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홀로 살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사교적이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걸 선호하는 이라도 이따금 홀로 보내는 시간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었다.
‘며칠째더라.’
은후는 기본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런 기질이 마법사가 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은후는 이하연과 캠핑장에 다녀와서 낙원에서 시간을 조금 보낸 후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닷새인가.’
대부분 마법 연구를 하고, 틈틈이 집을 짓는 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왠지 모르게 그냥 영화를 보고 싶어서 홀로 늦은 시간에 영화관을 찾고. 그렇게 홀로 다섯 번의 낮과 밤을 보냈다.
“후우.”
잠을 거의 자지 않았기에 약간 피로감이 느껴지긴 하였으나 뭔가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역시 집이 있기는 해야겠는데.’
정확히는 연구소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낙원이 있기는 하지만 그곳은 홀로 이렇게 시간을 보내기 힘들었다. 모두가 함께 어울려 지내는 느낌이지. 각자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조금. 앞으로 지을 집이 완공될 때까지 걸릴 시간을 감안하면 넉넉잡아 연 단위이니.
‘그래.’
집을 구하자.
원래는 굳이 집을 구하지 않으려고 생각했지만.
‘주택으로.’
모텔이나 호텔은 아무래도 긴 시간을 보내며 연구에 집중하는 데는 불편함이 있었다.
- 아직도 바빠?
- 사람들한테 연락 엄청 와!
-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지? 난 오늘 저녁에 육회 먹었지롱.
- 보고 싶다.
은후가 핸드폰을 켜자 밀려 있던 문자가 쏟아졌다. 대부분 이하연의 문자였다. 물론 미리 며칠 정도 핸드폰을 꺼 놓고 할 일이 있다고 말은 해 두었다.
그 외에도 학교의 후배를 비롯하여 학과에서 보낸 알림 문자 등, 은후는 문자를 쭉 확인한 뒤에 이하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 끝났어. 이따가 전화할게.
은후는 일단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낙원으로 향했다.
“시간 잘 맞춰서 왔네! 마침 삼촌이 밥 준비하고 있는 중이거든.”
“은후 도령님 오셨네요.”
가장 먼저 마중 나온 건 역시나 수호령이었다. 덕진 공원의 주차장에 차를 대자마자 은후의 눈에 수호령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다만 평소와 다르게 구미호가 함께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모자 관계로 착각할 정도로 정말 잘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그이랑 함께 요리를 만들다가 령이가 갑자기 도령님이 오셨다고 나가자고 하더라고요.”
“령이는 잘 배우던가요?”
“그럼요.”
“헤헤, 이제 간단한 음식은 나도 만들 수 있어!”
예전에 요리를 배워 본다고 수호령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한동안 그에 관한 말이 없었기에 흥미가 식었겠거니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뭔가 과정이 조금만 바뀌어도 획획 변화하는 게 재밌더라구. 그리고 내가 만든 음식을 남에게 대접한다는 것도 뭔가 기분이 좋고.”
그래서 요새 덕진 공원에 묘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배가 고픈 아이들에게 갑자기 음식이 주어진다는. 물론 어디까지나 도시 전설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음식을 줄 때 수호령은 철저하게 조심했다. 적당한 양을, 또 그 자리에서 바로 먹지 않으면 다시 회수했으며, 식사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끔 조치했다.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말에서 비롯된 소문. 그러니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고, 지금까지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훗날 무언가 문제가 될 수도 있을 터. 은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한동안은 괜찮을 테니까.’
당장은 신경 쓰지 말고, 수호령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자.
은후는 웃으면서 수호령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수호령은 헤실거리며 계속해서 입을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대부분은 삼촌이 만든 음식인데, 저번에 부침개랑 김밥은 내가 해서 줬거든. 맛있다면서 잘 먹더라구.”
수호령이 자신이 한 일을 뿌듯하게 말했다.
