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페럿이 수호령의 손가락을 한 번 혀로 날름 핥은 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읏, 간지러.”
페럿은 수호령이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해서 애교를 부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냄새를 맡고 수호령의 어깨에 올라가고 머리 위에서 기지개를 켜는 등, 장난을 쳤다. 그건 수호령이 품은 마나 덕분이었다.
태어날 때 수호령을 이룬 건 한 아비의 소망이었다. 만약 그 마나만이었다면 이 정도로 페럿이 호감을 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인은 천도복숭아 나무에서 비롯된 마나.
문자 그대로 하늘의 기운을 담은 복숭아. 단순한 비유가 아닌 실제로 그러했다. 그리고 그 마나는 동물들이 느끼기엔 무척 친숙했다. 무척 깨끗했으니까. 또한 약간의 매혹 효과까지 있었다.
‘만약 수호령이 좀 더 성장해서.’
은후가 이름을 주고, 확실하게 계약을 맺는다면.
‘인간까지 유혹할 수 있을 정도.’
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만약 일전 수호령이 이름을 달라고 했을 때 계약을 맺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재앙이었다. 원치 않아도 절로 강력한 매혹 효과가 몸에서 뿜어진다는 것이었으니.
그 때문에 은후는 계약을 미루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계약할 때의 방법을 개조하고 있었다. 또한 수호령의 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약 수정은 거의 마무리 단계야.’
수호령의 성장 또한.
딱히 문제는 없었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일 뿐.
“간지러워.”
“뀨꾸.”
하지만 그 시간을 단축할 방법이 하나 있었다. 수호령과 페럿 사이에 계약을 맺는 것. 그러니까 페럿을 수호령의 패밀리어로 삼으면 되었다.
‘뭐.’
그거야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수호령의 의지가 제일 중요했으니. 하지만 일종의 목줄은 있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페럿의 야생성과 호기심 때문에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으니.
페럿은 정령이 아닌 실제 육체를 가진 동물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내에서 지내다 보면 덕진 공원에 방문한 사람들과 자연스레 마주할 터였다.
‘낙원에서만 기를 수는 없으니까.’
가둬 두기는 좀.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나 그걸 은후는 바라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좀 더 자유롭게 지내길 바랐다. 은후가 페럿에게 손을 뻗었다.
“뀨?”
은후의 손길에 페럿이 고개를 갸웃하며 울었다.
“착하지, 령아.”
“응?”
“네가 담당하고 키울 생각 있어?”
“내가?”
“부담스럽다거나 귀찮으면 다른 주민에게 맡기고.”
“으움.”
페럿이 수호령과 은후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그러다가 은후의 손가락을 몇 번 코로 건들다가 수호령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그런 페럿의 움직임에 수호령이 말했다.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수호령은 머뭇거리다가 은후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쉽지 않겠지. 하지만 나도 다른 주민들도 도와줄 거야. 그러면 괜찮을 거고.”
“그럼, 잠깐만 내가 맡아 볼게. 그사이에 고민해 봐도 될까?”
확신이 없으면 맡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좋아. 만약에 사고 치면 령이 네가 말려야 한다? 예컨대 다른 사람들에게 멋대로 달려들려고 한다거나.”
“알았어.”
“요령은 사람들에게 했던 거랑 똑같이 하면 돼. 멈추게 하는 방법 알지?”
“응.”
싸움.
덕진 공원에서 사람이 싸운 적이 꽤 발생했다. 기본적으로 수호령은 상관하지 않았으나 그 싸움의 여파가 아이에게까지 미치게 된다면 주저 없이 손을 썼다.
물론 그 방법은 온건했다. 순간적으로 적개심을 없앤다거나, 혹은 움직임을 멈춘다거나, 아니면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덕진 공원에서 내쫓는다든가 등.
“다만 기존에 사람에게 했던 것보다는 많이 약하게 해야 해. 구체적으로 요 정도?”
