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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95화 (95/170)

제95화

도깨비와 한창 물장구를 치며 놀던 수호령이 쪼르르 달려왔다.

“은후다!”

은후가 잔뜩 젖은 수호령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성호가 루비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읊었다.

“감기 걸린다.”

은후가 마나를 일으키려다가 개구리를 바라봤다. 개구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루비와 개구리의 몸에 있는 물기를 싹 다 날려 버렸다.

“오! 뽀송뽀송해!”

“엣헴.”

개구리가 으스대자 어슬렁어슬렁 뒤에서 걸어 나온 도깨비가 기지개를 켜며 입을 열었다.

“개구리 양반.”

“도깨비 형씨는 딱히 감기 안 걸릴 거 같은데?”

시비를 건다기보다 장난스러운 느낌의 말투.

“찝찝하단 말일세.”

“이따가 파전?”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둘이 적잖이 친해진 모양이었다.

‘처음에 은근히 엄청 경계했던 것 같은데.’

개구리가 도깨비를.

‘잘되었네.’

낙원의 주민끼리 모두가 친하길 바라는 건 아니었다. 딱히 서로의 관계에 개입하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서로 친하게 지내면 좋지 않겠는가.

“파전에는 막걸리지. 막걸리는 개구리 양반이 준비하는 거유?”

“콜. 그런데 막걸리보다는 자네 호리병의 술이 몇 배는 맛이 더 좋을 텐데.”

“거, 뭐, 당연한 소리를.”

“너무 쩨쩨해.”

“쯔쯧, 내 저번에 분명 말했지 않수. 숙성시킨 만큼 더 맛이 좋은 술이 나오는 법이여. 사실 이것도.”

도깨비가 입을 쩝쩝 다시며 은후를 쓱 바라봤다.

“다 은후 도령이 우리 부부를 낙원의 주민으로 받아 준 덕분이제.”

어느 순간부터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전전긍긍하던 세월. 하지만 이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고, 어느 정도 힘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큼큼, 그래서 그런디.”

“안 됩니다.”

도깨비가 뭔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은후가 딱 자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인간과의 접촉은 아직 일러요. 아예 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나중에요, 나중에.”

“20년은 너무 긴디.”

사실 아예 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인간에게 장난을 치고, 인간과 어울리고 싶어 하고.’

그건 도깨비의 본능이니, 아예 본능을 억누르고 살아가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애초에 이 점은 도깨비를 낙원의 주민으로 받아들일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번에 런던에 다녀오면서 얻은 성과가 좀 있습니다. 저번에 제가 20년을 말했었죠.”

“그랬제.”

“10년, 빠르면 5년. 그보다 더 단축될 수도 있고요.”

“정말인감?!”

“네. 그런데 그 전에 마음대로 행동하면 얄짤없습니다. 추방이에요.”

잔잔한 어투와 다르게 단호한 말. 도깨비는 그런 은후에게 두 손을 올리며 답했다.

“맘대로 행동하진 않을 겨.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의 뒤통수를 치지는 않을 걸세.”

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그렇게 말했다면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잠깐 이런저런 이야기가 더 오간 후.

“심각한 이야기는 다 끝났어?”

수호령이 슬그머니 은후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 거 같은데?”

“응응.”

수호령이 기대에 찬 눈초리로 은후에게 외쳤다.

“과자 사 왔다고 들었는데!”

은후가 눈을 천천히 깜빡거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대화를 나눈 건.’

여기에서 한참 먼 거리인데, 낙원의 영역도 아니었고.

‘확실히 성장했나.’

이름.

조만간 확정해 두지 않으면.

은후는 몇 가지 생각해 두었던 수호령의 이름 후보를 떠올리며 리어카에서 과자를 꺼냈다.

“과자!”

“오늘은 과자 파티할까?”

“응!”

“그러면 내 그에 맞는 음료를 좀 만들어야겠구마.”

“그나저나 연후 씨는요?”

낙원에 보이지 않은 주민 둘이 있었다. 도깨비의 아내 구미호와 서연후. 구미호야 그렇다 치지만 서연후가 보이지 않는 건 좀 이상했다.

“연후 씨가 임자에게 뭐 상담할 게 있다면서 나갔네.”

“상담이요?”

