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두 사람의 방송은 적어도 인터넷이란 세상에 꽤나 큰 파장을 불러 왔다. 지금까지 베일에 휩싸였던 은후가 직접 드러났다는 점을 비롯하여 여러모로 화제가 될 요소가 많았다.
일단 두 사람의 연애담.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영되는 가상 연애 프로그램이 아닌 실제의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아마추어 티가 나지만, 오히려 그래서 아련하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퀄리티.
- 두 사람 케미 무엇ㅠㅠ
-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데요…… 근데 얼굴 되게 궁금하네.
이런 쪽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대리 만족이란 요소를 확실하게 충족해 주었다.
- 어디 들리는 이야기로는 모 브랜드 모델이라고 하던데.
∟카더라 통신 졸라 많네ㅋㅋ
이 흐름은 실제로 은후가 방송하기 직전에 올린 이하연의 브이튜브 채널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공개된 은후의 새로운 곡, 편곡이 아니라는 점이 다소 걸리긴 하였으나 막상 사람들은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이건 혁명이다!!
- 아니 ㅅㅂ 자연을 배경음으로 만든다는 게 말이 됨??
- 음악 전문가들 나와 주세요.
- ㅈ문가로서 한마디 하자면 그냥 잘 모르겠슴ㅎㅎ
자연을 배경음으로 하여 이루어진 피아노 음율의 조화. 사실 이건 은후였기에 가능한 기예였다. 본디 헨리 엘가는 생전 이 곡을 작곡하면서도 실제로 연주할까에 관해선 의문을 품었다.
연주자에게 요구하는 능력치 자체가 높은 까닭이었다. 어지간한 연주자, 정확히는 인간이란 종의 한계에 가까운, 혹은 그 이상의 인지 능력을 요구하였으니.
하지만 은후가 품은 마나가 그걸 가능케 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경악하고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클래식 업계는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중이었다.
- 이론과 논리를 떠나서 실제로 연주할 수 있었다는 점을 살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히 <비와 사랑>은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런 곡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분명한 건 이 정도로 조화를 이루는 곳이 없었기 때문인데…… (후략).
일찍이 환상의 월광에서 은후를 극찬했던 진 에드워즈를 비롯하여 많은 평론가가 극찬했다. 물론 비판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여론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실제로 진행된 방송. 은후가 생방송에 출연했다는 이야기에 이하연이 방송하는 플랫폼이 터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 부분에 관해선 플랫폼에서 공식으로 사과하였다.
그리고.
- 게임 실력 무엇?ㅋㅋㅋㅋㅋㅋㅋ
- 계정 보니까 게임 자체를 거의 안 한 수준이던데…….
- 몇백 판이 안 한 수준임?
- 500판도 안 넘었는데 안 한 수준이지.
은후의 게임 실력.
한창 세계적으로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한 게임에서 은후는 시종 내내 미쳐서 날뛰었다. 미래의 지식과 경험에 더하여 깨달음을 얻은 이후 급증한 신체 능력.
그 두 가지가 더해지자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팀 게임이었기에 전승은 아니었다. 다만 게임을 잘 몰라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은후의 실력이 프로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다는 것. 그런 요소와 더불어 이하연과 은후의 토크는 지켜보는 맛이 있었다. 그냥 듣기만 해도 흐뭇해진달까.
- 부럽다…… 왤케 부럽지! 근데 흐뭇하다!
- ㅋㅋ 나도.
-아 X나 둘다 얼굴 못생겼으면 좋겠다…… 몸매는 둘 다 좋은 것 같으니까.
- ㅉㅉ 위에 놈 심보 보소.
- X나 배아프잖아 나만 그럼?
- 응 너만 그럼.
질투하는 사람도, 응원하는 이도.
- 내가 하면 왜 저런 퀄리티가 안 나오지…… 악보는 이미 구했는데.
- 어케 구함?
<비와 사랑>을 연주하는 이도.
- 야, 방송에 어떻게 섭외 가능할까?
- 글쎄요? 연락처 자체를 구할 수가 없어서요.
- 좀 알아봐! 그 여자한테 메일이라도 날리든가!
- 저희 같은 사람 한둘이 아닐 텐데요.
- 나 말고 PD 중에서는 없을 거 아니야. 고작 인터넷 세상이라고 무시하는 놈들이 태반인데.
모 공중파에서 다급한 한 PD도, 사람들의 이목이 은후에게 집중되었다.
