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은후는 기본적으로 중간에서 수호령과 아이의 중계기 역할을 했다. 최대한 아이의 어머니가 이상하게 여기지 않도록.
‘이름이 뭐야?’
‘아직 없어.’
‘이름이 없어?’
‘응, 일단 령이라고 불리는데.’
‘수호령이라?’
‘응응. 난 공원의 수호령이거든. 정확히는 아이를 위한?’
수호령에 엣헴, 하면서 으스대자 아이가 선망 어린 눈동자를 했다. 하지만 그게 어머니에게는 퍽 이상하게 보였던 것 같았다.
‘밥 먹는 이야기에서 뭘 부러워하는 거지?’
치킨이나 피자를 못 먹어 본 것도 아닌데.
‘아니지. 먹고 싶다고 해도 의사의 허락을 받아 정말 조금만 줬으니까.’
그래서 은후는 어머니를 아이에게서 좀 떼어 놓을 필요성을 느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호령과 아이가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목에 있는 얘는 뭐야?’
‘페럿이래. 족제빗과에서 유일하게 가축화된 동물인데. 긴털족제비의 아종…… 너무 어려웠나?’
‘어, 아니! 하나도 안 어렵거든.’
‘하여간 족제비야. 귀엽지?’
‘응응. 그런데 걔도 이름 없어?’
‘아직은.’
왜냐하면 아이도 은근히 어머니의 눈치를 보고 있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신경 쓰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의 어머니가 느끼기에 이상하다 싶은 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럼 이름 내가 지어 줘도 돼?”
갑자기 이름을 지어 준다니.
은후도, 어머니도, 당황했다. 은후는 재빨리 페럿에게 손을 뻗었다. 페럿은 은후의 의지대로 손을 타고 어깨로 올라왔다. 이후 은후는 페럿에게 걸었던 은폐 마법을 풀었다.
“일단 한 번 만져 볼래? 사회화가 되어서 순하거든.”
어머니는 느닷없이 비친 페럿에 깜짝 놀랐다.
“응!”
아이는 그런 어머니에게 신경 쓰지 않고 페럿에게 손을 뻗었다. 페럿은 조심스레 아이의 손을 타고 올라갔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랑 지내서 사회화가 정말 잘되었거든요. 최근에 건강 검진이나 필요한 예방 접종도 다 맞았고요.”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페럿은 태어나길 가정집에서 태어났으니. 그래서 이따금 자신을 길러 주었던 사람들의 손길을 떠올렸다. 그걸 은후는 알았다.
“어, 어어. 네.”
“그렇죠?”
아이의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사회화가 잘되었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다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물기라도 하면, 발톱에 피부가 긁히기라도 하면. 안 그래도 아픈 아이인데.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보는 아이의 환한 웃음에, 더불어 페럿의 얌전함에 입을 다물었다.
‘항상, 항상 그늘져 있었던 것 같은데.’
아픈 이후 병원이 집이 되면서 저런 웃음을 볼 수 없었는데. 그래서 걱정이 된다며, 위험할 수도 있다며 말을 할 수 없었다. 페럿을 아이에게서 떨어뜨리자니 저 웃음이 사라질 것 같아서.
“도망도 안 가고 순하긴 하네요. 그런데 왜 못 봤지.”
아이의 어머니가 마지막에 혼잣말로 의구심을 표했다.
“아이에게 너무 집중하고 계셨으니까요. 눈을 아예 못 떼시던데요. 시야가 좁아졌으니 주위에 뭔가가 들어올 틈이 없었던 거죠. 분수 쇼도 제대로 안 보셨죠?”
소리는 들었던 것 같은데.
“네, 아시겠지만 아이가 많이 아파서요.”
“그렇군요.”
“백혈병……인데요. 골수 이식 후에 예후가 많이 안 좋아졌거든요.”
“힘드셨겠어요.”
“저보다는 은혁이가 더 고생이죠.”
은후가 딱히 의도하지 않아도 아이의 어머니는 가볍게 한탄했다.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어도 딱히 말할 수 없었다. 자식이 아픈데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옆에 있어 주는 것 외엔 할 수 없어서.
아이도 아이지만 어머니 또한 마음고생이 심했다. 아이 때문에 일도 관두었고 친구들과 만난 지도 오래되었다. 그 상황에서 은후를 만났다.
