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무언가에 관한 반론을 제시하는 방법의 하나는 반론을 드는 것이었다.
행복의 반대는 불행.
이하연은 지금 자신이 불행한지 떠올려 보았다.
처음은 가족이었다.
‘부모님은 아직 건강히 잘 살아 계시고.’
또 자신에게 무척 잘 대해 주셨다. 공무원을 권유한 건 어머니였으나 적어도 강요는 아니었다. 마땅히 하고 싶은 게 없는 자신에게 딱 잘라 정해 준 것일 뿐.
‘내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 오히려 후회하셨지.’
잔뜩 화도 내 주셨다. 공무원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오히려 적극적으로 찬성하셨고, 돈 걱정은 하지 말고 한동안 푹 쉬라며 용돈까지 주셨다.
‘가족 관계는 좋아.’
오히려 요새는 부담스러웠다.
너무 잘해 주시려고 해서. 그게 싫다는 건 아니었지만.
‘오빠도…… 뭐.’
여느 만화에 나오는 남매처럼 사이가 엄청 좋은 건 아니었으나 나쁜 것도 아니었다. 어렸을 땐 엄청나게 싸웠지만 나이를 먹고 어느 순간부터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게임도 이따금 같이 자주 하기도 했고, 또 방송일에 있어서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던 것도 오빠였다. 부모님의 경우엔 처음엔 반대했으나 이내 받아들여 주셨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다고, 그리고 적어도 방송하면서 따돌림은 당하지 않을 거라는 딸의 말에. 여전히 걱정하시기는 하지만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연예인도 아닌 일반인이 방송한다는 건 아직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만약 은후가 아니었다면 이하연 또한 한참을 망설였을 것이다.
‘결국 방송을 했을 것 같기는 한데.’
은근히 우유부단한 이하연의 성격상 결심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터였다. 더불어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을 것이고.
‘친구 관계도 그래.’
최근 막말한 친구와 절교하긴 했지만, 다른 친구들과는 관계가 여전히 좋았다. 자신의 일에 관한 공감을 받을 수 없는 건 여전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오히려 은후가 특별한 편이지.’
해 보지도 않은 일인데 오히려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가족, 친구.
‘금전적으로도 괜찮아.’
부모님의 경우엔 노후 준비가 거의 다 되셨고, 오빠는 이번에 대기업으로 이직했다고 싱글벙글했다. 이하연 본인의 경우엔 각종 아르바이트 및 공무원 하면서 모아 놓은 돈이 꽤 되었다.
‘방송 일이 불안하기는 한데.’
하지만 이건 사전에 충분히 심사숙고한 부분이니 괜찮았다. 그리고 최근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사랑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호감이 꽤 크다는 건 스스로도 분명히 자각했다. 그러니 불행하진 않은 것 같았다.
“행복은 잘 모르겠는데.”
“응.”
“적어도 불행하진 않은 것 같아.”
“불행하지 않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니까. 다만 지금 불행한 게 아니라면 앞으로는 너 하기 나름이겠네.”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은 또 아니었다.
“그러네.”
해가 모습을 감추기 직전, 이하연이 활짝 웃었다.
어느 때보다 더더욱.
* * *
은후와 만남 이후 이하연의 태도가 바뀌었다.
방송에서도 행복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분들, 안녕!”
이하연의 방송은 저녁 6시부터 시작이었다. 플랫폼은 스타 스페이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개인에게 방송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방송을 시작하자 하나둘 시청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100명이 넘었다. 이하연의 고정 시청자들이었다. 평균 시청자의 숫자는 대개 300명 내외였다.
방송이 반년도 안 되었다는 걸 감안하면 적잖은 숫자였다. 하물며 이하연은 캠을 켜고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으니. 게다가 근래에 정체되었던 시청자들의 수가 늘고 있었다.
- ㅎㅇㅎㅇ
- 헬로~
순식간에 올라오는 채팅들.
- 근데 요새 무슨 일 있음?
시청자 수가 늘기 시작한 원인은 단순했다. 이하연의 방송 태도와 텐션 때문이었다.
“뭐가?”
이하연의 질문에 한 시청자가 말했다.
- 요새 기분 겁나 좋아 보이던데.
- 맞음ㅋㅋㅋㅋㅋ
- 원래 이런 텐션 아니었음?
- ㄴㄴㄴㄴㄴ 아님 더 잔잔했다고 해야 하나?
이하연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요새 방송이 행복해서 그래.”
안 그래도 방송하면서 이 부분에 관해서 한 번은 말하고 싶었는데.
- 행복?
- 뜬금???
이하연이 진솔하게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 * *
며칠 후, 은후는 박수무당 김영호가 머물고 있는 가덕산을 찾았다. 가덕산에 도착하자, 처음 만났을 때처럼 김영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게요. 오늘도 제가 올 걸 알고 계셨습니까?”
김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김영호가 모시는 신, 성수 장군에게 있어서 은후는 은인이었다. 그렇기에 은후를 무척이나 신경 썼다. 그리고 그건 김영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장군님께서 얼마나 기다리셨는데요.”
“저를요?”
“네.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을 기회가 생길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뭐.”
은후가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도움을 청하러 온 건 사실입니다만.”
“일단 들어오시죠.”
김영호가 안내한 곳엔 가벼운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익숙한 술병의 모습에 은후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자신이 만든 술 아니던가.
“꽤 만족하실 겁니다. 보통 술이 아니거든요. 구하느라 애 좀 썼습니다. 숙면에 도움이 되는 술인데 일반적인 기법으로 만든 술이 아니더군요.”
“잘 알죠.”
다만 김영호는 술과 은후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건 은후가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특별한 조처를 했기 때문이다.