* * *
평소 방송 시간보다 늦게까지 이어진 방송. 그래서 이하연은 오랜만에 늦잠을 늘어지게 잤다. 은후와 캠핑에 가기 이전에 설렘이란 감정 때문에 최근 잠이 모자란 탓도 있었다.
‘어우.’
지금 몇 시더라.
‘배고파.’
더 자라면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지.’
그래도 배는 채워야지.
‘은후가 그랬으니까.’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먹는 거라도 잘 먹어야 한다고.
‘으.’
어제 방송은 정말로 재밌었다.
어느덧 익숙해진 방송, 일상이 되어 버린 방송에서 큰 자극을 얻기 힘들었는데. 왜 사람들이 합동 방송을 하는지 알게 되었달까. 어떠한 이득을 떠나서 재미라는 측면만 봐도 뭐.
그리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은후와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 줬으니까.
그냥 그게 마냥 좋았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환호를 받고 칭찬을 듣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일어났니?”
“어, 엄마. 회사는?”
“연차.”
“아.”
“아, 는 무슨. 어제 방송 재밌게 봤다.”
“응?!”
가족이 자신의 방송을 보는 건 여전히 좀 어색해서.
“정신 차리고 있어. 밥 챙겨 줄 테니까.”
“응.”
이하연이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어제 하도 정신이 없어서 끄지도 않은 채 잠들었다.
‘어디 보자.’
조회수가.
‘어, 음.’
예상은 했지만, 브이튜브에 올린 은후의 영상 조회수.
‘며, 몇 자리지.’
거기에 처음 보는 9,999+
이번에 플랫폼 업데이트가 되면서 알림 표시의 자릿수가 하나 늘었다고 했는데.
‘메일도 비슷하겠네.’
쓸데없는 메일도 상당하겠지만, 업무적으로도 그렇고. 적어도 은후에 관련된 메일은 확인해서 알려 주지 않으면.
‘좀 귀찮은데.’
마음 같아서는 은후에게 소통 창구로 메일 하나쯤은 공개하라고 하고 싶지만.
‘내가.’
왜냐하면 한 번이라도 더 대화하고 싶으니까.
* * *
그렇게 세상이 자신 덕분에 시끌벅적하고 이하연이 은후를 떠올리며 행복해 하던 시간, 은후는 모든 걸 뒤로하고 덕진 공원에서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라면~ 라면~ 라라라라라면!”
캠핑장에서 끓였던 라면의 맛이 너무 좋아서 낙원의 주민들에게도 해 주고 싶었던 것.
“너희는 못 먹는다.”
시바견 루비와 페럿 뀽뀽이가 주위를 어슬렁어슬렁거리자 은후가 툭 내뱉었다.
- 왈!
- 뀨……!
낙원의 영향 때문일까, 보통 동물보다 지능이 높아지고 마나를 다소 흡수했다. 심지어 서연후와 어울리기 시작한 참새도 보통 참새가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귀신같이 은후가 먹을 걸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다가온 것.
“냄새가 너무 좋네요.”
서연후가 옆에서 라면 타령을 하는 수호령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은 후 은후에게 말했다.
“참새에게 이름은 붙여 줬나요?”
“아직요.”
서연후는 알게 되었다.
이름을 지어 준다는 것의 무거움을. 그리고 본능적으로 자신이 자신의 어깨에 있는 참새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래도 내년 봄에는 가능할 겁니다. 지금처럼 부단히 노력한다면, 의 이야기입니다만.”
은후의 격려에 서연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좀 더 노력해야겠는데요?”
“그건 아니고요. 과하면 모자란 것만 못하는 예도 있으니까요.”
보기 드문 은후의 칭찬에 의욕적으로 말했지만 돌아오는 건 단호한 염려의 말. 하지만 거기에 악의가 없다는 점과 사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서연후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까지 했던 정도로만요.”
“네.”
라면이 다 끓었다.
“먹을까?”
은후가 제일 먼저 챙겨 준 건 수호령이었다.
그 뒤에 서연후.
“성호 씨는?”
“…….”
성호는 라면을 힐끔 바라보고 다시 기타에 집중했다.
은후가 이하연과 헤어진 후 덕진 공원에 돌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수호령이 무척 궁금해 했기 때문인데, 다른 이들도 은후의 카리스마에 눌려서 그렇지 내심 듣고 싶어 했다.
