잡았다. 그래서 은후는 말을 하다 말고 홍차로 시선을 돌렸다.
“다즐링, 저도 꽤 좋아합니다.”
“홍차를 아시는군요.”
“조금요.”
“그래요.”
서로 처음 만난 사이였고, 나이 차가 무척이나 많이 났음에도 서로가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건 노부인의 배려 덕분이리라. 은후는 그게 꽤나 기꺼웠다.
“원래라면 집을 팔아 달라고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요?”
“네. 그런데 왠지 그러실 것 같지는 않네요.”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요. 사람 일이란 장담할 수 없다지만, 당장은 말이죠.”
“언젠가 그럴 일이 생기신다면 이쪽으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은후가 명함을 한 장 꺼내었다. 며칠 전 잠수하기 직전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전주 유지 이창석의 집사로부터 선물받은 것이었다.
“그럴게요.”
어머니가 나이를 좀 더 먹으면 저런 모습일까.
‘아니.’
아니었다.
시간을 거스르기 전, 과거 어머니는 나이를 먹고 좀 더 지쳐 보이셨다. 그러니 이번에는 안 그러셨으면 좋겠는데.
“그나저나 학생……은 아닌 것 같은데요. 명함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요.”
“학생 맞습니다. 조그마한 사업을 하고 있을 뿐이죠.”
“젊은 나이에 대단하네요.”
“그렇죠?”
평소와 다르게 겸양이 아닌 너스레를 떠는 은후의 모습에 노부인이 피식 웃었다.
“내 아들도 사업하고 있는데 많이 바쁘더라고요. 학생이 사업까지 하려면 아주 힘들겠어요.”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사실 좀, 아니, 많이 쉬운 것 같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죠.”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이런 화법, 어디서였더라.
그래, 이세계에서 성격 좋은 귀족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
“남편분은요?”
“아들 만나러 잠시 나갔어요. 아들이 남편이 하던 사업을 물려받았는데, 후후, 나이만 먹었지, 여전히 어리다니까요.”
“원래 어머니의 눈에 아들은 나이를 얼마를 먹어도 항상 아이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사고를 치고 뒷수습을 아버지에게 맡기면 쓰나요. 아들의 투정에 일부러 조금 일찍 사업을 물려주고 은퇴를 했는데요.”
한동안 노부인은 아들을 깠다. 하지만 그 까는 와중에도 애정과 은연중에 이런저런 자랑이 들어 있었다.
“……그래도 능력은 있죠. 하기야 그러지 않았으면 사업체를 물려주진 않았을 거예요. 돈이야 줬겠지만요. 우리 남편이 은근히 그런 건 칼 같거든요.”
그렇게 한동안 은후는 이름도 모르는 노부인과 티 타임을 즐겼다. 그리고 적당히 이야기를 나눈 후 일어섰다.
“다음에 또 찾아와도 될까요?”
노부인이 웃으며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안에 제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들을 보여 드릴게요.”
“기대하겠습니다.”
그림이라.
‘훗날 이 주택이 미술관이 되는 이유와 관련이 있으려나.’
원래 목표로 하던 집을 구매하는 건 실패했으나, 은후는 딱히 실망하지 않았다. 오늘의 만남이 마음에 평화라는 감정을 가져다주었기에.
‘사람과의 만남이란.’
갑작스럽게 찾아온 손님, 그런 손님에게도 차를 대접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
“잠깐 시간 되십니까?”
그래도 집은 마련해야지.
은후는 일전 땅을 샀을 때 인연을 맺었던 부동산업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오늘 찾아갔던 집의 뒤편에 있는 주택가의 매물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 * *
노부인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은후는 전주 승마장으로 향했다. 한동안 스타더스트를 만나지 못한 것도 있고, 스타더스트와 관련하여 승마장의 제일 큰 후원자라는 이원석과 만날 약속도 있기 때문이다.
“오셨어요?”
은후가 전주 승마장에 도착하자 너도나도 알은체를 했다. 전주 승마장에서 은후는 인기 스타였다.
“스타더스트가 안 그래도 좀 뿔이 났어요. 요번에 편자를 갈 때가 되었는데요.”
장제사가 크게 다칠 뻔했다고.
“제가 찾아왔으면 더 삐졌을지도 몰라요.”
“네?”
“슬슬 힘에 부쳐서요.”
“은후 씨가요?”
“아니요, 스타더스트가요.”
억지로 은후의 도움을 받아 몸의 상태를 끌어올려서 달렸다. 하지만 나이도 육체도 거의 한계에 가까웠다. 그러니 매우 힘껏, 스타더스트가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달릴 수 있는 기회는 아마도 마지막 한 번. 그 한 번은 너른 초원에서.