이제는 예전과 다르게 아이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힘의 크기가 늘어났다. 여전히 덕진 공원이라는 부지에 한정되었으나, 뭔가 더 도울 수 있음에도 예전처럼 머뭇거리는 게 싫어서.
그래서 수호령은 고민했다. 또 무언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이에 관해서는 은후는 물론, 다른 낙원의 주민들에게도 상담하지 않고 홀로 고민을 거듭했다.
‘나, 배고픈 아이에게 음식을 만들어서 줄래.’
만약에 여의치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만두면 되는 일이니까. 목숨이 걸린 문제는 아니니까. 물론 당장 아사하기 직전의 아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긴 하겠지만.
‘이게 다 은후 덕분이야. 그래서 너무 고마운 거 있지.’
그런 예외를 제외한다면 상대적으로 생명에 영향이 덜 가기에 선택의 문제. 예전이라면 배고파하는 아이를 보고도 음식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힘을 아껴야 했으니까.
‘그나저나 확실히.’
정령의 본질에 가까운 행위를 할수록 성장이 빠르구나.
‘내 예상보다 이름을 지어 줄 시기가 빨리 오겠는데.’
뭐, 그건 좋은 일 아니겠나.
은후가 미소 지으며 수호령이 뻗은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하여 수호령의 오른손은 구미호가, 왼손은 은후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가족으로 보일 정도였다.
“오셨군요.”
서연후를 시작으로 나흘 만에 방문한 은후를 알아보고 다들 알은체를 했다. 항상 은후가 낙원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다들 은후가 이렇게 자리를 비우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어흠.”
식당에 찾아가자 도깨비가 반갑게 손을 흔들다가 표정이 웃음에서 어색하게 살짝 바뀌었다. 구미호는 빙그레 웃으며 수호령의 손을 조심스레 떼어 놓은 뒤 도깨비에게 다가가 말했다.
“질투했어요?”
“끙, 그게.”
“변명은 됐고요.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
“후후.”
구미호가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도깨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큼큼.”
“밥은요?”
“다 됐제. 거, 령이와 은후 도령도 얼른 앉으시구려! 연후야, 성호 그 아해는 안 온다대?”
“하하.”
서연후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음악 귀신이라서 그런가.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할 틴디.”
“귀신이니까 딱히 먹을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을까요?”
“임자도. 귀신이니까 오히려 잘 먹어야지.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말이여. 음악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만든 거 아녀?”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제가 불러올게요. 그 말이면 납득하지 않을까 싶네요.”
성호는 여전히 헨리 엘가의 <비와 사랑> 때문에 끙끙거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은후는 도깨비에게 다가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아까의 일에 관해서 언급했다.
“앞으로는 제가 조심하겠습니다.”
딱히 사과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큼, 아뇨. 내가 속이 좁았제. 그냥, 그냥.”
도깨비의 눈에는 질투도 있었으나 슬픔도 있어서.
“……사실 부러워서 그랬으.”
“부러워요?”
“음,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질 수 없으니까 말이제.”
“아.”
아이.
‘음?’
아이를 가질 수 없다, 라고.
“그래서 순간적으로 질투라는 감정이 솟구쳤으. 진즉 포기했지만 예전에 임자와 분명히 바라던 가족의 모습이라서 말이여.”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말씀하셨죠.”
“음.”
“…….”
도깨비, 구미호.
기본적으로 은후의 지식에 기반하여 말하자면 정령이었다. 그리고 정령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은후의 상식이었다. 그 과정이 험난하고 조건을 충족하기란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에 가깝다, 까지는 아니었다. 힘들기는 하지만 가능은 한 일.
‘아.’
여기에는 마법사가 없구나.
그러니 정령에 관하여 따로 연구하고 지식을 쌓아 올릴 사람도 없었을 터였다.
‘정령들이 그런 연구를 할…… 괴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무척 드물 것이고, 정보와 연구도 공유하지 않을 터. 그러니 지식의 발전은 자연히 느리고, 소실되는 자료도 많을 것이다. 정령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다르게 자신을 기록하지 않으니까.
