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수호령의 모습은 어린아이. 하지만 그런 외관과 다르게 실질적인 힘은 건장한 성인 그 이상이었다. 신체 자체가 마나 덩어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능적으로 마나를 다룰 수 있었다.
사람으로 따지면 숨을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은후는 수호령이 나무를 번쩍 든 후 뒤뚱거리는 광경에 피식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얍!”
덕진 공원 내부이니 굳이 손으로 들지 않아도 마나를 이용해 허공에 띄우면 될 텐데. 아마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직접 드는 게 재밌어서, 그래서 그러는 것일 테지.
‘그나저나 사진이라도 찍어 두면 좋을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왜 그렇게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사진이라.’
생각난 김에 하나 사야겠다.
‘게다가 집을 지은 이후 들여야 할 가구도 그렇고.’
소파라든가, 냉장고도 있으면 좋겠고.
그런 것까지 일일이 만들라고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으니 사는 게 좋겠지. TV도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건 당장 힘들지 싶었다. 가져다 놓아 봐야 실제로 방송을 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도 DVD는 재생할 수 있을 테니까 있으면 좋긴 하려나.’
그렇게 은후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성호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은후 씨.”
“무슨 일이세요? 필요한 거 있으면 편히 말씀하세요.”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러면?”
성호가 멋쩍게 웃은 뒤 말했다.
“최근에 말을 타고 오셨다지 않았습니까?”
“네.”
스타더스트와 얽힌 일을 아까 수호령과 이야기했다. 그리 머지않은 시간 내에 낙원의 주민이 될 거란 말에 수호령의 눈빛이 반짝였더라.
‘말! 나도 나중에 말 타 볼 수 있을까?’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수호령이라면야.
‘스타더스트도 받아들여 주지 않으려나.’
뭐, 정 안 되면 설득하면 그만이었다.
강제로 해도 되겠으나 그러고 싶진 않았으니. 그리고 딱히 설득하는 게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았다.
“갑자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물들도 관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요? 갑자기 생각이 바뀌셨나 보네요.”
“굳이 사람일 필요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저조차 이제 사람이 아닌데 관객이 꼭 사람이란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런데 다음에 스타더스트를 만나러 갈 때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죠.”
성호가 은후의 허락에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열심히 준비해야겠네요. 스타더스트의 이야기에 꽤 감동받았거든요.”
한없이 달리고 싶어라.
죽는 순간까지도, 죽은 이후에도.
성호는 스타더스트의 그 집념이 왠지 모르게 퍽 공감 갔다. 자신도 그러지 않았던가. 비록 분야는 달랐으나 죽어도 좋으니, 아니, 죽은 이후에라도 음악을 하고 싶다고 소망했었다. 또 죽는 순간도 그랬다.
‘분명히 기타를 쳤던 것 같은데.’
죽어 가면서.
잘 기억나지 않는 죽음의 순간.
그래서 언젠가 은후에게 물어봤다. 죽을 때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그에 관해선 은후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기억해 낼 수 있다면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거라고.
‘그러면 성호 씨의 음악 또한 깊어지겠죠.’
원한다면 기억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 큰 기회를 놓치는 거라고. 그래서 성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번에 내 음악이 좀 더 발전할 수 있으려나.’
오늘 겪은 일 또한 음악으로 추후 풀어내 보자.
은후의 배려.
함께 집을 지으며 겪은 즐거움.
성호는 여전히 음악에 미쳐 있었다.
* * *
그날 저녁, 아직 한창 집을 만들고 있는 낙원의 주민들을 뒤로하고 은후는 전주 백화점을 찾았다.
‘소파는 엄청 컸으면 좋겠어!’
어울리는 가구를 비롯하여 괜찮은 카메라를 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화분 같은 것도 좀 있으면 좋겠구.’
은후가 수호령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화분은 이따가 돌아가는 길에 꽃집을 들르면 될 것 같고. 당장 가구를 사는 건 좀 그렇지.’
왜냐하면 낙원에 들여놓을 것들이었으니까. 은후로서 산다면 추후 그 가구가 어디로 사라졌는가에 관한 의문을 품을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일단 뭘 사 둘지만 생각하고.’
주문은 김영호를 통해서.
김영호와는 마법을 통한 계약 관계였으니 나름대로 안전장치가 되어 있는 셈이었다.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고.
“요새 제일 잘나가는 카메라가 뭔가요? 간단하게라도 동영상 기능도 함께였으면 좋겠는데요.”
일단 은후는 적당한 가격의 카메라를 직원의 추천대로 구입했다. 솔직히 은후는 카메라에 관해 잘 몰랐다. 하지만 마법에 있어서는 전문가였다.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건 어렵지.’
이세계에서도 현대의 카메라처럼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마법 도구가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은후가 그런 도구를 만들 수 없었던 까닭은 재료 수급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노력한 성과가 드러났다. 당장에라도 기록용 마법 도구를 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장 그러지 않은 건 효율성에 있었다.
‘카메라라는 도구는 전 세계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뭔가를 찍어 기록으로 남긴다는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으니까.’
카메라에다가 기록 마법 성능을 부여하면 훨씬 더 성능 좋은 물건이 나올 터였다.
‘음?’
카메라를 구입하고 적당히 가구를 둘러보는 와중에, 너무도 짙은 부정의 감정에 은후가 눈을 돌렸다.
‘너무 진한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살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쯧.’
은후가 가볍게 혀를 찼다. 솔직히 그냥 지나쳐도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장에라도 위태로운 목숨이 아니던가.
