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제법 큰 낡은 이동장이었다. 부피가 상당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버릴 수 없는 까닭은 추억이 가득해서.
‘아.’
이하연은 자신의 책상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서랍에 있는 건 유리병 하나였다. 유리병에는 반려동물이었던 고양이가 죽은 뒤 만든 메모리얼 스톤이 담겨 있었다.
메모리얼 스톤이란 유골을 보석화시켜 반영구적으로 보존하게끔 만든 돌을 의미한다. 당시 서비스해 주는 업체도 딱 한 군데뿐이어서 상당히 비싼 돈을 지불했다. 꽤 부담되기는 했지만 후회한 적은 없었다. 랭랭이의 메모리얼 스톤을 본 것도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죽어서 도착한 곳에는 생전 함께 지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는, 문득 그런 말이 생각났다.
‘은후 기다리겠다.’
이하연이 서랍을 닫은 뒤 이동장을 챙겨 집을 벗어났다. 이하연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입구에는 은후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중 안 나와도 되는데.”
“에스코트는 제대로 해야지.”
은후는 아까처럼 조수석의 문을 열어 주고 이하연을 먼저 태웠다. 그리고 건네받은 이동장을 들고 뒷좌석에 있는 페럿을 안에 집어넣었다.
“뀨.”
페럿은 반항하지 않고 한 번 울은 뒤 얌전히 이동장에 들어갔다. 이후 운전석에 탄 은후를 이하연이 빤히 바라봤다. 은후는 피식 웃은 후 안전벨트를 매어 준 후 출발했다.
“쟤는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입양해서 기를까 싶기도 했지만.
‘어떨까.’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대부분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력이었다. 정말 제대로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비용이 상당히 나가기 마련이었다.
그 외에도 훈련 및 놀이 등에 투자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건 당연했으며 충분히 살 수 있는 공간 또한 확보해야 했다. 물론 은후에게 있어서 크게 문제 될 건 없었지만.
‘유기동물 보호소에 데려다준다면.’
높은 확률로 죽겠지, 안락사로.
‘안락사를 시행하지 않은 보호소도 있긴 하다지만 진짜 드물고.’
게다가 버린 게 확실했으니 원래 주인이 나타날 일은 없을 터. 천만다행으로 입양할 이가 나타난다면 천운이겠으나.
‘그 사람이 끝까지 책임질 확률은.’
은후의 고민을 바라보던 이하연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볍게 생각 안 하는구나.’
반려동물을 실제 키워 보지 않으면 대부분 사람은 잘 모르기 마련이었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무거움을, 또 귀찮음을. 아무리 귀여워도 때때로 귀찮을 수 있었다.
사람의 감정이란 게 그러했다. 물론 그 귀찮음이야 반려동물을 키우기로 마음먹었다면 마땅히 감수해야 할 부분이지만 실제로 그러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귀찮다고, 늙어서 손이 많이 간다고.’
그냥 안락사시켜 달라는 사람도 많았다. 사촌 오빠가 수의사를 하고 있어서
“구했으니 책임져야지.”
“키우려고?”
“응. 그냥 지나쳤으면 모를까.”
“그런가. 내가 키울까도 고민했는데.”
“쉽지 않은 일이야. 알지?”
“응.”
이윽고 처음 들렀던 동물 병원의 수의사가 알려 준 곳에 도착했다. 아담한 동물 병원이었는데 각종 소동물 및 특수 동물 전문이라고 간판에 적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은후는 사정을 설명하고 페럿의 건강 검진을 하면서 하루 동안만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원래는 아파서 입원하는 게 아니라면 받지 않지만 버려진 걸 구조했다는 말에 마침 카운터에 나온 수의사가 흔쾌히 허락했다.
“좋은 일 하셨네요. 금액은 최소한으로만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차에 탑승한 은후가 이하연에게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안 그래도 고민하고 있었는데 햄버거 어때?”
“나야 상관없는데. 최근에 인스턴트 자주 먹는다며. 특히 새벽에.”
“그건 그런데.”
