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은후와 캠핑.
캠핑.
캠핑.
캠핑.
은후와.
내일.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하루하고도.
‘몇 시간 남았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이하연은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무심코 웃음을 지었다.
캠핑, 그리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어렸을 때라면 모를까.’
그렇다고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은후와 함께. 그런 조건이 붙으면서 이하연은 캠핑을 고대하게 되었다.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도 아니고.’
설레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하루 전날도 아닌데.
그래서 방송 중에 시청자로부터 무슨 일이 있냐고 꽤 질문을 받았다. 목소리에서부터 뭔가 티가 난다면서.
“친구와 함께 캠핑 가기로 했거든요.”
그런 이하연의 말에 시청자들이 예리하게 물었다.
- 단순히 친구와 캠핑 간다는 거로 그렇게 즐거울 리가 없는데??
- 그치?
- 혹시 남자 친구?????
- ㄴㄴㄴㄴㄴㄴㄴ 아니 된다 그건.
그런 시청자들의 반응에 이하연이 답했다.
“남자 친구…… 후보.”
평균 시청자 700명 남짓의, 소위 말하는 하꼬는 벗어났으나 무슨 기업 소리까지는 듣기 애매한 방송 규모. 하지만 그 시청자들은 이하연의 얼굴이나 몸매를 보고 모인 건 아니었다.
얼굴은 공개한 적이 없고 브이튜브에서 몸매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방송에 있어서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방송의 주 콘텐츠는 게임이었으니. 몇몇 시청자들은 과하게 몰입하며 결사반대를 외치기는 했지만 무시해도 될 수준이었다.
- 혹시 브이튜브의 기타, 그분임?
- 오 ㅋㅋㅋㅋㅋ
- 응원합니다!
- 거, 방송인이 연애할 수도 있지…… 근데 모쏠 입장에선 화나네 ㅋㅋ
여론은 응원과 놀림의 사이, 어딘가였다.
계속 방송하면서 이하연이 이런저런 떡밥을 던지기도 했으며 은근슬쩍 은후에 관한 이야기를 드문드문 언급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었다.
- 혹시 생방할 생각은 없음??
없었다.
- 브이튜브 영상으론 올라오겠지?
아마도.
‘언젠가.’
나중에.
은후와 같이 방송하면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으으.’
원래는 자야 할 시간인데.
너무 일찍 눈이 떠져 버렸다. 이하연은 결국 다시 잠에 드는 걸 포기하고 기지개를 켠 뒤 방에서 나왔다.
간단하게 뭔가 먹을까 싶어서 주방에 갔더니 어머니가 아침 준비 중이었다.
“아직 출근 안 했어?”
아침부터 싱글벙글한 딸을 바라보며 이하연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아니면 밤새운 거니?”
“자고 일어났어.”
“그래?”
“응.”
“따로 떨어져 사는 것도 아닌데 우리 딸 얼굴 보기 힘드네.”
“아하하.”
이하연이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훨씬 낫다.”
“응? 뭐가?”
“너, 공무원 생활할 때보다 얼굴이 확실히 폈어.”
“그거야, 뭐어.”
괴로웠던 일도 시간이 흐르면 당시의 감정은 대개 흐려지기 마련이었다.
“지금 하는 일은 괜찮고?”
“그럭저럭? 돈 버는 일이 어디 쉽겠어.”
이하연에게 있어서 공무원 시절 겪었던 아픔은, 아예 말도 꺼내기 어려웠던 일에서 가볍게 이야기할 주제가 되었다.
“그나저나 아빠는?”
“중요한 회의가 있다면서 아침도 거르고 나갔다. 밥은 그래도 먹고 가지, 혼자 밥 먹으면 맛이 없는데.”
“대신 딸이 같이 먹어 줄게. 운이 좋았네?”
“그러네. 오랜만에 둘이 오붓하게 먹을까? 그런데 내일 캠핑은 어떤 친구랑 가는 거야?”
이하연이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딸 남자 친구 후보랑.”
“응?”
이하연 어머니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내려앉았다.
* * *
이하연이 어머니와 도란도란 아침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몇 시간 뒤, 은후는 오랜만에 도서관을 찾아서 건설과 관련된 서적을 읽고 있었다.