‘조금은 도움을 줄까.’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감정 마나도 흡수하고.’
감정 마나가 부쩍 필요하기도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질이 높은 감정 마나가. 급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낙원에 관련해서 이래저래. 특히 천도복숭아 나무를 성장시키기 위해선 꼭.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으니, 그런 마나를 흡수하기 위해선 관계를 맺어야 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시계 좀 보려고 하는데요.”
은후가 적당히 둘러보며 시계 하나를 골랐다.
“이거 포장해 주시겠어요?”
“네, 잠시만요.”
은후가 포장된 시계를 계산하며 가볍게 말했다.
“혹시 메모할 만한 거 있을까요?”
“그럼요.”
은후는 자신의 번호와 함께 이런 말을 덧붙여서 건넸다.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마세요. 정 힘드시면 연락 주세요. 고민 정도는 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더불어 직원의 부정적인 감정을 흡수했다. 직원은 자신에게 내밀어지는 쪽지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쓰인 글귀에 화들짝 놀랐다.
‘어, 어떻게?’
눈치채고 보니 은후는 사라져 있었다.
‘꿈인가?’
손에 들려 있는 종이에서 감촉이 느껴졌다.
‘꿈은 아닌데.’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따가 죽어야지. 그럼 편해지겠지’ 그런 생각이 꽤 사라졌다.
* * *
그날 저녁.
은후와 마주했던 직원 박하나는 퇴근 후 한참을 머뭇거리다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네, 이은후입니다. 누구세요?
“아까 백화점 직원인데요.”
- 아.
박하나는 원래 이렇게 쉽사리 처음 보는 사람에게 연락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외모가 아무리 잘생겼어도, 그건 외모에만 가치를 두었던 시절에 된통 겪은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성격이 좋건 나쁘건, 그 외 조건이 어떻건, 잘생기면 그만 아니냐는 참 어리고 단순한 생각을 품었던 시절의 어리석음. 그럼에도 전화를 한 건 자신의 마음을 꿰뚫었기 때문에. 은후의 외모가 그 결심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 더. 박하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말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원래 속사정이라는 것이 그렇다. 친구나 가족이라서 하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것도 있는 법. 그래서 은후에게 전화를 했다.
- 덕진 공원으로 오실래요?
“네?”
-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요.
“…….”
- 내키지 않으시면 저야 아무래도 좋지만요. 그런데 그냥 단순히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꽤 편해지실 거예요. 참고로 저는 이야기 듣는 게 직업이에요.
심리상담학과에 다니는 전북대학교 재학생이란 말에 박하나가 망설이다가 곧 가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은후는 옷을 갈아입고 덕진 공원으로 향했다.
덕진 공원 입구에 도착했지만 여느 때처럼 반겨 주는 수호령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여전히 집을 만드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어.”
백화점에서 봤던 자살 희망자 박하나가 도착했다.
‘잠깐뿐이었나.’
아직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른다면 박하나는 자살을 결심하지 않을까 싶었다.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소주 한 병인데요.”
“가볍게 맥주 한 캔 정도 어떤가요?”
“한 캔 정도라면요.”
“선호하시는 브랜드 있어요?”
박하나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좋아하는 맥주 브랜드가 없진 않았으나 그건 지금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으니까.
“경치 좋죠?”
“네? 아, 네.”
은후가 일전 폐지 줍는 노인과 술잔을 나누었던 정자로 박하나를 이끌었다. 이후 둘은 아무 말 없이 맥주를 마셨다. 정확히 두 캔만 사 와서 서로 나누었기에 맥주를 마시는 건 금방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박하나가 조심스레 은후에게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뭘요?”
“제…… 생각이요. 극단적인 선택을 할 거란 제 생각. 최소한 티는 안 났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일부러 그랬거든요.”
절대로 티를 내지 말자고.
갈 때 가더라도 깨끗하게.
“인터넷이라든가 뉴스에도 나오잖아요. 자살하려는 사람은 증상이 나타난다고요. 그러지 않으려고 애썼거든요.”
“왜 그러셨어요?”
“부질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차피 죽는 마당인데요. 솔직히 말해서 나 편하자고 그러는 거잖아요. 죽고 나면 끝인데 굳이 흔적을 남겨 봐야 뭐 하겠어요.”
박하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얼마 전에 친했던 친구가 죽었거든요. 그때 느꼈어요. 굳이 흔적을 남길 필요가 있을까. 괜히 남은 사람만 더 힘들게 할 텐데. 좀 괴로웠거든요.”
어째서 일찍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자살을 암시하는 증거가 그렇게 많았는데.
“혹여 제가 자살한다면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차라리 아무도 눈치챌 수 없게 가자고. 그렇다면 최소한 남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 하면서 괴로워하진 않을 테니까.”
약 한 달 전.
“친구가 죽은 날 저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회포를 풀고 있었어요. 회식과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술자리는 역시 회사 사람들이 아니라 친구들이랑 해야지. 이게 소소한 행복인가 싶었죠.”
상사 욕도 좀 하고.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도 투덜거리고.
시답지 않은 일로 낄낄거리고.
“정확히 몇 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날 아침이었어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던 날에 예전에 친했던 친구가 블로그에 포스팅한 걸 봤어요.”
자살했다는 친구가 올린 글이었다.
- 힘들다. 그래도 이제 곧 괜찮아지겠지?
그리고 그건 유언이 되었다.
“자살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싶었지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포스팅은 예전부터 곧잘 올라왔거든요.”
박하나가 텅 빈 맥주캔에 힘을 주었다.
맥주캔이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