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차에 관한 소개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은후나 이하연 둘 다 차에 관해 큰 관심이 없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차를 인수할 때 은후가 관련된 설명을 들었기에 딱히 더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차에 관해 잘 몰라.”
“응? 엄청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는데.”
“내가 말한 건 차 받을 때 들었던 것들이야. 코너링이니 승차감이니, 잘 몰라.”
“그게 더 대단한 것 같은데.”
한 번 듣고 그 내용을 모두 기억한다는 게.
“기억력이 좋아서.”
은후가 흐릿하게 웃으며 주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뭐 먹고 싶어?”
“아.”
이하연이 잠깐 고민하다가 답했다.
“비빔밥? 전주 하면 비빔밥이니까. 저번에 못 먹어 봐서 한번 먹어 보고 싶어.”
“그럼 그러자.”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 비빔밥. 하지만 막상 전주에 사는 사람들이 비빔밥을 먹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렇게 타지에서 친구나 지인이 와서 먹자고 하지 않으면.
은후의 본가는 익산. 따지고 보면 은후 또한 타지 사람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유명하다는 비빔밥집을 찾았었다. 그때 알게 된 곳이 있었다. 전주시청 근처에 있는 백송 회관.
‘종합경기장 한국관도 유명하기는 한데.’
은후 개인적으로는 백송 회관이 좀 더 나았었다. 백송 회관은 시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나 근처 회사원들이 곧잘 찾는 곳이기도 했다. 주차장도 꽤 잘 갖추어져 있었고 말이다.
‘한국관도 주차장이 있으니 상관이야 없지만.’
하여간 차를 끌고 다닐 땐 주차하는 게 항상 문제였다.
“새 차 냄새.”
“오늘 오전에 받았거든.”
“하루도 안 됐네?”
“응. 그래서 비닐도 아직 다 못 뗐어.”
“내가 떼도 돼?”
“상관은 없는데 지금은 말고. 잘못하면 위험하니까.”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은후와 이하연은 백송 회관으로 향했다. 퇴근 시간도 아니었기에 딱히 차가 밀리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이하연은 적잖이 즐거웠다.
이렇게 편하게 마음 놓고 대화를 주고받을 기회가 요새 없었다. 가족의 경우에는 너무 가까워서, 친구의 경우엔 적당한 거리가 있어서. 하지만 은후는 아니었다.
‘가까우면서도 먼가?’
그렇게 말하기엔 좀 아닌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아무렴 어떤가.
편하고 즐거운데.
“맛있다.”
그건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마찬가지였다. 육회비빔밥이 유명하다고 하여 이하연은 육회비빔밥을, 은후는 갈비탕을 시켰다. 갈비탕도 맛있을 거 같아 이하연이 지그시 바라보자, 은후가 픽 웃으며 식당 아주머니를 불러 부탁했다.
“빈 그릇 하나만 좀 가져다주시겠어요?”
그리고 빈 그릇에 갈비탕을 좀 덜어 이하연에게 건넸다. 이하연은 은후의 배려에 고맙다고 말한 후 갈비탕을 맛봤다.
‘차라리 갈비탕을 시킬걸 그랬나.’
아니지.
‘그래도 전주에 왔으니까.’
그나저나 맛은 있는데, 참기름이 아니라 들기름이 뿌려진 것도 알겠는데. 시금치의 경우엔 참기름이지만 대부분 나물과 잘 어울리는 건 들기름이고.
‘아, 정말.’
쓸데없는 지식만 생각났다. 그리고 식사 시간에는 되도록 영상 콘텐츠에 신경 쓰기 싫어서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 그게 뭔가 아쉬웠다. 은후가 먹는 모습은 정갈하면서도 멋졌기 때문이다.
‘아쉽다.’
카메라에 담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이하연이 절로 그런 생각을 한 건 은후가 이세계에서 익힌 귀족들의 예법 때문이었다. 마법사가 된 이래 신분 상승을 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익혔던 예법.
지금이야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또 식기의 차이도 있었다. 하지만 몸에 자연스레 익은 예법의 태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는 참 우아하게 보였다.
“은후야.”
“응?”
