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의 인생 룰루랄라-60화 (60/170)

제60화

처음 국내에 스타더스트가 온 이후 국내의 꽤 많은 기수들이 전주 승마장을 찾았다. 하지만 스타더스트는 그 누구도 자신의 등을 허락하지 않았다. 해외의 유명한 이들에 비하면 손색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국내의 내로라하는 기수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스타더스트가 자신의 등을 허락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 하나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은후의 승마 실력이었다. 뭔가 말을 타는 자세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야생적이라고 해야 하나?’

은후도 스타더스트도 너무도 편하게, 그리고 즐겁게 달리는 것으로 보였다. 야생적으로 보이는 건 은후의 승마 스킬이 현대와 다르게 이세계에서 습득한 것이었기에 그런 것이었지만.

“전북대학교 학생이라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이들은 오해했다.

은후가 천부적으로 말을 타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4학년이면 군대 갔다 왔다고 쳐도 20대 중반이네요. 혹시 기수 후보생이라든가, 그런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저 정도 실력이면 소문이 나도 금방 났을 겁니다. 그렇다면 저나 사장님이 모를 리가 없을 거고요. 게다가 스킬적인 면은 투박하고요. 잘 타는 건 확실합니다만.”

“저 실력은 그냥 타고났다는 것인데.”

“아무래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타더스트의 질주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저 경이로웠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이 잘 달리는 동물이라지만 사람과 함께 달리는 건 또 다른 일.

아무나 태우고 잘 달린다면 뛰어난 기수를 왜 그토록 키워 내고자 사람들이 노력하겠는가. 기수가 되고자 피나는 훈련을 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건 또 어떻고.

“전성기의 스타더스트를 보는 것 같네요.”

스타더스트를 전주 승마장에 데려온 후원자가 한눈에 반한 이유는 저 모습에 있었다. 달리는 게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광경이, 등에 타고 있는 기수의 분위기 또한 마찬가지였고.

“키만 작았다면 당장에 기수를 하라고 설득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경마 기수는 대부분 키가 작았다. 왜냐하면 말이 달리는 데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키가 160센티미터 이상이면 기수의 세계에선 거인 취급을 받는다. 애초에 160센티미터 이상이면 정식 기수가 되기가 무척 힘들기도 했고.

“나이도 문제입니다.”

“아니요. 고작 20대 중반입니다. 때가 늦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 재능이라면 충분했을 거예요. 신체적 조건이 적합했다면의 이야기입니다만.”

후원자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정말 아까워도 너무 아까워서.

* * *

은후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건 이하연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말을 타고 가벼운 산보하는 것도 어색한데 은후는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표정.

‘너무 신나 보여.’

언제나 보던 표정이 아니었다.

해맑다고나 해야 할까.

그런 은후의 표정을 접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좋고 재밌을까.’

이하연이 은후에게 시선을 빼앗긴 것처럼 까망이 또한 그러했다. 스타더스트의 질주에 자극을 받아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등에 타고 있는 이하연이 초보자라는 걸 알았기에 애써 자신의 감정을 다스렸을 뿐.

푸르륵.

까망이가 투레질하며 몸부림쳤다.

멍하니 몸에 힘을 빼며 은후를 바라보던 이하연이 깜짝 놀랐다. 자칫 잘못했으면 떨어질 뻔했다. 예기치 못한 불의의 사태였기에 너무 놀라서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워워.”

옆에 보조하던 직원이 화들짝 놀라며 까망이를 달랬다. 직원 또한 스타더스트와 은후에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까망이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이 느렸다.

“하연 학생, 괜찮죠?”

“네, 네. 하아. 진짜 깜짝 놀랐어요.”

“까망이가 좀 흥분했나 봐요. 아무래도 스타더스트 때문인 것 같아요.”

“네.”

이하연이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내릴까요?”

“아니요. 까망이도 진정됐나 봅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은후 학생과 스타더스트는 그렇다 치고, 하연 학생도 말을 좀 몰아 보셔야죠?”

이하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만 더 지켜봐도 될까요?”

