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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75화 (75/170)

제75화

김하식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분명히 나는 죽었던 것 같은데.’

법원의 판결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사람을 죽인 후 집행 유예라니. 이후 인터넷에 열심히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고 기자를 찾아가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했다.

몇 번 인터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인터뷰가 기사로 나가는 일은 없었다. 또 딱 봐도 조폭으로 보이는 이들이 찾아와 죽고 싶지 않으면 시위를 하지 말라고 협박했다.

‘그 새끼가 사주했구나.’

딱 감이 왔다.

평범한 일개 개인으로서는 합법적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풀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술에 빠져 살다가 결심했다. 나라가 해결해 주지 않으니 사적으로 보복하자고.

이후 돈을 털어서 어떻게든 정보를 구하고. 그리고 있는 힘껏 자동차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이후 자신의 죽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의식은 꽤 멀쩡했다.

‘죽지 않았구나.’

죽어야 했는데.

이후 기억은 흐릿했다.

“정신이 좀 드시나요?”

“누구……시죠?”

은후가 빙긋 웃으며 좀 더 마나를 김하식에게 전달했다.

“윽.”

김하식이 주위를 두리번두리번했다.

“병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여긴 어디죠?”

“길거리입니다.”

“길거리요?”

“네.”

기억에 있는 곳이었다.

복수를 위해 자동차를 이끌고 도착했던 곳이었다.

“제가 아직 안 죽었나요?”

“죽었죠.”

“아.”

“지금은 귀신이고요.”

“귀신이요?”

“네.”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말.

“비가 내리고 있네요.”

“비요.”

은후의 말에 김하식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인식했다. 그 빗방울이 자신의 몸을 통과한다는 것 또한. 김하식은 허탈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귀신이요, 귀신.”

은후가 빙긋 웃은 후 말했다.

“아직 정신이 없으실 겁니다.”

“그런데 대체 누구시죠?”

“마법사.”

“마법사요?”

“네, 술이나 한잔하실까요?”

마법사라는 말도 황당한데 술이라.

“귀신도 술을 마실 수 있나요?”

“못 마신다면 제가 제안을 드리지도 않았겠죠.”

하지만 김하식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자신의 몸을 통과하는 비도 그렇지만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자신의 죽음을. 또 자신이 정상적이지 않는다는 것도. 아직 귀신이라는 게 믿기지는 않았지만 일단 은후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판단했다.

“가시죠.”

은후가 발걸음을 옮겼다. 김하식은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목적지는 덕진 공원 방향이었다. 그렇게 조용히 이동하던 와중 김하식이 부탁했다.

“혹시 동물원으로 갈 수 있을까요?”

“동물원이요?”

“네.”

“이유는요?”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라서요.”

가족이 죽은 곳을 찾아가기엔 뭔가 내키지 않아서. 하지만 가족을 추억하고 싶었다.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자택이지만, 집으로 가기엔 조금 그랬다. 가족의 죽음 이후 집은 난장판이 되었으니까.

“그러시죠.”

“감사합니다.”

전주 동물원까지는 가는 길은 더뎠다.

“첫째가 참 동물을 좋아했어요.”

“그러시군요.”

“네, 동물을 고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고작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꿈이 명확했죠. 둘째도 동물을 좋아했는데 겉으로는 아닌 척하고.”

“수의사가 꿈이라. 뭔가 명확한 계기가 있었나 보군요?”

김하식의 기억이 과거를 질주했다.

“첫째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지나가다가 다쳐서 쓰러져 있는 강아지와 우연히 마주쳤거든요. 저랑 아내는 내키지 않았지만 첫째가 하도 울고불고 난리여서 집으로 데리고 왔어요.”

문제는 돈이 없다는 점이었다.

“제대로 된 치료를 하려면 수술을 해야 했는데 진짜 비싸더라고요. 저희 형편이 여의치 않았어요.”

결국 강아지는 죽었다.

