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은후가 굳이 기타를 치는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연꽃이 개화하는 장면을 아이에게 보여 주고자 했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이, 은혁의 깨져 버린 그릇.
간신히 형태는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뿐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고친다면.’
그만큼 은혁의 생명은 연장될 터. 하지만 그 과정이 무척 험난했다. 만약 이세계였다면 제대로 된 연구실에서 각종 시약 및 마법진을 그리고 조치를 취했을 터였다. 시간 또한 매우 오래 걸렸을 것이고.
하지만 현대에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 물론 은후가 하고자 한다면 못할 건 없었으나, 그 수단은 불법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 온건한 수단으로 진행하더라도 세뇌 정도가 아니면 부모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아이 본인이라면 적당히 말로 설득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은후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방법이 아예 없다면 모를까.’
현대에서 얻은 깨달음과 지금까지 쌓아 올린 각종 지식이 있었다. 또한 운 좋게 사람이었던, 하나 지금은 정령이 되어 버린 성호와 계약까지 맺을 수 있었으니.
‘음률로.’
효율과 확률만 따진다면 인간을 버리는 게 나았다. 현대에서는 흑마법사다운 행동을 거의 하지 않았으나 엄연한 흑마법사. 그렇기에 키메라 제조에 관련된 지식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살고 싶어 할까?’
겉으로 보이는 건 인간이나 실제로는 괴물일지언대.
‘아니겠지.’
아까 오는 길에 슬쩍 물어봤다.
‘뱀파이어…… 그러니까 흡혈귀 알지?’
‘드라큘라?’
‘그래.’
‘영화에서 봤어.’
‘만약 드라큘라 혹은 그 비슷한 게 되어 살 수 있다면 살고 싶니?’
은혁은 고민하다 답했다.
‘잘 모르겠어.’
‘그래.’
하지만 그 대답 안에 깃든 건 부정의 감정.
그렇기에 은후는 오롯이 인간으로서 은혁이 좀 더 살아갈 수 있게끔 노력해 보기로 했다.
‘성호 씨.’
‘예압, 마스터.’
뜬금없는 소리에 은후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스터?’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좋을까요?’
은후가 질색하며 답했다.
‘그냥 평소대로 말하세요.’
‘어제 영화를 보면서 좀 로망이 생겨서요.’
‘개구리랑 친하게 지내더니 물드셨어요?’
‘하핫.’
‘장난은 그만하죠.’
‘큼.’
은후의 의지가 성호에게 전달되었다. 성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주를 시작했다.
‘마침 잘되었네요. 최근에 만든 곡이 하나 있거든요? 은후 씨를 마스터라고 부른 영화의 OST에서 영감을 받은 건데요.’
‘이거 꽤 진지한 일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 혼자는 안 돼요. 은후 씨의 도움이, 그러니까 정확히는 협조가 필요합니다.’
‘아.’
이번 치료의 핵심 중 하나는 천도복숭아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였다. 하늘의 기운을 담은 마나만큼 깨진 그릇을 수복하는 데 좋은 재료는 없었다.
‘그런데 천도복숭아 나무의 마나, 움직일 수 있지 않았나요?’
‘움직이기는요. 그저 살짝 건드리는 것뿐인데요. 그 정도로는 은후 씨가 말한 지시를 이행할 수 없죠.’
‘분명히 움직이셨던 것 같은데.’
‘그건 우연이랄까요. 다시 하려니까 안 되더라고요.’
‘일단 알겠습니다. 도와 드리죠.’
‘네.’
성호가 은후의 도움을 받아 기타를 켜기 시작했다.
* * *
처음에 은후가 기타를 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잔뜩 기대를 품고 은후를 바라봤다. 하지만 꽤나 시간이 흘러도 은후가 가만히 있자 이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잔뜩 폼만 잡고는.”
“기타 치는 사람 어디 갔나?”
은후를 알아본 사람의 친구가 말했다.
“야.”
“어?”
“진짜 기타 잘 치는 사람 맞음? 칠 생각 없어 보이는데.”
“글쎄다? 하여간 그 사람이 맞긴 맞아. 저 얼굴 한 번 보면 잊겠냐? 저렇게 잘생겼는데.”
“하기야, 나도 저렇게 태어났으면. 아니, 하루만이라도 저런 얼굴로 살아 봤으면 좋겠다. 대체 어떤 기분일까? 죽일 것 같은데.”
“죽이기는 무슨, 막상 본인 얼굴이면 무덤덤할걸? 평생을 저 얼굴로 살아왔으면 잘생긴 게 일상일…….”
드디어 은후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좋은 연주인 것 같았다.
분명히 좋은 연주가 아닐 수 없었다.
‘무슨 노래지?’
어디서 들어 본 것도 같은데.