‘재밌네.’
집을 짓는 의뢰를 하기 전 정보를 찾기 위함이었다. 낙원에서 간단하게 올린 오두막과 다르게 현대의 공법으로 시공 의뢰를 해야 했으니.
어떠한 일이든 남에게 무언가 맡기려면 관련된 정보를 알아야 사기를 당하지 않는 법이었다. 더불어 원하는 걸 정확히 요구할 수도 있었고.
‘정확히는 확률을 올리는 것이겠지만.’
어떠한 일이든 100%라고 장담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는 법이니. 정말로 간단한 사칙 연산이 아니라면 숫자도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숫자를 해석하는 건 결국 인간이었으니까.
‘쓸데없는 생각을.’
아니, 그렇지는 않은가.
은후는 이번에 현대의 과학에 관하여 제대로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세계와 다르게 체계적으로 발달한 과학이란 학문에서 경지를 높일 수 있다는 직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 100%.’
조금 전까지 100%라고 장담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생각했건만. 그런 은후의 상념을 깬 건 뒤에서 들린 목소리였다.
“은후 학생?”
“교수님.”
강장원 교수였다.
은후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강장원 교수가 잔잔하게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냥 지나가려다가 호기심에 말을 걸어 봤네요. 건설에도 관심이 있었나요? 복수 전공?”
“아니요. 이번에 땅을 조금 사서 집을 올리려고 합니다. 정확하게 의뢰하려면 알아야 하니까요.”
“그거야 그렇지요. 그런데 땅과 집이라.”
은후가 술과 관련된 사업을 차렸고 대박을 낸 걸 알고 있는 강장원 교수였기에 돈과 관련된 충고나 조언은 하지 않았다. 대신에 넌지시 제안을 건넸다.
“내, 아는 사람이 있는데.”
“이미 소개받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요.”
“이런.”
“혹여라도 일이 어그러지면 교수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그나저나 논문의 경우엔 언제 마무리되겠나요?”
은후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올해 안으로 마무리될 겁니다.”
“즐겁게 기다리겠습니다.”
논문 작성에 있어서 강장원 교수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이제 없는 상황이었다.
“최종 검토는 교수님께서 해 주시는 거죠?”
“허허.”
강장원 교수가 웃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검토라.’
해 봐야 수정할 부분이 얼마나 발견될까.
* * *
은후는 다음 날 아침부터 차를 몰고 이하연의 집으로 향했다. 굳이 번거롭고 피곤하게 차를 몰고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하연은 말렸지만, 은후가 살짝 고집을 부렸다.
“자차 모는 게 편해.”
- 그래도 피곤할 텐데.
“건강 빼면 시체라서.”
- 농담은.
농담이 아니었지만 이하연이 듣기엔 그러했다.
- 알아서 해.
“삐진 건 아니지?”
- 조금?
“어떻게 풀어 줘야 할까.”
- 그건 알아서 생각해야지?
진짜로 삐진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증거로 마지막에 웃음을 흘리면서 전화를 끊었으니. 애초에 진짜로 그런 기색이 있었다면 은후가 직설적으로 그렇게 묻지도 않았을 터였다.
‘좀 서운해야 하는 것 같긴 했는데.’
그 서운함 속에 있는 건 자신에 관한 걱정이었다. 그래서 은후가 그리 말했던 것이다.
‘내가 마법사라고 말할 수도 없고.’
일정한 경지에 오른 마법사라면, 하물며 전장에서 뒹굴며 한때는 강대한 제국과 일전을 벌이기까지 했던 은후에게 있어서 몇 시간 운전 따위는 물을 마시는 것만큼 쉬웠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털어놓을 순 없으니.
‘괜한 고민인가.’
이 정도 의견 다툼으로 서로 감정을 상할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신경이 쓰이는 건 그만큼 은후가 이하연에게 더 감정적으로 가까워졌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은후는 그 증거에 기꺼움을 느끼며 차를 몰았다.
- 곧 도착해.
은후가 이하연의 집에 거의 다다를 무렵. 잠깐 정차한 뒤 문자 한 통을 남겼다. 이윽고 이하연의 사는 곳 앞에 은후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은후의 시야에 이하연이 비쳤다.
“기다리고 있었어?”