누구라도 반할 만한 은후와 스타더스트의 달리기였다. 하물며 은후에게 호감이 있는 이하연이라면 어떻겠는가. 은후를 잘 모르는 직원인 자신조차 그러한데. 그래서 직원은 알았다고 짧게 대답한 후 다시 은후와 스타더스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언제고 달릴 것만 같았던 은후와 스타더스트의 달리기도 끝이 났다. 정확히는 은후가 스타더스트의 질주를 멈춰 세웠다.

스타더스트가 한계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더 달리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마나로 육체를 보조해 주었다고는 하지만 그게 만능은 아니었으니까.

‘좀 더!’

스타더스트가 싫다며 투레질했다.

이대로 더.

더 계속해서 달리다가 죽고 싶다고.

이후에 자신이 이렇게 달릴 수 있을까 의문스러워서.

그렇다면 차라리, 달리다가 죽겠노라.

그런 마음을 품은 스타더스트를 달랬다.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있을 거라고.

그런 은후의 말에 스타더스트가 반응했다.

‘정말?’

‘정말. 약속할게. 또 한 번 이렇게 같이 달리겠다고.’

스타더스트가 물었다.

‘내가 또 그럴 수 있을까?’

‘물론. 내 도움이 있다면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그렇다면야.

스타더스트가 저도 모르게 은후에게 본심을 털어놓았다.

‘죽어서도 이렇게 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함께 호흡을 맞추며 달렸던 방금 전의 달리기가 너무 즐거워서 죽어서도 그러고 싶다고. 그런 스타더스트에게 은후가 픽 웃으며 제안했다.

‘그럴래?’

‘?’

스타더스트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찼다.

‘원한다면 그렇게 해 줄게.’

사람이라면 그게 무슨 개소리냐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겠지만, 스타더스트는 말이었다. 거기에 은후가 전달하는 방법은 감정 마나를 통한 자신의 진심이었기에 진솔함이 담겨 있었으니.

‘그렇게 해 줘.’

‘좋아.’

은후의 마나가 올올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계약.

평범한 동물과 계약을 맺는 패밀리어 마법이 아닌 사후 영혼을 저당잡는 흑마법이었다. 다만 그 계약 조건에는 사악한 의도가 없었다.

* * *

현대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 은후 또한 이세계에서의 여타 흑마법사와 비슷했다. 복수라는 목표 단 하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애초에 흑마법사가 된 것도 복수를 위함이었으니.

그 과정에서 동물의 영혼을 저당잡고 자신의 의도대로 이끄는 데 전혀 마음을 쏟지 않았다. 중요한 건 복수에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으냐,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가.

동물은 동물.

정령이 되거나 혹은 어떠한 깨달음 또는 기적에 가까운 일을 통해 영혼의 격을 올리지 않는 이상 보통 동물의 지능은 인간 한참 이하였다. 본능적으로 위험함을 감지하기는 하지만 인간이 속이고자 한다면 충분히 속일 수 있었다.

‘아.’

그래서였다. 은후가 이런 경험을 처음 한 건.

흑마법으로써 영혼을 두고 순수한 의도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사후 계약을 한 건.

‘다르구나.’

달라, 서로 만족하는 계약이란 건.

계약이 끝나면 동물은 자신이 속았음을 알게 되나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쇠사슬에 묶였음을 깨닫는다. 그러니 서로 만족할 수 없었다. 만족하는 건 오로지 흑마법사뿐.

본디 흑마법은 불공정함을 강요하고 능청스럽게 속이며 자신의 이익을 강요하는 것이라 알려졌다. 은후 또한 그렇게 알았고. 하지만 그게 본질이 아니었다. 그 또한 술자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

‘그래.’

현대에 돌아와 흑마법을 사용하면서 은후는 지금껏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자신의 이익을 아예 추구한 적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 과정과 결과에 측은지심이 깔려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과거를 부정하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사악한 마법을 부렸던 것도 자신의 의지였다. 결국 중요한 건 마음.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모두 나였다.

흑마법 또한 마법. 크게 보자면 마법의 한 갈래.

그런 구분을 한 건 사람들의 편의성과 보이는 것 때문에. 하지만 그게 무어 중요한가. 중요한 건 내 마음인 것을. 현대로 돌아와 쌓아 올린 깨달음이 구체적으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모습을 갖추었다.