사람들은 그리 생각했다. 왜냐하면 은후의 연주는 일반적이지 않았으니까. 음률에 담긴 건 은후가 바라는 감정의 마나와 천도복숭아 나무의 마나.
바라는 건 오로지 따뜻함이니. 그 안에 천도복숭아 나무의 마나가 담겼다. 음률에 따라 마나가 어우러지며 은혁이의 주위를 맴돌았다. 사람들이 느끼는 건 그저 포근함과 따스함이었다.
치료 과정의 여파. 하나 그것만으로 사람들은 무척이나 편안했다. 만약 은후가 마음만 먹었다면 당장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을 세뇌하여 사이비 종교라도 하나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OST 같은데? 제목이 뭐였더라.”
“야, 조용히 해라. 어디 신성한 연주 앞에서.”
물론 그리하진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힘썼다. 하지만 여파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그쳤다. 평소라면 아예 음률에 실린 감정조차 못 느끼게 할 수 있겠지만.
‘힘들군.’
치료에 집중하고 있었으니.
그러니 최소한만.
‘일단 깨진 조각들을 살려야 해.’
흩어진 그릇의 파편들.
생명으로 따지면 이미 죽어 버렸으나 흔적은 남았으니, 그것만이라도 최대한 수습해야 했다. 그래서 따뜻함을 바랐다. 따뜻함 속에서 다시 생명이 솟아나길.
두 번째 바라는 건 친근감이었다. 되살아난 미약한 생명의 조각들이 원래의 그릇에 다가갈 수 있도록.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레 곡조가 변했다.
‘마지막으로는.’
편안함. 제대로 안착할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은혁은 차례차례 누구보다 곡의 감정을 명확하게 느꼈다. 따뜻함 속의 생명력을, 친근감 속의 편안함을. 몸 또한 마찬가지였다.
완벽하게 그릇이 복구된 건 아니었다. 이 정도로 완치할 수 있었다면 은후가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작 깨어진 그릇을 조금 수선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그것만으로도 은혁에게 있어선 충분했다. 평생 느끼지 못했던 활력감이 치솟았으니까. 은혁에게 있어서 기억하는 모든 나날은 반대였다.
‘항상 지치고 피곤했어.’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자신의 또래 애들이 뛰어다니며 신나 하는 광경이 나올 때마다.
‘우리 은혁이도 저 아이들처럼 활기차게 뛰어놀아야 할 때인데.’
할아버지가 말했던가.
‘활기차다는 게 뭐야?’
‘그건 말이지. 몸에서 힘이 솟구치고, 막 가만히 있기 싫고, 움직이고 싶고.’
대답은 다른 사람이 했었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그런 적이 없어서.’
은혁의 말에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아빠였던가.
‘활기차다는 게 이런 거구나.’
조금 눈물이 났다.
‘아프지 않은 아이들은.’
평소에 다 이런 느낌일까.
‘부럽다.’
질투도 났다.
‘이렇게 살고 싶다.’
쭉.
그래도 그 질투가 집착이 되진 않았다.
‘은후 형이 해 준 거겠지?’
잘은 모르겠지만, 연주를 듣는 순간부터 몸에 힘이 나기 시작했으니까.
‘노력해 본다고 했어.’
믿어도 될까.
‘이번에도 그러면.’
골수 이식 후 완치될 확률이 높다는 의사의 말에 가졌던 희망. 하지만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큰 법. 골수 이식의 예후가 좋지 않자 절망이 찾아왔다.
그래서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리고 투정했다. 그래도 마냥 오냐오냐, 최대한 바라는 걸 들어주고자 부모님은 애썼고. 그러다가 은혁은 알아차렸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았다는 걸, 죽음이.
그래서 포기했다.
받아들였다.
조금 아쉬운 건.
‘그래.’
연꽃, 호수에 가득 찬 연꽃을 보고 싶었는데.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들은 열심히 일기로 남기고 있었다. 그런 나날을 보내다 신기한 친구를 보았고, 다시 그 친구와 재회했을 때 신비한 형, 은후를 만났다.
‘다시 꿈꿔도 될까.’
은혁이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은후가 연주를 멈췄다. 더 치료를 이어 가다간 은혁의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기에.
‘희망을 갖게 해야 해.’
치료 과정에서 현대 의학이건 마법이건 환자의 의지는 무척이나 중요한 부분이니.
“은혁아.”
“어, 어. 응.”
“볼래?”
“뭘?”
은후가 기타를 내려놓고 은혁을 목말 태웠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가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 봐 봐.”
연꽃이.
“와…….”
피어나고 있었다.
“형이 은혁이 병, 고쳐 줄게.”
“……정말?”
“지금은 좀 어때?”
“정말 좋아.”