은후가 고개를 갸웃하자 옆에서 신나게 무슨 과자를 먼저 먹을까 고민하던 수호령이 외쳤다.

“벌레!”

“벌레?”

“응응. 능력에 관해 조언을 구한다고 들었어.”

“우리 임자가 그런 쪽에도 조예가 깊제.”

특별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굳이 마나를 퍼뜨려서 알아볼 필요는 없겠네.’

과자 파티가 시작되었다.

* * *

은후는 낙원의 주민들과 적당히 과자를 먹은 후 전주 승마장을 찾았다. 은후가 왔다는 말에 스타더스트 전담 직원이 반색하며 뛰쳐나왔다.

“은후 씨, 오랜만에 오셨네요?”

“네,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서 좀 뜸했네요.”

너무 반가워하는 표정의 직원에게 은후가 물었다.

“스타더스트가 뚱해 있죠?”

“하하, 네, 뭐어.”

직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며칠 전부터 장난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은후 씨가 오래 안 와서 그런 것 같던데요.”

은후가 어깨를 으쓱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적잖이 익숙해져 버렸기에 따로 안내할 필요도, 직원들의 제지도 없었다. 이미 은후는 전주 승마장에서 유명 인사였기 때문이다.

뛰어난 외모와 그 외모 못지않은 승마 실력, 더불어 스타더스트와 얽힌 몇 가지 이야기는 자연스레 은후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기자가 취재하러 왔다고.

“취재요?”

“네, 스타더스트가 대중들에게는 몰라도 이 바닥에서는 유명하잖아요.”

“그거야, 뭐.”

“그 우리 승마장의 가장 큰 후원자님 있잖습니까.”

“네.”

은후도 승마장을 몇 번 오가며 들어 봤다.

“스타더스트도 그분이 들여왔다고 하셨죠.”

“네네, 그분이 은후 씨 자랑을 그렇게 했나 봅니다.”

“저를요?”

“네.”

딱히 서로 인사를 나눈 적도 없는데.

“몇 번인가 은후 씨가 스타더스트를 몰던 모습을 지켜보셨던 모양입니다. 자연스럽게 은후 씨 이야기도 듣게 되셨고요.”

직원의 말에 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일 테니까.

“이 바닥에서 꽤 유명하신 분이라 몇몇 기자가 호기심에 저희 승마장을 찾았거든요.”

“그래서요?”

“인터뷰 부탁을 좀 하고 싶다면서.”

“서로 아시는 사이예요?”

“하하, 네. 뭐어.”

직원이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혹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다짜고짜 자리를 만드셨다면 또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고 제가 신세도 이럭저럭 졌는데요.”

직원이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예의가 아니죠.”

“그러니까요. 그런데 세상은 참 넓고 사람들은 너무 많더라고요.”

개중에 예의를 모르는 사람도 적잖이 있었고.

그런 뉘앙스의 은후의 말에 직원이 다시 한번 어색하게 웃었다.

‘대학생 맞아?’

절대 그 나이 또래로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는 거절, 음.”

은후가 잠시 멈칫하다가 잠시 고민했다.

“후원자님과 자리 한번 만들어 주시죠.”

“네?”

“그때까지 인터뷰 제안은 보류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냥 자리 한번 만들어 주세요. 아마 거절하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혹시 댈 핑계가 마땅히 없으시면 일전에 거절했던 모델 건에 관해서 다시 한번 고려 중이라고 하죠.”

일전에 제안했던 전주 승마장 모델 제안.

“아, 네.”

이윽고 도착한 마구간.

은후의 기척을 느낀 스타더스트가 푸르륵거렸다.

“그래, 오랜만이야.”

‘왜 이렇게 늦었어?’

“일이 좀 있었거든.”

‘나빠. 얼마 안 남았는데.’

수명이.

“그게 느껴져?”

‘당연히.’

은후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기 선물.”

‘선물?’

“멀리 나갔다 왔거든.”

‘어디에?’

은후는 승마장에 오기 전 쇼핑백에 말들이 좋아하는 당근을 꺼내었다.

“아, 당근 줘도 괜찮죠?”

“잠시만요.”

뒤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은후와 스타더스트를 지켜보던 직원이 은후가 가져온 당근을 이래저래 살핀 후 답했다.