푸르륵.

스타더스트가 은후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투레질했다. 뭔가 좋은 일이 있는가 싶어서. 비록 일방통행이고 사후라는 조건이 붙었으나 스타더스트의 영혼은 은후에게 귀속되었으니.

“그래.”

은후가 미소 지었다.

‘달라질 건 없어.’

앞으로도 이렇게 쭉.

되도록 선한 의도로 마법을 쓸 것이나, 그렇다고 무작정 선을 좇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마음.

마음 가는 대로.

설령 그게 사회에서 말하는 악이라고 해도.

‘그 악을 내가 선이라 생각하면 선인 게지.’

명확하게 단정지을 수 없는 회색일 수도 있었고.

판단은 나 자신이.

모든 건 내가 생각하고 정하는 것.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 있어서 사고의 길이는 정말 길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관적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이 보통 느끼는 객관적 시간의 길이는 찰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더스트가 질주를 멈추고 은후가 환히 미소 지었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기에 그러했다. 그건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저렇게도 웃는구나.’

이하연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까도 그랬다.

스타더스트와 달릴 때 지었던 웃음도 처음 봤는데. 지금 짓는 미소도 처음이었다. 아까는 해맑았다면 지금은 상쾌하다는 느낌에 가까운 표정.

‘정말.’

오늘 오기를 잘했다.

‘진짜 반하겠는데.’

이하연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살짝 땀에 전 모습은 어찌 또 저리 멋진지.

“아깝다.”

“네?”

“사진이라도 한 방 딱 찍어야 하는데요.”

“아.”

직원의 말에 이하연이 속으로 탄식했다.

‘그렇네.’

저 멋진 장면을 기록으로 남길 수 없다는 게. 하지만 반면 만족감 또한 들었다. 저 광경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싫다는 마음 또한 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 자리에 자신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하기 싫었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린 이하연이 화들짝 놀랐다.

‘이하연, 정신 차려.’

그런 마음은 너무 과하지 않은가.

아직 자신이 은후의 연인도 아닌데.

‘아직은.’

게다가 은후와 자신이 잘되리란 보장 또한 없지 않던가. 은연중에 호감 표시를 하기도 했고, 또 앞으로 노력이야 하겠지만. 은후도 어느 정도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칫.’

이하연이 속으로 혀를 찼다.

‘자신감을 갖자.’

노력하면 돼. 그럴 수 있을 거야.

“뭘 그리 멍하니 있어?”

“어?”

이하연이 자신의 속마음을 정리하는 사이, 어느새 은후가 스타더스트와 함께 가까이 다가왔다.

“어어, 그냥. 너 보고 있으니까.”

“있으니까?”

“……보기 좋아서.”

“그래?”

은후가 웃었다.

“오랜만에 달리니까 좋더라고. 요놈하고 호흡도 잘 맞는 것 같았고.”

“오랜만?”

“뭐.”

“언제 또 타 봤던 거야?”

은후가 애매하게 웃으며 답했다.

“예전에.”

약간은 쓸쓸함이 감도는 눈빛.

아직은 사랑보다 멀지라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잔뜩 은후에게 집중하고 있는 이하연은 은후의 눈동자에 서린 감정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하기야.’

지금 보여 준 은후의 말타기 실력 정도면 처음은 절대 아니었다. 아무리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도. 직원은 나름대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은후 학생은 좀 쉬실래요? 체력 소모가 꽤 컸을 것 같은데요. 스타더스트도 그렇고요.”

“조금만 더 스타더스트 위에 있겠습니다. 달리는 건 아니고 가볍게 하연이랑 산책이라도 하려고요. 스타더스트가 못내 아쉬운 것 같아서요.”

스타더스트가 푸르릉거리며 콧김을 내뿜었다.

“갈까?”

“어? 응.”

“먼저 가 봐. 내가 보조 맞출게.”

“알았어.”

이하연이 조심스레 아까 배운 대로 까망이를 몰기 시작했다. 그 옆을 은후가 스타더스트와 함께 뒤따랐다. 그 뒤를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바람이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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