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무단으로 사진은 안 됩니다!”
한 직원이 열심히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단속했고.
“저 사람이?”
“진짜 잘생겼네.”
“잘생긴 건 둘째치고 말 모는 실력이 더 장난 아닌데.”
“기타도 잘 친다더라.”
“그건 또 어디서 들음?”
“직원한테. 말들이 감동해서 눈물 흘리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 중 모르는 사람이 없다던데?”
사람들은 은후를 바라보며 수군대고.
‘어때?’
‘좋아!’
은후는 그런 사람들을 뒤로하고 스타더스트와 교감하며 트랙을 달리고.
‘오늘은 여기까지.’
‘조금만 더!’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은후는 스타더스트를 달래며 마구간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마구간에서 스타더스트와 좀 더 함께 시간을 보내던 와중, 은후에게 기술 고문이 찾아왔다.
“이은후 씨?”
“누구세요?”
“전주 승마장 기술 고문 김지석이라고 합니다.”
“네, 이은후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이은후 씨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잠시 으레 처음 만나면 해야 할 말을 주고받은 뒤 김지석이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우리 승마장에서 제일 큰손인 이원석 씨 명함입니다.”
은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명함을 받았다.
“오늘은 그 친구가 시간이 없어서 힘들다고 했어요.”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마음의 변화라도 있으셨습니까? 일전에 저희가 드렸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요놈 때문에요.”
은후가 스타더스트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얘가 죽기 전에 넓은 평야에서 원 없이 함께 달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야.
“국내에는 그런 곳이 없잖아요?”
“그거야.”
김지석에 쓰게 웃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제 조건은 딱 그거 하나……뿐은 아니겠군요. 제일 중요한 이유이긴 하겠습니다만.”
“제가 그 친구에게 전해 놓죠.”
그때 스타더스트가 투레질하며 신경질을 부렸다. 이제 곧 떠날 거면서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느냐고. 그 광경에 김지석은 부드럽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로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네.’
말이 좋아서, 그래서 직업까지 말과 관련된 직종을 선택한 김지석은 스타더스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은후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사라졌다.
* * *
스타더스트와 시간을 보낸 후 은후는 전북대학교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그 카페가 이번에 개업했다고 했으니까.’
룸 카페 아람.
인도식 인테리어로 훗날 유명해지는 카페였는데, 오후에는 커피를 해가 떨어지면 칵테일과 와인을 팔았다. 가격대는 평범했으나 특이한 인테리어와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입소문만으로 인기를 얻게 되는 곳이었다.
“선배.”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아리 후배인 임서혁이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산책이요. 소개팅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적당히 근처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임서혁의 말에 은후가 피식 웃었다.
“주차장에서?”
“적당히 사람이 오고 가잖아요.”
“하여간 특이해.”
“특이한 건 저보다 선배가 아닐까요.”
“내가?”
임서혁이 은후의 얼굴을 잠깐 바라본 뒤에 말했다.
“제가 얼굴이면 연예계로 나갔을 텐데.”
“아서라. 어디 연예계가 쉬운 곳인 줄 아냐?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만 봐서 그러는데.”
“아뇨, 알죠. 정확히는 몰라도 대충은 알아요. 제 동생이 연예인 연습생이거든요.”
“그런데?”
“형 정도로 잘생겼으면 욕은 좀 먹어도 얼굴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거야.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은후가 잠깐 객관적으로 자신의 잘생김에 고찰하다가 그냥 웃고 말았다.
“귀찮아.”
“그게 저보다 특이하다는 점이죠. 성격도 완전히 바뀌신 것 같은데.”
“내가?”
“네, 예전의 선배였으면.”
은후는 그렇게 잠시 임서혁을 상대해 주다가 말했다.
“슬슬 약속 시간이라.”
“약속요?”
“어.”
“저도 이제 가야 할 것 같은데. 어디까지 가세요?”