“괜찮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스타더스트는 당근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래요?”

“그래도 은후 씨가 준다면 먹긴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은후가 어깨를 으쓱인 뒤 당근을 스타더스트에게 내밀었다.

“먹어 봐.”

‘당근 싫어.’

“조금만. 엄청 맛있을걸?”

‘그럼 한입 먹어 보고.’

“그래, 그래.”

스타더스트가 은후가 내민 당근을 와그작 먹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멈칫한 뒤 푸르륵거리며 몸부림쳤다.

‘맛있어!’

그 광경에 직원이 순간적으로 놀랐으나 이내 그게 사고가 아닌 스타더스트가 단순히 기쁨에 몸부림친 걸 알아차렸다.

‘후, 하.’

왐냠냠, 열심히 당근을 먹기 시작한 스타더스트.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말은 당근을 좋아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말 또한 입맛이 개체마다 다른 법. 당근을 싫어하는 말도 존재했다. 스타더스트의 경우엔 싫어한다기보다는 내켜 하지 않다고 해야겠지만.

‘몇 입 먹고는 말았을 텐데.’

평소의 스타더스트라면.

그런데 저렇게 맛있게 열심히 먹는 걸 보아하니 음식의 맛도 주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지. 그냥 일반적인 당근이었는데.’

그건 아닐 거고, 그냥 은후가 좋아서 그러는 거겠지.

하지만 그런 직원의 짐작과 다르게 스타더스트는 진짜로 평소와 다르게 당근이 맛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건 은후가 준 당근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마나가 듬뿍 담겨서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육체에 쌓인 피로를 덜어 주는, 더불어 신체의 노화를 방지하는 기능까지.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인간에게는 부작용이 적잖이 있다는 것.

‘그리고 재료가 말이지.’

은후가 쓰게 웃었다.

이세계에서만 구할 수 있는, 현대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가 적잖이 들어갔다. 다행히 현대에서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래, 그래.”

푸르르륵!

‘얼마 남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살 수 있는 만큼은 더 살아야지.’

‘죽어서도 달릴 수 있다며?’

‘응.’

‘그러면 빨리 죽고 싶은데.’

‘그래도 육체가 있고 없고 차이는 꽤 클걸?’

은후가 마나를 매개로 스타더스트와 서로의 의지를 교환했다.

‘죽기 전에 트랙 말고 넓은 평원에서 한번 달려 봐야지.’

‘그럴 수 있어?’

‘그럼.’

‘기다릴게.’

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넓은 평원.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수 없으니까.

‘몽골 정도이려나.’

가까운 곳 중 당장 떠오르는 장소가 있는 나라는.

그러기 위해서 아까 직원에게 그런 말을 건넨 것이다. 스타더스트의 육체가 최후를 맞이하기 전에, 지평선이 보일 정도의 끝없는 평원에서, 죽을 때까지 질주를.

그럴 수 있다면 은후도 어느 정도는 양보할 생각이었다. 예컨대 전주 승마장의 모델 건이 그러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좋겠는데.’

은후가 스타더스트에게 말했다.

“가볍게 달릴까?”

‘좋아!’

은후가 스타더스트를 이끌고 빈 트랙을 찾았다.

“가자.”

* * *

은후가 한창 스타더스트와 함께 트랙을 달리고 있을 때. 스타더스트 전담 직원이 윗선에 보고하고, 윗선에서는 그 말을 듣고 승마장의 가장 큰 후원자 이원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승마장의 기술 고문 중 한 명이 이원석과 사적인 친분이 꽤 두터웠기에 그렇게 큰 부담도 아니었다.

“원석이, 바쁜가?”

- 조금?

그리고 이원석에게 은후가 했던 말을 전달했다.

- 흠, 오늘은 바쁘고, 조만간 만나서 이야기했으면 좋겠는데. 내 번호 좀 그 친구에게 알려 줘.

“알았네.”

그 무렵, 스타더스트가 투레질하며 투덜거렸다. 은후가 스타더스트의 몸 상태를 고려해서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스타더스트는 못내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갑갑해.’

은후가 쓰게 웃으며 스타더스트를 달랬다. 조금만 참으라며. 그리고 그 광경에 주위에서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손님들뿐만 아니라 직원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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