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를 안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스스로도 그러했으며 남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사람 외 동물은 어떨까.
그건 동물도 마찬가지였다. 인간과 비교했을 때 단순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 동물 또한 저마다 원하는 바가 달랐다. 예컨대 고양이도 개체마다 성격이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말이라고 하여 예외는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어느 정도 공유하는 바는 있겠지만. 성호는 그걸 서연후와 어울리면서 알게 되었다. 서연후가 벌레를 다루는 걸 지켜보면서.
‘벌레도 개체마다 성격이 다르더라고요.’
원하는 바도 미묘하게 달랐고.
같은 종임에도 그러했다. 그래서 성호는 말들을 위해 작곡했던 첫 곡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내 연주가 말들을 모두 편안케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성호가 처음 작곡했던 곡은 너른 초원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말이 초원을 바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닐 것 같았다. 초원에서 나고 자란 말이라면 바라겠지. 또 어떤 말은 초원에서 자라나지 않았어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모든 말이 그러진 않을 거야.’
그래서 고민했다.
어떻게, 어떻게 하면 모든 말들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위로를, 편안함을, 휴식을, 원하는 이상향을.
그래, 마음을 건드리자.
각기 말들이 원하는 걸 떠올리게.
그렇기 때문에 성호의 연주는 사람이 듣기에 그저 나쁘지 않은, 또는 다소 이질적인. 허나 말들에게 있어서는 아니었다. 말들은 저마다 자신도 잘 몰랐던 진정 원하는 바를 떠올리게 되었다. 은후가 바라보기에 성호가 만든 곡은 일종의 기적이었다.
‘근본이 되는 심상을 건드리는가.’
그것도 말이라는 하나의 종에게 모두 통하는.
스타더스트는 은후와 함께 끝없는 트랙을 달리는 걸 떠올렸다. 어떤 말은 사막에서 달리는 꿈을 꾸었다. 어떤 말은 어렸을 적 처음으로 사귀었던 고양이 친구와 장난을 치는 과거를 떠올렸다. 또 어떤 말은…….
모든 말이 각자 이룰 수 없는 소망을 짧게나마 꿈꾸었다. 그러니 위로가 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모든 말들이 눈물을 흘린 건 그래서였다.
‘좋네요. 그리고 슬프고요.’
연주가 끝났을 때 성호가 짧게 탄식했다.
‘차라리 연주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까요?’
성호의 질문에 은후가 침묵했다.
‘어차피 이룰 수 없는 꿈일진대, 제가 괜히 끄집어 낸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위로가 되었을 겁니다.’
‘그럴까요?’
‘물론 성호 씨 말대로 그냥 잊은 채 살아가다 죽음을 맞이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건 저희가 재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저 기타 연주로 짧은 환상을 보여 줄 수밖에 없어서, 실제 현실로 말들이 바라는 바를 이루어줄 수 없어서, 그 부분이 성호는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고민이네요.’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언젠가 먼 훗날, 지금과 비슷한 맥락에서 인간을 위한 곡을 만들었을 때 과연 연주하는 맞는 것일까. 물론 옳고 그름을 따질만한 영역은 아니었지만. 그런 성호의 상념은 은후의 말에 멈췄다.
‘그래도 그거 아시나요?’
‘네?’
‘주위를 둘러보세요. 그리고 말들의 눈빛을 쳐다보세요.’
‘아.’
말들이 은후가 아닌, 나를.
성호에게 모두가 감사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호의가 듬뿍 담긴.
적잖은 침묵이 흐른 후 성호가 은후에게 물었다.
‘나중에 또 여기에 와서 연주할 수 있을까요?’
‘원한다면 얼마든지요. 아, 제가 바쁜 일이 없는 날이어야겠습니다만.’
보기 힘든 은후의 너스레에 성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은후 나름대로 자신을 위로해 주려고 하는 걸 알았기에.
* * *
전주 승마장에 은후가 기타를 연주했고, 그 연주에 모든 말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목격한 사람이 상당했으며, 기적이라고 봐도 무방한 신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불법이나 부적절한 일도 아니었고.