결국 이하연이 식사 도중에 조심스레 물었다.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돼?”
“갑자기?”
“그냥, 뭐어. 찍고 싶어져서.”
“마음대로.”
이하연이 샐쭉이 웃으며 카메라를 꺼냈다.
찰칵.
그 광경에 식당 아주머니가 오지랖을 부렸다. 참한 커플인 것 같은데 한 장 찍어 주겠다고. 은후는 어깨를 으쓱였고 이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하연으로서는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과 이런 시간을 보낸 기억이 없었다. 애초에 이런 감정을 품은 것은 은후가 처음이었다. 자신을 좋아한다며 사귀자고 고백한 사람은 꽤 있었으나 전부 거절했고.
그래서 그럴까. 그냥 식당에서 같이 사진을 찍는 것조차 특별하게 다가왔다. 일전에 의사이자 취미가 사진인 사람 때문에 함께 찍은 사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때는 내 감정이 명확하지 않았으니까.’
식사를 모두 마치고 가까이 붙어서 셀카로 다정하게 한 장 더 찍은 후 이하연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계산했다.
* * *
식사 이후 근처를 가볍게 드라이브했다. 그러다가 향한 곳은 덕진 공원이었다. 노을이 지는 덕진 공원의 모습을 이하연이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하여서.
“은후……!”
덕진 공원의 후문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은후의 기색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수호령이 개구리와 함께 마중 나왔다. 그런데 은후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 이하연과 함께였기에 수호령이 멈칫했다.
‘지금은 좀. 미안.’
수호령이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으응, 움.”
수호령이 잠깐 고민하다가 은후에게 말했다.
“그냥 조용히 근처에만 있을게. 안 될까?”
그건 상관없다는 은후의 말에 수호령이 헤실거리며 근처를 기웃거렸다.
“무슨 생각 해?”
“여기 풍경이 익숙해진 것 같아서.”
뿐만 아니라 수호령의 마중도, 수호령이 함께 있는 것도.
처음에는 특별했던 것도 계속 함께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일상이 되기 마련이었다.
“덕진 공원에 자주 와?”
“응, 산책하기 딱 좋은 곳이니까.”
그게 은후는 조금 아쉬우면서도 못마땅했다. 물론 특별하다고 무작정 좋은 건 아니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일상에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흔히들 말하지 않던가. 일상의 소중함. 공기처럼 당연해서 잘 느끼지 못하지만 없다면 정말로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것. 다만 그럼에도 다소 서운한 감정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
그래.
너무 당연해서, 그래서 혹여나 당연함 속에 소중함을 잊을까 봐.
‘하연이와의 관계도 그렇지.’
자신을 향해 굳이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호감. 그 호감을 언제부턴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안 되는데, 다소 가볍게 여기지 않았나 싶었다.
“미안.”
“응? 갑자기?”
은후의 사과에 이하연이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뭐가?”
내가 오늘 뭘 실수했나.
곰곰이 생각해 봐도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은후가 자신에게 실수한 게 있나 고민해 봐도 딱히.
‘없지?’
은후가 피식 웃으며 휘청거리는 이하연을 부축했다. 오늘 은후 때문에 익숙지 않은 높은 힐을 신었는데 당황하여 휘청거렸던 것.
“괜찮아?”
“으응, 괜찮기는 한데.”
은후가 잠깐 고민하다가 자신이 방금 느낀 건 나중에 말하기로 했다. 이하연의 감정에 따로 시간을 내어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로 했으나 그렇다고 당장 결론을 내릴 순 없었으니까.
“나중에 말해 줄게, 내가 미안하다고 한 이유.”
“어어, 그래.”
뭘까.
이하연은 궁금했으나 호기심을 애써 억눌렀다.
“다리로 가자. 노을이 좋은 포인트가 있거든. 사과의 의미로 기타 연주라도 들려 줄게. 저번에 궁금하다고 했잖아?”
“좋아.”
이하연은 잽싸게 상황을 놓치지 않고 은후에게 팔짱을 꼈다. 그리고 조심스레 은후의 눈치를 살폈다.
‘심장아, 그만 좀 뛰어.’
쿵쿵거리는 심장을 의식하며 이하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캠코더,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좋은가.’
