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68화 (68/170)

제68화

교수가 은후에게 부탁했다.

혹 학생들 앞에서 시범 조교로 일해 줄 수 있겠느냐고. 은후는 그 부탁을 가볍게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귀찮아서.

‘게다가 내 승마 스킬은 좀 그렇지.’

현대에서 정립한 이론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그런 것도 있었다. 아무리 교양으로 가볍게 배우는 거라지만.

‘교보재로 쓰기엔 부적합해.’

괜히 학생들이 잘못된 걸 배우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엄밀히 따지면 잘못된 건 아니겠지만, 현대의 관점에선 그럴 터였다.

이후 은후는 한참을 스타더스트와 달렸다. 스타더스트의 한계까지. 그래서 은후도 적잖이 지쳤다. 따로 육체를 단련하지 않았기에.

‘운동을 좀 하긴 해야 하려나.’

얼마나 말을 몰았다고.

은후가 스타더스트에서 내린 후 함께 마구간으로 향했다. 그 광경을 수업이 끝났음에도 지켜보고 있던 학생들이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은후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누군가 중얼거렸다.

“진짜 그림이다.”

“그니까.”

은후가 스타더스트와 달리는 광경은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달까. 계속해서 시선을 빼앗기기도 했고.

“카메라라도 가져왔어야 했는데.”

취미가 사진인 한 학생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너, 마음대로 찍으면 도촬인 건 알지?”

“그거야 알지. 허락 제대로 받으면 되잖아. 은후 선배님, 다음 실습 시간엔 안 나오시겠지?”

“글쎄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연락을 좀 해 봐야 하나.”

“탐사 동아리라고 하니까 그쪽 찾아가 보든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달려가 보는 게?”

“지금은 좀. 많이 지치신 것 같은데 지금 가면 괜히 밉보이지 않겠냐?”

* * *

마구간에 도착해서 은후가 스타더스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다음에 또 올게.”

스타더스트가 푸르릉거리며 투정 부렸다.

‘또 언제?’

은후가 답했다.

“조만간.”

은후는 스타더스트의 등을 몇 번 쓰다듬은 후 근처에 있는 직원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마구간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택시를 잡고 덕진 공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뭘 먹을까.’

되도록 수호령이 먹어 보지 않은 음식으로 준비하고 싶은데.

‘기왕이면 같이 만들 수 있으면 더 좋고.’

저번에 고기를 구울 때 은근히 요리에 욕심을 드러냈다. 정확히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다른 이가 즐겁게 먹어 주는 거에 만족감을 드러낸 것이지만. 그때 은후는 느꼈다. 그 만족감이 수호령을 아주 미약하게나마 성장시켰다는 걸.

본디 정령이란 성장할 수 있는 존재였다. 반대로 힘을 잃고 쇠퇴할 수도 있었고. 거기엔 감정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다른 조건들이 갖추어져도 감정의 변화가 없으면 성장할 수 없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수호령이 요리에 품은 감정은 정말 긍정적이었다.

‘뭐가 좋으려나.’

삼계탕으로 할까.

삼계탕을 고른 이유는 택시를 타고 가던 도중 삼계탕 전문점의 간판을 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호령은 삼계탕을 먹어 본 적은 없을 테니까.’

은후는 택시 기사에게 덕진 공원 정문에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바로 자취방에 들러 컴퓨터를 켜고 삼계탕을 만드는 방법을 조사했다.

재료는 어린 닭을 기본으로 찹쌀, 인삼, 대추, 밤, 황기 등, 의외로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존재했다. 다만 필수적인 재료가 있었으니 그건 인삼이었다.

‘하기야 이름부터가 삼계니까.’

열량이 꽤 높고, 의외로 역사가 짧고.

‘이런 것도 알려 주면 재밌게 들어 주려나.’

자료 조사를 끝낸 후 마트에서 장을 보며 은후가 피식 웃었다. 괜스레 부끄러워서. 언젠가부터 수호령이 인생의 중심에 들어온 것이. 물론 싫은 건 절대 아니었다.

* * *

은후가 장을 다 보고 덕진 공원에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수호령이 쪼르르 마중 나왔다.

“은후, 안녕!”

은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무슨 좋은 일 있었어?”

“응! 어떻게 알았어?”

은후가 피식 웃었다.