“도희야.”
“어?”
“소문 진짜야?”
“무슨 소문?”
“은후 선배 연주로 말들이 전부 울었다고 하는 거.”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에도 학생들은 아직 제대로 실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은후, 정확히는 성호의 연주 때문에 모든 말들이 마구간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말들의 컨디션이 안 좋아서라고 교수가 말했지만, 그걸 믿는 학생은 없었다. 직원들과 어느 정도 안면을 튼 학생들에게 아까 있었던 일들이 고스란히 귀에 들어갔으니.
“진짜야.”
실제로 함께 목격했던 도희 또한 소문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도희 학생도 그때 같이 있었다니까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그것도 참 그랬다. 모든 직원이 하나로 입을 모아 없었던 일을 지어 내기엔 상황이 이상했으니까.
“소문대로 은후 선배 기타 실력이 대단한가 보네.”
“난 잘 모르겠더라. 기타 소리 나쁘진 않았는데.”
“애초에 말들을 위한 곡이라잖아? 그러니 사람이 듣기엔 좀 이상했을 수도 있지.”
“이상한 건 아니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교수만 난처해졌다. 기껏 승마장까지 왔는데 학생들을 그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으니까. 다행히 시간이 좀 흘러 말들도 진정되어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자! 다들 주목! 저번에 배웠던 거 기억나죠? 오늘은 등에 올라타는 것뿐만 아니라 가볍게 산보까지 해 볼 거예요!”
물론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2인 1조로 구성해서 진행하겠습니다! 짝꿍은 제가 임의대로 지었는데 혹 불만이 있으신 분은 다음 이론 시간에 따로 말씀해 주세요!”
가능하면 일대일로 하면 좋겠지만 직원과 말들의 수에 한계가 있었기에 두 명당 말 한 마리가 배정되었다. 다만 문제가 생겼다. 바로 은후의 팀에.
“워워, 진정해.”
본디 스타더스트는 학생들의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귀하고 비싼 말인 것도 있지만 성격이 온순하지 않았기에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까.
물론 은후와 스타더스트의 특별한 인연은 승마장의 직원들 모두가 알았다. 그러나 수업에 특혜를 베풀 수는 없는 일 아니던가. 하지만 스타더스트에게 있어서 그런 인간들의 사정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왜 이렇게 화났어?”
은후를 보고 싶어 억지로 마구간을 벗어난 스타더스트. 그런데 은후가 다른 말에 타는 광경을 보고 질투가 난 것. 그래서 재빠르게 달려간 스타더스트가 투레질하며 은후가 타려는 말에게 시비를 걸었다.
“친구에게 그러는 거 아니야.”
푸르르.
은후가 스타더스트의 불만 어린 눈동자에 쓴웃음을 지으며 교수를 찾았다.
“교수님.”
“어어, 네, 은후 학생.”
“제 수업은 스타더스트로 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
이걸 어찌해야 하나.
“이 녀석, 질투가 너무 심해서요.”
은후가 전주 승마장의 모든 말에게 기타 연주를 하여 눈물을 흘리게끔 했다는 소문은 들었다. 그런데 그건 스타더스트뿐만이 아닐 텐데.
‘대체 뭐지?’
교수도 스타더스트라는 말을 알았다.
왜 모르겠나.
비록 교양 수업이고 계약직이라고는 하지만 말에 진심인 교수인데. 스타더스트는 업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이름을 한 번은 들어 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고작 학생에게 스타더스트가 질투하고 등을 허락했다고?’
교수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야 은후가 스타더스트와 교감하고 신나게 달렸던 건 수업 시간 외 사적으로 찾아왔을 때의 일이었으니, 교수는 아직 은후와 스타더스트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잠시만요.”
교수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스타더스트의 전담 직원을 찾았다. 아무리 은후가 스타더스트와 함께 왔다지만.
‘아니, 애초에 스타더스트 정도 되는 말을 학생과 마음대로 움직이게 내버려 두나?’
교수가 직원에게 물었다.
