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박하나는 그 술자리에서 그 글귀를 가지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얘, 요새도 이런 글 올리네.”
“뭔가 싸한데?”
그 친구를 모르는 박하나의 친구가 말했다.
“싸하기는 뭘. 예전에 올렸던 글들 봐 봐.”
한 달에 한 번꼴, 많게는 서너 번, 다 비슷한 뉘앙스의 글들이었다. 그래서 싸하다고 말했던 친구도 그냥 웃고 말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예전부터 그랬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며.
“나 관심 가져 달란 소리야.”
“걔, 우울증 있지?”
“아마? 예전부터 병원 다닌다는 소문 돌긴 했는데. 아마 사실이지 않으려나.”
“그런 소문이 돌았어?”
박하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어.”
“왜 난 몰랐지?”
“너야, 그, 좀 많이 친했잖아, 예전에.”
“그랬지.”
“그래서 너한테 그런 말 하긴 좀 그랬어. 그래서 다들 쉬쉬했을걸. 나도 그랬으니까.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나와서 말하게 된 거긴 한데.”
어느 순간부터 매일 술을 먹고, 클럽에 다니고, 원나잇을 하고, 자해 시도도 하고, 자해로 응급실에도 실려 가고. 박하나가 잘 몰랐던, 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친구의 이야기가 술자리 주제로 올랐다.
“그래서 걔, 손절한 지 오래야.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아서. 투정 들어 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백번 양보해서 열 번 만나면 한 번 정도는 그런 이야기 안 할 수도 있잖아?”
뒷담이었다.
친구는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친구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술을 들이켠 후 입을 열었다.
“막말로, 여기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이제 이 이야기 그만하자.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 ”
“그래.”
이윽고 술자리는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며칠 후,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전화 한 통.
- 야, 너 세영이 알지? 걔 죽었다더라. 욕조에서 스스로 손목 그었대.
이세영.
애써 잊으려 했던 친구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며칠 전 술자리에서조차 굳이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이름을 말하며 부고를 알린 친구는 마당발인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 장례식은 한다더라. 나도 가긴 할 건데, 넌 올 거야?
보험 영업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그녀는 굳이 일부러라도 고등학교 때의 인맥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만나면 상황 봐서 은근슬쩍 보험을 권유했다. 그렇다고 강제라거나 억지는 아니었다.
이따금 지나가다 툭.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 그리 썩 나쁜 평판은 아니었다. 다만 박하나는 소름 끼쳤다. 담담하기 짝이 없이 언제나처럼 안부를 묻는 인사와 비슷한 목소리로 친구의 죽음을 언급해서.
- 하나야?
“어, 어, 가야지. 그래, 가야지.”
몇 박자 늦게 박하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뭔가 멍했다.
‘세영이가 진짜로 죽었다고?’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어떡해야 하나.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일단 장례식에 가야지.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주섬주섬 정장을 챙겨 입었다.
장례식장까지 거리가 꽤 되었지만 무작정 택시를 잡았다. 버스를 타기엔 정신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한테는 내가, 아니지, 내가 굳이 말 안 해도 연락은 이미 다 돌렸겠지.’
보험 영업하는 친구가.
‘걔 이름이 뭐였더라?’
성은 김씨였는데.
‘김…… 김…… 어.’
흐릿했다.
기억력이 나쁘지 않은 편인데 왜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까. 부모님 이름은 뭐였더라? 동생 이름은? 이세영이란 죽어 버린 친구의 이름 석 자 외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자신의 이름조차.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무의식중에 계산하고 내린 박하나가 간신히 자신의 이름을 떠올렸다.
‘내 이름은 박……하나.’
그리고 차츰차츰 기억나지 않았던 이름들이 돌아왔다. 그리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기억을 잊는 건 섬뜩한 경험이었다.
‘내가 그렇게 충격받았나?’