“그때 첫째가 참 억울했나 봐요. 자신이 고쳐 줄 수 있으면 참 좋았을 거라면서 울었거든요. 저나 아내에게 밉다는 소리도 전혀 안 했고요.”

어린아이였다.

“생각이 깊었어요.”

그렇게 김하식은 하나둘 자신의 추억을 늘어놓았다. 다만 그 말은 중구난방이었다. 생각해 낼 수 없는 기억도 있었다.

“아내를 어디서 만났죠?”

되레 은후에게 물었다.

은후는 쓰게 웃으며 답했다.

“저야 모르죠. 기억에 결락이 있는 건 귀신이 되다 말아서 그렇습니다.”

“되다 말아요?”

덕진공원의 천도복숭아 나무 덕분에 근처 마나 농도가 상승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마나와 김하식이 품은 원한만으로는 완벽하게 정령이 될 수 없었다.

‘좀 더 원한이 깊었다면.’

또 모르겠다.

물론 아내와 자식을 한순간에 잃은 슬픔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원망할 대상 또한 명확한데. 하지만 개인이 품을 수 있는 감정의 크기는 저마다 달랐다.

게다가 눈앞에 있는 이가 정령이 된 시점은 복수를 결행하면서였다. 그러니 막 가족을 잃은 직후에 비하여 품은 원망이 줄어들었을 터. 더불어 일종의 후련함도 있었을 것이다.

복수를 했으니까.

일종의 안도감까지도.

‘씁쓸하군.’

본능적으로 감정을 계산하는 게.

“선생님?”

“죄송합니다. 다른 생각을 좀 하고 있어서요.”

은후는 굳이 자신의 생각을 눈앞의 귀신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름은 기억하고 계신가요?”

“네, 김하식이라고 합니다. 아내는…….”

이름이 뭐였더라.

첫째의 이름은.

“둘째는 김수민이었고요. 첫째랑 아내는…….”

김하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족의 얼굴은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김하식은 한동안 어떻게든 아내와 첫째의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물원에 도착할 때까지도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아.”

너무 서글펐다.

울고 싶은데.

“귀신은 눈물을 흘릴 수 없나요?”

“귀신마다 다릅니다만.”

김하식은 되다 만 귀신이었으니.

“대신 하늘이 울고 있네요.”

“하하.”

김하식이 억지로 웃었다.

“첫째가요, 강아지랑 코끼리를 제일 좋아했어요. 코끼리가 엄청 멋지다면서요.”

은후와 김하식은 코끼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코끼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해가 졌기에 코끼리도 퇴근한 것이다. 안쪽에 있는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이곳에서 마시죠. 뭐가 좋으세요?”

“소주 있습니까?”

은후가 리어카에서 소주 한 병과 잔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비가 은후 주위를 비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광경에 김하식은 신기함을 느꼈으나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한잔하시죠.”

“감사합니다.”

소주잔이 김하식의 손에 들렸다. 김하식은 단번에 소주를 들이켜고 발 근처의 돌멩이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돌멩이는 가볍게 김하식의 손을 통과했다.

손에 들린 게 특별한 잔일까. 아니다. 눈앞의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겠지. 김하식은 계속해서 잔을 내밀었다. 취하고 싶어서.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취하질 않네요.”

자신의 주량을 생각하면 이미 취기가 돌고도 남았어야 했는데.

“귀신이니까요. 귀신은 취하기 어렵죠.”

“어렵다. 귀신도 취할 수는 있단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네. 다만 취하시기 전에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뭘요?”

“복수, 하고 싶으십니까?”

“…….”

은후는 경찰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김하식에게 해 주었다.

“제 이야기가 맞는 것 같네요. 그런데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이 살아 있다고요.”

“네, 경찰에게 듣기로는 그렇습니다.”

“복수요. 네, 복수해야죠. 그나저나 제가 정신 차리기 전에 음주 운전자를 족치고 있었다고요?”