“그래. 은혁이 병이 완치될 거라고 장담하지는 못해. 그래도 최소한 삶을 이어 가게 할 수는 있어.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꽤 길게 말이야.”
“…….”
“당장 죽을 것만 같았지?”
“응.”
“지금은 좀 괜찮지?”
“응.”
“더 괜찮아질 수 있어. 그건 약속할게.”
“응. 나, 나, 솔직히, 좀 더 살고 싶었는데.”
“좀 더 살 수 있게 되었네?”
“응.”
어느샌가 수호령이 나타나서 말했다.
‘자주 놀러 와야 해?’
“어?”
‘은후가 말했는데 나랑 자주 놀라고 하더라구.’
“노력은 해 보겠지만, 엄마가.”
“그건 형이 잘 말해 줄게.”
“응.”
어느새 활짝 폈던 연꽃이 다시 아까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이야기를 계속 나누면서 시선은 호수에 두고 있던 은혁이 깜짝 놀랐다.
“연꽃이 원래대로 돌아갔어.”
“은혁이를 위해서 형이 잠깐만 보여 준 거야. 은혁이 말고는 아무도 못 봤을 테니까 비밀이다?”
“정말로 마법사야?”
“그럼. 우리 은혁이, 안 믿었어?”
“……쫌.”
옆에서 수호령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언제 봤다고 우리 은혁이?’
“우리 령이 삐진 건 아니지?”
‘조금 삐졌어.’
“이따 맛있는 거 먹을까?”
‘내가 먹을 거 주면 괜찮아지는 줄 알아?’
“아니었어?”
은후가 일부러 놀라는 척하자, 수호령이 툴툴거렸다.
‘치킨이랑 피자랑 탕수육이랑 닭발.’
정말 본심은 아니었지만, 아주 조금.
‘쪼오오오금은 삐졌으니까.’
그래서 이것저것 생각나는 음식들을 말했다. 은후는 피식 웃으며 수호령의 머리를 헝클었다.
‘그래도 뭐.’
은혁이가.
‘나아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가능하다면 완벽하게 회복하면 좋을 텐데.
“어어, 싸우는 거 아니지?”
‘아니야, 장난!’
“그럼 치킨, 피자, 탕수육, 닭발도 장난?”
‘그건 장난 아니고!’
은혁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핫, 웃겨.”
‘칫칫, 은혁이는 내가 웃기지?’
“그럼 안 웃겨?”
‘너도 웃겨.’
“난 안 웃긴걸.”
‘내가 웃긴 친구 보여 줄까?’
“친구? 나 말고도 친구가 있어?”
‘날 너무 띄엄띄엄 보는 거 아니야? 나, 친구 많거든!’
“헤헹, 너 알아보는 사람, 나랑 은후 형 말고 없으면서.”
‘아니거든!’
“그럼 데려와 봐.”
은혁의 말에 수호령이 개구리를 불렀다.
‘나 불렀어?’
“헉!”
어디선가 대뜸 나타난 개구리의 형상에 은혁이 외쳤다.
“개구리다!”
‘그래, 개구리다.’
“마, 말을 한다!”
‘말하는 개구리, 처음 봐?’
“처음 봐!”
‘그래, 처음 보겠지. 나 같은 개구리가 세상에 또 어디 있다고. 엣헴.’
“령이랑 똑같네.”
‘얘가 내 친구 2호!’
“1호는?”
‘은후!’
‘나는 2호였구나. 슬퍼라.’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내가 같이 울어 줄게.’
‘안 울어.’
아무 말 대잔치 중인 아이와 정령과 개구리를 바라보며, 은후가 피식 웃었다. 이제야 은혁이 제 또래답게 웃는 것 같았다.
“와, 천 살이 넘어?”
‘흐흐, 멋지지?’
“징그러.”
‘어?’
“나도 좀 더 살고 싶기는 한데, 천 살은 에바야.”
‘어허. 그럼 몇 살까지 살고 싶은데?’
“어. 음, 한 30살? 그런데 령이는 몇 살이야?”
‘나? 나 몇 살이더라. 그래도 은근히 먹을 만큼 먹었으니까.’
“열 살?”
‘그거보다 더 먹었거든. 그러니까 형이라고 불러.’
“나랑 키도 비슷한 게 나이도 비슷할 거 같은데.”
그사이, 슬슬 사람들이 연주의 여파에서 하나둘 제정신으로 돌아오려는 조짐이 보였다. 은후는 은혁의 주위에 은폐 마법을 펼쳤다. 은혁의 어머니에겐 은혁이 조용히 자신을 구경하는 것처럼 보이는 환상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다시 자리를 잡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주제는 아이들의 만남으로 할까요.’
‘좋죠.’
나른한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