한때 친했던,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멀어지다 아예 연락이 끊긴 친구인데. 정확히는 박하나가 연락을 애써 무시한 것이었다. 이세영은 박하나에게 꾸준히 안부 문자를 남겼다.
- 잘 지내지?
- 요즘 어때?
- 오늘 날씨 좋더라.
- 갑자기 오늘 소나기 내렸잖아. 그래서 비 맞았는데 넌 어땠어?
박하나는 짧은 단답으로, 혹은 무시로 일관했다.
“왔어?”
장례식장에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박하나를 맞이했다. 박하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조의금부터 내고 올게.”
얼마를 내야 하나.
5만 원? 10만 원?
그래도 10만 원은 내야 할까.
현금을 들고 오긴 했는데.
‘하.’
박하나가 쓰게 웃으며 현금 전부를 꺼냈다. 18만 4천 원이었다. 박하나는 15만 원을 조의금으로 냈다. 친구가 죽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돈을 얼마 낼지 고민하고 있구나. 내가 사람인가.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나 잠깐만.”
“어디가? 절 안 해?”
“조금만 이따가.”
“어, 어어.”
친구들을 뒤로하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까는 내리지 않지 않았나.
그나저나 비가 내리는구나. 영화를 보면 장례식 때엔 비가 내리고 있는데. 막상 경험해 보니 영화와는 뭔가 다른 것 같았다.
그냥.
그냥.
‘현실이 아닌 것 같아.’
장례식장 입구에서 손을 뻗었다. 비가 박하나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차가웠다. 그 느낌조차 현실감이 없었다. 하지만 유족과 인사를 나누고 절을 하고 친구의 영정 사진을 본 박하나는 이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현실이란 걸. 친구는 죽었다는 걸.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애써 계속해서 울음을 참고 있는 친구의 어머니, 그리고 이 자리에서 울지 않겠다며 충혈된 붉은 눈으로 담담한 인사를 하는 친구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고요했다.
덤덤했다.
마치 마음이 멈춘 것 같았다.
감정이 움직이질 않았다.
“하나…… 양이던가요. 하나, 맞죠?”
“네.”
고등학교 시절, 이따금 세영이의 집에 놀러 갔던 박하나를 어머니는 기억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무엇이 미안할까.
무엇이 고마울까.
이후 박하나의 기억은 애매했다.
* * *
박하나는 술이 고팠다.
“술 더 없죠?”
은후가 어깨를 으쓱이자 박하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술 고프다. 하여간 며칠 지나니까 그제야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원래 사람이 강한 충격을 받으면 눈물을 흘릴 수조차 없다고 합니다.”
“충격이요?”
“네.”
“맞아요, 꿈에서 세영이가 나왔거든요, 웃으면서.”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잘 기억은 나질 않았다. 다만 박하나는 꿈이란 걸 자각하지 못했다.
“살아 있었냐고 물었던 것 같아요. 세영이가 뭐라고 답은 해 주었는데.”
꿈에서 깬 후 박하나는 울었다.
그렇게 울고, 울고, 또 울고.
“회사에서도 걱정하더라고요. 무슨 일 있냐고.”
박하나는 그냥 죄송하다고 말했다.
“한때는 콩팥 하나 정도는 웃으면서 떼어 줄 수 있는 친구라고 여겼어요. 어린 치기였지만 당시엔 진심이었죠. 평생 함께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집에 가는 길이 비슷해서 항상 같은 버스를 탔거든요.”
언젠가는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종점까지 서로 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종점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오며 좀 더 함께 시간을 보냈다. 참 많은 시간을 공유했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가 재수를 했어요.”
그게 멀어지게 된 계기였다.
“세영이는 서울로 대학을 갔고, 저는 재수에 실패해서 인서울은 못 했고요.”
다시 한번 수능을 치르긴 싫어서 전북대학교에 입학했다. 그것도 운이 좋았다. 입학 대기로 기다리다 들어갔으니까.
“몸이 멀어지니까 마음도 멀어지더라고요. 연애에서 말하는 것처럼 친구 관계도 그렇더라고요.”