방송 끝나고 배는 고프고, 그렇다고 딱히 챙겨 먹고 싶지는 않고. 그래서 이하연은 집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를 자주 찾았다. 은후는 이하연과 평소에도 문자를 자주 주고받았기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집에서도 잔소리 많이 듣는다고 그랬으니까 내가 굳이 건강 챙기라는 말은 안 하겠지만, 오늘은 밥 먹자.”
“응.”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기에 이하연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이 풀어졌다.
“웃기는.”
“웃을 수도 있지.”
은후가 찾은 곳은 한 백반집이었다. 꽁치조림과 도다리탕으로 주위에 꽤 유명한 맛집이었다. 그리고 꽁치는 이하연이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생선 중 하나였다.
“아마 마음에 들 거야.”
“맛집이야?”
“응. 특히 묵은지 꽁치 백반으로 유명해.”
은후의 말에 이하연은 처음 용산역에서 데이트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내 취향을 어떻게 알았을까 싶을 정도로 쏙 마음에 드는 맛집으로 데려갔지.
‘이번에도.’
운명.
‘아니, 아니, 아니.’
그건 너무 나갔지.
그때 은후와 이하연이 앉은 식탁 옆을 지나가던 식당 사장이 웃으며 말을 걸어 왔다.
“우리 집 꽁치 조림이 유명하긴 하죠. 그런데 우리 집 처음 오는 것 같은데, 언제 와 봤어요?”
“아니요, 처음 맞아요.”
“옆에는 여자 친구?”
“아직은 아닌데 아마도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은후의 말에 이하연이 애써 표정 관리하며 웃었다.
기뻐서.
‘빈말이라도 좋아.’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어야지.’
이하연이 내심 굳게 다짐했다. 그런 이하연의 모습에 사장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좋을 때네요. 그래서 주문은요?”
“꽁치 백반으로 괜찮아?”
“응.”
“꽁치 백반 둘이요.”
“잠시만 기다려요. 마침 점심시간이 지나서 금방 나올 거예요.”
사장이 주방 쪽으로 향한 뒤 은후가 말했다.
“그나저나 할 이야기가 뭐야?”
“아.”
“중요하거나 진지한 이야기면 이따가 해도 되고.”
“중요하긴 한데 딱히 진지한 이야기랄 것까지는 없지…… 않나?”
돈에 관련된 문제니까.
‘진지하다면 진지한가.’
의문형으로 끝난 이하연의 말에 은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뭔데? 말해 봐.”
“브이튜브 있잖아.”
“응.”
“저번에 전주 놀러 갔을 때 찍었던 거 적당히 편집해서 올렸거든.”
이하연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100만을 넘어?”
“응, 100만. 지금은 더 올라갔을걸? 깜짝 놀랐다니까. 그것도 갑자기 하루 만에 그렇게 된 거 있지? 영상 수익이 상당하니까 양심적으로 반으로 나눠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이후 자연스레 이하연이 자신의 본심을 흘렸다.
“그냥 전화해도 되는 거긴 했는데 보고 싶었거든.”
그리고 슬쩍 은후의 눈치를 살폈다.
“나도 보고 싶긴 했으니까.”
“나만 그랬던 거 아니었네.”
“안 그랬으면 여기까지 안 왔겠지.”
“그치.”
남녀 불문 자신이 관심이 없는 사람에겐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법이었다.
“자주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거리가 거리니까.”
“이사 갈까?”
“어디로?”
“전주. 요새는 그런 생각도 든다니까. 방송 문제도 있어서.”
이하연의 방송 스타일이 잔잔한 것도 있고 살고 있는 아파트가 방음에 그리 취약한 편은 아니라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새벽까지 방송하는 건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방음 부스 설치를 해야 할 것 같기도 한데. 또 전주로 가면 자주 볼 수 있을 거고. 여하튼 고민이야.”
“확실히 그건 문제겠네.”
“응. 아, 그리고 저작권 등록은 안 했냐고 메일로 누가 걱정하더라.”
“저작권?”
아.
‘이런.’
그때는 감성에 취해서 그저 떠오른 곡을 연주한 것에 불과했는데.
‘아직 나오지 않은 버전이었나.’
그 편곡을 누가 했더라.
‘그러니까.’
은후가 마나를 끌어 올리며 과거를 더듬었다.
‘베라메라.’
브이튜브로 유명해진 한 음악가였다.