그야 얼굴에서 고스란히 티가 나니까. 그렇다고 그걸 솔직히 말하면 삐지지 않을까 싶어서 잠시 말을 골랐다.

‘삐지는 모습도 귀여우니 보고 싶기는 한데.’

그 삐짐도 얼마 안 가서 풀릴 테니까.

‘어쩔까.’

그 고민은 헤실헤실 웃고 있는 수호령의 표정에 사라졌다. 괜히 놀려서 저 기분 좋은 얼굴을 바꾸는 건 썩 내키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냥 보면 알지.”

“그래?”

“뭐.”

“하기야, 나도 개구리 표정 보면 알 수 있으니까.”

수호령이 음음,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비밀……은 아니고! 얼른, 얼른!”

평소와 달리 수호령이 은후를 채근했다. 은후가 고개를 갸웃하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천도복숭아 나무가 있는 벽진 폭포에 도착해서 낙원으로 이동한 뒤 나지막이 감탄했다.

제대로 된 오두막이 한 채 지어져 있던 것. 중구난방으로 어지러이 널려 있던 자재들이나 도구들도 깔끔하게 정리된 채였다.

“어때?!”

으스대며 가슴을 쭉 펴는 수호령에게 은후가 답했다.

“잘했네.”

“그치?”

어느 동화 속에 나오는 전형적인 오두막이랄까. 옆에 있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때문인지 더욱 그런 느낌이었다. 다만 그런 동화 속 이야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크기가 꽤 크다는 점 정도였다. 보통 그런 오두막은 아기자기하게 묘사되기 마련이었으니.

“오, 은후 도령 왔네.”

“도령?”

개구리의 뜬금없는 호칭에 은후가 의아함을 표했다. 개구리는 그런 은후에게 한 번 웃은 뒤 사람에서 개구리 형상으로 변한 뒤 개굴개굴 울며 의지를 전달했다.

‘그냥 이름을 부르기엔 뭐 해서 호칭을 좀 고민했지.’

“딱히 그러지 않아도 괜찮은데.”

‘어쨌건 나에게 은인이니까. 도움을 받지 않았나.’

“친구 사이에 굳이?”

‘은후 도령은 친구이면서 은인이지 않나. 그러니 지켜야 할 건 지켜야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지만 은후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뭔가 이유가 있는 것 같았지만 당장 물어도 대답해 줄 것 같진 않았기에.

‘나중에 들을 기회가 있겠지.’

굳이 지금 꼭 들어야 할 건 아니니.

“은후 씨, 오셨습니까?”

“네, 고생하신 모양이네요.”

“그리 고생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수호령과 개구리가 고생했죠.”

“수호령 말로는 연후 씨도 많이 도왔다고 하던데요.”

서연후가 멋쩍게 웃었다.

얼추 인사가 끝난 듯하자 수호령이 은후를 이끌고 오두막 문 앞으로 데려갔다.

“얼른 열어 봐 봐.”

은후가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잘했네.”

“헤헤.”

침대를 비롯한 의자 등의 가구가 있었다.

전부 나무로 만든.

“이불이라든가 냉장고 같은 건 못 만들어서 좀 아쉬워.”

“이불까지 만드는 건 좀 그렇지. 내가 사 올게.”

“만들면 안 돼?”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은후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럼 다음에는 이불이랑 냉장고도 만들까?”

아예 소재부터 만드는 건 아무래도 힘들겠지만, 원단 등을 가져와서 만드는 정도라면야. 냉장고도 마찬가지였다. 형태만 만들어 마법을 부여하면 그만이었다.

‘하나씩 하나씩 직접 만드는 것도 좋겠지.’

더더욱 애정도 갈 테고, 재미도 있을 테고.

“그나저나 고생했을 텐데 슬슬 밥이나 먹을까?”

“오! 오늘은 뭐 먹어?”

“삼계탕.”

“삼계탕이 뭐야?”

“닭 요리인데.”

“닭! 치킨 같은 거?”

“좀 달라.”

치킨은 닭을 기름에 튀긴 것이라면 삼계탕은 푹 고는 것이니까.

“닭은 참 좋은 것 같아. 엄청 맛있잖아.”

“함께 만들까?”

“응! 만들래!”

“어떻게 만드느냐면…….”

은후가 삼계탕 만드는 방법에 관해 설명했다. 겸사겸사 삼계탕에 관한 여러 이야기까지. 예컨대 시초는 일제강점기 때 여러 부잣집에서 백숙이나 닭 국물에 인삼 가루를 넣어 만든 것에서 비롯되었다든가.