“방법이 있다고 하면 믿으실까요?”
“음?”
“아이요.”
“거, 도령이라도 그런 거짓말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디.”
“제가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을까요?”
“……없제?”
그래, 없었다.
거기에 지금까지 봐 온 은후라는 인간은 도깨비가 믿기에 충분한 존재였다. 애초에 언젠가 확실한 죽음이 예정된 자신을, 아내를 구해 준 인간이 아니던가.
“허.”
“준비하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이야 좀 들 수 있겠습니다만.”
“그, 방금 말이 정말이란 말이제.”
“네.”
“……임자에겐 일단 비밀로 부탁함세.”
“그러죠.”
도깨비가 머뭇거리다가 은후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뭐가요?”
“내게…… 이런 호의를 배푸는감.”
“그러게요. 예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요.”
“…….”
솔직히 잘 믿지 못해서.
그때의 대답은.
하지만 은후의 대답은 이전과 마찬가지였다.
“굳이 말하자면 그냥요.”
마음이 내켜서.
“그러고 싶으니까요?”
도깨비는 그때 은후의 말이 정말 진심이라는 걸 확실하게 느꼈다. 그래서 어색하게 말했다.
“허, 흠. 그나저나 보답은 어떻게…….”
은후가 빙그레 웃었다.
“맛있는 음식이나 많이 만들어 주세요.”
“거, 그거로 되겠나?”
“령이 잘 돌봐 주시고요.”
“거야 당연한 일이라 보답이 아닌디.”
“그거면 됐습니다. 아.”
어떻게 하다 보니 깜빡하고 있었다.
나침반.
앞으로 도깨비와 구미호가 아이를 갖기 위해 찾아야 할 재료들이 더 있었는데, 찾는다는 개념 때문에 나침반이 떠올랐다. 은후는 리어카에서 비단으로 된 나침반을 꺼냈다.
“이거 업그레이드시켜 준다고 하셨죠?”
“아, 그랬제.”
“신경 좀 써 주세요. 아까 말한 일에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흐.”
도깨비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라면 내 전문이제. 맡겨만 주시게.”
도깨비가 비단천 나침반을 품에 갈무리했다.
“방금 말씀드린 거에 관해선 조만간 시간을 잡아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드리죠. 아셔야 할 것들이 좀 많거든요.”
“그건 기쁘게 기다리겠으. 그나저나 임자는 왜 이렇게 안 온담.”
얼마 후.
“과연!”
평소와 다르게 성호가 신나게 식사를 하며 떠들었다.
“도깨비님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꾸준한 식사를 섭취해야 한다고요. 여기에 있는 요리의 근본은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그러니까.”
평소처럼 음악에 미쳐 있는 상태로.
그 모습에 다들 피식피식 웃었다.
“삼촌! 여기에는 고춧가루가 안 들어갔는데 매운맛이 나는 거 같아.”
“그건 말이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좋네.’
은후도 웃으면서 식사를 이어 갔다.
‘집을 구하러 바로 가자.’
안 그래도 딱 마음에 드는 집이 있었다. 일전 집을 짓기 위한 부지를 알아보면서 봐 두었던 집. 다만 문제가 있다면 매물로 나온 집이 아니었다는 것. 덕진 공원과 전주에 흐르는 영맥의 흐름을 계산하면 다소 애매하여 굳이 집주인과 접촉하지는 않았지만.
‘마법 연구만 생각한다면 그곳만 한 데도 없어.’
덕진 공원과 거리도 가깝고, 그 정도 거리면 조만간 수호령도 놀러 올 수 있는 수준의 거리였으니.
“계십니까?”
“누구세요?”
은후가 식사를 마친 후 한 주택을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송천동 쪽의, 도로와 약간 떨어진 곳에 지어진 주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