은후가 직접 시범을 보였다, 마나를 이용해 페럿이 움직일 수 없도록. 페럿은 갑자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으나 당황하지 않았다. 은후가 동시에 의지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해치지 않아. 착하지? 잠깐만이야.’
페럿의 눈동자가 또르르 움직였다.
“잘했어.”
은후가 동물 병원에서 사 온 간식을 리어카에서 꺼내 페럿에게 주었다. 페럿이 냉큼 받아먹으며 울었다.
“뀨!”
또!
은후가 피식 웃었다.
“간식은 여기. 간식을 줄 때는 그냥 줘도 상관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보상의 개념으로 줘야 해.”
은후는 수호령에게 동물을 훈련할 때의 기본적인 개념을 알려 줬다. 수호령은 진지하게 은후의 말을 경청했다.
“또 알아야 할 건 뭐가 있어?”
은후는 동물 병원에서 들었던 지식을 바탕으로 수호령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마지막으로 낙원에서는 상관없어. 하지만 낙원을 벗어날 때는 꼭 같이 행동할 것.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페럿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
“이름은 고민해 봐.”
“이름?”
“페럿이라고 계속 부를 수는 없잖아? 한 개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니까.”
“이름, 이름.”
수호령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그냥 이름을 지어 주는 게 될지, 그 이름을 지어 줌으로써 패밀리어 계약을 맺게 될지는 추후 결론이 날 터였다.
“당장 정하라는 건 아니니까.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응. 알았어.”
그때 수호령의 표정에 반가움이란 감정이 드러났다. 아까 은후가 덕진 공원에 찾아왔을 때처럼.
“아는 사람이라도 왔어?”
감정의 크기는 적으나 확실했다.
‘이건 어렵네.’
반가움.
하나 그 반가움은 일방통행이었다. 수호령은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으나 반대는 불가능했다. 그 부분이 은후는 적잖이 안타까웠다.
‘나와 계약을 맺으면.’
그 또한 해결되리라.
다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겠지. 아이에게만 보이는 귀신이 덕진 공원에 있다는 소문이 돌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은후는 어려움을 느꼈다.
‘해결책을 찾아봐야지.’
은후는 가능하다면 수호령이 아이들과 실제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저번에 날 알아보는 애가 있었어.”
“널?”
수호령이 웃으며 덕진 공원의 호수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응. 그런데 걔가 많이 아픈가 봐.”
도착한 곳은 분수 공연의 명당 자리에서 좀 떨어진 뒤편이었다. 덕진 공원에선 주기적으로 시간에 맞추어 분수 쇼를 진행했다.
“쟤야.”
수호령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창백한 얼굴을 가진 아이가 반갑게 웃으며 손을 들려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눈치를 슬그머니 살폈다.
‘깨졌군.’
은후가 혀를 찼다.
혼의 그릇이 깨졌다.
한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줄기줄기 생명의 원천이 되는 마나를 흘리고 있었으니.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마나를 품고 태어나니.’
그 마나는 근원적인 생명력이라 하여 루트 마나라 불렀다. 그런데 그 마나를 담는 그릇이 깨어진 상태였다.
‘처음부터 그런 것인가?’
아니면 중간에 사고가 있었을까.
그거까진 잘 모르겠다. 아마 은후의 예상으로는 후자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전자라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거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자연스레 영안이 텄군.’
무당이 말하는 귀신을 보는 눈이다. 거기에 더불어 최근 수호령이 성장하며 존재감이 강해졌다. 그래서 수호령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겠지.
* * *
수호령을 알아본 아이는 백혈병 환자였다.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다. 다행히 그 외의 문제가 처음에는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의 가족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소아암, 백혈병.
아무리 소아에게 발생하는 암 중 제일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지만, 부모는 물론 아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기야 누가 자신의 아이가, 본인이 백혈병에 걸릴 것이라 예상할까.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소아의 백혈병 치료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것.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완치는 물론 생존율은 90%에 다다랐다. 골수 이식을 하지 않아도 약물로만 완치되는 경우도 상당했다.