“아람.”
“오, 이거 우연인데요. 저도 거기예요.”
“소개팅을?”
“분위기 좋다고 들었어요. 약속 장소는 제가 잡은 게 아니라 상대방이 잡은 거고요.”
은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임서혁과 시답지 않은 잡담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길을 가던 와중 깜짝 놀랐다.
“은후다!”
은후에게만 들리는 목소리.
수호령이었다.
은후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어디 가?”
‘약속이 좀 있어서. 그나저나 장하다.’
이제는 이 근처까지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구나.
“그래도 금방 돌아가 봐야 해. 정말 잠깐 나왔어. 개구리가 하도 보채 가지고.”
‘령이도 슬슬 익숙해져야지, 돌아다니는걸. 사람이 많을 때에도.’
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개구리의 말도 맞았다.
‘그럼 이따가 봐.’
“응!”
은후가 환하게 웃었고, 수호령은 손을 흔들었다. 개구리는 인간 형태가 아니었기에 폴짝폴짝 뛰면서 잘 가라는 뜻을 전달했다. 그때 임서혁이 은후에게 물었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좋은 일이라면, 뭐, 그렇지.”
“아무 때나 그렇게 웃지 마세요.”
“뭐가?”
“앞에 안 보이세요?”
“앞에?”
아.
오늘 술 약속을 한 멤버들이었다.
박나리와 박훈.
이채린이 없어서 다소 특이한 조합. 항상 박훈의 여자 친구인 이채린은 거의 박훈과 붙어서 지내는 것 같았으니까.
“앞뿐만이 아니라 지나가다가 다들 멈칫멈칫하던데. 특히 여성분들이.”
“됐다.”
무슨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보통은 은후의 냉담한 표정과 접근하기 어려운 느낌의 오라가 그런 일을 방지했지만, 이번엔 수호령 덕분에 아니었으니.
“어, 그.”
“후배님들.”
은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아람으로 가죠.”
“넵.”
은후가 앞장섰고 나머지 셋이 뒤를 따랐다.
* * *
룸 카페 아람에 입장한 뒤에 임서혁은 은후를 비롯하여 다른 동행인에게 인사한 후 창가의 테이블에 미리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은후를 비롯한 다른 셋은 가장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채린이는 좀 늦는다고 하더라고요. 죄송해요.”
사촌 동생 때문이라고 했다.
은후는 신경 쓰지 말라며 괜찮다고 답했다. 명확하게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뭐.’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대충 느껴지는 감정만 봐도 말하기 힘든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시키고 싶은 거…… 아, 아니다.”
은후가 잠깐 고민하다가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취향을 떠올린 뒤 알아서 주문했다.
“주문에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해.”
“에이, 물주님 뜻대로 따라야죠.”
박훈의 너스레에 은후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어차피 돈 쓰는 건데 각자 먹고 싶은 걸 먹어야지.”
“전 불만 없어요. 나리 선배는요?”
“나도.”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은후의 주문에 불만은커녕 꽤 만족한 상태였다.
“짠!”
박훈의 주도로 가볍게 잔이 오갔다.
“정말로 그 교수님이 그랬다고?”
“네, 진짜 의외죠?”
대학교 내에 오가는 이런저런 가십거리들에 관한 이야기.
“……그래서 도서관 건물이었던가, 갑자기 귀신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거의 박훈과 박나리가 대화했고, 은후는 적당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여기 칵테일 괜찮네.’
다른 이들이 바라보기에 은후가 술을 마시는 속도는 적잖이 빠른 페이스였다.
“선배님.”
“듣고 있어.”
“그 소문 진짜예요?”
“무슨 소문?”
“승마장에서요. 갑자기 스타? 무슨 말이 난동 부리고 선배님이 막아섰다고 그러던데요.”
스타더스트에 관한 이야기인가.
“사실 맞을걸? 구체적으로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모르겠지만.”