“응.”
이하연이 환하게 웃으면서 은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그냥 잘생겼다 싶어서.”
“갑자기?”
“어제 조금 서운했는데.”
“걱정해서 그런 말 한 건 알지만.”
“그러니까. 기차 타고 와서 렌트해도 되고, 아니면 내가 아빠 차 몰아도 되는걸.”
“장롱 면허 아니었어?”
이하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최근에 운전 연수받고 있다고?”
“봤어.”
“응?”
“방송하는 거, 반응 좋던데. 그런데 아직 실제로 차 몰고 다니기는 조금.”
“으, 생각보다 어렵더라고. 아빠나 너나 쉽게 쉽게 하는 것 같던데. 하여튼! 좀 서운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그냥 얼굴 보니까 풀리네.”
“잘생겨서?”
“으흠.”
“너도.”
“응?”
“예쁘다고.”
“어어.”
“그냥 그렇다고.”
예쁘다는 소리, 살면서 적잖이 들어왔다. 그리고 실제로 이하연 스스로 자신의 외모에 자신도 있었고. 하지만 그 예쁘다는 말이 누가 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그걸 이하연은 실감하고 있었다.
‘심장아, 그만 좀.’
그만 좀 뛰라고.
그렇게 이하연이 부끄러워하고 있을 때.
“안녕하세요?”
이하연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어, 엄마? 출근한 거 아니었어?”
“잠깐 시간 내서 와 봤지.”
은후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하연이 친구입니다.”
“들었어요. 남자 친구 후보라고 하던데요?”
은후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아직은 아니란 말이네요.”
“머지않은 것 같기는 한데요.”
“그렇다네?”
이하연이 우물쭈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다른 건 아니고, 그래도 얼굴은 한 번 봐야 할 것 같아서 일부러 시간 냈어요.”
다 큰 딸이라고는 하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아직 아이였다. 그 딸이 단둘이. 그것도 남자와 함께 캠핑하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사진보다 실물이 낫네요.”
“감사합니다.”
“번호 좀 알려 줄 수 있을까요?”
“그럼요.”
이하연의 어머니는 은후에게 뭔가 더 묻고 싶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판단하에 그저 고맙다는 말만을 남겼다.
“하연이가 방황할 때 힘이 되어 줬다고 들었는데 정말 고마워요.”
“아닙니다.”
“하연아.”
“응?”
“엄마는 갈 테니까.”
“으응.”
“아빠한테는 내가 잘 말해 둘게.”
“응.”
이하연의 어머니가 떠나갔다.
“아하하, 미안.”
“뭐가?”
“아니, 갑자기 엄마가.”
“그거로 왜 미안해 해. 어머니 입장에선 당연히 그럴 수 있지.”
“그래도.”
“하여간 그 이야기는 됐고. 챙길 건?”
“이거면 됐어.”
이하연이 자신의 뒤에 있는 캐리어를 가리켰다.
애초에 일반적인 캠핑이 아닌 글램핑이었다. 그래서 이하연이 챙긴 건 별거 없었다. 몇 가지 옷가지와 화장 도구 그리고 촬영 장비 정도에 불과했다.
“촬영해도 괜찮지?”
“편하게 해. 생방송 아니잖아.”
출발하는 것부터 콘텐츠가 될 수 있었다.
“사람들, 꽤 좋아할걸?”
“그러려나.”
“그럼.”
“은후 말이니까. 믿을게.”
훗날에는 캠핑이란 콘텐츠만으로 성공하는 브이튜버가 상당수 등장한다. 일종의 대리 만족이란 차원에서 캠핑만 한 콘텐츠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촬영은 좀 평소와 다르게 편하게 할래. 일하러 나온 건 아니니까.”
자연스러움이라.
“그것도 좋지.”
딱히 콘텐츠를 뽑아내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은후는 본능적으로 이런 방향이 더 시청자들에게 와 닿을 거란 걸 직감했다.
‘재능이 있어.’
이하연이 카메라를 꺼냈고, 은후는 자연스럽게 보조석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차에 탄 다음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이하연에게 피식 웃어 준 후 안전벨트를 매어 줬다. 그때 이하연이 은후의 목을 손으로 껴안으며 외쳤다.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