‘쯧.’
은후가 속으로 혀를 찼다. 엄밀히 따지자면 도둑질해 버린 셈이었으니.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는데.’
미래의 기억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게 아무리 본의가 아니라지만 말이다. 하나 실수는 실수였다. 은후는 남의 창작물을 가져와 자신의 것으로 포장해서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자신뿐이라지만 말이다.
‘빚……인가. 갚아야지.’
다행히 위키를 읽은 적이 있어서 미래에 알려진 베라메라의 간단한 신상 명세를 떠올릴 수 있었다.
‘다행히 도울 구석이 있겠어.’
돈 때문에 상당한 기간 가난에 시달렸다고 했다. 베라메라가 유명해지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건 앞으로 몇 년 후의 일이었다.
‘문제는 외국인이란 점인데.’
런던에 살고 있는 영국인.
“왜 그래?”
“응?”
“갑자기 심각해진 것 같아서.”
“티 났어?”
“그런 건 아닌데, 눈빛이 순간적으로 변해서. 내가 뭐 잘못 말하진 않았지?”
“아니야.”
은후가 빙그레 웃었다.
“저작권 하길래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별문제는 없어. 저작권이야 등록하면 그만인 문제니까.”
그나저나.
‘음.’
괜스레 은후는 이하연이 자신을 확실히 좋아하고 있다는 게 의식되었다. 찰나에 불과한 눈동자의 변화를 알아봤다, 라.
“저작권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게. 아는 변호사도 있으니까.”
“응. 그리고 이따 문자로 계좌 남겨 줘. 돈 문제는 확실히 해야지. 달마다 정산해 줄게.”
솔직히 그 돈 안 받아도 그만이었다. 그만큼 여유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친하면 친할수록 돈에 관련된 문제는 칼보다 날카롭게 해야 한다는 건 은후 또한 공감하는 바였다.
“달마다는 너무 귀찮지 않을까?”
“괜찮아. 그 핑계로라도 볼 수 있으면 좋지. 오늘처럼 네가 와도 좋고, 내가 전주로 가도 좋고. 아니면 정말 내가 전주로 내려갈까?”
은후가 피식 웃었다.
“전주로 오는 건 진지하게 고민해 봐. 너무 충동적으로 결정 내리지 말고.”
“충동적이면 뭐 어때.”
이하연이 입술을 삐죽였다.
“밥 왔다. 일단 밥이나 먹자.”
꽁치조림은 참 맛있었다.
* * *
은후와 이하연이 점심을 먹고 가게를 나오자 비가 그쳤다. 그리고 하늘에는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예쁘네.’
무지개를 참 보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카메라 가지고 나올걸 그랬나.’
이하연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순수하게 데이트에 집중하고 싶어서 가지고 나오지 않았는데. 비가 오기도 했고. 괜스레 아쉬웠다. 너무 좋은 풍경이라서.
‘은후도 찍고. 남기면 다 추억인데.’
일장일단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어디가?”
“남산. 저번에 한번 같이 가보고 싶다며?”
“그랬지.”
“다른 데 가고 싶은데 있으면 말하고.”
“으응, 남산이면 괜찮아.”
저번 주였던가.
기억이 났다.
시청자 중 한 명이 남산에서 데이트했는데 그렇게 좋았다며 자랑해서, 그래서 은후에게 문자로 말했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이하연은 은후가 사소한 한마디 한마디를 기억해 준다는 게 참 좋았다.
“…….”
“…….”
남산까지 가는 길, 처음과 다르게 차 안은 고요한 침묵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침묵은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하연이 저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좋다.”
“뭐가?”
“그냥.”
“실없기는.”
“실없을 수도 있지.”
“그건 그런데.”
신호등에 걸려서 잠깐 정차했다.
“전북대 근처에 살고 있다고 했지. 계속 거기 있을 거야? 곧 졸업이잖아.”
“이번에 이사할까 싶어서 집을 알아보고 있기는 한데. 그런데 진짜로 전주로 오게?”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 중. 이럴 땐 프리랜서라 참 좋네. 공무원 계속했으면 아예 선택지가 없었을 텐데.”
물론 충동적인 감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하연이 가볍게 심호흡한 뒤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