수호령은 그런 은후의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다.

“원조는 백숙이란 음식인 거지?”

“그렇지. 백숙은 삼국시대부터 먹었다고 해.”

“삼국시대?”

“먼 과거, 한반도를 대표하는 세 나라가 있었거든.”

삼계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꽤 과거까지 언급되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들어 봤어. 그때를 삼국시대라고 하는구나. 엄청 옛날이야기잖아.”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은후는 오두막이나 가구를 만들고 남은 나무를 모았다. 그리고 모닥불을 피운 후 본격적으로 삼계탕을 요리할 준비를 시작했다.

“재밌어?”

“응!”

닭의 뱃속에 각종 재료를 넣는 게 수호령은 퍽 재밌는 모양이었다. 그 광경을 다른 낙원의 주민들이 흐뭇하게 바라봤다. 한 손 거들까 싶기도 했지만 수호령과 은후가 자아내는 분위기가 너무 따스했다.

‘그래도 그냥 바라만 보고 있기는 좀 그런데.’

서연후가 성호를 바라봤다.

‘성호 씨는 별생각, 아니, 또 음악 생각하는 것 같고.’

개구리 씨는 어떠려나.

“도우러 갈까요?”

개구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 형상으로 변했다. 이윽고 성호가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은후의 도움이 없으면 제대로 연주하기 힘들었다.

실제로 소리를 내는 데에는 마나가 필요했으니까. 한두 곡 정도라면 어떻게든 가능하겠지만. 하지만 이곳 낙원에서는 아니었다. 천도복숭아 나무 덕분에 공기에 마나가 제법 풍부해진 것이다.

‘생각보다 천도복숭아 나무 성장 속도가 빨라.’

은후가 그런 성호를 바라보며 조그맣게 웃었다. 예상 밖이긴 하지만 나쁜 일은 아니었으니까. 너무 과도하다면 모를까 저 정도는 괜찮았다. 그리고 저만큼 천도복숭아 나무의 마나가 늘어났으니.

‘얼추 전북대학교까진 수호령이 나갈 수 있겠어.’

천도복숭아 나무가 자리 잡은 곳은 덕진 공원. 그러니 덕진 공원을 근간으로 두고 있는 수호령의 힘도 자연스레 커졌을 터. 수호령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수호령이 힘을 쓸 수 있는 크기가 늘어났을 것이다. 그만큼 활동 반경을 넓힐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은후는 슬슬 확실하게 생각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이름.’

후보는 여럿이었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되도록 예쁘고 사랑스럽고 멋진 그런 이름을 지어 주고 싶은데. 그런 고민 속에서도 은후는 요리에 소홀하지 않았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요리하는 정도야.

‘더블 캐스팅 같은 거에 비하면 뭐.’

참 손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한창 요리하던 도중 개구리가 은후에게 말을 걸어 왔다.

“그나저나 밥은 안 지어?”

개구리의 질문에 은후가 되물었다.

“닭 안에 찹쌀 들어가는데?”

“나는 찹쌀보다 그냥 국물에다 흰밥 말아 먹는 게 좋더라고.”

개구리의 말에 성호가 동조했다.

“저도 그게 취향이에요.”

“그럼 밥도 지을까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

어느새 해가 떨어졌다.

고소한 냄새, 아련한 음악, 완성된 삼계탕.

여전히 타오르며 주위를 밝히고 있는 모닥불.

“성호 씨도 와서 드세요!”

서연후의 외침에 성호가 고개를 저었다. 먹는 것도 좋지만 오늘은 좀 더 기타를 연주하고 싶었다.

“맛있어!”

“고소하니 좋네요.”

삼계탕은 호평이었다.

수호령이 시바견 루비를 위해 따로 마련한 닭고기를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성호 옆에 있는 루비에게 다가가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어, 삼계탕 열심히 만들었는데. 정말 안 먹어? 진짜 맛있는데.”

수호령의 말에 성호가 움찔했다.

“조금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는데, 기타 연주도 좋지만.”

“그.”

성호는 차마 수호령에게 계속 기타를 치겠다고 할 수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성호도 삼계탕을 먹게 되었다. 그런 성호의 모습에 서연후가 픽 웃었다.

‘좋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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