은후는 가볍게 스타더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했다. 이런 술자리에서 계속 뒤로 빼기만 하면 그건 그것대로 인간으로서 예의가 아니었으니까.
자의적으로 최소한 술자리에 함께하기로 했으면 적당히 어울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스타더스트에 관한 이야기가 끝날 무렵 이채린이 도착했다.
“여기!”
이채린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늦어서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급한 일이 있으면 늦을 수도 있죠.”
은후의 말에 이채린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동생은?”
“……응. 잘 해결 되었……나, 잘 모르겠다. 이거 잭 콕이지?”
“어, 어어.”
“내가 좀 마실게.”
박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채린이 반쯤 남아 있던 잭 콕을 원샷 때렸다.
“후우, 좀 살 것 같네.”
은후가 눈치 보지 말라고, 마시고 싶은 술은 맘껏 더 시키라고 했고, 박훈과 이채린은 감사하다고 말한 뒤 메뉴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야, 야.”
“뭐?”
“그 승마장 소문 진짜래.”
“정말?”
“응, 방금 물어봤거든.”
“와, 내 남친이지만 너도 대단하다. 그걸 직접 물어봐?”
“아니, 뭐가? 물어볼 수도 있지. 나쁜 소문도 아니고.”
“으이구.”
일부러 박훈이 여자 친구의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걸 은후도 알아차렸기에 적당히 맞장구쳐 줬다. 박훈의 말대로 딱히 뒷담화나 그런 것도 아니었고.
‘그 정도는 물어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러다 보니 덕진 공원에서 기타 연주했던 것까지 소문이 퍼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하연과 배를 타고 호수 위에서 친 〈월광〉이 아닌, 그 전에 했던 연주. 당시 구경꾼 중에 전북대학교 학생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것도 진짜 선배님 맞아요?”
“뭐.”
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타, 나중에 한번 들려 주세요.”
“기회 되면.”
그때 마침 이하연으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캠핑 스케줄을 잡자는 문자였다. 은후는 문자를 확인하고 바로 답장을 보냈다.
- 아무때나.
- 수업은?
- 졸업만 하면 되니까.
- F만 아니면 된다 이거지?
- 그렇지.
- 부럽다아.
- 부럽기는. 그래서 언제로?
- 잠깐 생각 좀.
은후가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자 박나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선배님.”
“네.”
“취업하셨다고 그러셨잖아요.”
“그랬죠.”
“어디로 하셨어요?”
은후가 잠깐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정확히는 창업이에요.”
어차피 대외적으로 드러내려고 마음먹은 부분이었으니.
“창업요?”
“네.”
순간적으로 깔린 침묵.
“별거는 아니고 그냥 조그마한 양조장을 조금.”
“와, 와, 와. 별거 맞는 것 같은데요!”
그때.
“여보!”
한 남자가 가게 문을 열면서 크게 소리쳤다.
“여보! 이거 봐 봐!”
“이 화상아! 손님들도 많은데!”
남자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이며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방금 정말 기쁜 일이 있어서요! 혹시 술자리에 방해되었다면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사죄의 의미로 칵테일을 한 잔씩 공짜로 드리겠다는 말에 손님들은 환호성으로 보답했다.
“소란도 아니었는데요!”
“그럼요! 괜찮습니다!”
“두 분 정말 잘 어울려요!”
“감사합니다!”
다들 적당히 술도 들어간 상태였고, 남자의 목소리가 크기는 했으나 별 피해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사과만 해도 넘어가도 될 것 같았는데 공짜 칵테일까지 준다고 하여서 그런지 가게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근데 뭘 보라고?”
남자가 씩 웃으며 술병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짠.”
“뭔데?”
“환상의 술.”
“그게 진짜 있는 술이었어?”
“어.”
그 대화를 듣게 된 은후가 멋쩍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만든 술인데.’
어떻게 마케팅했기에 그런 말이 붙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