솔직히 영상을 만든다고 한 건 은후를 만나기 위한 핑계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래서 이하연은 평소 영상을 만들 때와 다르게 캠코더를 대충 들고 이동했다.
그사이 수호령이 은후와 이하연의 관계에 대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개구리가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신 은후에게 물었다.
‘애인?’
‘후보.’
은후의 짧은 대답에 수호령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하연을 요리조리 살폈다.
“합격!”
무엇을 기준으로 합격인지 모르겠지만, 수호령의 외침에 은후가 피식 웃었다.
“그.”
“응?”
“기왕이면 오리배 타면 안 될까?”
“오리배?”
“응, 호수 가운데에서 듣고 싶어.”
예전에 덕진 공원에 왔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은후와 함께 오리배를 타고 호수 가운데에서 노을을 보고 싶다는. 은후는 고개를 끄덕인 후 발걸음을 돌렸다.
“힐은 잘 안 신나 봐?”
“응.”
“다음부터는 단화 신어. 그래도 예쁘니까.”
“어, 응.”
이 상황에서 굳이 신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은후에게 살짝 못마땅한 감정을 품었다. 괜스레 부끄러워.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은후의 말에 바로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싫어.”
왜냐하면 힐을 신으면 다음에도 이렇게 은후가 부축해 줄까 싶어서. 또 그러면 자연스레 지금처럼 팔짱을 낄 수도 있을 테니까.
은후는 해맑게 웃으며 싫다는 이하연에게 굳이 더 뭐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생일이 12월 5일이었지.’
단화를 선물할까.
‘신발 사이즈는.’
물어보기는 좀 그러니까 마나를 움직여서 파악해 두자.
이윽고 오리배를 빌리는 곳에 도착했다. 간판에는 빌릴 수 있는 전동식, 페달식 오리배 외에도 보트도 적혀 있었다. 노를 저어서 움직이는.
“보트 탈래? 노을 보는 건 보트가 훨씬 나을 텐데.”
“상관이야 없는데, 노 젓는 거 힘들지 않겠어? 재미는 있을 거 같지만.”
은후는 어깨를 으쓱인 후 직원에게 대금을 지불했다.
“일몰 후 30분 이내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런데 보트 모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괜찮으시겠어요? 한번 올라타면 환불은 안 되어서요.”
보트라고 간판에 써 놓기는 했지만 전통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작은 조각배였다. 문제는 작은 배라고는 하지만 노를 젓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 그래서 간간이 진상 손님도 나타났다. 환불 혹은 오리배로 바꿔 달라는 이들이.
“괜찮습니다.”
직원의 단단한 주의를 받고 은후와 이하연은 조각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은후가 노를 젓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충 시늉만 하는 것일 뿐 실질적으로 배를 움직이는 건 마나의 힘이었다.
“와.”
이하연은 그런 은후의 모습에 눈빛을 반짝였다.
‘고수의 손놀림?’
대충대충 휘적휘적하는 것 같은데 배가 너무 잘 나갔다.
‘생각보다 쉬운 건가?’
그럴 리가.
그렇다면 직원이 그렇게까지 주의를 주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래서 이하연은 굳이 노를 젓지 않고 잠자코 풍경에 시선을 던졌다.
‘좋다.’
이내 호수 적당한 곳에 은후가 노를 세웠다. 그리고 적당히 배 난간에 걸터앉은 후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조금 떨어진 연꽃잎 위에는 수호령과 개구리가 앉아서 서로 조잘조잘 떠들었다.
‘뭘 연주해 볼까.’
이번엔 성호에게 맡기지 않고서.
은후는 성호와 계약 관계였기에 자연스레 기타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괜찮을까요?’
‘네, 한 번 정도는 은후 씨의 연주를 듣고 싶었으니까요.’
연주 스킬은 같으나 주체가 다르니 감성이 다를 터. 그래서 성호는 딱히 불만이 없었다. 안 그래도 예전부터 호기심도 있었고.
‘뭘 연주할까.’
은후가 고민했다.
이럴 때는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은후의 손가락이 보드랍게 현을 쓸었다.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하는 노을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