“제가 와도 한동안 달릴 수 없을 거라서요.”
“네?”
다른 직원이라면 모를까, 스타더스트를 전담하고 있는 직원이라면 사정을 알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은후는 스타더스트의 몸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
“아,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안타깝네요. 은후 씨가 오고 나서 진짜 스타더스트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전에는 죽지 못해서 사는 것 같아서 그게 참 안타까웠다고.
직원은 그렇게 말하며 쓰게 웃었다.
“그나저나 이원석 씨는요? 오늘 약속하고 왔는데요.”
은후의 질문에 전담 직원이 표정을 살짝 굳히며 답했다.
“조금 늦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요?”
“네, 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고 해요.”
“사고요?”
그런 이유라면야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잠깐 스타더스트나 보죠.”
은후가 마구간으로 향했다. 스타더스트는 은후의 모습에 투레질하며 은근히 반겼다. 하지만 자신이 화가 났다는 점을 확실하게 어필했다. 일부러 평소와 다르게 격한 투레질로.
“잠깐 걸을까.”
푸르륵.
‘뛰고 싶어!’
은후는 고개를 저으며 스타더스트를 이끌고 트랙으로 향했다. 트랙에는 일반인들이 여럿 보였다. 은후는 신경 쓰지 않고 스타더스트의 등에 올라탔다.
“내가 약속했지.”
‘뭘?’
“죽을 때까지 원 없이 달리게 해 주겠다고.”
‘…….’
그러니까 지금은 안 된다며. 육체가 한계 직전이기에. 그걸 스타더스트는 납득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불만은 불만. 은후는 그런 스타더스트를 달래며 가볍게 산보했다.
‘뛰고 싶어.’
“참아.”
‘뛰고 싶은데.’
“참아야지?”
스타더스트는 자신의 마음을 꾹 내리눌렀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은후가 조만간 원 없이 달리겠다고, 그리고 그건 아마 생의 마지막이 될 거라며 확실하게 이미지를 전달해 주었기 때문이다.
마나를 이용해 서로의 연결된 심상을 통했기에 스타더스트는 겉으로만 투정을 부릴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산보했을까. 근처에 낯익은 말 한 마리가 훤칠한 중년의 사내와 함께 다가왔다.
“약속 시간에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원석 씨?”
“네, 오는 길에 사고가 나서요.”
“직원에게 들었습니다. 크게 다치시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이원석이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가벼운 접촉 사고였거든요. 정말로 가벼운 사고였는데 과실 비율을 논하는 데 언쟁이 좀 있었습니다. 딱히 병원에 갈 정도도 아니었고요.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죠. 스타더스트에 관련하여 부탁하실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스타더스트의 마지막을 위하여 넓은 평원에서 죽을 때까지 달리게 하고 싶으시다고요?”
수다스러우면서도 할 말은 하는 그런 타입이었다. 직원에게 듣기엔 과묵한 스타일로 여겨졌는데. 역시 사람이란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었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하겠습니다.”
“하하, 돈이야 저도 많습니다. 스타더스트에게 애정이 있는 건 저도 매한가지니 돈은 괜찮아요. 다만 저도 함께하고 싶은데요. 마지막을 저도 지켜보고 싶거든요.”
흔쾌히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는, 그저 은후에게 몸만 함께하면 된다며 이원석은 마저 말을 이었다.
“역시 초원, 하면 몽골이죠. 가깝기도 가깝고요. 너른 평야를 보면 마음이 뻥 뚫립니다. 다소 불편한 환경이 조금 그렇기는 합니다만은.”
“가능하다면 빨리 일정을 잡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스타더스트를 위해서라도요. 육체도 육체지만 심적으로 많이 급한가 봅니다.”
그렇게 서로 할 말만 하면서도 통하는 대화를 나누던 도중 스타더스트가 투레질하며 은후에게 물었다.
‘죽어서도 달릴 수 있다고 했지?’
그랬다.
다만.
‘느낌이 좀 다를 텐데.’
은후가 스타더스트에게 마나를 통해 전달한 의지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달릴 수만 있다면 상관없어.’
그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이원석의 눈에는 은후와 스타더스트가 깊은 교감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미리미리 준비해 둔 보람이 있어.’
은후의 목적은 진즉 직원을 통해서 들었었다.
“사흘 후,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습니다.”
“좋습니다. 비행기 편도 제가 알아서 준비하죠.”
“아, 그런데 일정에 동행 한 명만 추가해도 괜찮을까요?”
“동행요?”
“네.”
함께 초원을 달리겠다고.
은후는 일전 승마장에서 이하연과 그런 약속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