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음주 운전자에 관한 원망 때문이겠죠. 겪으신 일이 그러하시니.”

하지만 그대로 계속 내버려 두면 악령이 될 확률이 높았다. 은후가 굳이 개입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안타까운 사연도 사연이지만 말이다.

“만약 계속 시간이 흘렀다면 음주 운전자만이 아닌 죄 없는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갔을 겁니다.”

은후가 적당히 김하식이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정령과 귀신의 개념, 그리고 현재 김하식의 상태가 어떤지 설명했다. 김하식은 은후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실 궁금했다. 은후는 어떤 사람이고 왜 자신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것이며 자신이 알지 못했던,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봤던 세계의 이야기가. 하지만 중요한 건 복수의 여부였다.

“개인적으로 한마디 충고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때로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죽는 것보다요.”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게.”

“네, 죽음은 깔끔하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라.

“예컨대 평생 악몽에 시달린다면 어떨까요? 혹은 아예 사지를 마비시킨다든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으로 느껴지게끔요. 차근차근, 중간에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도 하고요.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면 참 재밌을걸요?”

은후도 복수를 해 봐서 할 수 있는 충고였다.

* * *

며칠 후.

“악!”

김하식의 가족을 죽음으로 몰고 간 망나니가 자택에서 일어났다.

“헉헉.”

망나니가 급하게 일어나며 주위를 둘러본 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꿈인가.

술을 신나게 마시고 여느 때처럼 자신의 차량을 몰았는데, 큰 사고가 나는 꿈을 꾸었다. 그 결과 전신 마비라는 판정을 받았다. 꿈이 아니라 현실인 줄 알았다.

“개꿈이네, X발.”

거칠게 욕설을 내뱉은 망나니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어?”

그런데 한쪽 팔이 움직이질 않았다.

‘뭐야?’

한참을 낑낑거려도 오른팔은 축 늘어진 채였다. 분명히 움직인 것 같았는데. 이윽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모!”

“무슨 일이세요?”

망나니의 집의 가사 전반을 도와주는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망나니의 방문을 열고 나타났다.

“병원! 119!”

“어디 아프세요?!”

“팔이 안 움직여! 내 오른팔!”

“네?”

하지만 가사 도우미가 바라보기엔 망나니의 팔은 멀쩡했다.

“잘 움직이시는데요?”

“어?”

망나니가 흠칫했다.

‘뭐야.’

잘 움직인다, 자신의 오른팔이.

‘꿈 때문에 너무 놀랐나.’

가사 도우미가 속으로 혀를 차며 태연하게 말했다.

“얼른 일어나서 씻고 오세요. 식사 준비해 놓을게요.”

“알았어.”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간 망나니는 다시 욕설을 내뱉었다. 오른팔이 잘 움직이지 않았던 것. 아까처럼 아예 움직이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동작이 너무 어색했다.

‘대체 뭐야?’

그 광경을 마법으로 몸을 숨긴 채 지켜보던 은후가 김하식에게 마나로 의지를 전달했다.

‘망나니가 죽으면 함께 윤회의 고리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의식이 흐릿해지고 원한만 남게 되실 겁니다. 괜찮으시겠어요?’

‘네.’

직접적인 복수를 포기한 뒤 태어났던 곳 근처에서 은후의 도움을 받아 지나가는 음주 운전자를 처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 과정에서 직접적인 복수의 대상자인 망나니가 걸려들 수도 있었고.

그렇게 한다면 귀신으로서 불완전하게나마 쭉 살아갈 수 있었다. 이지를 유지한 채, 낙원의 주민이 되어서. 하지만 김하식은 잠깐 고민하다 거절했다. 익히 예상한 바였기에 은후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모쪼록 원하는 바를 이루시길.’

‘정말로 감사합니다.’

은후가 모습을 감췄다.

“X발! 대체!”

망나니는 잘 움직이는 왼팔로 대충 씻은 후 일단 병원을 찾기로 했다.

‘흐.’

김하식이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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