그 와중 모두가 알게 된 <비와 사랑>. 성호가 너무 궁금해 하기에 결국 브이튜브의 영상을 내려받아서 노트북을 통해 들려 줬다.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성호는 충격과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쭉 기타를 붙잡고 있었다.
“맛있어! 매운데!”
수호령이 자신에게 달라붙는 루비와 뀽뀽이에게 어색하게 미소지으며 은후에게 말을 걸었다.
“그으…….”
“응?”
“라면, 얘네 주면 안 돼?”
“음.”
페럿은 몰라도 개인 루비에게 라면을 조금 준다고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일반적인 개라면 나트륨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루비는 보통 개가 아니었으니까.
‘다만.’
페럿 뀽뀽이는 아직.
뀽뀽이에 비하여 오랜 시간 낙원에 머문 루비는 자연스레 마나를 흡수했다. 그건 성호가 일찍이 루비에게 이름을 지어 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호가 은후와 계약하며 루비도 혜택을 받게 되었다. 성호라는 다리를 한 번 거치기는 하지만.
‘뀽뀽이도 언젠가 라면을 먹어도 될 날이 오겠지만.’
그건 오늘이 아니었다.
“아직은 안 돼.”
“응. 그렇대, 애들아? 대신에 간식 줄게.”
라면을 먹다가 말고 수호령이 루비와 뀽뀽이에게 간식을 주기 시작했다.
‘하여간 여려서는.’
라면 퍼질 텐데, 일단 먹고 줘도 될 텐데.
성글거리는 루비와 뀽뀽이의 눈동자가 마음에 걸렸지 싶었다.
“이 맛있는 냄새, 뭐야?!”
갑작스레 나타난 개구리.
그리고 그 뒤를 따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도깨비와 구미호 부부.
“오오! 라면! 뭔가 평범한 라면이랑 냄새가 다른데?!”
개구리가 눈빛을 반짝이며 수호령이 먹던 라면 그릇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혓바닥을 쭉 뻗어서 라면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으으으으읍!”
그리고.
“앗! 내 라면!”
간식을 마저 주고 다시 라면을 먹기 위해서 자신의 그릇을 찾던 수호령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개굴아!”
“읍읍! 흡. 왜?”
“나빠!”
“뭐가?”
“라면!”
“어허, 예부터 이르길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법이라고 했거늘.”
수호령이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휙 돌렸다.
“어흠, 그래도 다 먹지는 않았는데.”
“거의 다 먹고 조금밖에 안 남았잖아!”
“그으, 내가 다시 하나 더 끓여 줄 테니까.”
“평범하게 끓인 라면 아닌걸! 양파랑 뭐 고춧가루랑…… 또 뭐였더라? 여튼 이것저것 은후가 많이 넣었어! 그리고 처음에 가루도 볶던데, 그렇게 해 줄 수 있어?”
개구리가 땀을 삐질거리며 은후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어, 은후 도령?”
은후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오호, 라면이라.”
“맛있어 보이긴 하네요. 우리도 라면 안 먹은 지 오래됐죠?”
“그랬제?”
“라면이나 하나 가서 사 와요. 아니, 창고에 라면 좀 쌓아 놓지 않았던가요?”
“그 전에 은후 도령에게 요리 방법부터 물어야 쓰것는데. 알려 줄 수 있것수?”
도깨비의 물음에 은후가 답했다.
“어렵지는 않지요. 어디 나쁜 개구리 때문에 라면을 최소한 하나는 더 끓여야겠으니 직접 보시죠.”
“어흠, 나도 한 젓가락 하고 싶은디.”
“저도요.”
“그럼 세 봉지. 거기, 개구리 씨?”
개구리가 후다닥 라면을 가지러 뛰어갔다.
“령이, 진짜 삐진 거 아니제?”
“쪼오금. 화가 난 건 아냐.”
“그래, 그래. 저 개구리가 그래도 보기와 다르게 심성이 좀 여린 거 알고 있제?”
“응.”
“령이한테 신경도 많이 쓰고 있고.”
“응.”
“그렇다고 사과하지는 말고. 먼저 잘못한 건 개구리 양반이니께. 어디까지나 적당히.”
“적당히?”
“고럼. 뭐든 적당한 게 좋은 것이여.”
어느 가을의 파란 하늘.
세상의 시끄러움을 벗어난 낙원의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