수업에 스타더스트 만한 말을 참가시키느냐고. 좋은 말임은 분명하나 성질이 보통 아닐 텐데 무슨 문제 없겠느냐고 말이다. 그런 교수에게 직원이 웃으며 답했다.
“은후 학생이라면 괜찮을 겁니다. 그나저나 스타더스트도 참 어지간하네요. 하기야 그런 질주를 했으니 반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요.”
“질주요?”
“아, 교수님은 모르시겠군요. 얼마 전에 은후 학생이 개인적으로 찾아왔거든요. 그리고 스타더스트와 함께 호흡을 맞췄죠.”
“진짜로 스타더스트가 등을 허락했어요?”
“그럼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은후 학생 정도면 수업받을 필요도 없을걸요? 어지간한 기수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실력이라서요. 그러니 은후 학생이라면 스타더스트와 함께 수업 진행하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다른 학생이 스타더스트를 타는 건 안 됩니다.”
애초에 스타더스트가 허락하지 않겠지만.
“억지로 태우려고 하면 진짜 사고 날 거예요.”
교수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엄지로 꾹꾹 눌렀다.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
‘어떻게 하지.’
은후만 예외로 두기엔 수업의 공평성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고, 그렇다고 억지로 강행하자니 은후의 옆에서 애교 부리고 있는 스타더스트가 양보할 것 같지도 않은데.
“은후 학생 실력이 그렇게 뛰어난가요?”
“말도 마세요. 여기 있는 직원들뿐만 아니라 위에서도 완전히 반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아시죠? 스타더스트를 저희 승마장에 데리고 온 후원자요.”
“그분 알죠.”
“그분이 진짜 극찬했습니다.”
“그렇단 말이죠.”
그 후원자.
교수도 알았다.
기수를 바라보는 눈이 얼마나 까다로운지도.
* * *
교수가 학생들을 다시 모아서 공지했다.
“자! 잠깐 주목!”
원래 교수는 학생 개개인의 편의를 봐줄 생각이 없었다. 기존에 말에 익숙한 학생이 있어도 자신의 수업에 참여한 이상 제대로 참여하게끔 하려고 했다.
“혹시 여기서 나 예전에 말 좀 타 봐서 수업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 있으면 지금 손들고 말하세요! 그럼 실습 시간 면제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꼬였다. 은후 한 명 때문에. 그렇다고 은후 한 명에게만 특혜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모두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교수가 이렇게 말하기 전 따로 들은 바가 있었기에 은후가 손을 들었다.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후를 앞으로 불러 낸 뒤 외쳤다.
“단순히 말만 들어서는 알 수 없겠죠? 한번 말을 몰고 트랙 돌아 보세요.”
한마디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실력을 보이라는 의미였다.
“달려 볼까?”
은후가 스타더스트를 이끌고 온 뒤 등에 올라탔다.
푸르륵.
스타더스트가 기분 좋게 웃었다.
“와.”
말에 올라타는 것.
그것조차 아직 힘든 학생이 적잖이 있었다. 그리고 학생 대부분은 말에 관해 아직 잘 몰랐다.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일. 그런 그들이 바라보기에도 은후가 말에 올라타는 장면은 굉장히 깔끔했다.
하지만 그런 감탄은 이내 침묵으로 바뀌었다. 은후가 스타더스트를 몰고 달리는 광경이 너무 굉장했기 때문이다. 그건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미쳤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말에 관해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교수는 은후가 스타더스트와 함께 달리는 광경에 넋을 놓았다.
아름다웠다.
기수도, 말도, 너무 신나고 즐거워서 어찌할 줄 모르지 않는가.
“워워.”
적당히 달린 은후는 교수와 학생들 앞에 스타더스트를 멈추었다. 스타더스트는 왜 좀 더 달리지 않느냐고 불평했다. 은후는 조금만 이따가 달리자며 스타더스트를 달래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되었나요?”
은후가 학생들 앞에서 교수에게 물었다.
“어, 네, 그렇죠. 이 정도 실력이면 굳이 실습에 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모든 학생이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