오늘 처음 만난 잘생긴 청년. 딱히 이성적으로 설레진 않았으나 뭔가 믿음이 갔다. 외모의 힘이었다. 물론 그것만이었다면 이런 말까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은혁이가 반가워했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무의식중으로 믿을 만한 청년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잠깐 아이와 산책해도 될까요?”
“산책이요?”
“아이가, 은혁이라고 했죠?”
“은혁이가 좀 걷고 싶나 봐요.”
“천천히 조금만이라면요.”
“은혁이는 괜찮을까?”
페럿의 귀여움에 한눈팔렸던 아이가 답했다.
“응? 뭐라고 했어?”
“잠깐 걷자고 했어.”
‘령이랑 좀 더 편하게 대화하고 싶지?’
“응, 좋아.”
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잡을까? 페럿은 이리로 주고. 얘가 무게가 가벼워도 걸을 때 부담이 될 거야.”
“……응.”
아이는 아쉬움에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페럿은 은후가 손을 뻗자, 쪼르르 팔을 타고 목으로 올라왔다. 그 모습을 은혁이 멍하니 바라봤다.
“이따가 목에 둘러 줄게.”
“응!”
은후가 은혁과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벽진 폭포 쪽으로.
은혁의 어머니는 조금 떨어져서 천천히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은후는 슬쩍 주위를 살핀 뒤 은혁에게 말했다.
“이제 편하게 말해도 돼.”
“편하게?”
“령이 목소리도 들릴 거야.”
“목소리?”
그때 수호령이 말했다.
‘와와, 오, 우, 야호!’
아이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들린다?”
‘오, 진짜 들리네. 은후가 뭔가 한 거야?’
은후가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 은후라니까.’
“형은 뭐 하는 사람이야?”
“마법사.”
“마법사?”
은후가 피식 웃었다.
‘뭐야, 은후랑만 이야기하는 거야?’
“아니, 그게 신기하잖아. 난 처음에 정말 내가 정신병도 걸린 줄 알았다니까?”
그게 아니란 걸 깨달은 건 아이의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무슨 검사란 검사도 엄청 받았다구.”
‘헤헤, 미안.’
“네가 미안할 건 없는데.”
‘나 때문에 곤란했던 거잖아?’
“그래도 편해. 지금도 그렇고, 너랑 있으면.”
무슨 사랑 고백이 아니라 진짜 육체가.
‘내가 나름대로 힘을 쓰고 있으니까.’
“힘?”
‘응, 내가 가진 힘을 나눠 주고 있어.’
“헤에.”
어린 나이지만 병원에서 살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적잖이 성숙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성인과 다르게 아직 가치관이나 사고의 너비가 굳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말을 쉽게 믿었다. 비과학적인 건 알았으나 직접 체험하고 있기에. 그래서 은혁은 잠시 망설이다가 수호령에게 물었다.
“나, 완벽하게 고쳐 줄 수는 없지?”
‘…….’
은혁의 물음에 수호령이 침묵했다.
‘은후야.’
“글쎄.”
도와주고는 싶었다.
‘하지만 어려워.’
불가능은 아닌 것 같은데.
‘확률은 낮아.’
괜한 희망일 수도 있는데.
그때 은혁이 말했다.
“나, 괜찮아.”
‘뭐가 괜찮아?’
“엄마도, 아빠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다른 간호사 누나나 의사 샘도, 전부 날 불쌍하다고 해. 하나도 안 불쌍한데, 나는.”
어린 나이에 그런 병에 걸려서.
“골수 이식이 잘 안 되었대. 그래서 얼마 못 살 거라고 그러더라? 나한테 숨기더라고 다들. 내 몸은 내가 잘 아는데.”
의도한 건 아니지만 병원의 한구석에서 부모님이 우는 것도 몰래 들었다.
“어린 나이에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고 울더라고, 엄마랑 아빠가. 근데 난 행복했어. 엄마랑 아빠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까.”
좀, 아니, 많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내가 뭘 하고 싶다고 하면 최대한 들어주려고 애쓰셔. 저번에 놀이 공원 놀러 가고 싶다고 했을 때도 그랬고. 몸이 약해서 놀이 기구는 못 타 봤고 갈 수도 없었는데.”
대신에 정말 커다란 장난감을 선물 받았다.