물론 어떤 종류의 백혈병이냐에 따라 예후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다행히 아이의 가족들 경제 사정은 넉넉했다. 정확히는 외가가 상당히 부자였다.
“괜찮아?”
“응, 괜찮아.”
문제는 골수 이식 후였다. 완치를 기대했으나 결과가 무척 좋지 않았다. 의사가 이례적이란 말을 쓸 정도였다.
“저번처럼 또 이상한 거 보는 거 아니지?”
“……아니야.”
골수 이식의 부작용.
그래서 근원을 담는 마나의 그릇이 깨졌다.
‘칫.’
아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진짜 보이는데.’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그 아이 옆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몸이 편해졌다. 그건 수호령이 마나를 전달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 마나는 하늘의 기운을 담았으니, 아이가 그렇게 느끼는 건 단순히 기분 탓은 아니었다.
‘그런데 옆에는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였다. 이야기하는 걸 보아하니 정말 친한 사이인 것 같은데.
“오늘도 왔네?”
수호령이 말을 걸자, 아이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어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엄마.”
“응?”
“나, 가까이서 보고 싶어.”
“분수 쇼? 그래도.”
“마지막일 수도 있잖아.”
아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처음에 덕진 공원의 분수 쇼가 너무 보고 싶어서였다. 원래 보고 싶었던 건 TV에서 본 라스베이거스의 분수 쇼. 하지만 아픈 몸으로 미국까지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전주 덕진 공원을 찾았다. 병원까지 옮겨 가면서. 원래는 서울의 한 유명한 병원에 있었다. 하지만 골수 이식 예후가 좋지 않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는 말에 아이가 고집을 부렸다.
‘전주 덕진 공원 분수 쇼 보고 싶어, 죽기 전에.’
한창 밝은 웃음을 지으며 뛰어놀 나이의 어린아이가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언급하면서 한 부탁. 부모는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당시 머물고 있었던 병원이나, 전북대학교 병원의 암센터나, 할 수 있는 건 비슷했으니까.
정확히는 추가적으로 조처를 더 할 수 없다는 것이 맞았다. 아이의 몸이 버틸 수 없었기에. 그래서 최근에 몸 상태가 좀 괜찮은 날이면 아이는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함께 덕진 공원을 찾았다.
“안녕?”
“어? 누구세요?”
다른 이들에게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은후가 은폐 마법을 풀며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얘 친구.”
“아.”
은후가 눈으로 수호령을 가리키며 아이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아이가 반색하며 물었다.
“형도…….”
“쉿.”
그때 아이의 어머니가 은후에게 날카롭게 물었다.
“누구세요?”
“아이가 귀여워서 말을 걸어 봤습니다. 혹시 실례가 되었을까요?”
그때 아이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난 괜찮아. 이야기 좀 하고 싶어.”
“엄마가 옆에 있어도 되지?”
아이는 싫은 티를 냈으나, 은후가 아이에게만 마나로 의지를 전달하며 입을 열었다.
‘비밀 이야기는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럼요. 아이 어머니 되시죠? 당연히 옆에 있으셔야죠.”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몸이 많이 안 좋은가 봐요.”
“네.”
은후가 고개를 끄덕인 후 아이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야?”
‘예전부터 궁금했대. 얘는 공원의 수호령이야.’
“김은혁. 그런데.”
‘수호령에 관한 건 비밀이야?’
은후가 눈을 찡긋했다.
“응, 근데 옆에 있으니까 되게 몸이 편해지는 거 같아서.”
‘수호령도 반갑대.’
“근데 목에 뭐가 있어.”
‘페럿이야. 귀엽지?’
“응. 나도 동물 키워 보고 싶었는데 병원에만 있어서. 그런데 수호령이 무슨 뜻이야?”
아이의 어머니가 듣기엔 뭔가 미묘하게 엇갈리는 대화. 하지만 분명한 건 아이가 여느 때보다 활짝 웃고 기분이 좋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