그래도 이따금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만났다. 그 정도에 끊길 인연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다 완전히 멀어지게 된 계기는 서로 남자 친구를 만들면서였다.
더더욱 서로 시간을 내기 어려워졌다. 그 문제로 다투었다. 그게 결정타였다. 웃으면서 좋게좋게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다. 이세영이 먼저 사과하고 풀기는 했지만, 그 이후 직접 만나지 않았다. 박하나가 회피했기 때문이다.
“세영이는 계속 저에게 꾸준히 연락했어요. 제가 한 번이라도 세영이를 만났으면 어땠을까. 마지막에 연락한 것도 저라고 하던데.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더라고요.”
한때는 심장까지는 모르겠지만 콩팥 정도야 웃으면서 떼어 줄 수도 있다 여겼던 친구인데.
“죄책감.”
“네?”
“죄책감을 느끼고 계시네요.”
“……그럴지도요.”
“박하나 씨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봐요. 잘 와 닿지 않겠지만요.”
박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알기는 알죠. 제가 진즉 알았어도 세영이를 말릴 수 없었을 거예요. 저보다 더 친밀했던 가족도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가능성은 없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제가 멍청한 거 알아요.”
그래도.
“한 번 정도는 이야기를 나누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조금은 힘든 게 낫지 않았을까, 좀 더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당장 자신도 이렇게 잘 모르는 사람에게 하소연하니 조금은 나은 느낌이지 않은가.
“너무 미안해요.”
계속 연락을 무시해서.
한 번 정도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는데.
“세영이는 나에게 계속 연락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아서. 싸우고 나서 내가 먼저 연락한 적이 없어서. 만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는데.”
박하나가 입을 닫았다.
‘끅.’
그 뒤에 어느 순간부터 귀를 기울이고 있던 수호령이 눈물을 글썽이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 개구리가 수호령을 달래고 있었다. 서연후가 씁쓸하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성호가 말했다.
‘이 와중에도 음악 생각을 하는 제가 조금은 밉네요. 제 음악으로 박하나 씨를 달래 주고 싶은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후가 성호의 본체인 기타를 집었다. 그리고 연주를 시작했다, 성호의 감정에 이끌려. 박하나는 느닷없이 기타 연주하는 은후를 바라봤다.
‘기타를 들고 있었나?’
기타 소리가 박하나의 귀를 간질였다.
그게 뭐 중요한가.
그냥, 기타 소리가 너무 좋았다.
‘왜.’
어째서.
‘얼마 만이지.’
좋다는 감정을 느껴 본 게.
‘위로받고 있는 것 같아.’
최근 들어 그친 눈물이 박하나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박하나는 최대한 숨을 죽이고 울었다. 기타 연주에 방해되고 싶지 않아서. 그런 박하나에게 은후가 성호의 말을 전달했다.
“울고 싶으면 제대로 울어요. 굳이 소리를 참을 필요 없어요. 그에 맞춰 연주할 테니까요.”
무슨 소리지.
하지만 울어도 된다는 소리에, 자신의 울음에 맞춰 연주한다는 소리에, 박하나가 참았던 숨을 터트리며 훌쩍였다. 그리고 그 훌쩍임에 기타 소리가 어우러졌다. 박하나가 느끼기엔 정말 묘한 연주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기타 소리가 멈췄다.
“죽으면 세영이와 만날 수 있을까요?”
“글쎄요. 힘들지 않을까요.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박하나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누군가는 느끼겠죠. 지금 박하나 씨가 품은 감정과 같은 기분을요.”
“…….”
“무책임하게 힘내라는 소리는 하지 않을게요. 다만 힘들면 덕진 공원으로 놀러 와요. 오늘처럼 하소연 정도는 들어 드릴 수 있으니까요. 기타도 쳐 드릴 수도 있고요.”
이후 박하나는 은후의 배웅을 받으며 택시에 올랐다.
오늘은 왠지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