“놀이 공원을 작게 만든 무슨 모형이라고 했나?”
약간은 두서없는 은혁의 말.
“나중에 죽으면 불쌍하지 않을까? 만족하면서 죽을 수 있을까?”
어린아이가 하기엔 어이가 없는 말. 하지만 상황이 그러했다. 병동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친구의 죽음도, 자신의 몸 상황도, 자연스레 아이는 죽음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난 행복해. 불쌍하지 않아. 그래도, 좀, 좀 더 살고 싶은데.”
은혁이 웃었다.
“근데 그건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누군가의 죽음을 타인이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부모라고 하여도. 그 이치를 어린아이가 말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랑 아빠, 나 죽으면 많이 울려나.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할아버지랑 할머니도, 내 생각 하면서 웃었으면 좋겠어.”
아이가 이룰 수 없는 바람을 소망했다.
남은 이들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시간이 흐르면 그럴 수도 있을 거야.’
“시간이 흐르면?”
‘응, 충분히 슬퍼하고, 언젠가 그 감정이 그리움으로 바뀌고, 그러면 웃지 않을까.’
“잘 모르겠어. 너, 말 너무 어렵게 해.”
‘언젠가 나중에 은혁이 엄마랑 아빠가 이렇게 생각할 거란 소리야.’
함께해서 행복했다.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될 거야, 분명히.’
“그러려나.”
‘분명히.’
“응.”
은후가 한숨을 폭 내쉬며 말했다.
“자주 올래? 그러면 좀 더 살 수 있을 거야. 령이가 좀 도와줘야겠지만.”
‘물론 도와주고말고!’
“정말?”
“그사이에 찾아볼게, 네 병을 치료할 방법.”
만약 조금만 더 큰 사람이라면 은후의 말을 믿을 수 없었으리라. 하나 은혁은 달랐다. 자신만 보고 다른 이는 볼 수 없었던 수호령을 같이 보고, 또 이야기를 나누게끔 해 주었으니.
“그럼 볼 수 있으려나.”
‘뭘?’
“연꽃. 호수에 피는 연꽃이 되게 예쁘다던데.”
‘아, 지금은 좀 그렇지.’
연꽃이 피는 건 지역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6월 말부터였다. 그래서 부처님의 꽃이라 불린다. 지금 덕진 공원 호수에도 아직 저물지 않은 연꽃이 없지는 않았다.
“가득 핀 연꽃 두 눈으로 보고 싶었거든.”
은후가 말했다.
“보여 줄까?”
“정말? 어떻게?”
“내가 마법사라고 했잖아.”
“마법사…….”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응, 비밀. 근데 어차피 우리 엄마 믿지도 않을 텐데.”
“그래도.”
은후가 피식 웃은 후 은혁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은 후 어머니에게 잠시 맡겼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가져올 게 있어서요.”
“가져올 거요?”
“은혁이에게 보여 주겠다고 한 게 있어서요.”
“네?”
은후는 은혁이에게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페럿을 넘겨주었다.
“뀨.”
페럿은 은후의 지시대로 얌전히 은혁의 목에 자리를 잡았다. 은후는 잠시 낙원으로 가서 성호와 함께 다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수호령이 자랑했다.
‘우리 은후, 기타 실력이 엄청 나거든. 들어 보면 깜짝 놀랄걸?’
은혁은 입이 근질근질했다.
기타 실력이랑 연꽃은 무슨 관계라고. 하지만 어머니의 눈치가 보여서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가시죠.”
은후는 두 사람을 이끌고 호수 다리 중간에 있는 건물로 향했다. 건물 1층에는 간단한 먹거리와 커피를 팔고 있었고, 맨 위에는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자리 잡고 있는 건물이었다. 은후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후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기타 한 곡 선보이고 싶은데, 혹시 방해되진 않을까요?”
느닷없는 은후의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은후를 알아봤다.
“어! 저번에도 덕진 공원에서 기타 치셨던 분 맞죠?!”
“하하, 네. 알아보시는 분이 있으시네요.”
“엄청 잘 치시던데요.”
“감사합니다.”
그런 대화에 사람들이 기대했다.
‘으, 대체 뭐지.’
그 와중에 은혁만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연꽃 피는 모습 보여 준다고 했는데.’
갑자기 기타 연주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