예지와 같은 힘으로 자신을 추적할 수 없게끔. 다행히 잘 먹혀 들어간 것 같았다. 혹여 알면서 모르는 척할 수도 있어서 슬쩍 떠 봤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죠.”
“네.”
“나무가 좀 필요합니다.”
“나무요?”
예기치 못한 은후의 말에 김영호가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네. 제가 알기로 가덕산이 김영호 씨 소유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나무 좀 적당히 가져가겠습니다.”
“어렵지 않은 부탁이군요.”
나무를 가져가는 이유, 그건 집을 짓기 위함이었다.
덕진 공원에 만들 낙원을 위해.
과거와 다르게 지금 시대는 나무에도 소유권이 존재하는 시대였으니, 마음대로 나무를 베어 갈 수는 없었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들키지 않고 원하는 만큼 나무를 수급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되도록 합법적으로 움직이는 게 낫지.’
게다가 지금은 그 양이 많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미래를 고려하면.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죠.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말씀하시죠.”
“이미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당한 거래였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김영호가 잠깐 고민하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사건 하나를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원래는 나중에 상황을 봐서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마침 기회가 생겼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건요?”
“네. 올해가 가기 전 우리나라에 큰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줄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고 하더군요.”
“충격과 공포라.”
다만 은후는 의아함을 품었다.
“이유는요?”
“네?”
“어째서 김영호 씨가 그 사건을 막고자 하십니까?”
“뭐.”
김영호가 피식 웃으며 술잔을 매만지다 입을 열었다.
“아이와 관련된 사건이라고 해서 그렇습니다. 그것도 성범죄일 것 같습니다.”
“아이요?”
“네. 그 아이가 저와 인연이 있는 친구의 딸이라서요. 예전에 제가 세상을 떠돌았을 때 알게 된 친구죠. 도움도 적잖이 받았고요.”
그때 맺은 인연이 참 많았다.
“악연도, 선연도 그렇습니다. 악연은 성수 장군을 제대로 받들기로 하면서 다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선연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차근차근 빚을 갚아 나가는 와중이었다.
“예전에는 전부 다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솔직히 썩 내키지 않았어요. 장군님의 힘을 회복하는 거요. 제 인생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모시는 신에게 말해도 되는 겁니까?”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하여간 굳이 제가 장군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은 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셨기 때문이죠.”
힘을 회복한다면 김영호가 선하게 맺은 인연들에게 은혜를 갚는 걸 최대한 돕겠다는.
“그래서 무당의 삶도 나쁘지 않겠거니 싶었습니다. 이미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친척들과는 사이가 나빠 연이 끊겼고.”
그리하여 남은 건 일전 돈세탁을 하며 떠돌았던 사람들과 맺은 인연.
“마땅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요. 돈이야 장군님을 모시다 보면 알아서 얻게 될 테죠. 그렇다고 권력이나 명예에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리하여 김영호는 제 남은 삶의 목적을 은혜 갚기에 두었다.
물론 돈도 중요했다.
“그런데 이번 건은 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더라고요. 정확히 말하자면, 해결은 할 수 있는데 이후가 문제입니다.”
이 도움 이후, 나머지 은혜를 갚을 힘을 잃게 되리란 걸.
“정확히 말하자면, 장군님께서 저를 도와주실 수 없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만.”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요?”
“단번에 알아들으시는군요. 실패할 확률도 낮지 않고요. 아니면 다른 비슷한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겠죠. 미래는 가변적이지 않습니까.”
“예언과 관련된 단점이야 뻔하죠.”
그나저나 2008년에 대한민국을 흔드는 사건이라.
그것도 아이와 연관된 것.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다.
‘아닐 수도 있기는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르기 힘든 사건이었다. 사건 이후 전 국민이 분노했으며 사회 전반적으로 아동 성범죄의 인식까지 달라졌다. 심지어 법까지 바뀌었으니.
조도순 사건.
다만 이 사건을 막을 시 문제가 생겼다. 미래의 변화다. 아예 없던 일로 만든다면 당연히 대한민국은 이전과 다름이 없으리라. 이 때문에 일어난 사회의 인식 변화는 물론 법의 개정까지도.
“미래가 아예 바뀔 겁니다.”
“압니다.”
“그 변화로 피해를 보는 이도 분명히 나올 겁니다. 아니면 아까 말씀대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거죠. 그 가능성을 내버려 두실 생각은 아니시죠?”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 못돼 먹은 놈은 아니라서요.”
여기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면 은후는 김영호를 돕지 않았을 것이다.
“김영호 씨나 성수 장군도 감당해야 할 게 참 클 거고요.”
“그래서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은후 씨가 도와주지 않았을 때의 대비도 하고 있었거든요.”
“결심이 확고하시군요.”
김영호가 빙그레 웃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그 말 정말로 싫어하거든요. 아예 저와 연이 없는 사람이라면 안타깝다고 그냥 몇 번 혀를 차고 말았겠습니다마는.”
은후가 피식 웃었다.
은후 또한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란 말을 정말로 싫어하니까. 더욱이 인연이 없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도와 드리죠.”
“감사합니다. 모자란 대가는 추후 어떻게든 갚겠습니다.”
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후에게 있어서 분명히 손해 보는 장사였으니까. 다만 김영호의 진솔함이 은후를 움직였다. 그리고 김영호 또한 그걸 짐작했다. 그걸 서로가 알았기에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 * *
자세한 건 추후 다시 만나 상의하기로 하고 은후는 전주로 돌아왔다. 리어카에 집을 지을 목재를 잔뜩 싣고서. 바로 덕진 공원으로 간 은후를 언제나처럼 수호령이 반겨 주었다.
“은후 왔다!”
은후가 웃으며 수호령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은 후 말했다.
“우리, 집 지을까?”
생각지도 못한 말에 수호령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